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귀퉁이 서재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 본문

책과 사유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

Baek Kyun Shin 2019. 5. 16. 12:24

이 책은 빌 게이츠가 미국의 모든 대학생들에게 졸업 선물로 준 책이라고 한다. 그 이유 하나로 책을 구매했다. 사실 난 신작 베스트셀러는 잘 사지 않는다. 아마존 장기 베스트셀러라도, 언론사 및 전문가의 호평, 극찬 등이 있어도 잘 사지 않는다. 그런 책들이 도움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좋은 옛날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어쨌든 경영자이자 기술자다. 그는 앞으로 사회를 짊어질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의 메시지를 꼭 알아줬으면 좋겠는 바람으로 이 책을 줬을 것이다. 

Factfulness(팩트풀니스)는 '사실충실성'이다. 말 그대로 사실에 충실한 정도를 의미한다. 우리는 여전히 선입견 가득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국가들은 여전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나뉘고,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는 점점 더 커지고, 안 좋은 일들, 가령 테러나 범죄, 기아, 질병, 가난 등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에서는 연일 안 좋은 사건들에 대해 보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사회가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다고 착각을 한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13 문항의 퀴즈를 낸다. 가령 이런 문제들이다. 오늘날 세계 기대 수명,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의 비율, 오늘날 전 세계 1세 아동 중 어떤 질병이든 예방접종을 받은 비율 등에 관한 문제다. 가난, 아동, 인구, 여성, 자연재해, 멸종, 기온 등의 질문이 있다. 마지막 문항을 제외한 12문항 중 평균 정답률은 고작 2개라고 한다. 이는 전 세계에 있는 일반인, 대학생, 지식인, 정치인, 의료인 등에게 골고루 조사한 결과이다. 나는 13문항 중 2문제를 맞혔다. 웃긴 건 문제가 3지선다라는 것이다. 그냥 눈 감고 찍어도 최소 4문제는 맞추는 확률이다. 눈 감고 찍는 것보다 사람들이 세계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다. 더 신기한 건 학력 수준이 아주 높은 의료진, 보건진, 사회학자, 정치인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맞췄다는 것이다. 그들도 세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입견에 사로 잡혀 정답을 골랐다. 세계는 아직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나뉜다고 생각하고 있다. 개발도상국, 아프리카에서는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등 궁핍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주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전히 개발도상국은 '그들', 선진국은 '우리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들'에 비해 한참 뒤처져 있고, '우리들'을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선진국', '개발도상국'의 프레임은 몇십 년 전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때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프레임에 각각 많은 국가들이 속해있었다. 선진국도 개발도상국도 아닌 가운데 즈음에 있는 국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과거 개발도상국 프레임에 있던 나라들이 선진국 쪽으로 많이 이동을 했다. 그때 만들어 놓은 '개발도상국' 프레임에 현재 속해 있는 나라는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는 몇십 년 전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세상은 두 집단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그럼 우리는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명심하라. '우리'와 '그들' 역시 똑같은 오해다. 우리는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러 나라를 두 집단으로 나누는 행위를 멈추는 것이다.

머릿속에 '저들'이라는 범주를 만들고 거기에 인류 다수를 집어넣으면 이런 식의 엉터리 답이 나온다.

물론 아직도 TV에서 보는 것처럼 극빈하게 사는 국가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못살지 않는다. 이제 세계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로 좀 더 넓게 보는 사고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1단계는 과거 우리들이 생각한 '개발도상국'의 삶을 사는 나라, 4단계는 '선진국'의 삶을 사는 나라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거의 확실히 4단계를 사는 사람일 것이라고 말한다. 1단계 국가는 시간이 좀 흐르면 2단계가 되고, 2단계 국가 역시 시간이 흐르면 3단계가 될 수 있다. 그 간격이 우리가 과거에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극심하지 않다. 그리고 2040년에는 4단계 소비자의 60%가 서양 이외의 지역에 살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한다. 서양의 세계경제 지배가 조만간 끝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세계를 과도하게 극적으로 나누지 않고 네 단계로 구분하는 방식은 이 책에서 독자가 배울, 사실에 근거한 사고의 틀 중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독자는 이제 그 부분을 배웠다.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안 그런가?

실제로는 세계 현황의 많은 지표가 좋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왜 이렇게 세상을 부정적으로 볼까? 저자는 10가지의 본능을 들어 이를 설명한다.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

우리들은 뭔가 잘못되면 나쁜 사람들이 나쁜 의도로 그랬으려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좀 더 복잡한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고,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지극히 본능적이고 단순한 해법에 갇힌다. 사실 세계의 현황이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여전히 가난과 테러, 범죄, 부조리 등이 만연하고 있다. 현재 안 좋은 일이 많다고 세계가 안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10년 전, 50년 전에도 그런 일들은 만연했다. 저자는 인큐베이터를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을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미숙아라고 가정해보자. 아기의 건강 상태가 극도로 안 좋아 호흡, 심장박동 같은 중요한 신호를 꾸준히 관찰하며 아기를 보살핀다. 일주일이 지나자 상태가 훨씬 좋아진다. 모든 지표에서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위험한 상태라 계속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아기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라고 말할 경우, 만사 오케이니 마음 푹 놓고 걱정하지 말라는 뜻일까? 전혀 아니다. 상황이 나쁜 것과 나아지는 것 중 선택을 해야만 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둘 다 옳다. 상황은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지고 있기도 하고, 나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쁘기도 하다. 
세계의 현 상황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조금 더 미시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인 내 주변 상황에도 대입해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과거에 비해 상당히 많은 부분이 편리해졌다. 여전히 언론은 시끄럽지만 좋아지고 있는 일도 많다. 언론 특성상 좋아지고 있는 일 보다 나쁜 일을 보도하는 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일들이 좋아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저자는 연구소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거대 제약 회사인 노바르티스가 말라리아를 좀처럼 연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주 가난한 사람만 공격하는 질병도 연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어느 학생이 '그 회사 사장의 면상을 한 대 갈겨 줘야 해요'라고 말했다. "좋아, 사장의 면상을 갈겨줄게. 사장의 면상을 갈겨줘 사장이 새로 바뀌면 회사의 연구 우선순위가 바뀔까?" 그러자 다른 학생이 "이사의 면상을 갈겨야죠"라고 말했다. "좋아, 이사들의 면상을 갈겨줄게. 새로운 이사회가 꾸려지면 연구 정책이 바뀔까?" 그러자 또 다른 학생이 "결정권은 사장이나 이사회가 아니라 주주들이죠. 그중 부자들이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제약 회사인 노바르티스의 기금은 주로 은퇴 기금이었다. 저자는 처음 그 얘기를 꺼낸 학생에게 말했다. "이번 주말에 할머니를 찾아가서 면상을 갈겨드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질병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는 현실과 관련해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사장도, 이사도, 주주도 아니다. 그들을 손가락질해봐야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언론이 내게 거짓말을 한다거나(대개는 사실이 아니다), 삐딱한 세계관을 심어준다며(맞는 이야기이지만, 대개 고의성은 없다) 매체를 비난할 생각은 버려라. 전문가가 자기들만의 관심과 해당 분야에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다거나 상황을 악화시킨다며(그럴 때도 있지만, 대개 나쁜 의도는 아니다) 그들을 비난할 생각도 버려라. 한마디로, 개인이나 집단을 문제의 원으로 지목해 비난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쁜 사람을 찾아내면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거의 항상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여러 원인이 얽힌 시스템이 문제일 때가 대부분이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