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강대석] 카뮈와 사르트르 본문
이 책을 읽고 바뀐 점 두 가지.
카뮈와 사르트르 철학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됐다. 그리고 예전만큼 그들을 열렬히 좋아하진 않게 되었다.
나는 알베르 카뮈와 장 폴 사르트르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예전엔 상당히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다. 둘 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카뮈와 사르트르>. 카뮈와 사르트르를 좋아하는 내가 안 살 수 없는 책 제목이다. 구성도 좋다. 세 철학자 루카치, 사르트르, 카뮈가 가상 토의를 하는 방식이다. 카뮈와 사르트르 철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고, 그들이 주장한 바는 무엇이며, 둘이 결국 왜 결별했는지 알고 싶어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원저가 아닌 이상 책을 비판적으로 읽는다. 카뮈나 사르트르가 직접 쓴 책은 있는 그대로 그들 철학을 느끼며 읽는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카뮈나 사르트르 철학을 해석해 놓은 책이라면 다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본다. 저자 해석이 100%로 옳진 않아서다. 저자가 카뮈나 사르트르의 생각을 온전히 전달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기 나름대로 편향적으로 책을 썼을지 모르지 않은가. 이 책은 토의 형식으로 카뮈와 사르트르 철학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알기 쉽게 소개한 건 좋다. 그래도 무조건 수용하진 않았다.
어쨋든 비판적으로 보더라도 수용할 부분은 있다. 예전만큼 카뮈와 사르트르를 열렬히 좋아하진 않게 된 이유는 이렇다. 우선 카뮈는 자기 중심적, 유럽 중심적 철학체계를 간직한 게 아닌가 싶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태양이 뜨겁다는 이유로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가당하기나 한가? 유럽인이라는 이유로 아랍인을 살해했다. 태양이 뜨겁다는 이유로 타인을 죽였다. 사르트르는 사회 구조/체계를 전혀 무시한 채 개인의 자유만 강조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혼란스러웠다. 내가 그토록 좋아한 카뮈와 사르트르의 철학에도 오점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반면 기쁘기도 하다. 열렬히 좋아하던 철학자의 사상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니체 말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자를 경멸할 수도 있어야 한다'라고.
카뮈: 반항의 철학자
카뮈 철학의 핵심 사상은 반항이다. 삶을 향한 반항. 카뮈는 삶이 근본적으로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의 부조리한 상황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에 비유했다. 시시포스는 산 아래로 떨어지는 돌덩이를 끊임없이 산 꼭대기로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부단히 무의미한 삶을 사는 시시포스의 삶이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아무 의미 없는 삶을 계속 살아간다고 봤다. 그래서 부조리한 삶이다. 부조리한 상황에서 인간이 취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살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로 도피하는 것이다. 종교로 도피하는 삶도 일종의 자살이다. 이런 이유로 카뮈는 자살을 중요하게 다뤘다. 그의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의 신화>가 다음 문구로 시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말로 중대한 철학문제는 단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자살이다.
자살은 부조리에 굴복하는 행위다. 카뮈는 자살 이외에 삶의 부조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반항이다. 부조리한 삶을 사랑하며 운명에 반항하는 것이다. 운명에 반항한다고 하면 삶을 거부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순응에 가깝다. 사랑을 통한 반항이다.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함으로써 무의미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것이 카뮈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요 메시지다.
사르트르: 자유의 철학자
인간은 항상 선택을 하며, 선택에 의해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가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주요 메시지다. 사르트르는 자유의 철학자다. 속박을 거부했다. 사르트르는 영원한 단짝 '시몬 드 보부아르'와 계약결혼을 했다. 계약결혼? 결혼을 계약한다고? 그렇다. 사르트르는 계약을 전제로 결혼했다. 인습적인 규범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사랑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결혼은 속박과 소유를 전제로 한다. 배우자는 내 소유, 나도 배우자 소유다. 결혼 생활 중엔 관습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이 많다. 가령 다른 이성을 만나면 안 되고, 가정에 헌신해야 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이런 전통적 결혼 풍습에 반대했다. 그래서 계약결혼을 했고, 결혼 생활 중에도 상대방이 다른 이성을 만나도록 허락했다. 게다가 상대방에게 어떠한 요구나 강요도 하지 않았다. 둘의 계약결혼은 당대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둘은 죽을 때까지 지적 동반자로 서로의 곁을 지켰다.
사르트르는 평생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았고, 거기에 책임을 졌다. 노벨 문학상을 거부했으며, 살해 위협에도 본인 철학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의 실존주의 철학을 학문이 아니라 삶에서 실천했다. 내가 사르트르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가 실천하는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탁상공론하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카뮈와 사르트르의 결별
카뮈와 사르트르는 절친이었다. 나이는 8살 차이지만 실존주의 철학 이념이 일치해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추후 둘은 정치적 입장 차이로 갈라섰다. 카뮈는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테러, 전쟁은 물론이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직적 혁명에서 비롯되는 폭력도 거부했다. 폭력은 결국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사르트르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혁명은 필요하다고 믿었다. 두 절친의 생각이 달랐다. 게다가, 카뮈는 <반항인>이라는 책에서 소련을 비판하며 친미적인 색채를 드러냈다.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사르트르는 이 책에 비난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은 결별했다.
ps. 저자 강대석 교수는 내가 이 책을 구매하기 일주일 전 별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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