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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Baek Kyun Shin 2020. 5. 1. 01:06

이 책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분석철학의 창시자인 버트런드 러셀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행복에 관한 책이다. 큰 문제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조차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며, 어떻게 하면 행복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지에 대해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7년 전에 처음 읽었는데, 그때 당시 러셀이 누군지도 모르고 읽었다. 그저 유명한 학자 중 한명이겠거니 생각을 했고, 흔한 행복론 중 하나라 생각했다. 그런 편견을 가지고 읽다보니 책을 완벽히 소화하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러셀의 살아생전 인터뷰를 보고 다시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1장에서는 인간이 불행한 이유에 대해 고찰해보고, 2장에서는 행복으로 가는 길에 대해 살펴본다. 러셀이 말하는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지나친 허영심, 이유 없는 불행, 지나친 경쟁, 권태, 걱정, 질투, 불합리한 죄의식, 지나친 피해의식 등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인간이 불행한 첫번째 이유는 지나친 허영심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지나친 자기 도취적 허영심이 문제다. 어떤 일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일을 내가 정말 좋아서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해서 하는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원시인들은 사냥을 잘 한다는 자부심 때문에 즐겁기도 했지만, 사냥 자체를 즐기기도 했다. 허영심이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모든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말살해버린다. 결국 무기력과 권태에 빠지게 된다.

두 번째는 이유 없는 불행이다. 가끔 자신의 주변 상황의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데 이유 없이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유 없는 우울, 이유 없는 불행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상의 멜랑꼴리를 느끼는 것이 나름 멋진 삶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간혹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해 합리적 우월성을 느끼는 사람말이다. 우울한 건 우울한 것이다. 우울한 걸 자각한다고 우울함을 메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현명한 사람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 행복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 비극과 참된 행복이 전개될 수 있을 만큼의 진지함과 깊이를 지니려면, 공동체의 삶과 긴밀하게 접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세상에는 할 만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하는 모든 재능있는 젊은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충고하겠다.
"글을 쓰려는 생각을 버려라. 그 대신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보라. 세상으로 나가라. 해적도 되어보고, 보르네오의 왕도 되어보고, 소련의 노동자도 되어보라.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생활을 해라."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생활 방식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크러치가 진단한 병(우울함을 느끼는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만 이렇게 살아보도록 권한다. 예전에 지식인이었던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이렇게 생활하고 나면,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시기에 도달하면 글을 쓰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불행한 세 번째 이유는 지나친 경쟁이다. '생존 경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 과거 수렵 사회에서는 '생존 경쟁'은 말 그대로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사냥에 성공하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사업에 망하거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당장 죽는 건 아니다. 그들은 경쟁하면서 당장 내일 아침을 먹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옆 사람을 뛰어넘지 못할까봐 두려워 한다.

문제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행복의 주요한 원천이라고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다. 성취감이 행복한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은 맞지만 일정한 시점을 넘어서면 그렇지 않다. 성공은 행복의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공을 위해 나머지 모든 요소를 포기하면 지나치게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현대인은 경쟁심이 습관화되어있다. 그리하여 경쟁할 필요가 없는 분야에서까지 경쟁을 한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책을 읽는 것이 좋아서이고, 또 하나는 책을 읽었다고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서다. 남들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서라도 책을 읽는다면 아예 안 읽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굳이 그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경쟁의 철학 때문에 오염되는 것은 일만이 아니다. 여가도 마찬가지로 오염된다. 조용히 신경을 안정시키는 여가는 권태로운 것으로 여기게 된다. 결국 여가의 경우에도 끊임없는 가속이 필요하게 될 것이고, 그 종착점은 마약복용과 탈진상태가 될 것이다.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건전하고 조용한 즐거움을 인생의 균형 잡힌 이상형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네 번째 이유는 권태이다. 다양한 오락거리와 자극거리가 있는 현대 사회에서 권태는 과거에 비해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잠시의 권태도 견딜 수 없어한다. 러셀은 어느 정도의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만 깃들기 때문이다.

다섯번째 이유는 걱정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 걱정하며 살아간다. 

나의 행동은 내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며, 결국 내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또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인간은 아무리 큰 슬픔도 이겨낼 수 있다. 마치 인생의 행복을 끝장나게 할 것처럼 보이던 심각한 고민도 시간이 지나에 따라 차츰 사그라져, 나중에는 그 고민이 얼마나 강렬했는지조차 거의 기억할 수 없게 된다.

여섯번째 이유는 지나친 피해망상이다. 예를 들어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줬다고 하자. 그런데 그 사람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놀라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에게 고마워하지 않았을 때 당황스럽다면, 그 사람에게 선행을 베푼 동기는 순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었다는 즐거움은 권력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선행을 베푸는 동기는 생각보다 순수하지 않다.

네 가지 일반 원칙들에 포함된 진리를 충분히 깨달으면 피해망상을 적절히 예방할 수 있다. 첫째, 당신의 동기는 당신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반드시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둘째, 당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지 마라. 셋째,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당신 자신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넷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을 해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만큼 당신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고 상상하지 마라.

자신의 재능이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내 스스로 무언가를 잘 한다고 우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그 취미를 즐기면 되는 것이지, 결코 대단한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대단하지도 않은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 러셀은 행복으로 향할 수 있는 여러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 중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만인으로부터 갈채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기술을 연마하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 또 하나는 걱정의 원인이 아닌 다른 일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나는 철학과 문학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코딩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한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위해 꾸준히 운동하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억지로 하진 않고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 코딩 역시 마찬가지다. 코딩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고자 하는 건 없다. 그저 코딩, 데이터분석 기술을 연마하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보람도 있고 발전한다는 느낌이 좋다. 철학과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지난 2,500년 간 수 많은 현인, 사상가, 작가, 학자들이 느낀 지적 향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지적 향연이 내 삶에 1도 도움되지 않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철학과 문학을 읽었다고 내 삶이 고귀해지진 않았다. 내가 고상해지거나 지혜로워지지도 않았다. 다만 나만의 철학이 구축된다는 느낌은 있다. 사실 앎 자체를 즐기는 것도 굉장한 즐거움이다. 러셀 역시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알아가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여러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그의 말에 동조하기 때문에 앞으로 행복한 피곤은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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