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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본문

책과 사유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Baek Kyun Shin 2021. 7. 7. 21:33

지금까지 니체에 관한 책을 적잖이 본 거 같다. 니체 본인의 저서든 다른 사람이 니체 사상을 설명한 책이든 말이다. 니체를 처음 접한 때는 2013년이었을 것이다. 니체 사상을 처음 접했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명확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여러 책을 읽으니 명확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다른 니체 책들을 읽고 강연도 들었는데, 기존에 내가 알던 니체랑 조금 달랐다. 참 골치 아프게 만드는 철학자다. 다시 니체의 책을 접하니 장막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으니 내가 모르던 또 다른 니체 모습이 보였다. 알다가 모르다가를 반복한다. 몇십 년 간 니체 연구를 해온 백승영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백승영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여전히 니체에 대해 모르는 점이 많아요."

니체 전문가인 백승영 교수도 여전히 니체에 관해 모르는 게 많다고 한다. 아마 난 평생 니체를 완벽히 알진 못하겠다.

전기 작가 뤼디거 자프란스키가 쓴 <니체>는 니체 사상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했지만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꽤 집중해 읽어야 했다. 1장부터 15장까지 중요한 대목만 추려 정리해봤다.

1장 음악을 사랑한 니체

니체에게 음악은 삶의 전부였다. 언젠가 니체는 이렇게 썼다.

음악이 없다면 삶은 하나의 오류일 것이다.

니체는 오랫동안 바그너 음악을 좋아했다. 처음으로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을 듣고는 친구 로데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내 몸의 신경 하나하나, 힘줄 하나하나가 경련을 일으키지. 황홀한 감정이 그처럼 오래 지속되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라네.

이처럼 음악은 니체의 참된 세계이자 거대한 힘이다. 1877년 니체는 쾌락 등급에 관해 이런 메모를 남긴다. '맨 윗자리는 즉흥 연주였고, 그다음이 바그너의 음악이었다. 관능적 쾌락은 두 단계나 더 아래에 있었다.'

니체는 이러한 황홀경의 음악 체험을 [비극의 탄생]에서 현존의 일상적 제한과 한계를 파기하는 디오니소스적 상태의 황홀경이라 칭한다. 황홀경이 지속되는 동안 일상 세계는 물러난다. 하지만 그 세계가 다시 의식되는 순간 그것은 역겨움을 수반한다.

니체는 예술이 권태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의식과 시간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 개념이 있어서 권태를 느낀다. 권태를 탈피하려고 새로운 놀이를 창조한다. 이 새로운 놀이가 예술이다. 

예술이란 니힐리즘적 이완에 빠져들지 않도록 활시위를 당기는 일이다.

모든 예술 중 니체는 특히나 음악을 사랑한다.

제2장 최초의 철학 시도

18살 때의 니체 (1861년)

너는 너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 또 네가 지닌 미덕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전에는 미덕이 너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미덕은 다른 여러 도구와 마찬가지로 너의 도구일 뿐이어야 한다. 너는 너의 찬성과 반대를 지배하는 권력을 획득해야 하며, 그때그때 너의 더 높은 목적에 따라 미덕을 떼어내거나 다시 붙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니체 사상에서 '주인 의식'은 중요하다. 반대되는 말은 노예 의식이다. 노예 의식을 가진 사람은 주체적이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만든 선과 악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니체는 노예 의식을 싫어했다. 스스로 만든 미덕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마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더 높은 목적에 맞게 그때그때 떼어내거나 다시 붙일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만든 도덕 기준을 언제나 버리고 다시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니체가 어린 시절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다. 천천히 걷는 게 당시 학교 교칙이었다. 니체는 교칙에 따라 폭우를 맞으며 천천히 하교했다. 폭우를 맞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니체를 보고 친구들은 "꼬마 목사"라고 놀렸다. 니체는 극단적으로 규율을 잘 지키는 아이였다. 다른 사람이 만든 도덕 규칙을 잘 따랐다. 그랬던 니체가 남들이 만든 도덕 기준을 버리라고 말한다.

당시까지 많은 사람들은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우주의 의미와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이 없다면 우주의 의미와 목적이 없거나, 의미와 목적은 신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니체는 전자와 후자 중 후자라고 믿었다. '신이 아닌 다른 곳'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즉, 의미와 목적은 신이 아니라 '나'에게서 나온다고 믿었다. 니체는 우리들이 아직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인간이 되는 중이다. 인간이 되려면 다음과 같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책임져야 할 자는 우리뿐이며, 생의 규정이 잘못된 경우 비난을 돌릴 수 있는 곳은 어떤 더 높은 힘들이 아닌 우리뿐이다.

제3장 쇼펜하우어와 만남으로 철학자의 길을 결심하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니체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전공한다. 1865년 10월 라이프치히 한 헌책방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접하고, 그날 바로 이 책을 다 읽어 버린다. 이때부터 니체는 문헌학이 아닌 철학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가 이 책에서 읽어낸 것은, 이성과 역사적 의미와 도덕에 의해 정돈된 세계란 본래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1865년 11월 5일자 편지에서 니체는 우둔하게 만족하는 삶이 있는 반면, 현명하게 세상을 등지고 사는 길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은 삶의 노예이거나 자신의 주인이다. 우리는 생의 자산을 포기할 때만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1866년 4월 7일 니체는 천둥번개에서 받은 인상에 관해 이렇게 쓴다.

번개, 폭풍, 우박은 얼마나 다른가! 윤리를 모르는 이 자유로운 힘들은! 이것들은 얼마나 행복하고 힘찬가! 지성에 의해 혼탁해지지 않은 이 순수한 의지는!

번개와 폭풍은 노예가 아니다. 주인이다. 자유로운 힘, 상승하려는 의지, 힘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삶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해 니체는 문헌학을 버리고 철학을 선택한다. 니체에게 쇼펜하우어는 인도자이자 훌륭한 스승이었다. 물론 쇼펜하우어 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니체에게는 쇼펜하우어의 철학 내용보다 인격적 신뢰성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반박할 점을 발견하고 나서도 쇼펜하우어를 향한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가 가진 삶을 향한 주인의식을 높이 칭송한다. 쇼펜하우어는 스스로를 영웅적이라고 여겼다. 쇼펜하우어가 괴테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가슴속에 어떤 의문도 남겨두지 않으려는 용기, 바로 그것이 철학자를 만듭니다. 철학자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비슷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답을 얻고 나면 극도로 참담한 결과에 직면하리란 것을 예감하면서도 자신의 끔찍한 운명의 해명을 얻고자 지치지도 않고 탐구하는 것이지요."

철학에서 천재란 어떤 사람일까? 니체의 답은 이렇다. 철학에서 천재란 현존재의 가치를 새롭게 정하는 자다.

철학은 삶을 숙고하고 성찰하여 묘사하는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철학은 삶의 변화를 야기한다. 철학 자체가 이미 그러한 변화다.

삶의 변화를 야기하는 사상가들을 니체는 '정신의 폭군들'이라고 부른다. 정신의 폭군들. 즉, 가치의 전도자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니체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은 정신의 폭군이 아니었다. 문헌학적, 역사적으로 철학을 다루기만 할 뿐이다. 철학은 힘에의 의지를 상실했다. 니체에 따르면 계몽적 사상은 소수의 위대한 천재들에게서 비롯된다. 문헌학적, 역사적 연구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에게서 유래한다. 다른 사람의 사상을 풀이하거나 해석하고 정리하는 일에는 '창조적 불꽃'이 없다. 이런 이유로 1867년 니체는 문헌학에서 벗어나 창조적 철학 저술가가 되고자 마음먹는다.

되새김질을 집어치워야 한다. 정신들과 사건들과 성격들을 의식적으로 새롭게 시적으로 창조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니체가 철학자가 되기로 마음먹을 무렵, 바그너와 친분을 맺게 된다. 니체는 바그너에게서도 쇼펜하우어의 기질을 발견한다. 니체는 바그너를 경외하기 시작한다.

1870년 2월 바그너는 니체에게 자신이 '위대한 르네상스'를 실현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편지를 쓴다. 니체는 그 실현을 도우려고 비극에 관한 책을 쓴다. 

니체는 아직 문헌학의 토대에 머물고 있지만 이미 춤을 추겠다는 의지를 품고서 자신의 최초 걸작을 쓴다. 그것이 <비극의 탄생>이다.

제4장 그리스 비극, 문화 그리고 디오니소스적 지혜

디오니소스

4장에서 니체의 파괴적 철학자로서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니체는 대범하게 소크라테스를 비판했다. 진정한 의미의 전쟁과 파괴에 찬성했다. 계몽주의와 당대 문화를 이끈 합리성을 비판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문화와 비극을 찬미했으며, 그리스 비극의 부활을 가져올 바그너 음악을 칭송했다. 진짜 철학자다. 논리적이진 않지만 얼마나 대범한가. 니체의 주장이 논리적이지 않은 이유는 그가 논리를 비판했기 때문이다. '논리'와 '합리' 모두 니체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리스 비극

니체는 말보다 음악을 중시한다. 말은 내면에서 비롯되지 않으며, 내면에 이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음악은 다르다. 음악은 참된 보편 언어다. 직접 심장을 울린다. 음악을 중시한 니체는 말로 연주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낸다. 그것이 그리스 비극이다. 

니체는 1870년 두 차례 공개 강연을 한다. 첫 번째 강연에서 니체는 비극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설명한다. 언어의 변화 때문이다. 로고스가 파토스를 제압한 것이다. 언어가 음악에서 해방돼 논리를 밀어붙이면 비극은 종말에 이른다. 니체는 언어와 음악이 한대 어우러진 비극, 즉 그리스 비극이야 말로 진정한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니체의 두 번째 강연은 경악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어떤 이유에서? 니체는 소크라테스를 재앙이라고 평가한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것이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소크라테스적 사유 전개 때문에 언어가 음악에서 분리됐고, 결국 비극이 소멸했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합리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지혜 없는 지식의 시작이다. 무대 위에서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고 토론이 벌어질 뿐이다. 소크라테스적 학문의 여파로 민주주의, 정의, 평등 이념이 등장했다. 디오니소스적 문화가 파괴된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 비극, 음악극은 사라졌지만 영원히 사라진 건 아니다. 니체는 두 번째 강연에서 그리스 비극의 부활 가능성을 언급한다. '바그너'를 명시적으로 거론하진 않았지만, 그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바그너는 니체 강연에 찬사를 보낸다. 새로운 이념을 보여준 대범함에 놀랐다고 고백한다. 그러고선 니체에게 본인의 생각을 더 발전시켜 보라고 제안한다. 니체는 바그너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니체는 첫 저작 <비극의 탄생> 집필 계획을 세웠다. <비극의 탄생>의 요지는 이렇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소름 끼치는 삶에 접근하는 편이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음악이다.' 니체는 두 번째 강연, 그리고 <비극의 탄생>으로 문헌학자로서 명성을 잃는다. 바젤 대학 학생들도 니체를 멀리한다. 바그너만이 니체를 디오니소스적이라며 칭찬했다.

쇼펜하우어 철학에 몰두하던 니체에게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생명력일 뿐 아니라 나아가 이러한 삶의 측면은 창조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잔인하고 고통스럽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이는 쇼펜하우어의 입장과 일치한다.

... 중략...

디오니소스적인 것에서 매혹적인 점은 자신의 한계를 세 번이나 초월한다는 것이다. 우선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자연과 일체감을 느낀다. 그리고 인간은 광란의 축제나 사랑 그리고 군중의 도취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 주변 사람들과 하나가 된다. 세 번째로 개인의 내면에 있는 한계를 제거한다. 의식은 닫힌 문을 열어 무의식을 받아들인다. 

전쟁과 문화

1870년 여름, 독일과 프랑스 전쟁이 시작된다. 니체는 전쟁을 비극적이고 영웅적인 분위기로 물든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분출이라고 여긴다. 니체는 전쟁에 찬성했다. 전쟁이 문화의 혁신을 가져올 거라는 희망 때문이다. 니체가 추구하는 최상의 목표는 문화의 융성이다. 국가, 종교,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니체는 문화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문화가 국가나 경제에 종속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니체에 따르면, 모든 것이 문화에 종속되어야 한다. 전쟁을 반긴 이유도 문화를 위해서다. 문화의 혁신을 기대했다. 하지만 전쟁이 문화의 융성이 아니라, 돈벌이와 군사적 오만의 산물이라는 점이 드러나자 전쟁에 반대했다. 

현재 독일의 점령 전쟁에 대해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 독일 문화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해 보입니다.

니체는 전쟁에 동의했다. 적어도 전쟁이 문화를 발전시킬 때에만 해당한다. 독일과 프랑스 전쟁이 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나자 전쟁을 경멸했다.

디오니소스적 지혜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심층부가 디오니소스적이고 잔인하고 활력이 넘치며 위험하다는 확신이다. 삶은 다정다감한 휴머니즘과 달리 엄청나게 무겁고 잔인하다.

여기서 디오니소스적 지혜란 무시무시한 삶 앞에서 인식 행위 자체를 문제시하는 인식을 일컫는다. 니체는 괴테의 말을 빌려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영원의 바다', '변화무쌍한 활동', '타오르는 생명'이라고 말한다.

거듭 말하지만,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실재의 어느 한 측면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인식과 삶과 예술이 펼쳐지는 총체적 실재다.

이미 젊은 니체에게 '존재'는 활동적인 것이며, 위협적이면서도 유혹적인 것이었다. 존재는 친숙한 것이 섬뜩하게 느껴질 때 디오니소스적 모습을 나타낸다. 디오니소스적 지혜는 이러한 디오니소스적 현실을 견디는 힘이다. 

제5장 신화의 의미, 바그너에 대한 환멸

리하르트 바그너

젊은 시절 니체는 독일이 물질주의, 경제 우선주의, 역사주의에 의해 피폐해졌다고 느꼈다. 피폐해진 독일 정신은 바그너 음악으로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신화'를 '압축된 세계상'이라고 묘사한다. 신화는 삶을 윤택하게 한다고 믿었다. 

신화가 없다면 모든 문화는 자신의 건강하고 창조적인 자연의 힘을 상실한다. 신화로 둘러싸인 지평이야말로 문화 전체의 운동을 통일체로 완결시키기 때문이다.

니체는 신화를 느끼지 못하는 당대 독일인들을 뿌리 없는 인간이라고 여긴다. 니체에게 신화는 자연과 대화하려는 시도다. 자연현상을 무언가를 표현하는데, 그것은 바로 '의지'다. 결국 신화는 인간에게 '의지'를 갖게 해준다. 신화를 상실한 사람들은 더 이상 대지를 '보지' 못하고, 새소리도 '듣지' 못한다. 

바그너와 니체는 의지가 결여된 사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려고 했다. 막스 베버와 반대 입장에 선 것이다. 당시 막스 베버는 합리화, 기술, 경제관념을 통해 '탈주술화'를 주장했다. 반면 바그너와 니체는 신화가 없는 시대를 가슴 아파하며 신화의 재창조를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술을 삶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결국 바그너와 니체는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신화에 대한 의견 차이 때문이다. 바그너는 신화가 종교를 대체한다고 믿었다. 즉, 신화가 종교적인 권위를 지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니체는 신화는 구원이 아니라 삶의 상승, 즉 예술을 촉진하는 심미적 유희라는 입장이었다. 

바그너는 순수 예술 영역에서 벗어나 신화적인 체험과 종교적인 경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영향력 있는 모든 요소들을 총동원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노력을 하면서도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예술 산업의 대표자가 된다. 이미 동시대인들이 비판했듯이 그의 예술은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총공세에 나선다.

더불어 도덕적인 태도에 대한 니체의 생각을 알아보자.

도덕적인 태도는 디오니소스적 지혜가 부족해 대개 삶을 냉정한 시각으로 보지 못한다. 냉정한 시각으로 보면, 어느 한 곳에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시도는 항상 다른 곳에서 불의를 발생시킨다. 누군가가 지금 누리는 행복은 세상의 고통을 생각하면 파렴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전체가 곤경에 처해 있는데도 누군가는 일이 잘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고통받고 서로 고통을 주는 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다. 폭력, 기만, 부정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도덕적일 수 없다. 니체가 비판한 것은 도덕 그 자체가 아니다. 독선과 세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자의적 낙관주의다. 이 둘은 대개 함께 나타난다. 니체에 따르면 어떠한 경우든 도덕적인 태도는 디오니소스적 지혜가 연 활동 영역을 협소하게 만든다.

우리는 심미적 명랑성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비극적인 정서를 갖춰야 한다.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되고, 삶의 허무함을 깨달았더라도 열정적으로 삶을 사랑해야 한다. 심미적인 순간이란 모든 투쟁과 고난을 보상해주는 행복한 순간이다. 니체는 심미적인 순간을 중요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니체에게 인간의 최우선 과제는 예술 작품이나 가장 위대한 성공을 만드는 것이다. 니체는 이를 세계 황홀경의 극치라 표현한다. 황홀경의 극치는 문화의 의미를 실현한다. 당분간이었지만 니체에게는 바그너의 음악도 황홀경의 극치였다. 

니체는 바그너가 연 음악 축제를 보고는 바그너에게 등을 돌린다. 바그너의 음악 축제는 황홀경의 극치를 표현하리라 생각했지만 온갖 야단법석을 체험한다. 호화롭고 억지스러운 연출에 큰 실망을 한 니체는 바그너를 떠나게 된다.

제6장 유물론과 역사주의를 향한 저항

앞서 말했듯 니체는 비극의 부활을 원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실증주의, 경험주의, 경제 중심주의, 공리주의가 시대를 지배했다. 니체는 이런 시대를 성실하고 정직하지만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예술이야 말로 참된 존재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맞서 싸운다. 니체가 분노하는 이유는 교양 속물들이 거대한 힘을 온화하고 친근한 것으로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니체가 원하는 세계는 이런 세계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광명 속에서 우리는 몸을 떨며 주변과 뒤를 바라본다. 거기에 날렵한 맹수들이 달리고 있고 우리도 그들 가운데에서 달린다. 거대한 지구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엄청난 활동, 도시와 국가를 건설하고 전쟁을 벌이고 쉬지 않고 축적하고 분배하며, 서로 뒤엉켜 질주하고 서로에게서 배우며, 서로를 속이고 짓밟으며, 고난으로 비명을 지르고 승리로 환호성을 울린다. 이 모든 것은 동물성의 연속이다.

니체는 엄청난 활동을 벌이는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당대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주의자였다. 니체 주변에는 맹수가 없었던 게다.

니체가 맞서 싸운 시대정신의 첫 번째 측면이 유물론이라면, 두 번째 측면은 역사를 강조하는 풍토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이렇게 말한다.

확고하고 신성한 고향도 갖지 못한 채 모든 가능성을 탕진하고 온갖 문화들에 기생하면서 겨우 연명해나갈 운명에 처한 문화를 생각해보라. 이것이 바로 신화를 파괴하려던 소크라테스주의가 초래한 오늘의 현실이다. 충족되지 않은 근대 문화의 저 엄청난 역사적 욕구, 수많은 다른 문명의 수집과 불타는 지식욕은 신화의 상실, 신화적 고향의 상실, 신화적 모태의 상실이 아니라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소크라테스부터 이어져온 과거 답습, 지식욕이 현대인들에게서 비극과 신화를 상실하게 했다는 의미다. 니체는 환상과 열정, 사랑이 우리의 삶에 활기를 넣어주는 요소라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은 그런 요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환상, 열정, 사랑, 비극, 신화보다는 역사와 자연과학을 중시했다. 가능한 한 많은 지식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근대인은 엄청난 양의 소화되지 않은 지식 돌멩이들을 몸에 달고 다니는데, 이 돌멩이들은 동화에서처럼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몸 안에서 덜커덩거린다. 이 덜커덩 소리를 통해 현대인의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지 밝혀진다. 외면과 일치하지 않는 내면 그리고 내면과 일치하지 않는 외면이라는 기묘한 대립이 현대인의 특성인데, 고대인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소화되지 않은 지식 돌멩이. 교양이라는 허세. 나도 반성한다. 니체의 핵심 사상은 이렇다. 생명력은 지식에 의해, 그리고 과거에 대한 믿음에 의해 손상되거나 심지어 파괴된다는 것이다. 

제8장 니체의 인식론 전환기

1875년 니체는 전환기를 맞는다. 지금까지 신화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던 니체는 신화를 신비화로 여기고 공격에 나선다. 니체는 개선할 수 있는 '악'이 무엇이고, 개선 불가능한 '악'이 무엇인지 규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를 비판하던 니체는 결국 계몽을 계획한 셈이다. 

니체는 통증, 신경쇠약, 시력 약화, 편두통이 심해지자 1876년 휴가를 신청했다. 건강이 안 좋아서일까 니체는 체계가 완성된 방대한 작품을 쓰지 못한다. 주로 짧은 잠언 형태로만 글을 쓸 뿐이다. 니체는 헤겔이나 칸트와 같이 완결된 철학서를 쓰지 못했다. 

1870년 중반 니체는 유명론을 일부 받아들였다.

인간은 자신의 인식 세계에서 활동하면서 이 인식 세계를 바탕으로 여타의 다른 세계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유명론이 인간의 이러한 자기기만을 꿰뚫어 본다면, 그 역도 통하지 않겠는가? 즉 지금까지 확고하다고 받아들여졌던 인식 세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모든 것이 무효화되고 불확실해지지 않을까? 인식의 꿈에서 깨어나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항해하게 된 인간은 존재론적인 멀미를 하지 않을까? 인간이 언어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생긴 엄청난 오류를 없애려고 한다면, 현실은 어떻게 될까? 물론 이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주체도, 객체도, 실체도 그리고 사물의 성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철학적으로 우리의 인식을 생각해볼 문구여서 그대로 옮겨봤다.

의미, 중요성 그리고 진리는 근원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목표에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 자신들도 변화한다. 우리는 변화를 인식하고 결국에는 인식의 대상뿐만 아니라 인식 행위 자체도 변화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모든 철학자들은 유전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인식 능력 역시 생성되어왔다는 점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인식 능력에서 세계 전체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인간의 인식 능력은 오랫동안 생물학적인 발전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만일 인간이 이러한 인식 능력을 통해 세계 전체를 만들어 낸다면, 인간은 자신을 만들고, 자신에게 인식 능력을 부여한 것이 바로 세계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9장 도덕의 비도덕적인 토대

<아침놀>과 <즐거운 학문> 내용을 담고 있는 니체 노트의 한 페이지

1877년부터 1880년까지 니체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두통, 구토, 어지러움, 눈 통증, 시력 약화 등으로 시달렸다. 1880년 1월 초 니체는 자신의 주치의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내 삶은 끔찍한 짐입니다. 만일 내가 이런 고통에서, 그리고 거의 절대적인 체념 상태에서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분야의 매우 교훈적인 시험과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오래전에 내 삶을 내던져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인식을 갈구하는 기쁨은 나를 고양시켜서, 모든 고통과 절말을 이겨낼 수 있답니다. 전체적으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합니다.

신체적으로 가장 힘들 때였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도전적일 때이자 행복할 때였다. 

니체는 이때 영원회귀 사상을 주장했다. 영원회귀 사상은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사상이다. 당시 사람들은 영원회귀 사상을 형이상학적 억측이라고 비난했다. 물론 니체는 이 사상을 명제적으로 진리라고 여겼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건 영원회귀 사상이 가져오는 실존적인 힘이다. 매 순간이 반복되더라도 아무런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있도록 살라는 요청이다. 매 순간을 빛나게 하고, 삶에 위엄을 부여한다. 

니체는 온전한 개인이 되는 것을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과제라고 여겼다.

너는 너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 또 네가 지닌 미덕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전에는 미덕이 너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미덕은 다른 여러 도구와 마찬가지로 너의 도구일 뿐이어야 한다. 너는 너의 찬성과 반대를 지배하는 권력을 획득해야 하며, 그때그때 너의 더 높은 목적에 따라 미덕을 떼어내거나 다시 붙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는 일체의 가치평가에서 관점주의적인 것을 터득해야 한다.

니체에 따르면 '도덕'은 인간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약자는 자신의 무능함에 대해 정신적 승리를 쟁취하려고 강자의 강함을 '악함'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약자가 정해놓은 '선함'과 '악함'에 길들여졌고, 자신만의 도덕관을 갖지 못했다. 도덕의 역사에서 온전한 개인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제10장 우리는 우리를 인식할 수 있는가? 철학은 무엇인가?

철학은 학문일까 아니면 예술일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과 <아침놀>을 쓸 무렵 니체는 철학을 엄격한 학문이라기보다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니체의 생각은 이제 달라진다. 철학은 정확한 체계를 바탕으로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식의 세계는 그 자체로 다양성과 자발성을 지닌 세계이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충실한 서술은 체계와 법칙 인식을 지향하는 학문적 구상과 충동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니체의 저작들은 그 자체가(방대한 유고까지 포함해) 결국 그가 서술하려고 한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 것이다.

니체는 개인이 결코 개인 자신을 의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의식은 원래 인간의 개별적 실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내재한 공동체와 무리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다. 개별자는 이러한 공동체 의식을 통해서는 자신의 특징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의식은 그러한 일을 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은 순환 현상이지 자기 이해를 위한 매체가 아니다. 따라서 자기 이해를 위해 의식을 이용할 때 실패하는 건 당연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인 개별자는 사회화의 언어망과 의식망에서 탈락한다. 따라서 니체는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려고 시도해도 우리의 의식에 들어오는 것은 항상 비개별적인 것, 평균적인 것뿐이라고 말한다.

언어와 의식도 완전하지는 않아 개별적 존재를 인식할 수는 없다. 니체에 따르면 우리가 의식하는 세계는 

피상적 세계, 기호의 세계, 일반화되고 세속화된 세계일 뿐이다. 따라서 의식되는 모든 것은 평범하고 피상적이며, 깊이가 없고 상대적으로 어리석으며, 일반적이고 기호이자 무리의 표식이 된다.

니체는 철학에 관해 이렇게 표현한다. 멋진 글이다.

철학 전체는 온갖 우회로를 거쳐 어디로 가려하는가? 철학 전체는 지속적이고 강한 충동을 이성으로 번역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는가? 이러한 충동이란 온화한 태양, 밝고 생동하는 대기, 남방의 식물, 바다의 숨결, 고기와 계란과 과일로 이루어진 가벼운 식사, 뜨거운 음료수, 며칠 동안 이어지는 조용한 산책, 적은 말수, 드물지만 신중한 독서, 홀로 지내기, 청결하고 단순하며 거의 군인 같은 생활 습관, 요컨대 내 입맛에 가장 맞고 내게 가장 도움이 되는 모든 것들을 향한 충동이다. 근본적으로 철학은 개인적인 다이어트를 위한 본능이 아닐까? 나의 대기, 나의 높이, 나의 날씨, 내 나름의 건강을 두뇌라는 우회로를 통해 추구하려는 본능이 아닐까? 다른 철학도 많고, 분명 더 숭고한 철학도 존재한다. 그리고 내 철학보다 더 음울하고 까다로운 철학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것들도 모두가 개인적인 충동의 지적인 우회로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제12장 영원회귀 사상

니체가 주장한 중요한 사상 중 하나는 영원회귀 사상이다. 지금 이 순간은 무한히 반복된다는 사상이다. 말도 안 되는 사이비 이론 같지만 니체는 이렇게 생각했다. 시간은 무한하다. 그러나 물질 또는 에너지로서 우주가 지닌 힘은 일정하다. 따라서 모든 물질 상태와 에너지 상태는 무한히 반복된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다음과 같이 자문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수없이 계속하기를 원하는 것인가? '너는 무엇을 해야만 한다'라는 당위적 명령을 극복하려 한 니체였지만, 여기서는 새로운 형태의 당위적 명령을 가르친다. '너는 매 순간이 아무런 공포 없이 반복될 수 있도록 매 순간을 살아야 한다.'

1882년 니체는 살로메라는 여인을 처음 만난다. 니체는 그녀가 자신의 지적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청혼을 한다. 하지만 살로메는 니체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없어 거절한다. 이후 니체는 다시 청혼했지만 역시 거절당한다. 살로메에게 거절당한 니체는 1882년 말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를 집필한다. 단 10일 만에.

제15장 창조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 니체

니체는 1889년 1월 집을 나선다. 광장에서 마부가 말에게 채찍질하는 광경을 본다. 니체는 말을 보호하려고 울면서 말을 감싸 안는다. 그는 쓰러졌고, 그뒤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다. 니체 정신의 역사는 1889년 1월에 끝난다. 그 후 니체는 10년을 더 살았다.

그동안 니체의 책은 잘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 뒤, 니체의 책은 불티나게 팔린다. 니체의 여동생은 니체의 전집을 출간하려 했고, 오빠를 대중에게 알리려고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그녀는 니체를 국수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군국주의자로 만들려 했는데, 이러한 이유로 지금까지도 니체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니체는 본인의 저서에서 군국주의, 국수주의, 인종차별주의를 명백하게 비판했다.

니체의 사상을 정리하면 결국 니체는 '창조'를 강조했다. 더 높은 인간이 되기 위한 창조. 남이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따르지 않는 주체성.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목표에 대한 거부. 디오니소스를 향한 찬가. 이 모든 게 니체 사상을 함축하는 말이다.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니체도 궁극적인 목적과 발전의 목표가 있다는 관념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니체는 목적론적 상승이 아닌 열린 상승, 즉 자기지시적인 상승 동력을 생각해야만 했다. 생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하지만 자신 안에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서 끄집어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창조이지, 모방이 아니다. 도덕도 창조적인 충동을 따라야 한다. 상상력에 권력을!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창조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그는 인간의 목표를 창조하고 대지에 의미와 미래를 부여한다. 이 창조하는 자가 비로소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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