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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Baek Kyun Shin 2019. 5. 30. 00:09

 읽는 순간의 그 느낌이 생각나 다시 집어 들었다. 원서로 2번, 번역본으로 2번 읽었다. 짧지만 묵직한 책이다. [이방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집에 돌아가기까지 3일 동안 벌어진 일들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홀든 콜필드는 성적 부진으로 퇴학을 당하고, 얼마 없는 돈으로 길거리를 서성이며 며칠을 보낸다. 퇴학 통지서가 수요일에 집에 도착하는데 그전에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방황을 하게 된다. 그는 속물들이 넘쳐나는 학교를 떠났지만 도심 속에도 여전히 속물들이 가득한 것에 염증을 느낀다. 홀든이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어른들은 속물이었다. 그와 반대로, 여동생 '피비'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순수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이 속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다 보면, 순수했던 아이들도 속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홀든은 넓은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호밀밭에 있는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절벽으로 떨어지는 순간 속물이 된다. 아이들이 속물이 되지 못하도록 붙잡아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홀든은 결국 정신병원에 갔다. 정신병원에서 퇴학 후 3일 동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홀든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 보면 반항아, 사회부적응자다. 영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낙제를 받았고, 룸메이트와 대판 싸웠으며 선생님의 잔소리를 경멸했다. 이러니 발표 당시 호밀밭의 파수꾼은 금서로 지정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의 순수에 대한 갈망은 어느 누구보다 컸다. 이유 없는 반항, 중2병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다. 속물에 물들지 않은 순수를 갈망했다. 하지만 학교와 뉴욕 길거리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었다. 여동생 '피비'를 비롯한 아이들만이 순수를 간직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사회의 굴레에 물든 사람들은 모두 속물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어른들의 세계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홀든은 학교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스펜서 선생을 찾아갔다. 감사의 인사라도 드릴 마음이었다. 하지만 스펜서 선생은 그 자리에서도 홀든이 시험을 왜 그 모양으로 봤는지에 대해 질타했다. 이때 홀든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말 천하에 둘도 없는 저능아이거나, 바보일 거라고 선생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선생이었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며, 선생의 일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지껄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시시껄렁한 소리였다. 
 그렇지만 정말 우습게도, 난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온통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뉴욕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센트럴 파크 남쪽에 있는 연못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집에 돌아갔을 때, 그 연못이 얼어붙지는 않을지, 얼어버리면 그곳에 살고 있던 오리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어떤 사람이 트럭을 몰고 와서 오리들을 태우고 동물원이나 그런 곳으로 가지는 않을까, 아니면 오리들이 멀리 날아가 버리는 것일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난 정말 운이 좋았다. 스펜서 선생에게 잡소리를 하는 동시에 오리 생각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선생의 잔소리에는 관심이 없다. 연못이 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갈지가 궁금했다. 나중에 뉴욕 시내를 떠돌며 택시를 탔을 때는 택시 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아저씨. 센트럴 파크 남쪽에 오리가 있는 연못 아시죠? 왜 조그만 연못 있잖아요. 그 연못이 얼면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아시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는 진심으로 오리를 걱정했다. 동시에 그 행방이 진심으로 궁금했다. 홀든 역시, 일부분은 사회의 굴레에 찌들었지만, 순수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완전히 학교를 떠나고 만다.

내가 엘크톤 힐즈를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주위에 가식적인 인간들만 우글거렸기 때문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 교장이라는 인간이 내 룸메이트의 부모에게 어떻게 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말은 학생의 엄마가 뚱뚱하거나, 촌스러워 보인다거나, 아버지가 어깨가 넓고 낡은 양복을 거치고 있거나, 남루한 검은색이나 흰 구두를 신고 있으면, 하스 교장은 그저 간단한 악수만 하고 지나가거나, 억지 미소만 지은 채 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학부모들과는 30분이나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건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들이었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엘크톤 힐즈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곳이었다.

 또한, 홀든의 학교에서는 멋진 사내가 폴로를 하는 포스터를 크게 걸어놨다. 마치 이 학교에 가면 매일 폴로라도 할 것 같이 말이다. 하지만 학교에는 말(馬) 한 마리 없다. 모교지만 좋은 학교일수록 속물들이 넘쳐난다고 홀든은 생각한다. 학교를 예로 들었지만, 샐린저는 1950년 미국 전역의 풍토가 이러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홀든은 전 과목 낙제를 받았지만 영어는 성적이 잘 나왔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국어다. 홀든은 스스로 '나는 완전히 무식하지만, 독서를 많이 한다. (I'm quite illiterate, but I read a lot)'고 말한다. 홀든이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이런 책이다.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책의 주인공이 작가의 분신인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니 샐린저, 까뮈, 니체의 대표작 모두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괴테도,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좋다는 얘기는 결국 작가가 좋다는 얘기다. 홀든이 정말 좋다면 샐린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이런 작품의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까 정말 궁금하긴 하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그런 말들을 해야만 한다.
지나치게 무언가를 잘한다면, 자신이 조심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게 되기 마련이다.

홀든은 가식적인 말을 하는 것이나, 자신을 치장해 과시하는 것을 경멸한다. 명백한 사회부적응자는 아닌 것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왜 그런지도 알고 있다. 다만 그런 가식과 과시, 속물근성을 싫어할 뿐이다.

여동생인 피비는 퇴학을 당한 홀든에게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홀든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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