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새뮤얼 스텀프] 서양 철학사 - 제5부 20세기와 현대 철학 본문
제16장 프래그머티즘과 과정의 철학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면서 변화의 개념에 초점을 둔 두 개의 철학이 생겨났다. 프래그머티즘과 과정의 철학이 그것이다. 두 철학은 고정불변의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 대신 그것들은 변화하는 경험과 형이상학적 과정의 입장에서 사물을 이해해야 했다.
프래그머티즘은 미국의 철학 기조를 마련하는 데 가장 주도적인 공헌을 했다. 프래그머티즘을 처음 주장한 철학자는 찰스 퍼스이며, 윌리엄 제임스에 의해 대중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또한 존 듀이는 이 철학으로 미국의 제도상 여러 문제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이 세 철학자의 핵심적인 주장은 일생생활을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키지 않는 철학은 별다른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프래그머티즘은 형이상학적 체계라기보다 문제 해결 방법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철학이다.
과정의 철학은 사물의 본성에 관해 특수한 견해를 제시했다. 과정의 철학을 주도한 두 철학자는 프랑스의 앙리 베르그송과 영구의 화이트헤드였다.
1. 프래그머티즘
철학의 한 운동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은 19세기 두 부류의 차별적인 성향을 가진 철학을 중재할 목적으로 생겨났다. 하나는 과학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중심적 사상이다. 과학은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인간의 본성에 위협을 가했다. 과학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과 세계는 단지 기계적인 또는 생물학적인 과정의 일부일 뿐이라고 믿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데카르트의 이성론에서 시작되어 칸트, 헤겔에 이르는 인간 중심적 전통이 있었다. 과학적 전통과 인간 중심적 전통은 서로를 배척했다. 경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이성주의가 객관성이 결여된다고 비판했고, 이성론자들은 과학이나 경험론이 도덕적 신념, 종교적 신념, 목적의식이 결여된다고 비판했다.
프래그머티즘은 이 두 전통 사이를 중재하고 이들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선택하여 결합하고자 노력했다. 퍼스, 제임스, 듀이는 각자 다른 측면에서 프래그러티즘을 주장했다. 퍼스는 논리학과 과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제임스는 심리학과 종교에, 듀이는 윤리학과 사회사항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모두 동시대 사람이었으며 뉴잉글랜드 출신이었다.
2. 퍼스
찰스 퍼스(1839~1914)는 1839년에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수학 교수였다. 그 역시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으며, 1861년부터 1891년까지 30년 동안 미합중국 연안 측량국에서 근무했다. 그는 그의 명석함에 비해 빛을 보지 못했다. 대학의 정식 교수 생활도 못해봤으며 철학자로서 확고한 위치도 점하지 못해 살아생전 출판된 저서도 거의 없었다. 그가 살아있을 땐 큰 명성을 얻지 못했지만 그가 죽은 지 수십 년 후 그의 저술들이 수집되어 몇 권의 책으로 편집되었고, 그것들이 경이적인 업적으로 평가받았다.
2. 1. 의미론
퍼스는 단어의 의미가 여러 가지 행동으로부터 도출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스어의 pragma(행위, 행동)로부터 프래그머티즘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퍼스의 기본적인 입장은 <어떤 사물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곧 그 사물의 감각 가능한 결과에 대한 관념이다>. 다시 말해 만일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으려면 우리는 <A면 B다>와 같은 형식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형식이 의미하는 것은 특정한 대상이 현존할 때 그에 따르는 특정한 결과가 예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단어가 어떠한 실제적인 결과도 생각할 수 없는 대상을 지칭한다면 그러한 단어는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
그는 외부 환경과 사물들을 참조하지 않고 단지 관념에 근거하여 타당성을 주장하는 이성론자의 이론에 반대했다. 우리의 사유는 주변 상황과 분리되어서 일어나지 않는다. 항상 어떤 맥락 안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의미는 직관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 도출된다. 이런 이유로 의미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공적인 것이다.
3. 제임스
윌리엄 제임스(1842~1910)는 1842년 뉴욕의 교양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869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를 취득한 뒤 1872년 생리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의학에서 심리학, 철학으로 관심을 옮겼으며 1890년에는 [심리학 원리]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자신의 프래그머티즘 원리들을 여러 분야의 비범한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3. 1. 방법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
윌리엄 제임스는 만일 이러한 세계 해석도 옳고 저러한 세계 해석도 옳다면 <우리의 한정된 삶 가운데 여러분이나 나에게 어떤 뚜렷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을지 찾아내야 하는 것이 철학의 모든 기능이다>라고 생각했다.
제임스에 의하면 프래그머티즘은 단지 방법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으로서 프래그머티즘은 인간의 삶이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인간이 사물과 주위 환경을 이해하고자 할 때 비로소 철학적 사유가 시작된다.
제임스는 퍼스와 마찬가지로 이성론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독단적이고 삶의 문제를 다루지 않은 채 세계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프래그머티즘은 독단적이지 않다. 제임스에 의하면 과학, 신학, 철학에서 어떤 이론도 최종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론의 모든 체계는 단지 근사치에 불과하며 완벽하지 않다. 어떤 이론의 가치는 그 이론의 일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에 있는 것이다. 단순한 일관성 대신 실용적인 현금 가치(cash value)를 이끌어 내야 한다. 즉, 우리는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 만일 어떤 이론이 실제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그 이론은 무의미하므로 우리는 이것을 폐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면 프래그머티즘은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 대신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제임스는 항상 어떤 관념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실용적인 방법을 <그것이 작용하고 있는가>라는 식으로 환원시켰다.
그러나 그 식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일련의 방법론적인 장치며 <항상 개체들에게 적용될 때에는 유명론의 장치고, 실제적인 면을 강조할 때에는 공리주의의 장치며, 말뿐인 해결책이나 무익한 문제들, 형이상학적인 추상을 배격할 때에는 프래그머티즘의 장치가 된다.>
3. 2. 프래그머티즘의 진리관
앞서 말했던 것처럼 프래그머티즘에서는 진리가 관념의 현금 가치여야 한다. 실제 행동에 대한 지침을 주는 것 이외에 무엇인가가 참이다 또는 거짓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동기가 있을 수 있는가?
제임스는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진리는 우리의 성공적인 행동에 의해 만들어진다. 성공적인 행동이 많은 만큼 진리도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말이 진리는 변덕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프래그머티스트에게 진리 추구의 이유를 묻는다면 제임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건강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건강함으로써 그만큼 돌아오는 게 있기 때문인 것처럼 <진리를 추구해야 할 우리의 의무는 대가를 지불해 주는 일을 해야 하는 우리의 일반 의무의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중략... 집단들이 제각기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만 주장한다면 논쟁들은 해결이 나지 않을 것이다. 제임스는 어느 이론이 실제 생활의 사실에 합당한가 물어볼 것이다. 여러 시대를 거쳐 오면서 철학자들에게 문제가 되어 온 논쟁은 자유 대 결정론의 문제다.
3. 3. 자유 의지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의 의지가 자유로운지 결정되어 있는지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우리가 의지의 자유 혹은 한계에 대해 논쟁을 할 때 양측 논거가 모두 받아들일만 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실용적인 가치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제임스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인간의 행동이 결정되어 있다면, 즉 자유 의지가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후회를 할 수 있을까? 이미 기계적인 톱니바퀴처럼 인간의 자유 활동이 없다면 모든 사건은 엄격히 정해져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후회를 할 수가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설득시켜 어떤 행위를 하게 하기도 하고 금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행위에 대해 처벌을 받기도 하고 상을 받기도 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인간의 의지가 강제되거나 결정된 것은 아니다.
그의 프래그머티즘은 <우리가 행위 A를 한다면 사건 B가 일어날 것이다>라는 공식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 <~한다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우리가 행위 A를 하도록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희망, 공포, 후회를 느끼는 인간이 있을 것이다. 또한 다음과 같은 실용적인 질문이 중심 역할을 해낼 것이다. <나에게 더 유익하고 현명한 선택은 무엇인가?>
3. 4. 믿음에의 의지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고, 실용적 가치를 떠난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제임스에 의하면 우리는 이성적으로 논증할 수 없는 사실들을 믿을 때 종종 실용적 이득을 얻곤 한다. 이것은 약간의 지적 모험이 따르지만 해볼 만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청년이 어떤 숙녀가 자기를 사랑하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청년은 숙녀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알지 못한다. 만일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그는 회의 때문에 고백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경우 그는 <진리를 잃는> 것이다. 그의 믿음에의 의지는 결코 그녀의 사랑을 창출하지 못할 것이다. 그 청년이 진리를 알게 되기 전에 증거를 얻고자 한다면 그는 결코 그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찾는 증거는 단지 그가 믿음 위에서 행동한 후에 비로소 유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이성적인 믿음은 사실을 발견한다기보다 사실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예컨대 내가 승진할 수 있는 것은 주로 내가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고 그 신념 위에서 단호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4. 듀이
존 듀이(1859~1952)는 프래그머티스트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92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치기 전까지 미국의 많은 제도, 특히 학교 제도와 여러 정치적 사안에 영향을 미쳤다. 존 듀이의 프래그머티즘 노선은 개인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인 영역에 있었던 관계로 그의 저서는 교육, 민주주의, 윤리학, 종교 및 예술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4. 1. 방관자 대 경험
듀이는 이전 철학이 지식의 참된 본질과 기능을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성론자든 경험론자든 그들은 인간의 정신이 본질적으로 고정되어 있고, 정신을 통해 본질을 고찰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과 본질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듀이는 지식에 대한 이러한 견해가 너무 기계적이라고 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여 인간을 생물학적 유기체로 간주했다. 인간은 변증법적 과정 속에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듀이의 중심 개념은 <경험>이다. 정신과 지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또한, 사유는 실용적인 여러 문제와 동떨어져 있는 행위가 아니다. 그 대신 사유는 <문제 상황> 속에서 생겨난다. 사유와 행위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도구주의>라고 명명했는데, 그것은 문제를 해결할 때 사유가 항상 도구적임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경험론과 이성론이 사유와 행위를 분리한 반면, 도구주의는 사유란 언제나 실제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정신은 단순히 개별 사물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기체로서 인간과 환경 사이의 매개자로서 행동하게 도와준다.
그러므로 사유 작용은 마치 진리를 사물에 내재하는 정태적이고 영원한 성질인 것처럼 여기는 그러한 진리의 탐구가 아니다. 사유 작용은 인간과 그의 환경 간의 조정을 이루고자 하는 행위다. 듀이의 말을 빌리면 철학의 가치를 검증하는 최선의 방법은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경험과 그것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가지게 되는 결론에 의해 경험과 상황이 우리에게 좀 더 유효하고 분명하게 될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다룰 때 더 이로운 결과를 가질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그의 도구주의는 일종의 문제 해결식 인식론이다.
4. 2. 사실의 세계에서의 가치
모든 사람은 선택해야 하는 경우를 경험한다. 가치에 대한 문제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경험을 할 때 생긴다.
듀이에게 성공적으로 끝나는 행위는 가장 가치 있는 행위다. 예를 들어 물이 새는 지붕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 어떤 사람은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누수를 막기 위한 여러 방법을 재빨리 생각할 것이다. 지성의 기능은 여러 선택에 대한 결과를 평가하는 데 있다. 지성은 결과를 평가할 때 과거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사용한다. 이때 정교한 이론이나 사물의 본질, 선험적 진리는 필요 없다. 가치에 대한 탐구는 과학적 방법론에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목적 달성을 위한 최선의 수단을 지성적으로 분류해 내는 것이다.
듀이의 관심은 가치의 문제를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사건들 속에 정치시키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궁극적인 목적이나 소위 가치 체계의 문제를 고찰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분명히 인간의 존재에 대한 목적은 물이 새는 지붕을 막아야 하는 경우처럼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성은 어떤 문제와 그 해답 사이의 간격을 연결해 주는 매개자이므로 그는 이 같은 실험적이자 도구적인 접근 방식에 의해 개인과 사회의 운명에 관한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일 인간이 전통적인 도덕과 규범을 포기한다면 어디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듀이에 따르면 <자연 과학의 발견들로부터> 찾을 수 있다. 원리적으로 가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의 만족에서 구해져야 한다. 과학에 의하면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 욕망이 여러 방식에 의해 만족될 수 있다. 듀이의 이론과 공리주의에는 약간의 유사성이 있지만 듀이는 공리주의를 극복하려 했다. 대부분의 공리주의자들은 인간이 쾌락을 욕구하기 때문에 그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듀이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듀이는 평가의 과정에 엄격한 요소를 추가했다. 그에게 욕구는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선택하기 전에 반드시 비판적 탐구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택은 욕망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욕망은 지성의 비판적 검토를 거쳐야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어떤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리고 최선의 수단은 어떤 것이 될 수 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삶은 너무 역동적이고 행동의 결과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5. 과정의 철학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야 과학은 자연이 공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물질적 대상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가정을 중시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만물은 궁극적인 재료인 어떠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도 물질적, 기계적 용어로 설명될 수 있다. 이 말은 인간은 우주적 기계의 일부로서 더 이상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는 이런 가정에 철학적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자연이 불활성적인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우주가 꽉 짜인 기계 조직과 같다면 어떻게 새로움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불활성적인 물질은 정태적 상태를 극복하고 진화할 수 있을까?
화이트헤드는 새롭게 생겨나는 물리학의 수많은 의미들을 들추어내면서 과학 안에서 자신의 형이상학으로 이동해 갔다. 이와 마찬가지로 베르그송도 과학을 거부할 의사는 전혀 없었지지만 그 대신 형이상학과 과학이 서로를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6. 베르그송
앙리 베르그송(1859~1941)은 1859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학계에서 베르그송의 성장을 매우 빨랐다. 그는 22세에 철학 교사가 되었으며, 1900년에는 근대 철학 분야의 정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여러 저서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각국의 학자들이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파리로 몰려들었다.
6. 1. 분석 대 직관
베르그송은 우리가 어떤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고 보았다. 첫 번째 방식은 <우리가 대상의 주변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두 번째 방식은 <우리가 대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첫 번째 방식에서 비롯되는 지식은 우리가 대상을 관찰함으로써 얻은 지식이므로 지식의 양태도 관찰자마다 다르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 첫 번째 방식에 의한 지식은 상대적이다. 그렇지만 두 번째 방식을 통해 얻은 지식은 절대적이다. 이 경우 우리는 대상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특수한 관점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대로 대상을 파악한다.
예를 들어 공간상의 물체의 운동을 생각해 보자. 물체가 움직일 때 우리가 그저 옆에서 관찰을 하게 되면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물체가 달리 보인다. 단지 기호로써 물체의 위치나 운동을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물체 내부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점과 거리의 단위에 대한 기호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우리는 기호가 아닌 대상의 실재를 인식할 수 있다.
내가 서 있는 곳, 즉 나의 정지된 위치로부터 운동을 파악하는 대신에 나는 대상이 있는 곳, 즉 내부로부터 그 대상의 운동을 파악해야 한다. 왜냐하면 운동은 대상 그 자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부에서 사물을 바라볼 때, 즉 사물을 기호로써 파악할 때 그 사물이 우리에게 주는 정보는 다른 사물과 공통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 사물에게 고유한 속성이 아닌 점뿐이다. 우리는 외부에서 사물을 바라볼 때 결코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본질은 사물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기호에 의해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기호는 항상 불완전하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시야에서 파리의 사진을 찍든가 또는 영화 필름에 담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파리에 살고 있을 때 느끼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베르그송은 대상의 주위를 맴도는 것을 <분석>이라 불렀고, 대상 안에 들어가는 것을 <직관>이라고 불렀다.
직관에 의해 베르그송이 의미하고자 하는 것은 대상의 내부로 파고 들어가 대상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것, 즉 표현할 수 없는 것과 합일하는 <지적 공감>이다. 과학과 형이상학의 근본적인 차이가 바로 <분석>과 <직관>의 차이에 있다.
6. 2. 분석이라는 과학적 방법
베르그송에 의하면 과학이 분석에 기초한다면 결국 그것은 분석하고자 하는 모든 대상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왜냐하면 분석은 이미 알고 있는 요소로 환원하는 작업, 즉 기호로 표현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장미를 분석하기 위해 장미를 뽑아 구성 성분을 분석한다고 하자. 실험실에서 아무리 장미에 대해 자세히 분석해도 이 장미는 더 이상 공원에 있는 살아 있는 장미가 아니다. 베르그송은 이런 분석적 지성이 아이러니하게도 대상의 본질을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본질은 역동적이고 번성하며 생동적이고 연속적인 존재, 즉 지속이다. 그러나 분석은 이러한 본질적인 지속을 방해하며 삶과 운동을 정지시킨다. 또한 참된 삶 안에서 통합되고 유기적이며 역동적인 실재인 것을 여러 개의 독립적이고 정태적인 부분으로 분리시킨다.
6. 3. 직관이라는 형이상학적 방법
베르그송은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 즉 <직관>이 있다고 말했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직관은 일종의 지적인 공감이다. 직관에 의해 우리의 의식은 대상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분석은 정태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기껏해야 병치되어 있는 부동적인 것들을 가지고 운동을 재구성한다. 이와 달리 직관은 운동으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을 실재 자체로서 단정하거나 지각하며, 정지 속에서는 우리 정신에 의해 찍힌 스냅 사진처럼 단지 추상적인 순간을 본다. 보통 분석적인 사유는 새로운 것을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배열로써 묘사한다. 아무것도 잃은 것은 없지만 아무것도 새로 만들어진 것도 없다. 그러나 성장인 지속과 밀접하게 관련된 직관은 지속 안에서 전혀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의 중단 없는 연속성을 지각한다.
이어 베르그송은 철학의 기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마침내 직관은 지성에게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성은 이미 본 바와 같이 운동을 정태적인 상태들로 보기 때문이다. 직관은 운동이 연속적이며 부분들로 환원될 수 없고 생의 약동에 의해 생성된 창조적 과정은 불가역적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이러한 비환원성과 불가역성에 대한 개념을 얻기 위해 우리는 정신에 폭행을 가해서 지성의 자연적 성향에 반(反)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곧 철학의 기능이다.>
7. 화이트 헤드
화이트 헤드(1861~1947)는 베르그송과 마찬가지로 분석적 사유에 반대했다. 그의 주제는 <연결성이 모든 사물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철학은 과학이 분리하려고 한 것들을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과학에 의해 무시되어 온 것들은 모두 중요한 것들이다. 즉 직관과 삶 자체 같은 것들 말이다.
7. 1. 단순 위치의 오류
화이트 헤드는 뉴턴의 물리학이 오류에 빠져있다고 주장했다. 그 오류는 단순 위치(simple location)의 오류다. 뉴턴은 사물이 공간상에 존재하는 개별 조각들의 물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화이트 헤드는 이러한 뉴턴의 주장에 반대하여 <우리의 경험 속에서 인식되는 자연의 기본 요소들 가운데에는 결코 이 단순 위치의 성격을 가진 요소가 없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원자는 지적인 추상의 산물이다. 시간상의 순간들, 공간상의 점들, 물질의 개별 입자들, 이러한 사물들은 과학적 사유에 도움을 주는 개념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실재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니다.
우선 화이트 헤드는 <원자 atom>라는 단어를 거부했다. 그 대신 <현실적 실체 actual entity>나 <현실적 사건 actual occasion>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불활성적인 원자와 달리 현실적 실체는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고립되어 있지 않고, 주위에서 요동하고 있는 생의 전 영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화이트 헤드의 <현실적 실체>라는 개념은 자연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간주하게 한다.
7. 2. 파악의 이론
우리는 단일의 고립된 현실적 실체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실체들의 집합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화이트 헤드는 현실적 실체들의 집합체를 <사회>나 <상호 관계 nexus>라고 불렀으며, 그 안에서 실체들은 그것들의 <파악 prehension>에 의해 결합된다.
화이트 헤드는 현실적 실체들이 어떻게 상호 관계를 맺는지 기술하기 위해 <파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세계 내에 연관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실적 실체들은 창조적 과정에 의해 집합이나 사회 아니면 상호 관계로 결합된다. 이러한 생성 과정 속에서 현실적 실체들은 <파악>을 통해 형성된다.
제17장 분석 철학
20세기 영어권 국가에서 분석 철학(analytic philosophy)은 철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분석 철학자들은 언어 분석을 통해 개념을 분명히 하려고 했다. 그들에 의하면 철학의 과제는 언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데 있다. 대표적인 분석 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서 [논리 철학 논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철학의 목적은 사상의 논리적 명료화에 있다. 따라서 철학의 성과는 철학적 명제의 수가 아니라 명제의 명료화다.
이런 분석 철학은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우선 부정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분석 철학에 의하면 철학의 과제는 실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도, 우주를 설명하는 것도, 행위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종교적 철학을 형성하는 것도 아니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다. 그것은 어떠한 윤리적 명제도 낳지 않는다. 철학자는 자기 스스로가 세계에 대한 고유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사실들의 발견은 과학자의 몫이다. 과학자가 그 과제를 모두 완료하면 철학자에게는 남아 있는 사실이 아무것도 없다. 다음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 분석 철학자들은 언어의 부정확한 사용에 의해 야기된 문제들은 해결함으로써 철학을 수행한다. 따라서 잘못된 추론이나 무의미한 가정을 하는 식으로 언어를 오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또는 헤겔의 방식을 본떠 방대한 사상 체계를 제시하거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해 주는 것은 이미 철학자의 기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의 기능은 언어 안에서 모호성의 원인과 의미의 기초를 발견하기 위해 언명이나 명제를 분석하는 데 있다.
1. 버트런드 러셀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헤겔학파 철학자들의 주장에 반대했다. 그는 헤겔주의자의 무절제한 형이상학적 언어에 반발을 일으켰고, 이들이 내놓은 우주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도 회의를 품었다. 러셀은 뛰어난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다. 그에게 형이상학적 언어는 수학적 언어에 비해 불명료하고 조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러셀은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진리의 발견이 아닌 의미의 명료화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논리적 원자론 logical atomism>을 주장하며 언어가 수학적 정확성과 엄밀성을 갖춰야 한다고 보았다.
1. 1. 논리적 원자론
러셀이 처음 철학을 시작한 것은 수학의 정확성에 대한 경탄 때문이었다. 그는 논리적 원자론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냈는데,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창시하고자 하는 종류의 철학은 수리 철학에 대해 사유하는 도중에 부각된 것이며, 나는 이것을 논리적 원자론이라고 부른다.>
러셀이 주장한 논리적 원자론을 쉽게 표현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하여 책의 일부분을 그대로 발췌하였다.
그의 <논리적 원자론>을 통해 세계는 논리적 언어에 부합할 것이다. 새로운 논리학의 어휘는 대부분 세계 안의 특정 대상에 부합한다. 러셀은 새로운 어휘를 만들어 내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우선 <사물>과 구별되는 <사실들>의 분석에 착수했다.
러셀에 의하면 <세계 내의 사물들은 여러가지 성질들을 지니고 있으며 상호 간에 여러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들이 이러한 성질들과 관계들을 가진다는 것이 <사실들>이다.> 사실들은 사물 상호 간 관계의 복합성을 구성 요소로 한다. 따라서 <복합성의 문제를 고찰하려면 사실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해야 한다.> 러셀의 근본 가정은 다음과 같다. 즉 <사실은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복합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분석될 수 있어야 한다.> 사실의 복합성은 언어의 복합성과 어울린다. 이런 이유에서 분석의 목적은 모든 진술이 그것에 상응하는 실재에 대한 적합한 묘사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러셀에 의하면 언어는 단어들의 독특한 배열로 구성되는 것이며, 언어의 유의미성은 이들 단어가 사실들을 나타낼 때의 정확성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단어들이 모여 명제를 구성한다. 러셀은 <논리적으로 완벽한 언어에서 한 명제를 구성하고 있는 단어들은 각각 대응하는 사실의 구성 요소와 일치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어떤 <단순한 단어들이 분석에 의해 발견되는데 이것들은 더 이상 단순 요소로 분석되지 않고, 따라서 그것들이 나타내고 있는 대상을 인식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빨갛다 red>는 단어는 더 이상 분석이 불가능하기에 단순 술어로 이해된다. 마찬가지의 다른 단순 단어들은 특정한 사물을 지칭하며, 그것들이 이러한 사물들의 기호로서 <적합한 명칭> 일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는 특정한 사물과 그것의 술어 (예를 들어 빨간 장미)를 나타내는 가장 단순한 형태, 즉 단어들의 부분으로 구성된다. 한 명제는 하나의 사실을 나타낸다. 하나의 사실이 가장 단순한 종류의 것이라면 그것을 <원자적 사실 atomic fact>이라고 부른다. 원자적 사실을 나타내는 명제를 가리켜 <원자적 명제 atomic propositions>라고 부른다.
언어의 논리 구조는 원자 명제를 기호로 나타낼 때 더욱 명백해진다. 예를 들어 <나는 피곤한다>는 원자 명제를 문자 p로 나타내고 <나는 배고프다>는 원자 명제를 문자 q로 나타내서 사용할 수 있다. 이때 이들 두 원자 명제를 <그리고 and>와 <또는 or>과 같은 연결 기호로 결합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나는 피곤하다 그리고 나는 배고프다>같은 분자 명제이다. 이는 <p and q>라는 기호로 표현할 수 있다. 러셀에 의하면 <나는 피곤하다 그리고 나는 배고프다>에 대응하는 단 하나의 원자적 사실은 없다. 이때 우리는 분자 명제의 진위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분자 명제를 구성하는 원자 명제들의 진위에 달려 있다. <나는 피곤하다>는 원자 명제가 참이고 <나는 배고프다>는 원자 명제가 참이면 <나는 피곤하다 그리고 나는 배고프다>는 분자 명제도 참이 된다.
이렇듯 러셀은 원자적 사실에 대응하는 원자 명제들로 구성된 분자 명제로 세계를 기술한다. 이러한 이상 언어는 세계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1. 2. 논리적 원자론이 지닌 문제들
러셀의 논리적 원자론은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 문제는 논리적 원자론은 다음과 같은 명제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말(馬)은 위염에 걸려 있다>. 이 명제의 진위를 검사하기 위해서는 이 명제를 원자 명제로 분석하고 각각의 원자 명제의 진위를 검사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말>에 대응하는 원자적 사실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 말이나 저 말 그 이상인, 모든 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러셀의 논리적 원자론 자체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명제는 그것이 어떤 원자적 사실에 근거할 때만 유의미하다. 그러나 러셀은 논리적 원자론 자체를 단지 원자적 사실들로만 진술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 사실들에 <관한> 것들을 말하려 했다. 만일 사실을 진술하는 명제들만 유의미하다면 사실에 <관한> 언어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논리적 원자론 자체도 무의미하다.
논리적 원자론의 관점에서 볼 때 명제들은 하나의 원자적 사실에 대응할 경우에만 유의미하다. 그러므로 원자 명제나 분자 명제들만이 유의미하다. 논리적 원자론의 명제들 대부분은 사실들을 진술하기보다는 사실들에 대한 사물들을 지칭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사실을 진술하는 명제만이 유효하다면 우리가 단어와 사실 간의 관계를 설명하려고 할 때처럼 사실들에 대한 언어는 의미도 없으며 유효하지도 않다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결론에 의하면 대부분의 철학이 쓸모가 없게 된다.
2. 논리 실증주의
러셀의 분석 철학의 진원지가 영국이었다면 1920년대 빈에서는 <빈학파>로 알려진 집단이 생겨나게 되었다. 빈학파는 스스로를 흄의 경험론적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경험적이었으며 형이상학을 전적으로 부인했다. 그들에게 철학의 이상은 모든 과학의 통일에 있었다. 빈학파는 초기 실증주의자들 특히 콩트처럼 형이상학을 과학보다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했다. 반면 흄과 콩트와 달리 빈학파는 하나의 무기를 더 가지고 있었다. 바로 언어의 <논리적> 특징이 그것이다. 빈학파는 흄의 경험론과 콩트의 실증주의를 자신들과 구별하기 위해 스스로를 <논리 실증주의자> 또는 <논리적 경험론자>라고 불렀다.
2. 1. 검증 원리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을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배격했다. 그들은 검증 원리를 정식화했는데, 이 검증 원리를 통해 어떤 명제가 유의미한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했다. 한 명제가 검증 원리의 요구 조건들을 통과한다면 그 명제는 유의미하다고 간주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 명제는 무의미하다고 간주한다. 에어는 검증 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검증 원리는 생각컨데 어떤 문장이 문자 그대로 유의미한지 여부가 결정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검증 원리를 정식화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그것을 표현하는 명제가 분석적이거나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할 때만이 어떤 문장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검증 원리는 두 가지 요구 조건을 제시한다. 어떤 명제는 (1) 분석적, 즉 본질상 참이거나 (2)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할 때만 유의미하다. 분석적 명제는 그 자체로 본질상 참인 명제다. 예를 들어 <모든 총각은 미혼 남자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닌다. 총각이라는 단어에 미혼 남자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분석적 명제의 의미는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다. 명제 속에 있는 단어의 순전한 정의에 의해 참이 된다. 따라서 분석적 명제는 동어 반복이다. 반면, 경험적 명제는 경험적 관찰에 의존하는 명제다. 예를 들어 <태양은 내일 떠오를 것이다>와 같은 것이다. 태양이라는 단어에 <내일 떠오른다>는 관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명제는 단지 수많은 관찰을 통해 경험적으로 얻어진 사실이다.
흄과 칸트의 전통을 이어받은 실증주의자들은 명제를 두 가지의 종류, 즉 분석 명제와 종합 명제로 구분한다. 이들 각각은 유의미성의 근거가 다르다. 분석 명제는 그것의 유의미성을 그것을 이루는 단어나 기호의 의미로부터 이끌어 낸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사람>이라는 단어는 <반드시 죽는다>는 관념을 함축해서 정의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분석 명제에서 주어는 술어를 포함하거나 함의한다. 대부분의 경우 분석 명제는 우리의 지식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분석 명제는 동어 반복이다.
반면에 종합 명제는 각 경우에 있어서 참이거나 거짓이다. 그리고 그것의 진위는 단지 어떤 비논리적이거나 비언어적인 자료, 즉 사실에 근거하여 발견될 수 있다. 필연적으로 동어 반복 아니면 모순인 분석 명제와 달리 종합 명제는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종합 명제는 그것의 개연성에서 현실적 진리로 진행하기 위해 그 명제가 지칭하는 대상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필요로 한다.
논리 실증주의자에 의하면 분석적이거나 종합적이지 않은 명제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이런 명제가 속하는 범주에는 형이상학뿐만 아니라 윤리학, 미학, 종교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은 과학과 수학은 중시했으나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 종교는 부인했다.
2. 2. 루돌프 카르납
루돌프 카르납(1891~1970)은 빈학파에서 가장 유명한 실증주의자다. 그는 그의 저서 [철학과 논리적 구문론]에서 철학의 유일한 과업은 논리적 분석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논리적 분석의 목적은 주어진 명제의 진위를 명백히 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다. 명제의 진위를 명백히 할 수 있는 검증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직접적인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간접적인 방법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집을 본다>와 같은 명제는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 진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나의 현재 지각을 통해 검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직접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명제들이 있다. 가령 <이 열쇠는 쇠로 만들어져 있다>와 같은 명제들이다. 이와 같은 명제는 간접적인 검증 방법이 필요하다.
카르납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논리적 분석이 불가능하다. 형이상학적 명제는 검증이 불가능하며, 검증해본다고 해도 항상 부정적인 결과만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적 명제는 전혀 아무것도 주장하는 바가 없다. 카르납은 [철학과 논리적 구문론]에서 다음과 같이 형이상학을 부정한다.
형이상학적 명제는 참도 거짓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명제는 아무것도 주장하는 바가 없으며 지식도 오류도 포함하지 않고, 전적으로 지식이나 이론의 범위 밖에 있는 것이며 그 진리성이나 허위성을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중략... 형이상학은 실제로는 아무런 지식도 주지 못하면서 단지 지식의 환상만을 준다. 이것이 우리가 형이상학을 거부하는 이유다.
카르납에 따르면 윤리학과 가치 판단은 모두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한다.
카르납은 논리적 명료성을 위해 언어의 <자료적> 양식과 <형식적> 양식을 구분했다. 그는 형이상학자들이 종종 자료적 양식에 의해 모호함과 오류에 빠지고, 그리하여 무의미한 철학적 논쟁을 한다고 믿었다. 이런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문장들을 자료적 양식에서 형식적 양식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보여 준다. <달은 하나의 사물이다>라는 문장은 자료적 양식에 속한다. 그것은 <달이라는 단어가 사물 지시어다>라는 형식적 양식으로 번역될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7은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수다>라는 자료적 양식은 <7이라는 기호는 사물 기호가 아니라 수 기호다>라는 형식적 양식으로 번역된다. 위험한 자료적 양식을 피하는 방법은 <사물>이라는 단어 대신 <사물 지시어>라는 통어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 대신 <수 지시어>를, <성질> 대신 <성질 지시어>를, <사건> 대신 <사건 지시어> 등으로 나타내야 한다. 카르납이 문장들을 형식적 양식으로 번역하는 방법에 의해 원했던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논리적 분석에서 비언어적 대상들과의 모든 관련에서 탈피하고 단지 언어적 표현들 - 구문론에만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2. 3. 논리 실증주의의 문제들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주장은 많은 철학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검증 원리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논리 실증주의자들도 그것을 즉시 시인했다.
논리 실증주의의 문제점 중 하나는 검증 원리 자체가 검증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유의미한 명제는 분석적이거나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하다>는 문장을 생각해 보자. 그러나 이 문장 자체가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검증 원리에 부합하는가? 이 문장 자체가 과연 유의미한 것일까?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 참도 아니며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검증 원리라는 이 언명은 자기 검사에 실패한다. 따라서 이 문장 자체도 무의미하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의 원리가 유의미한 과학적 주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권고에 가까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원리가 형이상학을 모두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경우 형이상학자들이 이와 같은 권고를 받아들일 이유가 무엇일지, 그 의문은 여전히 남게 된다.
또 다른 문제점은 검증 원리가 감각 경험을 왜 그렇게 높이 장려했는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직관에 기초한 언명은 무엇 때문에 유의미성에서 배제시키려 했는가? 검증 원리가 검증 가능하지 않음은 이미 밝혀졌다. 의미의 기준이 반드시 감각 경험이 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물었을 때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논리 실증주의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논리 실증주의는 점차 힘을 잃었다. 초기 형태의 논리 실증주의가 내부적인 난제들의 중량감에 못 이겨 와해되긴 했지만, 그것이 안겨 준 충격에 의해 언어의 용법과 분석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분석적 운동은 지속되었다.
3.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3. 1.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이르는 길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1889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에서 여덟 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중금속 산업 분야를 주도한 인물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의 아버지는 은퇴하면서 자신의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를 원했지만 자식들 대부분은 각자의 관심 분야로 나아갔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지 않고 그의 관심사인 철학에 몰두했다.
훗날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러셀의 지도를 받았다.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을 만난 뒤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독일 친구는 일격을 가할 만큼 위협적인 존재다. 그는 내 강의가 끝난 뒤 함께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 때까지 자기주장을 계속했다. 그는 아주 고집이 세고 외골수였지만 어리석지는 않았따. 또한 이 독일 공학도는 매우 논쟁적이고 성가신 존재였다. 그는 방 안에 코뿔소가 없는 게 확실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돌아와서 내가 옷을 입는 동안 계속 자기주장을 했다. 마침내 나는 이 독일 공학도가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경험적인 어떤 것도 인식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방 안에는 코뿔소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요구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다.>
이후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가 자신을 능가할 것이라고 믿었다. 러셀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나의 저서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노쇠했다. 그러므로 나는 참신하고 정력적인 젊은이를 원한다. 비트겐슈타인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그 젊은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을 일사분란하게 전개하지는 않았다. 그는 도시를 떠나 노르웨이에 오두막을 짓고 전원생활을 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철학에만 몰두했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으나 아무 이유도 없이 그 재산을 포기했다. 그리고 유럽에 전운이 돌자 오스트리아 군대에 입대했다. 전쟁 속에서 그는 [논리 철학 논고]를 썼다. 병역 의무를 마친 뒤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그러나 강의를 하는 생활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대학 교수가 되지 말고 육체노동자가 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그의 초기 철학은 [논리 철학 논고]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그는 그의 사상을 전환했다. 그의 후기 철학은 사후에 출간된 [철학적 탐구]에 잘 남아있다.
3. 2. 형이상학적 언어의 명료화
비트겐슈타인은 형이상학적 언어를 어떻게 취급했을까?
논리 실증주의자들과 달리 그는 형이상학의 명제를 무조건 배격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형이상학자를 범죄자보다는 환자로 생각하려 했고, 따라서 철학의 기능도 다분히 <치료적>이라고 여겼다. 형이상학적 언어는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며, 철학의 주요 관심사는 명료성의 결여 때문에 혼란이나 혼동을 일으키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철학은 <우리의 지성이 언어에 의해 마술을 거는 것에 대항하는 싸움>이다. 마술은 혼동을 일으키며, 따라서 철학의 문제는 <나는 나아가야 할 나의 길을 알지 못한다>라는 형태를 띠게 된다. 철학은 우리의 길을 찾도록 도와주며 상황을 관찰할 수 있게 도와준다. <철학이 해야 할 일은 단어들을 그것들의 형이상학적인 용법에서 일상적인 용법으로 환원시켜 놓는 것이다.> 그의 철학의 목적은 <파리통 속의 파리에게 갈 길을 알려 주는 데> 있다. 파리가 통에서 탈출할 때, 그리고 단어들을 형이상학에서 일상 용법으로 환원시킬 때, 그리고 그의 갈 길을 몰랐던 사람이 그 길을 발견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놓아둔다 <고 말한다. 철학은 인간에게 새롭거나 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으며, 오히려 언어의 세심한 기술을 통해 명료성을 더해 줄 뿐이다.
진정한 철학은 지나치게 추상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길을 잃은 사람은 그 지역의 지도를 원할 것이다. 그에게 세계 지도는 필요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대부분의 철학적 문제는 단어들의 혼란에서 야기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그것들의 일상적 용법에 대한 세심한 기술에 의해 이러한 혼란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제18장 현상학과 실존주의
버트런드 러셀에 의해 제기된 분석 철학은 20세기 영미 철학을 지배했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다른 종류의 철학이 강세였는데, 그것은 현상학과 실존주의다. 현상학은 사물의 객관적 실재에 대한 물음을 제쳐두고 현상을 더욱 주관적으로, 즉 인간의 경험을 통해 탐구할 것을 권했다. 실존주의는 현상학의 주관적 접근 방법을 받아들여 인간 경험의 실천적 문제들을 더욱 탐구했다.
현상학은 에드문트 후설에 의해 시작되고 하이데거가 수정을 가했다. 곧이어 야스퍼스와 마르셀이 <종교적 실존주의>로 그 뒤를 이었다. 실존주의는 장 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에 의해 시작되었다.
1. 에드문트 후설
1. 1. 후설의 생애와 영향
에드문트 후설(1859~1938)은 베르그송과 듀이가 태어난 1859년에 태어났다. 그는 1900년 [논리 탐구]를 출판했으며, 괴팅겐 대학교 철학부에 초빙되었다. 여기서 16년간 왕성한 활동을 통해 현상학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후설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1933년 이후 학술 활동이 금지되었다. 그는 늑막염으로 수개월 동안 고통을 받다가 1938년에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초기에 그는 논리학과 수학에 관심이 있었다. 다음에는 주로 인식론에 초점을 맞춘 초기 형태의 현상학을 발전시켰다. 그런 다음 철학과 과학의 보편적 토대로서의 현상학에 대한 견해로 관심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그는 <생활 세계>라는 개념으로 현상학을 자리 잡게 했다. 참고로 하이데거는 1920년부터 1923년까지 후설의 연구 보조원이었고, 그동안 후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후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후설의 견해를 비판했고, 1928년 하이데거가 후설의 자리를 이어 받을 즈음에 그들의 관계는 악화되어 결국 결별했다.
분명한 사실은 후설이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대표 인물인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장 폴 사르트르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비록 이들이 후설의 주요 사상들을 거부했다 할지라도 이들의 완성작에는 후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1. 2. 유럽 학문의 위기
후설은 어떤 이유 때문에 현상학을 발전시켰을까? 그의 철학은 서양 문화가 나아갈 진정한 방향과 목적을 잃었다는 그의 깊은 확신에서 생겨났다.
철학의 진정한 목적은 인간 관심사들에 대한 최선의 가능한 대답들을 제공해 주는 것이고, 최고의 가치들에 대한 우리의 탐구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며, 간단히 말해 인간 이성의 고유하고 광범위한 능력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후설은 인간의 이성을 위기에서 구제하고자 했다. 그는 이성을 구제하기 위해 <자연 과학>에 주목했다. 과학의 찬란한 성공에 감명받은 그는 철학을 엄격한 과학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이로써 이성을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후설에 따르면 철학이란 보편적인 학문, 세계에 대한 학문, 모든 존재의 보편적 통일성에 대한 학문을 말한다. 철학은 물리적 자연뿐만 아니라 문화적 자연(대상뿐만 아니라 관념을 포함하는 자연)을 포괄한다. 그러나 이런 철학은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개의 과학들로 분할되었다. 과학이 성공함에 따라 과학은 더 이상 정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후설은 자연 과학의 태도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정신을 설명하기 위한 순수한 독자적 탐구는, 즉 정신적 자기 경험 내의 자아에서 출발하여 다른 정신으로 확장해 가는, 순수하게 내면 지향적인 심리학 또는 정신학은 현재 존립할 수 없다. 우리가 따라가야할 길은 단지 외면적인 길, 물리학과 화학의 길뿐이다.
그는 자연 과학의 방법론에 따라 정신을 연구하는 한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는 정신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자연 과학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의 현상학을 제시했다.
1. 3. 데카르트와 지향성
지금까지는 후설이 현상학을 발전시키게 된 계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그의 사상에 영감을 준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데카르트에 대해 알아보겠다. 후설은 현상학의 진정한 창시자는 데카르트라고 말했다. 후설 역시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자아>라는 개념을 가지고 출발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데카르트보다 좀 더 근본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오로지 <현실의 경험과 직관>만을 토대로 어떠한 전제도 없는 철학을 세우려 했다. 후설이 기본 원칙으로 삼은 것은 <명증성>이다. 그 어떤 선입견이나 전제에 따르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데카르트뿐만 아니라 후설에게도 모든 지식의 근원은 자아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자아는 논리적 추론에서 제1공리다. 반면 후설은 자아를 단순히 경험의 기반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후설은 논리 대신에 경험에 일차적인 강조점을 두었다. 그의 관심은 경험에 <주어진 것 the given>을 그 순수한 형태 그대로, 그리고 의식의 직접적 데이터로 나타나는 그대로 발견하고 기술하는 것이다. 후설은 의식적인 자아를 넘어 연장적 실체로, 즉 주관을 객관적 실재에 연결시킴으로써 심신 이원론을 낳는 물체의 개념으로 이행한다고 하여 데카르트를 비판한다. 그 대신 후설은 <순수 주관성>이 인간 경험의 실제적 사실들을 더 정확히 기술한다고 믿었다.
1. 4. 현상과 현상학적 괄호 묶기
<현상학>이라는 용어는 의식에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 즉 현상을 넘어서는 것에 대한 후설의 거부에 기초한다. 대부분의 인식론은 인식하는 정신과 인식의 대상을 구별한다. 그러나 후설은 의식과 현상을 구별하지 않는다.
후설에 의하면 의식은 <존재하는>, 그리고 <이처럼 규정되어진> 대상이 의식 안에서 의도되고 의식 안에서 그러한 감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가능하게 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현상을 인식할 때 의식의 적극적 역할을 발견함으로써 우리 경험의 여러 요소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경험하는 대상에 대해 어떤 것을 알 수 있는가? 후설은 외적 대상에 대한 모든 가정을 옆으로 치워 두어야 (또는 괄호로 묶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이런 과정을 <현상학적 판단 중지, 또는 현상학적 괄호 묶기>라고 부른다. 이는 객관적 세계에 대한 모든 관점으로부터의 분리를 뜻한다.
후설은 대상, 다른 사람들, 그리고 문화적 상황들을 포함하는 경험된 삶 전체의 흐름을 괄호로 묶는다. 이 모든 현상을 괄호로 묶는다는 것은 그것들이 실재들인지 현상들인지 판단하지 않고 그 현상들을 단지 관찰하며 세계에 대한 어떤 견해, 판단 또는 가치 평가를 금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식이며, 이 의식을 통해 대상 세계가 비로소 온전하게 존재하게 된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객관적 세계를 연역해 낸 데카르트와 달리 후설은 자아가 세계를 그 안에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 세계를 뛰어넘으려는 모든 철학 이론을 거부했다. 그렇게 하여 그는 칸트의 <현상>과 <물 자체>의 구분을 거부했다. 후설에게 <세계>란 주체로서의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었다.
2. 마르틴 하이데거
2. 1. 하이데거의 생애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1889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17세의 나이에 철학에 입문했고, 존재의 의미에 관해 평생을 탐구했다. 그러는 동안 키르케고르, 도스토옙스키, 니체의 영향도 받았다. 1927년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을 출판했으며, 이듬해에 후설의 후임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철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193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짧은 기간이지만 나치의 당원을 지낸 바 있다. 1934년 총장이 된 지 1년 만에 사퇴를 하고 그로부터 10년 동안 나치주의를 비판하는 강의를 했다.
2. 2. 세계 내 존재로서의 현존재
후설에 따르면 우리는 의식이 인식하는 대로 세계의 현상을 이해한다. 하이데거는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후설의 현상학에 고무된 하이데거는 사람들을 세계와 분리된 속성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그는 <현상>의 의미를 <스스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상은 스스로 우리를 드러내는 것이며, 이것은 전통적인 철학과는 아주 다른 인간 개념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그의 견해를 전통 철학과 분리하기 위해 그는 단순히 <거기에 있음>을 의미하는 <현존재>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하이데거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대상에 속한 그런 종류의 무엇을 지적함으로써 그 존재의 본질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실체(인간)를 순전히 그 존재에 관한 표현인 현존재라고 명명하기로 정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몇몇 특성이나 속성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우리가 인간 존재의 근본 상태에 있다는 말은 곧 우리가 <세계 내 존재>라는 말이다.
<평균적 일상성>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들을 고찰해 보자. 현존재로서 세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마치 물이 물 컵 안에 있거나 옷이 옷장 안에 있듯이 한 사물이 다른 사물 안에 있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 아니다. 현존재가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은 거기서 <생활하다>, 세계에 <익숙하다>, 또는 <내가 어떤 것을 보살핀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강조점은 다른 대상과 공간적으로 관련된 한 대상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정 형태의 이해에 주어진다. 예를 들어 <그녀는 사랑 안에 있다>(누군가를 사랑한다)라고 함은 그녀의 공간적 위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처한 특정 형태의 존재를 가리킨다. 이와 유사하게 사람들이 세계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공간 안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구조를 기술하는 것이다.
2. 3. 관심으로서의 현존재
현존재가 <세계 내 존재>라는 것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물들에 속박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사물, 과제, 관계들에 의해 소모되어 버린다. 우리는 주변의 도구와 과제들에 관심을 가진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격적 관심을 갖는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에 매우 중요하므로 <관심>은 우리의 근본적인 태도다. 그러므로 현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심의 근본 성격을 이해해야만 한다. 하이데거의 주장에 따르면 관심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그리고 그 각각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첫째, 우리는 단지 세계에 내던져졌을 뿐이다. 나는 태어나기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그는 이를 사실성이라고 부른다. 둘째,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갖는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변형시킬 자유가 있고,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적절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끊임없이 진정한 자아가 되어야만 한다. 그가 실존성이라고 부르는 특성이다. 셋째,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특성을 잃는다는 의미에서 낮은 단계로 퇴락한다. 사실성은 나의 과거에 대한 특징, 실존성은 미래에 대한 특징, 마지막으로 퇴락은 나의 현재 상황에 대한 특징이다.
이런 요소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하이데거에게 불안은 단순히 심리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한 전형이다. 불안은 두려움과 다르다. 두려움은 뱀을 봤을 때 느끼는 것처럼 두려움의 대상이 있다. 그러나 불안은 대상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대상이다.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시간 자체가 우리에게는 불안의 요인이 된다.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의 매 순간 나는 죽는다는 사실과 하나로 묶여 있으며, 나의 삶을 나의 죽음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나의 한시성을 부인하고 내 제한된 존재의 회피 불가능성을 벗어나고자 시도한다. 결국 나는 나의 진정한 자아를 긍정해야만 하며, 그럼으로써 나는 무엇이며 누구인지를 투명하게 들여다봐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나는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비근원적인 존재 속에서 불가능한 것을 하고자 노력해 왔다는 사실을, 즉 나의 제약과 나의 한시성에 관한 사실을 숨기고자 노력해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3. 종교적 실존주의
실존주의의 현대적인 형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파리에서 나타났다. 실존주의는 소설, 연극, 시, 회화를 포함하는 모든 사유 형식에 침투해 들어가며 추진력을 얻었다. 19세기 중반에 이미 키르케고르에 의해 실존주의의 주요한 주제는 완성 되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셸링과 마르크스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철학적 경향들을 실존주의라고 통칭하고 있다. 이때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실존주의는 다양한 형식을 가지며 실존주의자들 간에는 유사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어떤 경우에는 윌리엄 제임스, 베르그송, 니체, 파스칼까지도 실존주의에 기여했던 학자들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 공통점은 인간의 실존의 조건과 특성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실존주의는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수세기가 지나도록 인간은 사상 체계와 과학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주요 철학 체계도 인간 개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에 철학은 형이상학이나 윤리학, 인식론 같이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문제만을 다루었다. 그 철학들은 인간에게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인간은 모든 곳에서 인간적 속성을 상실했다. 그들은 <인격>에서 <대명사>로, <주체>에서 <객체>로, <나>에서 <그것>으로 전환되었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든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든 실존주의자들은 지나치게 학구적이며 삶과 동떨어진 전통적 철학에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존하는 개인들에게 집중하기 위해 그들은 조직적이며 체계적인 철학을 거부했고, 좀 더 임의적인 방식을 택했다. 비록 실존주의가 <체계>는 없지만 몇몇 주요 실존주의자들로부터 실존주의의 근본 주제를 추론할 수 있다.
종교적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는 카를 야스퍼스와 가브리엘 마르셀이 있다.
3. 1. 카를 야스퍼스
카를 야스퍼스(1883~1969)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스위스 바젤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는 심리학, 신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글을 썼다. 키르케고르, 니체, 후설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현상학과 실존주의를 발전시켰다. 키르케고르를 시작으로 철학의 초점은 인간에게 맞추어졌다. 이제는 철학이 이전의 양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야스퍼스의 믿음이었다. 그는 과학 기술의 발전, 종교적 유대감의 와해가 <인간의 조건들>을 타락시켰다고 주장했다. 과학은 한 가지 객관적인 데이터에만 접근하는 방식으로 사유한다. 하지만 존재, 실존은 객관적 데이터에 국한되지 않는다. 야스퍼스가 탐구하려고 했던 것은 인간의 삶의 토대를 이루는 실재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과학이 아니라 철학을 통해 실존의 구성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실존 철학의 주요 과제는 실존을 취급하는 것이며, 이들 실존적 사유자의 행위는 자신의 직접적이고 내적, 개인적 경험에 기초해야 한다.... 중략... 철학화한다는 것은 객체들이나 객체적 지식에 관한 전달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내적 구성>에 의해 생산된 개인적 자각의 내용에 관한 전달을 의미한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실존적 사유란 <삶의 철학적 실천>이다.
그렇다면 야스퍼스에게 실존 철학은 어떤 기능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실존 철학의 기능은 '신'의 정신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야스퍼스는 말한다. 인간의 상황은 다음 세 단계를 수반한다. 첫째, 대상에 대한 지식의 단계이다. 둘째, 개체가 그 자신 내부에서 실존의 기초를 발견하는 단계이다. 셋째, 인간이 자신의 순수한 자아를 향해 노력하는 단계이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을 느낀다. <한계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죽음과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성을 직면할 때, 동시에 '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신'에 대한 자각은 순전히 개인적 경험의 산물이다. 구체적 증명이 불가능하다. 결국 야스퍼스는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3. 2. 가브리엘 마르셀
야스퍼스와 마찬가지로 가브리엘 마르셀(1889~1973)도 자신의 실존 철학을 존재에 집중시켰다. 특히 그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집중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하나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르셀은 인간의 실존이란 <존재와 소유>의 결합체라고 믿었다. 우리가 사물과 관념을 <소유>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객관적 용어로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존재>는 언제나 주관적인 문제다.
비록 마르셀이 전통적인 신학자는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자신의 철학의 근본을 기독교 신앙에서 찾았다. 그는 39세에 로마 카톨릭교회로 개종했다. 키르케고르, 야스퍼스, 마르셀 이 세 학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실존주의를 형성했지만 그들은 모두 종교적이었다. 반면 사르트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주장하면서 앞선 세 철학자들과 결별을 선언했다.
4. 장 폴 사르트르
4. 1. 사르트르의 생애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의 사촌인 마리 슈바이처 사이에서 태어났다. 파리의 고등 사범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다. 1934년부터 1935년까지 1년간 베를린의 프랑스 연구소에서 후설의 현상학을 공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독일 전쟁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수용소에서 그는 하이데거를 읽었다. 하이데거는 사르트르에게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마르크스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아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공산당원은 아니었다. 마르크스주의가 도덕과 자유에 대하여 보장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제도권에 편입되기를 원하지 않아 수상을 거부한 바 있다.
파리의 고등 사범학교 시절 그의 평생 동반자가 된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를 만났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뛰어난 학생이었다. 서로는 이미 작가로서 커다란 명성을 얻고 있었고, 서로의 원고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주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51년간 함께 살면서 결코 결혼하지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지녔다.
사르트르는 정치에 관여하거나 여행을 즐겼으며 파리의 작은 아파트만 고집하면서 별다른 재산도 없이 소박하게 살았다. 1980년 거의 실명 상태에서 건강 악화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74세의 일이었다.
4. 2.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데카르트에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문구가 있다면, 사르트르에게는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주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칼을 예로 들어보자. 칼 제조업자가 칼을 만들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칼의 목적이 선재한다. 칼은 물건을 가르기 위한 용도를 가졌다. '물건을 자르기 위함'이 칼의 목적이고, 그 목적에 따라 칼 제조업자는 칼을 제작한다. 칼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칼의 목적이 선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칼의 목적은 칼의 존재에 선행한다. 칼의 목적을 그것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칼의 본질은 실존에 선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기존의 철학자들은 인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생각했다. 신이 칼 제조업자라면 인간은 칼이다. 기존의 철학자들은 신이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신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본질 역시 실존에 선행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진지하게 무신론을 취함으로써 이러한 주장들을 역전시키려 했다. 그에 따르면 만약 신이 없다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개념을 먼저 지니고 있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미리 정의될 수 없다. 인간은 단지 세상에 태어난 존재다. 아무런 목적이나 의도, 본성도 없이 그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인간의 본질적 자아는 그 이후에야 찾을 수 있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란 우선 존재하며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세계 내에 출현하며 그 뒤에야 자신을 정의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최초에는 단지 한 개인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난 뒤 스스로 만든 우리가 존재할 뿐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형성한 이 원리에 대한 최초의 공격은 그것이 너무 주관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과연 개인이 그가 원하는 자아를 형성해 나간다고 가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르트르는 인간은 돌멩이나 책상보다 훨씬 존엄한 존재라며 이에 반박한다.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해 주는 것은 그가 주체적인 삶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존을 인간의 본질 앞에 위치시킴으로써 발생하는 가장 중요한 결과는 인간이란 스스로를 창조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자신에 대해 책임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실존주의는 각 개인에게 그의 실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부과한다.
4. 3. 자유와 책임
사르트르가 그의 도덕적 주관주의를 통해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인가? 개인은 엄격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인간이란 자기 스스로가 만든 어떤 것이며,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욱이 인간은 선택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위해서 선택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이는 언뜻 보기에 그의 철학과 모순되어 보인다. 우리가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할 때 그 선택의 가치가 모든 사람에게 유용하지 않다면 나에게도 유용하지 않다. 이는 칸트의 정언명령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도덕적인 선택을 인도하는 어떠한 보편 법칙도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인간 존재들의 가장 명석한 경험에 관심을 집중했다.
즉 모든 인간은 선택해야 하며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비록 인간은 명령적인 격률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선택해야 하는 동시에 과연 타자들이 동일한 행위를 선택한다 해도 그것을 기꺼이 용인할 것인가를 물어야만 한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이 사르트르에게는 가장 관심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인간은 때때로 자신이 행한 것이 타인에 의해 행해지기 않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바라는 것은 자기기만에 빠지는 행위다. 그러므로 선택은 언제나 깊은 고민을 수반해야 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선택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르트르의 도덕론은 전통적인 도덕론과 매우 유사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엄격한 무신론적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을 받아들였다.
실존하는 개체들 이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신도 어떠한 객관적인 가치 체계도 어떠한 고착된 본질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결정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르트르는 개인은 자유롭다고 말한다. 즉 인간은 자유다.
...중략...
인간이 운명적인 이유는 이미 세계 속에 던져진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이유는 인간이 곧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되며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행동이 정념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고방식을 거부한다. 그러한 정념이란 어떤 행위들에 대한 하나의 구실일 뿐이다. 그는 인간의 행위가 무의식적이고 불합리한 욕망에 의해 기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프로이트의 견해도 거부한다. 이런 견해는 우리에게 책임을 회피하려는 핑계를 제공할 뿐이다.
... 중략...
나는 실존하는 유일한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자유로우며 따라서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보편적인 도덕률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제시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계 내에는 우리에게 보증된 지침들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4. 4. 무와 불성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의 궁극적인 원리는 <의지>다. 사르트르도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며 어떠한 존재도 행동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란 그의 행동들과 목적들의 총체일 뿐이다. 그의 현실적인 생활을 제외하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겁쟁이라면 그가 스스로를 겁쟁이로 만든 것이다. 그가 겁쟁이인 것은 그의 신체나 정신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의 행동이 스스로를 겁쟁이로 만든 것이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모든 인간의 본성에는 선험적인 본질이 없다... 중략... 가치들을 발명한다는 것은 단지 의지적 행위 이전에 삶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이다. 삶은 살아 내지 않고는 어떤 것도 될 수 없다....중략... 삶의 가치란 개인의 삶에 부여한 의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만일 인간이 모든 행위 속에서 자신의 순수한 인간성을 표현한다면 그는 결코 자신을 기만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정직은 그의 이상이 아니라 그의 실존이 될 것이다.
4. 5. 인간의 의식
그는 실존하는 다양한 방식을 주장했다. 첫째, <즉자>의 방식이다. 그것은 돌멩이가 존재하는 방식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단지 존재할 뿐이다.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거기에 있는 단순한 사물처럼 존재한다. 둘째는 <대자>의 방식이다. 그것은 <의식하는 주체>로서 실존을 수반한다.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을 뿐 돌멩이와 같은 사물은 할 수 없다. 의식적 주체로서의 인간은 사물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와 모두 관계할 수 있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설명과 추론의 세계는 실존의 세계가 아니다.> [구토]의 로캉탱의 경험의 수준에서 보면 세계는 모든 의식 대상의 통일체인 것이다.
...중략...
의식이 없다면 세계는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의식이 사물의 존재를 구성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세계 내에서 사물의 의미를 구성한다. 우리가 세계를 즉자로서, 즉 단지 거기에 있는 것으로서만 간주할 경우 사르트르에 의하면 <본질적인 문제는 우연성이다. 내 생각에 실존은 본질적으로 필연적이지 않다. 실존한다는 것은 단지 거기에 있는 것일 뿐>이다. 우연성은 어떤 것이 실존할 때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뿐,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에서 필연적으로 비롯되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실존은 현상이지만 당신은 그것들을 연역적으로 추론해 낼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창조되지 않으며 존재의 이유도 없고 다른 존재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즉자는 일체의 영원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4. 6.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의 재발견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이의 모순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강력하게 지지한다. 반면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회의 구조와 조직 및 인간의 사고 작용이 모두 이전의 사건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인간의 선택이 자유라는 것은 일종의 환상이며 인간도 단지 역사의 변화를 실현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사르트르가 결코 공산당원이 될 수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등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이러한 그의 견해를 조금 수정했다. 노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단체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직면했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자의 소외감으로 인한 사회단체의 영향을 인정하면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자신의 낙관적 견해를 어느 정도 수정한 바 있다.
1945년 사르트르가 쓴 글에 보면 <상황이 어떠하든 인간은 언제나 자유롭다>라는 기록이 있다. 한 가지 예로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자가 조합에 가입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자유롭다. 그에게는 가입을 원하건 원치 않건 투쟁의 종류를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해 뒤인 1972년 그는 이런 주장을 회상하면서 <이런 생각은 오늘 나에게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자유에 대한 나의 개념에도 틀림없이 어떤 기본적인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자유에 충실했다. 사르트르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만든 그 상황 속에서 당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제한들 속에서 개인은 여전히 자유롭고 그에 따른 책임도 따른다고 보았다.
지금까지 새뮤얼 이녹 스텀프의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라는 책을 기반으로 방대한 서양 철학사를 정리해봤다.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인 현대 철학 부분은 내용이 짧아 생략했다. 나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책을 읽고 정리했지만 2,500년 간 인류사의 많은 철학자들을 단 몇 개월만에 정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철학자 한명을 탐구하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릴텐데 많은 철학자들을 짧은 시간에 정리하려니 100%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다.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 내가 정리한 5개의 포스팅을 반복해서 복습을 할 것이다. 다른 서양 철학사 책을 또 한권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서양 철학사 전반을 살펴본 지금, 나에게 어떤 철학이 매력적이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플라톤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데카르트보다는 데이비드 흄을, 헤겔보다는 쇼펜하우어를 좋아한다. 나아가 니체, 후설, 장 폴 사르트르의 철학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더 깊이 있게 그들의 철학을 탐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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