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김만중] 구운몽 본문
구운몽은 17세기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소설이다.
김만중의 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자결했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부인 윤씨는 같이 자결하지 못하고 피난을 갔는데 피난 가던 중 배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바로 김만중이었다. 어머니 윤씨는 난 중에 아이를 낳았고 아버지 없이 두 아들을 홀로 키웠다. 윤씨는 두 아들을 입신양명시키기 위해 교육에 힘을 썼다고 한다. 그녀의 교육 덕분에 김만중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만 역임할 수 있다는 홍문관 대제학을 지냈고, 병조판서도 역임했다.
하지만 당시는 서인과 남인 간의 당파 싸움이 한창이었다. 결국 김만중은 장희빈의 세력에 반발해 유배를 가게 되었다. 당시 김만중의 나이 51세였다. 당파 싸움으로 인해 큰 아들은 저승길로 보내고, 작은 아들은 유배길을 보내자 어머니 윤씨는 홀로가 되었다. 유배 생활을 하던 김만중은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책을 썼는데, 그 책이 바로 구운몽이다. 비록 귀양을 왔지만 아들의 마음은 평온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효심 가득한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 일부러 사색이 가득 담긴 책을 쓰지 않고 연애 소설, 오락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렇게 재밌는 상상을 하며 걱정없이 지낸다'라는 마음을 표현하여 어머니의 걱정을 덜고 싶었을 것이다.
그 이후 사대부들도 구운몽을 돌려 읽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나이든 부모를 위해 글을 짓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여겨지기도 했다. 영조 역시 구운몽을 즐겨 읽었다는 기록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구운몽은 한글본도 있어 서민들도 구운몽을 즐겨 읽을 수 있었다. 조선 시대 가장 인기를 끌었던 문학 중 하나였다. 오락소설이라 재미도 있는데 인간의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구운몽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루마니아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되어 총 8개 국가에 출간되었다. 춘향전 다음으로 해외에서 많이 출판된 한국 고전문학이다.
구운몽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선계에서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은 불도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8선녀를 마주친 성진은 8선녀와 노닥거린다. 그 후로 8선녀에 대한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를 알게 된 육관 대사는 8선녀를 희롱하고 속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죄로 성진을 인간 세계로 떨어지게 한다. 성진은 양소유라는 이름으로 인간 세계에서 새로 태어났다. 양소유는 인간 세계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8선녀를 2명의 부인, 6명의 첩으로 삼았다. 돈, 여자, 명예를 다 얻은 양소유는 어느 날 8명의 부인들과 파티를 하던 중 이렇게 말한다.
동쪽을 바라보니 진시황의 아방궁이 풀 속에 외롭게 서있고, 서쪽을 바라보니 한무제의 무릉이 가을 풀 속에 쓸쓸하며, 북쪽을 바라보니 당명황의 화천궁에 빈 달빛뿐이라오. 이 세 임금은 천고의 영웅이어서 해와 달과 별을 돌이켜 천세를 지내고자 하였지만 이제 어디 있는가?
양소유는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그보다 더 큰 부귀영화를 누린 진시황, 한무제, 당명황은 모두 죽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사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랴.
그때 육관 대사가 양소유 앞에 나타나 그를 꿈에서 깨게 했다. 결국 양소유는 성진으로 다시 돌아왔고 모든 것은 꿈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성진은 인간사 부귀영화가 한낮 헛된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 정진하며 살았다.
솔직히 현대소설에 비하면 그리 재밌는 줄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성리학이 지배적이던 조선시대에는 굉장히 파격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흥미위주의 오락 소설이라면 왕이나 양반들은 눈치를 보며 쉽게 읽지 못했을 텐데 인간사에 대한 교훈을 주는 주제도 담고 있어 널리 읽혔던 것 같다.
당대 최고의 벼슬 중 하나였던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김만중도 결국 유배를 가 외로이 살아갔다. 이래나 저래나 나이가 들면 외롭게 살다가 죽는다는 걸 몸소 깨달았으리라. 그렇게 김만중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 후 죽음을 맞이했다. 진시황과 한무제와 당명황이 그러했듯이 김만중도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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