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제임스 홀리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본문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책을 골랐는데 가볍지 않은 책이었다. 원제는 "The Middle Passage", 중간항로이다. 인생의 중간항로를 지나는 시기, 즉 마흔을 일컫는다. 이 책에서는 중간항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중간항로는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성격과 '자기'의 욕구 사이에 무시무시한 충돌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다시 말하자면 중간항로는 '지금까지의 내 삶과 역할을 빼고 나면, 나는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비로소 시작된다.
4년 전 군대에서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이와 유사한 주제로 '인정 욕구'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인정 욕구'는 말 그대로 남들에게 인정 받고 싶은 욕구이다. 우리는 남들에게 인정받기를 갈구하지만 개개인에게 무의미한 욕구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쓴 글이다. 나를 위한 의미 있는 욕구가 아니라 남을 위한 과시적 욕구라는 생각이었다. 저자가 말하는 "지금까지의 내 삶과 역할"도 마찬가지로'인정 욕구'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니 중간항로인 마흔은 인생의 안정기이면서도 과도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당수가 직업적으로 가정적으로 안정이 되었을 테지만 역할과 책임에 충실해 '자기'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희망과 매일의 현실 사이에 생겨나는 불일치는 중간항로 동안 크나큰 아픔"을 일으킬 것이다. 이런 불일치는 조금이나마 줄여 가는 것이 티끌같이 짧은 인생을 재밌게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
중간항로를 지나는 남성은 또다시 아이처럼 권력이 은폐하는 공포에 직면하여 해묵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은 간단하다. '내가 원하는 건 뭐지?' '내 기분은 지금 어떻지?' '기분이 좋아지려면 나 자신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현대 남성 중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해서는 은퇴 후 멋진 곳에서 골프나 칠 수 있기를, 심장마비가 찾아오기 전에 그럴 수 있기를 꿈꿀 뿐이다.
우리는 몇 안 되는 '나는 하고 싶다.'보다는 수 많은 '사회적으로 응당 그래야 한다.'에 길들여졌다. 책임과 역할에 충실한 사회적 아이가 되어버렸다.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기에 순수한 내면의 아이를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중간항로를 지나는 사람들은 너무나 성숙한 어른이지만 여전히 순수한 내면의 아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면의 아이를 끄집어 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는 더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이라도 내면의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2018.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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