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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유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Baek Kyun Shin 2022. 3. 12. 23:51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두 번이나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알베르 카뮈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야말로 나보다 백 번은 더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명망이 높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의 대표작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젊었을 때 조르바라는 실존 인물을 만났는데, 그 사람에게 영감을 받아 쓴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다.

화자인 '나'가 '주인공인 조르바'를 관찰하고 서술하는 내용이다. 조르바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무엇에도 예속받지 않고 현재 삶을 즐기는 사람이다. 관습을 무시하고 스스로 정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반면 화자는 엘리트 지식인이다. 책도 상당히 많이 읽고, 사회에서 바라는 대로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육체노동을 하는 쾌남(?) 조르바를 만난 뒤, 삶을 향한 가치가 점점 바뀐다. 조르바처럼 살고 싶어 한다. 현재만 바라보고 사는 조르바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게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육반입니다. 우리 마음이 육반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내일이면 갈탄광이 우리 앞에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마음은 갈탄광이 되어야 합니다. 어정쩡하다 보면 아무 짓도 못하지요."

게다가 머리로 터득한 지식보다 몸으로 알게 된 지혜를 더 가치 있게 생각한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 년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 씹어 삼켰을 테지요. 그래서 얻어 낸 게 무엇이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다.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려고 종교가 생겼고 많은 사람이 신앙을 갖게 됐다. 법륜 스님은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왜 그리 바쁘냐" 하는 스님의 말을 듣고 고등학생 때 출가했다. 일부 종교에 따르면 우리는 신에게서 왔고 다시 신에게 돌아간다. 혹은 윤회하거나 해탈한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사람에겐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여전히 미궁이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어떤 책도 답을 알려주지 못한다. 조르바는 화자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이다.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으면서, 배운 게 그렇게 많으면서 결국 삶의 본질에 관해 뭘 알게 됐냐는 것이다. 삶의 본질도 모르고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왜 공부를 하고 책을 읽냐는 것이다.

화자는 조르바와 함께 지내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책 막바지에서 화자와 조르바는 결국 모든 걸 잃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지만 그마저 다 잃었다. 하던 사업도 망하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떠났다. 그제야 비로소 자유를 느낀다.

마침내 '나'와 조르바는 모든 것을 잃었다. 돈, 사람, 고가선, 수레를 모두 잃었다. 우리는 조그만 항구를 만들었지만 수출할 물건이 없었다.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일평생 조르바를 동경했다. 그의 묘비명이 말해주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한편, 조르바는 지나치게 사회 체계를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실존주의자로 보인다. 그 이유로 조르바가 가진 삶을 향한 태도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삶의 가치관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냐만, 조르바의 가치관을 반의 반만이라도 갖는다면 한결 가볍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영화 '희랍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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