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본문
짧은 분량이라 2번 읽었다. [데미안]과 마찬가지로 [싯다르타] 역시 성장소설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바라문, 즉 귀족의 길을 버리고 자아의 근원을 찾기 위해 가족을 떠나 사문의 길을 택한다. 싯다르타의 절친인 고빈다도 싯다르타를 따라 사문의 길을 동행한다. 사문의 길을 걷던 중 싯다르타는 큰 고뇌에 빠진다. 오랫동안 명상, 금식, 침잠, 자기 수행을 하더라도 열반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을 한다. 사문 스승을 보더라도 여러 가지 위안을 얻기 위한 교묘한 재주를 부릴 뿐 평생 진정한 열반에 이르지 못할 것이고 생각한다. 싯다르타는 더 이상 스승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고 느낀다. 침팬지에게 배우더라고 이 정도로는 만족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정말로 이제 더 이상 옛날의 내가 아니며, 나는 이제 더 이상 고행자가 아니며, 나는 이제 더 이상 승려가 아니며, 나는 이제 더 이상 바라문이 아니다. 내가 집에 가서 아버님 곁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연구하는 일? 제사드리는 일? 침잠 상태에 빠지는 일? 이 모든 일은 정말이지 다 지나간 일이고, 이 모든 일은 이제 더 이상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결국 싯다르타는 고빈다에게 작별을 고한다. 싯다르타는 길을 걷다 우연히 고타마를 마주친다. 그는 고타마 당신은 진리로 가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은 고타마를 떠나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말한다. 고타마는 싯다르타에게 그의 길을 가라 한다.
싯다르타는 강가에서 한 뱃사공을 만난다. 뱃사공은 공짜로 싯다르타에게 배를 태워주며 모든 것은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말과 함께 뱃삯을 받지 않는다. 싯다르타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한 마을로 들어간다. 그 마을에서 아름다운 여인 카말라를 만난다. 기생인 카말라는 화려한 옷을 입고 고급진 액세서리를 하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카말라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카말라는 돈이 없으면 자기를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싯다르타에게 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 싯다르타는 단식을 할 줄 알고, 사색을 할 줄 알며, 기다릴 줄 안다고 한다. 더불어 시를 쓰고 글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카말라는 싯다르타에게 사업가인 카와스마미를 소개해준다. 기존의 사업가에게서는 볼 수 없던 인내와 타인에 대한 관심을 지닌 싯다르타는 카와스마미에게 큰돈을 벌어다 준다. 돈을 벌수록 싯다르타의 육신과 정신은 황폐해져 간다. 더 이상 예전의 싯다르타가 아니다.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낀 싯다르타는 육신을 소멸시키러 강을 찾아간다. 강을 바라보다 그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순간 싯다르타는 운명과 싸우는 일을 그만두었으며, 고민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그의 얼굴 위에 깨달음의 즐거움이 꽃피었다. 어떤 의지도 이제 더 이상 결코 그것에 대립하지 않는, 완성을 알고 있는 그런 깨달음이었다. 그 깨달음은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기뻐하는 동고동락의 마음으로 가득 찬 채, 그 도도한 강물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 채, 그 단일성의 일부를 이루면서 그 사건의 강물에, 그 생명의 흐름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뱃사공을 찾아간다. 그 뱃사공은 예전에 싯다르타에게 공짜로 배를 태워주던 바데주바다. 바데주바는 싯다르타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한다. 그들을 함께 살며 강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아무것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이며, 모든 것은 본질과 현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 옛 여인인 카말라와 그의 아들을 마주한다. 카말라는 뱀에 물려 죽고 카말라와 싯다르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키우게 된다. 아들은 지루한 삶에 싫증을 느끼고 속세로 도망친다. 바데주바는 아들을 찾아가려는 싯다르타에게 아들은 아들의 길을 가게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데주바는 오랜 뱃사공을 삶을 마치고 강을 떠난다. 옛 친구 고빈다는 홀로 뱃사공 일을 하던 싯다르타를 찾아온다. 강으로부터 배운 단일성의 깨달음을 고빈다에게 전해준다.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네, 고빈다. 나는 이것을 몇 번이나 거듭하여 체험하였네. 그리고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현세와 영원 사이에, 번뇌와 행복 사이에, 선과 악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간격이라는 것도 하나의 착각인 셈이지
고빈다는 싯다르타에게서 고타마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는 싯다르타에게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혀 절을 올리며 소설은 끝이 난다.
싯다르타는 일찌감치 명상과 수행만으로는 영원한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문이 시키는 수행을 떠나 강으로부터 영원한 진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가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단일성이다. 이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사자였고, 곰이었고, 지렁이었고, 바람이었고, 풀잎이었고, 망나니었고, 귀족이었고, 거지였고, 부자였을 수 있다. 윤회가 있다고 한다면 거지도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고, 부자도 언젠가는 거지가 될 수 있다. 시간이 환상에 불과하다면 단일성의 원칙에 의해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을 욕할 수 없다. 선한 사람 안에 악한 사람이 있고, 악한 사람 안에 선한 사람이 모두 들어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번뇌도 행복이며, 행복도 번뇌가 된다. 모든 것은 단일하다. 싯다르타는 이 단일성의 원리를 깨우쳐 세존 고타마가 얻은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었다.
싯다르타 서평을 쓰고 나니,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을 하고 싶은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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