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본문
"물론 전혀 중요하지 않죠. 그냥 재미로 한 거예요"
파인만은 재미로 시간 낭비하는 걸 좋아했다. 재미로 한 일에서 시작해 마침내 노벨물리학상을 탔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는 파인만이 겪은 재미난 일화를 소개하는 책이다. 여러 에피소드를 모은 가벼운(?) 자서전 같다.
무슨 책을 볼지 둘러보던 중이었다. 이번엔 머리 식힐 겸 가벼운 책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이 쉽고 재밌다는 평이 많았다. 파인만 자서전이므로 머리 식힐 겸 읽는 책치곤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읽기로 했다. 읽어 보니 기대 이상이다. 일단 책이 재밌다. 미국 대학생활을 그린 드라마 같다. 가벼운 수필처럼 술술 읽힌다. 게다가 재미있다. 책 주인공이 파인만이 아니었어도 재미있을 정도다.
참 유쾌한 사람이다. 낙천적이면서 짓궂기도 하다. 누군가를 놀려먹기를 좋아했다. 비상한 머리로 누군가를 속인다. 상대방은 당할 수밖에 없다. 파인만은 속으로 키득거리며 상황을 즐긴다. 전형적인 괴짜 천재상이다. 타고난 천재인 그도 일반인과 비슷한 점이 있다. 첫째, 파인만도 자만한다. 실제 잘난 만큼 잘난 체를 많이 한다. 둘째, 주변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할까봐 걱정한다. 본인을 향한 주변 기대가 너무 큰 상황을 부담스러워했다. 셋째, 젊었을 땐 이성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아내가 죽은 뒤에는 아내를 많이 그리워했다. 그도 사람인데 너무 당연한 얘긴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파인만이 '자만이라는 것'을 하고 '부담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게 신기했다.
그의 특징은 확실하다.
호기심이 많다
우선 호기심이 많다. 궁금하면 직접 실험해본다. 어린 시절 벤젠 실험을 하며 집안 물건을 불태운 적이 있다. 방문을 닫고 방 안에서 실험을 했다. 그러다 집 안 물건을 불태웠다. 불에 탄 물건을 창 밖으로 집어던졌다. 태연하게 부모님께 잠깐 놀다 온다고 하고는 뒤처리를 했다. 또 한 번은 개미를 한 마리도 죽이지 않고 식료품 통에서 몰아낼 방법을 실험적으로 찾은 적도 있다. 사냥개처럼 냄새 맡는 실험을 직접 한 적도 있고, 장난 삼아 금고를 털기 위해 12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사람보다 사냥개의 후각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파인만은 진짜 그런지 직접 실험하고 나서야 결과를 받아들였다. 개처럼 바닥을 기며 냄새 맡는 파인만을 상상해보자. 파인만은 그런 사람이었다.
집중할 때는 다른 건 신경 쓰지 않는다
파인만이 프린스턴 대학원생으로 있었을 때였다. 세미나에서 물리학자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생겼다. 청자는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파울리 등이다. 당대 최고 물리학자들이 본인 발표를 듣는다니. 파인만은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파인만이 세미나 준비 차 칠판에 방정식을 쓰고 있는데 아인슈타인이 들어와 쾌활하게 물었다.
"안녕하신가? 자네 세미나를 들으러 왔네. 그런데 마실 차는 어디 있지?"
파인만은 아인슈타인에게 차가 있는 곳을 말해주고 계속 방정식을 써내려 갔다.
"시간이 되어 앞을 보니, 거물들이 줄지어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내 첫 번째 세미나에, 이런 사람들이 청중이라니! 그런데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이런 기적은 내 인생에서 계속해서 일어났고, 그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내가 물리학에 대해 생각하고 집중하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초연해졌다. 그래서 말을 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방에 누가 있는지 잊어버렸다. 나는 아이디어를 설명했고, 그것이 전부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솔직하다
파인만은 솔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그는 즉각적으로 머리에 처음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다. 당대 최고 물리학자인 닐스 보어와 의견을 교환할 때도, 정신과 의사와 말다툼을 할 때도 솔직했다. 코넬 대학에 처음 부임하던 날, 잘 보여야 할 학과장 앞에서도 솔직하게 의견을 말했다.
"나는 늘 이런 식으로 멍청했다. 나는 내가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잊어버린다. 나는 항상 물리에 관해서만 걱정한다. 아이디어가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이상하다고 말한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좋다고 말한다. 간단한 일이다. 나는 늘 이렇게 살아왔다. 당신이 할 수 있다면 이것은 썩 괜찮고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이렇게 할 수 있는 행운을 내 삶에서 누렸다."
재미가 주목적이다
파인만이 무언가를 하는 가장 큰 동기는 '재미'다. 한번은 다른 연구소에서 거액 연봉을 제시하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결국 거절했는데 이유는, 그곳에 가면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없고 연구소가 원하는 걸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소의 스카우트를 거절하며 파인만은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새로운 태도를 가졌다. 대학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가르치는 것을 즐기고, <아라비안 나이트>를 재미로 읽듯이 물리학도 재미로 할 것이며, 중요성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내킬 때만 할 것이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식당에서 친구가 장난 삼아 접시를 던졌다. 파인만은 회전하는 접시를 보며 물체의 회전에 대해 생각해 봤다. 접시의 회전과 요동 비율이 2:1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을 지도교수에게 말했다. 지도교수는 "파인만, 재미있긴 한데 이건 어떤 중요성이 있지? 왜 이런 걸 하나?"라고 되물었다. 파인만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전혀 중요하지 않죠. 그냥 재미로 한 거예요."
그가 한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중요했다. 노벨상을 받게 된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비롯한 모든 업적은 흔들리며 날아가는 접시를 생각하며 시간을 낭비한 일에서 시작됐다.
자유롭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림 실력도 수준급이었고, 북 연주가로서 돈까지 벌었다. 심지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뒤에도 신분을 숨기고 북 연주가로서 공연을 다녔다. 그저 북 치는 게 재미있어서 말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도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성취하리라고 기대하는 대로 살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그들이 기대하는 대로 살 의무가 전혀 없다. 이것은 내 실패가 아니라 그들의 잘못이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게 본인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기대한 잘못이라는 것이다. 오우...
진짜 과학을 추구한다
한 때 브라질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과학 이론에 관한 어떤 질문을 해도 브라질 학생들은 대답을 잘했다. 하지만 자연현상에 빗대어 질문하면 대답하지 못했다. 빛과 매질과 굴절률에 대한 이론은 완벽히 암기했지만 태양빛과 바닷물에 빗대어 질문하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브라질 학생들은 책이나 강의에서 배운 이론만 암기했을 뿐이다. 자연현상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시험만 잘 보면 그만이었다.
공식석상에서 파인만은 브라질의 과학 교육을 비판했다.
"내가 이 강연을 하는 주요 목적은, 브라질에는 과학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청중은 술렁였다. 청중 앞에서 파인만은 브라질에서 사용하는 기초 물리학 교과서를 펼쳐 들었다. 교과서를 아무 데나 넘기고 아무 곳이나 읽어서, 그것이 왜 과학이 아니라 암기일 뿐인지 이유를 대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무 데나 펼쳐서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 왜 과학이 아닌지 설명했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교육받은 사람은 시험에 합격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시험에 합격하도록 가르칠 수 있지만, 진짜 과학을 할 수는 없습니다."
독특한 사람이다.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 과학, 나아가 학문에 임하는 자세. 이 둘은 배울 만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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