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본문
작년 12월 31일에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대한 글을 썼다. 오늘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대해 글을 쓴다. 우연하게도 매 연말에 인류 대서사시에 대해 글을 쓴다. 코스모스만큼 두꺼운 책이지만 코스모스만큼 술술 잘 읽히는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며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책의 효율성에 대해서. 저명한 학자가 평생을 걸쳐 연구한 학문 결과의 요약을 단 몇 주 만에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한 동물이 되었는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 무엇인지, 인간은 이를 통해 결국 행복해졌는지, 앞으로 인류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크게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통해 인간의 과거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푸조라는 회사가 존재한다고 말할 때, 이것은 무슨 뜻일까? 푸조라는 것이 이 회사에 속한 공장과 설비, 생산직 근로자, 경영지원 직원 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재앙이 닥쳐 푸조의 임직원 전원이 사망하고 공장과 설비가 모두 파괴될 수는 있겠지만, 새 임직원을 고용하고 새로운 설비를 설치하더라도 이 회사는 여전히 푸조이다. 푸조의 경영자와 주주가 있지만 이들도 곧 회사는 아니다. 경영자가 모두 해고되고 주식이 모두 팔려도 푸조는 여전히 존재한다. 만일 판사가 푸조라는 회사에 대해 파산판결을 내린다면 경영자, 주주, 설비, 임직원이 모두 존재한다 하더라도 푸조는 없어진다. 푸조가 경영자, 주주, 설비, 임직원 그 무엇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게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유발 하라리는 “푸조는 우리의 집단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말한다. ‘법적인 허구’, ‘사회적 구성물’, ‘가상의 실재’라는 뜻이다. 이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물체가 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가상의 실재로는 돈과 신용(credit), 국가, 종교, 정치와 사회체계 등이 있다. 저자는 인간이 다른 뛰어난 동물을 제치고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로 올라간 이유가 바로 이런 가상의 실재를 믿는 능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상의 실재 덕분에 인간은 협력을 할 수 있었다. 가상의 실재가 없던 시절에는 인간은 작은 무리 단위로 생활했다. 필요한 건 직접 만들었고, 먹을 건 사냥을 통해 구했다. 다른 종의 동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가상의 실재를 믿고 나서부터 생활이 달라졌다. 돈 개념이 생기며 나는 내가 잘 만드는 것만 만들면 되고 필요한 건 돈을 주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면 됐다. 이는 돈이라는 가상의 실재를 믿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가라는 가상의 실재가 생겼기에 작은 무리 단위가 아닌 대규모의 조직을 구성할 수 있었다. 대규모 조직의 협력을 통해 작은 무리 단위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도 하게 되었다. 한 국가에 속한 모든 구성원이 국가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고 믿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변화를 인지혁명이라고 지칭한다.
그 다음은 농업혁명이다. 농업혁명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농업혁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유발 하라리는 그렇지 않았다. 농업혁명으로 더 많은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었지만 이는 인구 증가를 야기했고, 결국 더 많은 농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시간도 더 많아졌다고 주장한다. 농업혁명 이전의 인간은 하루에 2시간만 사냥하면 나머지 시간은 가족과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농업혁명으로 손쉽게 먹을 거리를 얻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할애해야 했다. 현재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을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우리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디지털혁명을 통해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노인 모두가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우연한 재난뿐 아니라 고민, 좌절, 불만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는데, 그 모두가 인간 조건의 필수적인 부분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부와 권력을 추구하고, 지식과 소유물을 얻으며, 아들딸을 낳고, 집과 왕궁을 짓는다. 하지만 무엇을 이룩해도 결코 만족할 수 없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부자를 꿈꾼다. 1백만을 가진 사람은 2백만을 원한다. 2백만을 가진 사람은 1천만을 원한다. 심지어 부와 명성을 가진 사람도 만족하는 일이 드물다. 이들 역시 끝없는 괴로움과 걱정에 사로잡혀 살다가 결국 늙고 병들어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 사람이 쌓은 모든 것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삶은 극심하고 무의미한 생존경쟁이다.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은 세상을 지배했고,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과거의 생활방식을 잊어버리기도 했고, 현재의 생활방식과 물질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다. 인간의 대서사시는 이렇게 진행되어왔다. 저자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진다.
문득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떠올랐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유토피아를 가장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인류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유전자 조작을 하고 사회 전체 자유를 통제하고, 개개인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약을 먹는다. 심지어 사랑에 대한 감정도 조작한다. 이 세상에서는 누구도 불만을 품지 않고 불행을 느끼지 않는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감에 가득하다. 행복한 돼지로 사육 당하는 것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 의학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헉슬리가 그린 사회를 충분히 구현할 능력을 갖출 것이다. 모든 사람은 건강과 행복을 원한다. 우리가 원하는 게 건강과 행복이라면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같은 사회가 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불만이 있더라도 현재와 같은 사회를 유지해야 할까. 또는 새로운 사회와 인류가 도래할 것인가.
사피엔스에서는 인간의 문명 역사에 대해 논할 뿐 미래 사회상과 미래를 향한 자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다음편 계속..과 같이 후속작인 ‘호모 데우스’를 예고하는 것 같다.
2018.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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