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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유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Baek Kyun Shin 2022. 7. 28. 00:43

 

에픽테토스는 그리스 스토아 학파 철학자다. 기원 후 55년 경에 태어났으며, 노예 출신이다. 그는 절음발이였는데, 주인이 부러뜨렸다는 기록도 있고, 선천적으로 절음발이라는 기록도 있다. 주인이 다리를 부러뜨리는데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고 '부러뜨릴 테면 부러뜨려 보세요.'라는 태도로 평온했다는 설이 있다. 에픽테토스는 결국 노예에서 해방됐다. 어떻게 노예에서 풀려났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방 후 자유민으로 살면서 철학 학교를 세워 학생을 가르쳤다.

에픽테토스

에픽테토스는 '아리아노스'라는 제자를 두었는데, 아리아노스가 에픽테토스의 강의와 말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마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게 배운 내용을 글로 남긴 것처럼 말이다. 소크라테스처럼 에픽테토스도 평생 글을 남기지 않았다. 우리가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지금까지 배울 수 있는 건 아리아노스 덕분이다. 

<엥케이리디온>은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방법을 담은 책이다. 스토아 철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 골자는 이렇다.

  • 자유로워지려면 내게 권한이 있는 것과 권한이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 권한이 없는 것을 향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
  • 내 자유와 행복은 외부 환경과 전혀 관련이 없다. 모든 건 내 생각에서 비롯된다.

가만 생각해보면 스토아 철학은 세상 물정 모르는 말도 안 되는 사상 같기도 하고, 반대로 세상 모든 걸 통달한 진리인 것도 같다. 에픽테토스를 비롯한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이 정말 스토아 사상이 가르치는 대로 생각하며 통달하듯이 살았을까. 의문이 들긴 한다. 학문과 실천은 다를 수 있으니.

어쨌든 2,000년 전, 대표적인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생각을 옮겨본다(여담이지만, 고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매한가지다).


1. 내 권한에 속하는 것과 속하지 않는 것

세상사 가운데는 내 권한에 속하는 것이 있고, 속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내 권한에 속하는 것은 본질상 아무런 방해나 제약 없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내 권한에 속하지 않는 것은 타인의 소관이어서 허황되고 예속적이며 제약이 따른다.

내 소관과 남의 소관을 제대로 구분해 바랄 것만 바란다면, 그 누구에게 강요당할 일도, 방해받을 일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할 일도 없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해야 할 일도 없다. 누군가에게 손해 볼 일도 없고, 누구 때문에 괴로워할 일도 없으니 자연히 원수도 생기지 않는다.

제일 먼저 따져봐야 할 중요한 원칙은 '이것이 과연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이다. 만약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면, 나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라며 무시하도록 하라.

2. 죽음 그 자체는 두렵지 않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에 대한 사사로운 생각이다. 예를 들어 죽음 그 자체는 두렵지 않다. 실제로 두려운 건 죽음을 향한 생각이다. 

장애에 부딪히거나 괴로운 일을 당하거나 슬픈 일을 당하면, 그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 말고 나 자신, 더 정확히 말해 내 생각으로 돌려야 한다. 무지몽매한 사람은 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늘 남 탓만 한다. 하지만 깨우치기 시작한 사람은 자신을 탓한다. 깨우친 사람은 자신도 남도 탓하지 않는다.

3. 있어보이고 싶어 하지 말아라.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면 모든 피상적인 외부의 것에 대해 차라리 무식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하라. 뭔가 대단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길 원하지도 말고, 누군가가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더라도 자신만은 나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치부하라.

이 말은 쇼펜하우어의 생각과 정확히 같다. 겸손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나에게 하등 도움 안된다는 말이다. 자랑하면 오히려 미움만 산다. 내 자랑을 듣는 사람에게도, 그걸 말하는 나에게도 전혀 이득이 없다. 내 기분이 조금 우쭐해지는 점 빼고는. 잠깐 우쭐하고 싶어 애태우는 과거의 나를 반성(어쩌면 지금의 나도..)

4. 다른 사람의 권한에 속한 건 무엇도 얻거나 버리려 들지 않아야 자유로워진다.

자식이나 아내 혹은 친구들이 영원히 살기를 바란다면 어리석은 짓이다. 내 권한에 속하지 않는 권한이 내 것이었으면, 다른 사람의 소유인 것이 내 소유였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를 버리고 싶은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얻거나 버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가 바로 그것의 주인이다.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권한에 속하는 건 무엇도 얻거나 버리려 들지 말라. 그러지 않으면 속박된 삶을 면치 못한다.

5. 운수 나쁜 일이 나에게 찾아온다면?

다른 사람의 하인이 잔을 깼을 때, 우리는 주저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라고 말한다. 그러니 내 잔이 깨질 때도, 다른 사람의 잔이 깨질 때와 똑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자식이나 아내가 죽었을 대,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본인 자식이나 아내가 죽으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가?" 하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다른 사람이 똑같은 일을 당했다는 말을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6. 남의 장단에 놀아나지 말자.

누가 내 몸을 아무 사람에게나 줘 버린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자신의 마음을 아무 경우에나 남의 장단에 놀아나도록 맡겨버리면서,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면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니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7. 좋은 일도 실제 좋은 일이 아닐 수 있고, 나쁜 일도 실제 나쁜 일이 아닐 수 있다.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자신의 뜻에 따라 일어난 일이 아닌 이상, 그 어떤 일도 좋다 나쁘다 할 수 없다.

어떤 일이 닥치든지 개인적인 행복이나 불행으로 생각하지 말고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자신의 힘으로 뭔가 유익한 것을 얻어낼 수 있으며, 이를 방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법륜 스님이 한 말과 같다. 내가 모토로 삼는 생각과도 비슷하다.

'원래 인생의 모든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뜻대로 된다고 좋은 것도 아니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안 좋은 것도 아니다.'

되도록 이런 마음을 지키려고 애쓴다. 항상 어렵지만 말이다.

8. 침묵

늘 과묵한 태도를 지키고 꼭 필요한 말만 간략하게 하라. 꼭 말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말을 하되 검투사, 경마, 운동선수, 음식, 술 등 잡다하고 일상적인 주제에 대한 말은 삼가고, 특히 남을 헐뜯거나 칭찬하거나 비교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 대화 주제가 그런 쪽으로 잘못 흐를 때는 주제를 바꿔야 한다. 우연히 낯선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그냥 침묵하라. 헤프고 실속 없는 웃음을 삼가라. 맹세는 가능하면 무조건 사양하라. 만약 맹세를 하더라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향한 맹세는 하지 말라.

9. 험담을 마주하는 자세

나를 향한 험담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내용의 잘잘못을 따지려들기보다 '그런 험담만 하는 걸 보니 나의 다른 단점은 모르는 모양이군.' 하고 넘어가라.

맞는 말이긴 하네. 내 수많은 결점 가운데 하나만 험담한다면 생각 외로 나를 좋게 평가하는 거다.

10. 자랑하지 말라.

실제보다 더 자질이 뛰어난 사람인 양 과시하려 들다가는 자신의 자질은 물론 인물 됨됨이까지 함께 평가절하되고 만다. 아울러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기회도 놓치게 된다.

11. 가치 판단은 함부로 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다.

목욕을 후딱 해치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목욕을 잘못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빨리 끝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와인을 과하게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와인을 잘못 마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와인을 과하게 마신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행동을 한 이유도 모르면서 함부로 잘잘못을 가리려 해서는 안 된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섣불리 판단하려 들지 말고, 그들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건 평소 내 생각과 일치한다.

12. 철학자가 되려면?

절대 철학자인 척하지 말고, 사람들과 더불어 철학을 많이 아는 척도 하지 말라. 대신 철학에서 배운 것을 행동으로 실천해 보여라. 누군가로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무시를 당했는데도 발끈하지 않는다면, 바로 그것이 철학을 실천하는 시작임을 인식하라.

13. 독과 같은 인정욕구

제 육신을 위한 일에 검소함을 자랑하려 들지 말라. 물을 마신다고 물을 마실 때마다 물을 마시노라고 떠벌리지 말라. 인내력을 기르려 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위해 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하라. 남에게 인정받는 것을 탐하지 말라. 갈증이 심할 대는 찬물을 길어 올려 입을 적시되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

14. 철인의 자세

속인들은 도움을 원해도 다른 사람에게서 기대하고, 피해를 당해도 그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여긴다. 철인들은 도움을 스스로 구하고, 피해를 입어도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철학적 깨달음에 이르려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도 탓하지 않고, 칭찬하지 않으며, 잘못을 따지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다. 마치 뭔가 속에 든 것이 있는 사람인 척하는 허세의 말 또한 절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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