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이오덕] 우리 글 바로 쓰기 본문
왜 글쟁이들이 오히려 읽기 어렵게 글을 쓸까? 이오덕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민중이 잘 안 쓰는 말을 써서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어 하거나, 적어도 너무 쉬운 말을 써서는 자기가 무식하게 보일 것을 염려하는 것이 글쟁이들에게 두루 퍼져 있는 버릇이다. 이 부끄러운 버릇을 싹 뜯어고치지 않고는 우리 말글을 살릴 수 없다.
나도 이 부끄러운 버릇이 있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어려운 말을 쓰려 했다. 이런 못된 버릇 때문에 우리 말글이 엉터리가 되고 있다. 아이들도 그런 글을 보고 자라니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리 없지. 이오덕 선생은 말한다. 우리가 쓰는 말과 글 대부분을 순수 우리 말글로 바꾸면 알아듣기도, 말하기도 쉽다고.
날씨 좋은 주말에 버스를 타고 백화점에 가고 있었다. 버스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마스크 미착용 시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안내 말이다. 이렇게 바꾸면 더 괜찮지 않을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과태료를 낼 수 있습니다."
한결 듣기 좋다. 피동은 능동으로, 한자어는 우리말로 바꾸면 된다.
- 피동은 능동으로
-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 한자어는 우리말로
- 미착용(未着用) 시(時) → 미착용(未着用)하면 → 착용(着用)하지 않으면 → 쓰지 않으면
- 부과(賦課)되다 → 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중국말, 일본말, 서양말을 자주 쓴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더 예쁜 말로 바꿀 수 있다. 이오덕 선생도 책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십 년 동안 길이 든 글쟁이의 못된 버릇이 자꾸 나와 어렵게 쓰고 잘못 쓰고 한다. 어찌 나뿐이겠나? 이 나라에서는 글을 아주 깨끗한 우리 말로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만큼 우리는 말과 글에서도 봉건과 일제와 분단의 세 겹이나 되는 무거운 짐을 모두가 운명처럼 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다 그런데 하고 잘못 쓰는 것을 그대로 보아줄 것이 아니라 기회 있는 대로 서로 잘못을 알리고 충고하고, 그렇게 충고하면 또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해야만 글이 바로잡히고 말이 살아날 것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이오덕 선생님은 어린이 문학과 우리말 바로잡기에 평생을 바쳤다. 어린이와 우리말을 사랑한 사람이다. 그가 쓴 <우리 글 바로 쓰기>는 우리 말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수많은 예를 들어 설명하는 책이다. 유시민, 강원국 작가는 글 쓰기 책 가운데 한 권을 꼽는다면 <우리 글 바로 쓰기>라 말했다. 나도 그래서 읽었다. 다만, 1992년에 나온 책이라서 30년이 지난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훌륭한 글쓰기 책이다. 우리 말글을 깨끗하게 쓰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글 쓰는 자세도 바로 잡아주니까.
우리는 중국의 영향으로 한자어를 지나치게 쓰고 있다. 일본말의 영향으로 불필요하게 조사를 남발한다. 서양말의 영향으로 우리말에 없는 시제를 쓰거나 우리말로 쓸 수 있는데도 굳이 외래어를 쓴다. 여기서는 글을 쓸 때 바로잡으면 좋을 몇 가지 내용만 정리했다. 자주 쓰는 중국말, 일본말, 서양말 가운데 고치면 좋을 글이다.
I. 중국말
중국말의 영향으로 한자어를 지나치게 많이 쓴다. 특히 공문서에서 더욱 심하다.
지나친 한자어 사용
- 이견 → 다른 의견
- 박차를 가하다 → 힘을 기울이다
- 차치하고 → 그만두고, 제쳐두고
- 실시되는 → 하게 되는
- 기재하여 → 써 넣어, 적어 넣어
- 제출하여 → 내어
- 필히 → 반드시, 꼭
'~적, ~화, ~하, ~감, ~시, ~상, 재~, 미~, 대~'의 남발
~적
- 무비판적으로 → 비판 없이, 생각 없이
- 무의식적으로 → 생각 없이, 저도 모르게
- 자의적 → 멋대로, 함부로
- 이 대작은 '형식적으로는 추상적이나 내용적으로는 표현주의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의 작품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이 큰 작품은 '형식으로는 추상이나 내용으로는 표현주의'인 추상표현주의 화가의 작품세계를 바로 보여준다.
~화
- 문학작품화 해 → 문학작품이 되게 해, 문학이 되게 해
- 조직화하는 움직임 → 조직하는 움직임, 짜는 움직임
- 무효화된 반장선거 → 무효가 된 반장선거
- 고착화시키는 → 이미 정한 사실로 되게 하는, 굳어지게 하는
~하
- 상황하에서 → 상황에서, 형편에서
- 한국문화예술이라는 주제하에 심포지엄을 개최하오니 → 한국문화예술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오니
- 관제 교육하에 노예로 길들여진 → 관제 교육에서 노예로 길들여진
~감
- 기대감으로 → 기대로, 바람으로, 희망으로
- 자신감 있게 → 자신 있게
- 책임감 → 책임
~시
- 금기시하고 → 꺼림칙하게 보고
- 등한시하게 된다 → 등한히 여기게 된다, 대수롭잖게 여기게 된다
- 적대시하다 → 적으로 보다
~상
- 외형상으로 → 겉으로, 외형으로
- 형식상으로 → 형식으로, 형식에서
재~
- 재해석 → 다시 해석
- 재조명하다 → 다시 조명하다, 다시 비춰보다
- 재발견되기 시작한 → 다시 발견되기 시작한,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미~
- 미신고된 → 신고되지 않은, 신고 안 된
- 미도착 → 도착하지 않음, 오지 않음
대~
- 대규모 → 큰 규모
- 대도시 → 큰 도시
일본말
일본말의 영향으로 우리는 불필요한 조사를 쓴다. '~의'를 남발하거나 조사를 두 개 붙여 쓰는 경우가 많다.
~에 있어서 → 에, ~에서
- 사회 발전에 있어서 기술 발달은 중요하다 → 사회 발전에 기술 발달은 중요하다
~의
- 서로의 의견이 달라 → 서로 의견이 달라
~와(과)의
- 불의와의 싸움에서 → 불의와 싸워서
- 윤이상 씨와의 협력을 → 윤이상 씨와 협력하기를
- 감독과의 대화 → 감독과 대화하기
- [정리] ~와(과)의 + 명사 → ~와(과) + 동사
~에의
- 5월에의 초대 → 5월에 초대합니다
- 연기에의 집념 → 연기에 대한 집념
- 음악에의 길은 → 음악의 길
- [정리] ~에의 + 명사 → ~에 + 동사 / ~에 대한 + 명사 / ~의 + 명사
~(으)로의
-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이냐 → 새로운 체제로 이행하느냐
- 편집 분야로의 진출을 원합니다 → 편집 분야로 진출하기를 원합니다
- [정리] ~(으)로의 + 명사 → ~로 + 동사
~에서의
- 오사카에서의 생활 → 오사카의 생활 -> 오사카 생활
- 한국에서의 삶 → 한국의 삶 -> 한국에서 사는 것이
- 글에서의 감동이란 → 글에서 감동이란, 글의 감동이란, 글에서 얻는 감동이란
- 사무실에서의 경험이다 → 사무실에서 경험한 것이다
~으로서의
- '일본 사람'으로서의 심성은 → '일본 사람'의 마음은
- 시민으로서의 자유 → 시민의 자유, 시민으로서 누릴 자유
- 셋째는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의 권리다 → 전문직으로서 갖는, 전문직이 되는, 전문적인
~(으)로부터의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감옥 속의 사색, 감옥에서 얻은 사색
- 아동기로부터의 해방 → 아동기의 해방, 아동기에서 해방되기
- 밖으로부터의 회답 → 밖에서 온 회답
~에로의
- 혁명 전에로의 일고 있다 → 혁명 전으로 돌아가는 풍조가 일고 있다
- 행복에로의 인도 → 행복으로 인도함, 행복의 길잡이
서양말
서양말의 영향으로 우리말에 없는 시제를 쓰는 경우가 더러 있다.
- ~었었다 → ~었다, ~한 바 있다
기타
- 및 → 와, 과
- 내지 → 또는, ~나
- 가끔씩, 이따금씩 → 가끔, 이따금
- 왠지, 웬지(사전에 없는 말) → 왜 그런지, 어쩐지, 웬일인지
- 신경 쓴다 → 생각한다, 마음 쓴다, 애쓴다, 걱정한다, 염려한다, 돌본다, 주의한다, 힘쓴다, 관심을 가진다
('신경 쓴다'라는 말을 지나치게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 진실된, 진실되다 → 진실한, 진실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런데도
- ~의 경우에는 → <쓰지 않기>
(제 경우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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