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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유

[한승태] 인간의 조건, 고기로 태어나서

데이터 파수꾼 Baek Kyun Shin 2020. 9. 6. 14:24

한승태 작가의 [인간의 조건],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오디오북으로 들었으니 두 권의 책을 들었다(?)라고 표현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조건]은 20대 후반의 저자가 진도 꽃게잡이 배, 서울 편의점과 주유소, 아산 돼지 농장, 춘천 비닐하우스, 당진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체험한 노동 현장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한 책이다. [고기로 태어나서]는 충남 금산과 전북 정읍의 닭 농장, 경기도 이천과 충남 강경, 그리고 강원도 횡성의 돼지 농장, 경기도 포천과 충남 금산의 개고기 농장에서 노동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낸 책이다.

정말 엉뚱한 생각이지만 나도 대학을 졸업할 즈음 이런 일을 해본 뒤 나만의 기록으로 남기면 어떨까 상상했었다. 한승태 작가처럼 농장이나 공장의 일이 아닌 건설 일용직이나 심지어 노숙자 체험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이었다. 물론 실행 의지는 전혀 없는 순전한 망상이었다. 이러한 망상이 떠오름과 동시에 몸을 쓰며 생계를 유지하는 삶과 직업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선택했다. 처음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접했다. 실제로 책의 문체나 분위기도 가벼웠다. 운동을 하며 들었을 정도로 분위기는 경쾌했다. 이 책 어디에서도 한승태 작가가 본인의 직업을 부끄러워한다거나 본인의 삶을 한심하게 본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없었다. 그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들 중 하나를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한탄이나 후회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한탄이나 후회를 했을지라도 그리고 그것을 글에서 표현했을지라도 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만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술했다. 

내가 살면서 꽃게잡이 선원이나 돼지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분들, 혹은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날 일은 별로 없다. 그러나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인간의 조건]을 읽고 나서 그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들을 일하는 로봇 혹은 감정 없는 사람 정도로 대하는 경우가 있다. 적어도 그들이 일할 때만큼은 정말 감정 없이 일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도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낀다. 진상 짓을 한다면 그들도 우리에게 손가락 욕을 할 수 있고, 바퀴벌레를 집어던질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대한다면 말이다.

[인간의 조건]을 다 읽고 나서 ('다 듣고'라는 표현이 여간 어색해서 그냥 읽는다고 표현했다.) 한승태 작가의 다른 책인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었다. 이 책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닭, 돼지, 개 농장에서 겪은 일에 대한 책이다. 이들 농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비위생적, 비윤리적'이다. 하림과 같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농장조차 상당히 비위생적이고 비윤리적이다. 대기업에서 관리하는 농장이면 뭔가 다를 것 같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 어느 농장이든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인간의 조건]이 인간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한다면 [고기로 태어나서]는 식용 가축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식용 닭, 돼지, 개는 '고기로 태어나서' 고통스러운 수모를 겪는다. 

아래는 저자가 돼지를 도태시키는 장면이다. 참고로 농장에서는 동물을 죽이는 것을 도태시킨다고 표현한다. 농장주들이 스스로의 잔인성과 욕심에 대한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그런 표현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

마른 돼지의 경우 분뇨장으로 끌고 간 다음 망치나 커다란 렌치로 머리를 내려쳤는데, 그것만으로 죽는 돼지는 없다. 아무도 그 한방으로 돼지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마를 까인 돼지는 코와 입으로 피를 흘리고 몸부림을 치지만 결코 그대로 죽지는 않았다. 이런 공격의 실질적인 목표는 불량품이 살아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죽음은 그 후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추위 또는 더위와 배고픔 뒤에 찾아왔다. 새벽에 도태시켰던 돼지 중에는 내가 퇴근할 때까지 살아 있는 경우도 많았다. 내게는 공격과 죽음 사이의 시간이 죽음이나 공격 그 자체보다 더욱 고통스러워 보였다. 
분뇨장 똥더미 위에 새끼 돼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눈은 절반 정도 감겨 있고 가슴은 팬플루트를 삼킨 것처럼 갈비뼈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상처도 피를 흘린 자국도 없었다. 다만 너무나도 지쳐 보였다. 마치 어린아이의 몸속에 노인의 영혼이 깃든 것 같았다. 팀장이 도태시키려고 골라났던 놈이었는데 너무 허약해서 후려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버려둔 것이었다. 퇴근할 무렵 그 돼지가 분뇨장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는 걸 농장장이 발견했다. "야! 저놈 까서 똥더미 위에 던져놔" 그가 말했다. "저 쇠파이프 가져가!" 나는 농장장이 가리킨 쇠파이프 대신에 연장통에 있던 묵직해 보이는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 편이 돼지를 한방에 확실하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돼지의 뒷다리를 붙잡고 분뇨장으로 들어갔다. 내 목표는 공격과 죽음이 동시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몰랐던 사실도 아니었지만 목숨은 스위치 내리듯 그렇게 간단하게 뺐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엉덩이를 때리는 것과 돼지의 눈을 바라보며 망치를 휘두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어서 결심한 만큼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저자는 고기를 먹지 말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농장에서 일을 했다. 그도 결국엔 걸레를 짜듯이 닭의 목을 비트는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 그가 동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꼭 고기를 먹어야 한다면 사육 동물들의 고통도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비좁은 환경을 조금만이라도 개선하고, 도태를 시킬 때 고통을 최소화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최대한 짧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 부품의 생산성을 높이듯 고기의 생산성을 높이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기가 될 운명에 처해 있는 동물들의 고통을 생각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물들의 고통을 생각하는 순간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은 돈과 관련 있다. 그래서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닭이나 돼지, 개가 생각이나 이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통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들이 고통 속에서 살다 고통 속에서 죽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고기로 태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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