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고려대학교 AI 야간대학원 세 번째 학기를 마치며 본문
고려대학교 SW·AI융합대학원 인공지능융합학과에서의 세 번째 학기를 마쳤습니다. 지난 두 번째 학기 후기에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되짚어 보았습니다. 출판 작업 때문에 1년 휴학 후 이번에 복학을 했는데, 이번 학기 역시 "AI 시대, 공부란 무엇인가?",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더 고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학기가 지날수록 기술 변화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 속도감 속에서 대학원 생활이 제게 주는 의미도 변해가는 것 같네요. 이번 학기에 배운 내용과 사유의 기록을 정리해 봅니다.
▷ 참고로, 지난 후기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AI 시대, 학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번 학기 내내 저를 따라다녔던 질문이 있습니다.
"바이브 코딩이 자유롭고 AI 성능도 압도적인 이 시대에, 학교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실 명확한 커리큘럼만 있다면, 생성형 AI를 활용해 혼자 학습하는 게 훨씬 빠르고 효율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학기 내내 들었습니다. 지식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학교는 이미 AI의 상대가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학교 공부란 'AI가 주는 편리함에 중독되어 사고하는 근육이 퇴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재활 훈련일 뿐일까요?
이렇게 결론이 나면 현재의 모든 교육체계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비관적으로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될 리는 없겠지요. 어쨌든 공부의 의미, 학교의 역할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고민 끝에, 저 나름대로 이렇게 정의를 해봤습니다.
(AI 측면에서의) 공부는 더 이상 '정답을 찾는 역량'을 쌓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대신 '질문을 제대로 하는 역량'과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 위한 과정으로 발전했다.
AI에게 "무엇을 기획해줘"라고 하면 근사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현실의 문제는 보통 '질문이 잘못되어서' 일어납니다. 예컨대 "매출을 올려줘"는 질문이 아니라 바람에 가깝습니다. 진짜 질문은 "어떤 고객의 어떤 행동을 어떤 방식으로 바꾸면 매출이 오를지 어떤 측면에서 알려줘" 같은 형태입니다. AI는 질문을 받으면 제법 그럴싸한 답을 줍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며, 따라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공부는 '질문을 날카롭게 만드는 훈련'이라고 볼 수 있겠죠.
또한, AI가 설계뿐만 아니라 검증도 해줍니다만, 그 검증은 대개 '자기 검증'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정답을 외우는 것보다, 어떤 증거면 충분한지, 어떤 실험이면 믿을 만한지, 어떤 오류가 숨어 있는지를 판단하는 눈을 만드는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AI가 그럴듯하게 돌아가는 코드는 잘 만들어도, 그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굴러가는지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죠. 공부는 바로 그 '문제없게 만드는 감각'을 키우는 일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앞서 말했듯, 혼자서 AI와 대화하며 공부하는 것은 효율적입니다. 멀리 대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내 방에서 간편히, 저렴한 비용으로 엄청난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만의 세계에 갇히기 쉽습니다. 나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도록 여러 기술적 자극을 준다는 차원에서는 대학교(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학교 안에서는, 혼자 공부할 땐 하기 힘든 비판적 합의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므로 AI가 대부분의 것들을 알려주는 상황에서도 학교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만, 이론과 개념을 알려주는 기존의 역할이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판단의 눈'을 길러주는 자극제로써의 역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할까?
이제는 '어떻게(How)'보다는 '무엇을, 왜(What & Why)'에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떻게(How)'가 중요치 않다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구현해야 효율적이고 효과적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AI에게 마냥 맡기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죠. 다만 예전에는 프로그래밍, 데이터분석, 머신러닝 등을 할 때, "이 기능을 어떻게 코드로 구현할 것인가?"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이제는 그 시간을 절약해 설계와 검증, 판단에 더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어떻게(How)'보다는 '무엇을, 왜(What & Why)'에 더 집중할 환경이 조성됐다는 뜻입니다.
영화감독은 카메라 조작법을 완벽히 몰라도 영화를 찍을 수는 있지만, 어떤 장면이 '좋은 장면'인지 판단하는 안목이 없으면 명작을 만들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AI에게 시켜 코드를 짤 수는 있지만, 그 코드가 최선인지, 보안상 결함은 없는지, 시스템 전체의 아키텍처와 정합성이 맞는지, 우리 도메인과 맞는지, 우리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공부한 사람'의 몫입니다. 이런 안목이 없다면 우리는 AI의 제안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대리인이 되고 말겠죠.
같은 AI를 써도 결과가 천차만별인 이유는, 사람의 머릿속에 '기준'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봅니다. 기준이 있는 사람은 AI에게 목표, 제약, 우선순위, 비용, 보안, 사용자 경험, 결과물 형식을 명확히 전달하고, AI가 만들어준 결과를 검토하고 반박하고 수정시키며 실험으로 확인하겠죠. 기준이 없는 사람은 AI가 준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말 것입니다. 공부는 내 머릿속에 그러한 판단의 기준을 만드는 일 아닐까 싶어요.
대학원, 여전히 다닐 가치가 있는가?
사실, 대학원이 주는 실질적인 효용을 향한 확신은 지난 학기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습니다. 이전 회고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저에게 졸업장 내지는 석사 타이틀 자체는 그다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대학원 공부 자체가 하고 싶어서 석사에 진학을 했습니다. 대학원이 주는 실질적인 효용은 줄었지만, 그렇다고 회의감이 드는 건 아니에요. 대학원 생활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AI 시대 교육의 역할에 대해 이토록 진지하게 고민해 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학창 시절,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3년 간 학원을 다녔는데, 중학교 3학년 말에 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3년 간 학원에서 배운 거라고는 '학원이 (적어도 내게는)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죠. 그 결과, 확신을 갖고 스스로 공부하며 고등학교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야간)대학원 안으로 들어와 시스템을 경험했기에 가질 수 있게 된 비판적 시각, 그 자체가 제게는 의미 있는 수확입니다. 경험이 곧 관점이 된 셈이네요.
과목별 후기
1. 빅데이터와 정보검색
이번 학기에서 가장 밀도 있게 배운 과목입니다. 초반에는 색인(Indexing), 검색 랭킹(Ranking), 성능 평가 등 전통적인 정보검색 이론을 다뤘습니다. 이후 ElasticSearch를 활용해 직접 검색엔진을 구축해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후반부에는 벡터 검색과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Agentic RAG, Multi-Hop 추론까지 다루었습니다. 더불어 팀 프로젝트로 LangChain, LangGraph를 활용해 RAG 에이전트 워크플로우를 설계해 보며, 서로가 개발한 결과물에 대해 발표하여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밀어붙이며 빡세게 강의를 하신 덕분에(?), 많은 내용을 배울 수 있었어요. 이번 학기에 들은 과목 중 가장 남는 게 많은 과목이었습니다.
중간고사는 배운 내용에 대한 주관식, 서술형 필기시험이었고, 기말고사는 특정 논문에 대해 정리/분석하는 페이퍼 작성이었습니다. 중간고사인 필기시험 점수는 교수님께서 구두로 말씀해주셨는데, 평균은 50점대였으며, 저는 95점으로 1등을 했습니다.
2. 데이터 및 정보시각화
과목명과 달리 실제로는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전반에 대해 배운 이론 중심 과정이었습니다. 데이터 전처리부터 시작해 패턴 마이닝, 분류, 클러스터링, 이상 탐지 등 데이터 분석의 뼈대가 되는 알고리즘을 학습했습니다. 이론 수업이라 실습이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론적 개념을 자세히 배웠다는 점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세 번의 학기 동안 교수님께서 중간, 기말고사 점수의 전체 통계값과 득한 점수를 LMS에 정직하게 공유해주신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둘 다 1등을 했더라고요.

3. 소셜미디어분석
바이브 코딩으로 서비스를 팀별로 개발해보는, 프로젝트 중심의 과목이었습니다. 바이브 코딩을 적극 권장하셔서, 다채로운 결과물들이 나왔습니다. 비개발자인 분들도 꽤나 훌륭한 결과물을 냈어요. 팀별 프로젝트 발표를 흥미롭게 듣긴 했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가이드 없이 팀별로 완전히 자율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교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많이 배운다는 느낌은 적었습니다. 아쉬운 과목이었습니다.

이제 곧 아이가 태어납니다. 육아에 전념해야 하므로 남은 두 학기는 출석만 겨우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공부가 '질문하는 역량', '판단하는 눈'을 기르는 일이라면,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자극제로써 역할은 하리라 봅니다. (집에선 공부를 거의 못하게 되겠지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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