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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퇴리히] 세계 철학사 - 제5부 계몽주의 철학과 이마누엘 칸트 본문

책과 사유

[슈퇴리히] 세계 철학사 - 제5부 계몽주의 철학과 이마누엘 칸트

Baek Kyun Shin 2021. 12. 4. 22:25

이번 글에선 영국 경험주의, 프랑스 계몽주의, 임마누엘 칸트를 요약했다.

제1장 계몽주의 시대

I. 영국

1. 영국 경험론의 선구자

제4부에서 데카르트(프랑스), 스피노자(네덜란드), 라이프니츠(독일)로 이어지는 대륙 합리주의를 알아봤다. 이와 대비되는 철학 계통은 영국 경험주의다. 이들은 합리주의 철학자들과 다르게 이성을 거부했다. 철저히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모든 인식을 경험에서 구하기 때문에 경험주의라고 한다. 영국 경험주의 철학은 18세기에 전성기를 맞는다. 대표적인 철학자는 존 로크, 버클리, 데이비드 흄이 있다.

2. 로크 - 경험론의 시초

존 로크

존 로크는 163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자연과학, 의학, 국가론을 공부했다. 로크의 주저는 <인간 오성론>이다. 프랑스의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학술용어를 피하며 되도록 쉽게 썼다. 로크는 겸허하게 <인간 오성론>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 시론은 이해가 빠르고 시야가 넓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대가들에 비하면 나는 학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내 조야한 생각에서 짜낸 결론이자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나 적합한 내용 이상을 이 책에서 기대하지 말라고 미리 일러두는 바이다."

로크는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의심에서 철학을 시작했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방법과는 달랐다. 데카르트는 모든 걸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신의 개념은 의심하지 않았다. 유신론자였기 때문에. 로크는 신의 개념도 부정했다. 의식, 관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의 의식은 어떻게 해서 표상과 개념을 갖게 되는가?

로크는 본유관념을 부정한다. 본유관념이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관념을 말한다. 이전의 많은 철학자들은 도덕, 신, 기하학의 원리 등이 본유관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크는 본유관념은 없다고 말한다. 많은 사상가들이 본유관념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배워서 터득한 것이라고 여겼다. 경험하기 전에 의식에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즉, 경험하지 않는 한 의식은 백지상태다. 이런 점에서 로크는 라이프니츠와도 반대된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론을 말하며 완결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본유관념을 가정할 수밖에 없다. 

로크에 따르면, 관념은 경험의 산물이다. 경험은 외적 경험과 내적 경험이 있다. 외적 경험은 단순관념을 만드는 유일한 원천이다. 우리가 사과를 본다고 가정하자. 이 행위가 외적 경험이다. 외적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세계를 알아간다. 내적 경험은 외적 경험으로 얻은 인상을 자신이 내재화하는 작업이다. 

외적 경험을 하면서 우리는 사물 자체(실체)를 인식하는 게 아니다. 사물이 가진 성질을 인식할 뿐이다. 다시 사과를 본다고 해보자. 우리는 사과 자체를 인식하는 게 아니다. 빨갛고 달콤하고 동그란 성질을 인식할 뿐이다. 그러한 성질을 합쳐 사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과는 빨갛고, 달콤하고, 동그랗다. 여기서 빨갛고, 달콤한 성질은 사람마다 다르게 여긴다. 주관적인 성질이다. 어두운 곳에선 사과가 어둡게 보이고, 밝은 곳에선 빨갛게 보인다. 누구에게 사과는 달콤하지만 누구에겐 시큼하다. 이런 성질을 로크는 제2성질이라고 한다. 반면 동그란 건 객관적인 성질이다. 누가 봐도 동그랗고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이런 성질은 제1성질이다. 

3. 버클리 -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버클리

버클리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존재하는 건 지각되는 것 혹은 지각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옆방에 의자는 누군가가 보아야 존재하고 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버클리에 따르면, 태양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표상으로 존재한다. 왜 그럴까? 신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표상, 관념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버클리는 주교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았다고 믿었다. 그의 철학에서 신을 빼놓을 순 없다. 신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관념을 줘서 우리는 태양을 보고 모두 똑같은 표상을 얻는다. 

4. 데이비드 흄 - "우리에게는 인과관계를 확증할 방법이 없다."

데이비드 흄

로크는 잉글랜드, 버클리는 아일랜드 출신이며, 데이비드 흄은 스코틀랜드 태생이다. 1711년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데이비드 흄은 26살에 대표작인 <인간 본성론>을 썼다. 

실체에 대해 알아보자. 어떤 물체에 대한 인상에서 모든 성질을 제거하면 무엇이 남는가? 로크는 실체가 남는다고 말한다. 성질의 배후에 실체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실체가 우리에게 인상을 주지만, 이때 명확한 인상을 주는 건 제1성질뿐이다. 그에 반해 버클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신 이외에 남는 건 없다. 흄도 버클리와 같은 입장이다. 흄에 따르면, 성질을 없애면 실체가 우리에게 주는 인상은 없다. 그러나 흄은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실체의 표상이 어떻게 생기는가' 하는 의문이다. 실체의 표상은 외부 지각이 아니라 내부 지각에서 생겨난다. 외적 지각은 성질 외에는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적 지각을 활용해 인상을 공통의 물체로 결부시키려 한다. 흄에 의하면 사과가 실제로 존재하는진 모른다. 그러나 사과를 보고 얻은 인상은 내적 지각을 통해 '사과'가 있다고 믿게 만든다. 우리의 내적 지각이 바로 실체 개념을 생겨나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해 이 인상이 외적 지각과 관련 있다고 믿는 것이다. 마치 사과를 보고 나서 저곳에 사과가 있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외적 지각으로 실체를 추론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감정, 욕구, 인식을 통해 영혼을 추론할 수도 없다. 이런 세계관을 받아들이면 우리에게 남는 건 뭔가? 별로 많지 않다. 버클리에 따르면, 의식 밖에 있는 현실의 표상을 제거한 후에도 최소한 정신과 그 표상들은 남는다. 흄의 생각은 다르다. 흄은 정신마저 없다고 봤기 때문에, 표상만 남는다. 표상은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필연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등장했다 없어질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영원히 존재하는 자아를 부정하고 표상의 부단한 생성소멸만 인정하는 불교 사상을 떠올릴 수 있다.

표상에는 아무런 필연성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흄은 인과 법칙도 부정했다. A 당구공이 B 당구공을 쳐서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하자. 일반적으로 우리는 A가 B를 쳤기 때문에 B가 움직인다고 말한다. B가 움직이는 이유는 A가 쳤기 때문이다. B의 원인은 A라고 말한다. 인과성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흄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흄은 A가 B를 쳤다는 사실과 B가 움직인다는 사실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독립적인 표상만 관찰할 뿐이다. 독립적인 표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론할 근거가 전혀 없다. 인과관계의 필연성을 보여줄 지각이 없기 때문이다. 인과관계가 있는 건지 우연히 그렇게 된 건지 확실히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수없이 같은 관찰을 한다면 인과관계가 있다는 표상을 얻는다. 이러한 생각은 객관적 필연성이 아닌 심리적 필연성이다. 다시 말해 단순한 습관이 내 안에서 인과관계의 표상을 만든 것이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자연현상에 대한 지식 대부분은 엄밀한 의미에서 지식이 아니다. 현상 A가 현상 B에 뒤따르리라는 기대는 지금까지 늘 그래 왔다는 경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흄은 이런 생각이 지금까지의 자연과학 지식을 타파할 수 있다거나 그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철학자들 역시 사유를 멈추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인과관계의 표상을 받아들이며, 자연과학을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흄 역시 그랬다. 데이비드 흄이 이런 논증을 펼친 이유는 독단적인 철학자들이 떠벌렸던 형이상학을 겨냥하기 위해서다. 그는 건전한 상식에 반기를 들고 싶진 않았다. 위대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도 흄의 사상을 접하고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고백했다.

II. 프랑스

1. 볼테르 - 프랑스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한 계몽주의자

볼테르

볼테르는 1694년 태어났다. 21살부터 파리에서 생활했는데, 당시 기지가 넘치지만 경박한 면도 있어 풍자가로 유명했다. 풍자 때문에 볼테르는 권력과 충돌을 빚었다. 결국 영국으로 쫓겨났다. 영국에서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다. 영국은 자유로웠다. 정치에서도 자유로웠고, 어떤 말을 하든 권력과 충돌을 빚지 않았다. 당시 영국은 시민혁명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프랑스는 혁명을 치르기 전이었다. 볼테르는 영국에서 프랑스의 정치와 종교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볼테르는 혁명적 사고 때문에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동시에 박해에도 시달렸다. 무엇보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나 3만 명이 죽었고, 그 직후 7년전쟁이 일어났다. 이 사건 때문에 볼테르는 염세주의에 빠졌다. 볼테르는 리스본 대지진을 향한 심경을 담은 시를 썼다.

많은 걸 이해하는 신께서는 어떻게 판단하시는지?
그는 말이 없고, 운명의 책은 우리 앞에 덮여 있다.
인간이 아무리 많은 걸 탐구한들 제 자신을 알 수 없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끝내 알지 못한다.
우리는 진창 속에서 괴롭게 몸부림치다 죽음에 먹히는 미물이며 운명의 웃음거리일 뿐...
허영과 악의 무대인 이 세상에는
여전히 행복을 떠벌리는 병든 바보들이 떼 지어 산다.

볼테르의 염세주의는 <캉디드>에서도 드러난다. <캉디드>는 풍자 소설이다. 여기서 볼테르는 라이프니츠의 사상을 비판한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론을 거론하며, 현 세계는 모든 세계 가운데 최상의 세계라고 말했다.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이게 당신이 원하는 세계이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볼테르가 무신론자는 아니다. 그는 미신과 종교를 구분했다. 미신처럼 바뀐 종교를 비판했을 뿐이다. 근본 종교는 존중했다. 볼테르는 죽기 전에 비서에게 다음 글을 전해주었다.

"나는 신께 기도하고 벗들을 사랑하며 적들을 미워하지 않고
미신을 혐오하면서 죽음을 맞습니다. 볼테르"

2. 루소 - 도시 사회를 비판하고, 자연 상태를 낙원이라 말한 계몽주의자

장 자크 루소

생애, 저작, 기본 사상

루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고, 이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1749년 프랑스 학술원은 '예술과 학문 부흥이 도덕과 행복을 고양시켰나?'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루소는 시골에 은거해 사색을 즐기고 있었는데, 이 물음이 루소를 자극했다. 루소는 <학문예술론>이라는 책을 써 이 물음에 답했다. 루소는 말한다. 예술과 학문은 인간의 도덕과 행복을 향상하지 않았다고. 학문과 예술 때문에 우리는 순수함도 잃었다. 동물은 순진하기라도 한데, 인간에겐 그마저 없다. 동물보다 못한 삶이다. 루소에 따르면, 학문과 예술은 진보가 아닌 퇴보를 가져왔다. 역사를 살펴봐도 학문과 예술은 도덕을 타락시켰다. 반면에 학문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은 행복했다. 루소는 이렇게 외친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선조들의 계몽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행복을 가져올 유일한 자산인 소박함과 무구함과 가난으로 되돌려 주소서."

루소의 주장에 자극받은 프랑스 학술원은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이는 자연법으로 정당화되는가?'라는 문제였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집필해 이 물음에 답했다. 이 책은 인간이 불평등하게 사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책은 먼저 '자연 상태'를 설명한다. 자연 상태는 낙원이다. 홉스의 주장과 다르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고 묘사했다. 즉, 인간이 자연 상태에 놓이면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는 말이다. 루소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 놓이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것이라 믿었다. 모두가 독립해서 잘 살아간다고 보았다. 서로에게 예속되지 않고 말이다. 자연 상태에선 성찰도, 지식도, 산업도 없다. 

그럼 자연 상태는 어떻게 없어졌을까? 누군가 사유재산을 주장했을 것이다. 여기에 반대한 사람이 많았다면 인간은 계속 자연 상태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동의를 했다. 결국 사유재산이 생겨났다. 사유재산이 생기자 다른 사람을 약탈하지 않고서는 재산을 늘릴 수 없게 됐다. 여기서 주인과 노예가 생겼고, 폭력과 약탈이 시작됐다. 인간은 소유에 눈먼 존재가 됐다. 

하지만 폭력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순 없다. 그리하여 법률과 조직이 필요했다. 법률과 조직에 복종해 사회를 안정시키면서 불평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사유재산과 정부가 생겼다. 이게 바로 불평등의 씨앗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갈 방법은 없나?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그 해답을 제시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모든 곳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서로 약속하면 된다. 자연 상태의 자유와 국가 질서를 조화시키는 헌법을 만들면 된다. 개개인은 사유재산을 모두 내놓고 공동재산으로 간주하며, 사회 질서를 따르면 된다. 훗날 마르크스는 루소 사상에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를 생각했다.

루소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는 행복했으나 사회가 만들어지면서 불행해졌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교육을 강조했다. <에밀>을 써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설명했다. <에밀>은 지금까지 교육학에 영향을 미친다. 루소는 아이들이 자연 성품을 잘 유지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본다. 소극적인 교육을 뜻한다. 타고난 자연 성품을 해칠 만한 외부 요인을 막도록 교육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루소의 의의

루소는 볼테르와 천적이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은 볼테르는 루소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반인류적 성격을 갖는 당신의 새 책을 잘 받았습니다. 당신만큼 기지를 발휘해 인간을 동물로 만들려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책을 읽다 보면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싶은 욕구가 불끈 일곤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습관을 이미 60년 전에 버렸기 때문에 그 습관을 되찾기란 불가능합니다."

루소와 볼테르는 이미 겉모습에서도 차이가 났다. 볼테르는 말쑥하고 세련되게 차려 입었다. 문화에 긍지를 느끼는 지식인이었고, 사교계에서도 스스럼이 없었다. 루소는 남루한 옷차림에, 감정과 열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자식을 곧장 고아원에 맡겼고, 문명과 동떨어진 자연 상태를 동경했다. 

리스본 대지진에 대해서도 두 사상가는 의견이 달랐다. 볼테르가 리스본 대지진에 대해 자신의 심경을 담은 시를 발표하자, 루소는 그 모든 게 인간 책임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도시 대신 초원에서 살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했다.

어쨌든 루소는 계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감정도 풍부한 사람이었다. 질풍노도와 낭만주의도 루소에게 영향을 받았다. 괴테도 루소를 숭배했다. 칸트도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천선이 학자고 지식에 목마른 사람이다. 한때 나는 지식만이 인류에게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루소가 내 생각을 바로잡아 주었다. 내 멋대로 지식에 부여한 우위는 사라졌다. 이제 나는 인간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제2장 이마누엘 칸트 - 서양 철학의 정점

이마누엘 칸트

I. 생애, 인품, 저작

칸트는 서양철학사의 정점이자 전환점이다. 합리주의(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경험주의(로크, 버클리, 흄), 계몽주의(볼테르, 루소)는 칸트 사상에서 합쳐진다. 그리고 칸트 이후로 수많은 철학 분기가 생긴다. 서양철학은 칸트로 흘러들어가 칸트에서 나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칸트는 1724년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칸트는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지만, 얼마 후 철학과 자연과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이후 9년 동안 어느 귀족 가문에서 가정교사로 일했다. 1755년 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무급 강사로 일했다. 15년 후에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담당하는 교수직을 얻었다. 죽기 전까지 교수직을 유지했다.

40년 이상 교수 생활을 하며 그는 논리학과 형이상학 외에도 물리학, 지리학, 인간학, 자연신학, 도덕론을 가르쳤다. 칸트는 학생에게 인기가 많았다. 강의력이 뛰어났고, 재치도 좋았다고 한다. 별다른 기복없이 평탄하게 살았다. 그는 허약했기 때문에 스스로 세운 규칙을 엄수하며 살았다. 새벽 5시부터 연구를 했고, 아침 7시부터 9시까지는 강의를 했으며,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다시 연구를 했다. 칸트의 저작은 주로 이 시간대에 탄생했다. 매일 산책을 했으며 10시에 취침했다. 칸트가 시간을 너무 정확히 지켜서 이웃이 그를 보며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고 한다. 

II. 비판철학 이전 시기

1. 자연과학에 관한 서술

<순수이성비판>이 나오기 이전 시기를 칸트 철학 발전 과정에서 '비판철학 이전 시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는 대부분 자연과학 관련 책을 썼다. 불과 화산, 지리학, 바람, 리스본 대지진 등을 서술했다. 칸트는 뉴턴 물리학을 자연과학의 뿌리로 삼았다. 

그는 <물리적 모나드론>을 집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개념을 염두하고 쓴 책이다. <물리적 모나드론>에서 극소분자의 본질을 더 자세히 설명한다. 칸트는 극소분자의 본질을 '공간을 채우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질료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힘(에너지)만 존재한다는 말이다. 

칸트는 <서로 다른 여러 인종에 관하여>라는 책도 썼다. 이 책에서 진화 개념을 언급한다. 지구상 여러 동식물은 변화를 겪으며 다양하게 진화했다고 말한다. 

2. 비판적 문제의식의 형성

칸트가 대학에 다닐 때 지배적인 독일 철학은 라이프니츠-볼프 사상이었다. 이 사상은 독단적 합리론이다. 즉, 이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철학 체계다. 합리론에 따르면, 이성으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경험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합리론자는 형이상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형이상학은 모든 경험을 초월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리론자는 경험을 배제하고 순수 이성만으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래서 독단적이라는 것이다. 칸트도 1760년경까지는 독단적 합리론을 믿었다.

그러나 칸트는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 때문이다. 존 로크와 데이비드 흄의 영향을 받았다. 경험론에 의하면, 경험만이 우리 인식의 원천이다. 동시에 경험은 인식의 한계이기도 하다. 형이상학은 불가능한 학문이다. 왜냐하면 경험 없이 이성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는 합리론, 형이상학에 의심을 품었다. 결국 독단적 합리론과는 관계를 끊었다. 칸트는 볼프 철학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

잡다한 상상으로 공중누각을 세우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른바 사물의 질서라는 것을 지어낸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신사분들이 언젠가 꿈에서 깨어날 때까지는
엉망진창인 그들의 견해를 참아내야 할 게란 생각이 든다.

이제 칸트는 혼란스럽다. 합리론과 경험론 중 어느 편이 옳은가? 합리론과 경험론 둘 다 옳은가? 아니면 둘 다 한계가 있을까? 결정을 하려면 먼저 인간의 사유기관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형이상학의 본성을 파악해야 한다. 칸트는 형이상학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10년 넘게 연구했다. 그 결과를 <순수이성비판>에 썼다.

III. 순수이성비판

1. 특성, 구성, 기본 개념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 감히 말하거니와, 여기서 해결되지 않았거나
최소한 해결의 열쇠가 제시되지 않은 형이상학적 과제는 단 하나도 없다."

칸트는 드디어 형이상학의 본성을 파악했다. 그 기록이 <순수이성비판>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 '비판'은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비판'이란 '면밀한 검증'이라는 뜻이다. 즉, 순수이성비판은 순수 이성을 면밀하게 검증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경험이 출발점이다. 경험은 모든 인식에 앞선다. 그렇다고 모든 인식이 경험에서 생겨나지는 않는다. 경험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인식을 선험적 인식이라고 한다. 경험으로 얻은 인식을 후험적 인식이라고 한다. 선험적 인식은 경험 없이 '순수'하게 생긴 인식이다.

선험적 인식과 후험적 인식은 어떻게 구별할까? 그 기준은 필연성과 엄밀한 보편성이다. 필연성과 엄밀한 보편성이 있는 인식은 선험적이다. 다음으로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을 구별해야 한다. 판단이란 주어와 술어의 논리적 결합을 말한다. 분석이란 '분해'나 '해체'를 뜻한다. '모든 총각은 남자다.'라는 명제를 보자. 총각이라는 단어에 이미 남자라는 개념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이 명제는 정의상 참이다. 이런 판단을 분석 판단이라고 한다. '종합'이란 '결합'이나 '합성'을 뜻한다. '이 총각은 한국인이다.'라는 명제를 보자. 총각이라는 단어에 한국인이라는 개념이 포함돼 있진 않다. 그 총각을 직접 본 뒤(경험한 뒤)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있다. 이런 판단을 종합 판단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분석 판단은 경험이 필요 없지만, 종합 판단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선험적 종합 판단'이 존재할까? 종합 판단은 경험에서 비롯한 판단이라고 했다. 즉, 후험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선험적 종합 판단'이 가능한 것인가? 칸트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칸트에 따르면, 상식이나 여러 학문에 선험적 종합 판단이 있다. 첫째로 수학적 판단은 선험적 종합 판단이다. 예를 들어 '7+5=12'라는 명제를 보자. 이 명제는 선험적이다. 경험하지 않아도 명제 자체가 참이다. 그렇다면 이 명제가 분석 판단인가? 다시 말해 12라는 개념에 7과 5의 합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가? 칸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7+5=12'는 종합 판단이다. 정리하면, '7+5=12'는 선험적 종합 판단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순수이성비판>의 주된 물음에 마주했다. 

선험적 종합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칸트에 의하면, 수학, 자연과학, 형이상학은 모두 선험적 종합 판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 그러면 '선험적 종합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쪼갤 수 있다.

순수 수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순수 자연과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형이상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 문제에 답을 했다. 여기서 '순수이성'이란 선험적 인식을 지닌 이성을 말한다. '비판'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순수이성의 원천과 한계를 면밀히 검증하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순수이성비판>은 순수이성을 면밀히 검증하는 책이다.

2. 초월적 감성학

칸트가 말하는 '감성'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과 다른 말이다. 감성은 외부에서 우리에게 인상을 주게 하는 우리의 능력이다. 감성만이 우리에게 직관을 준다. 직관이란 개별 대상에 관한 직접적 표상을 뜻한다.

감각기관은 단지 감각만 제공한다. 우리 안에는 감각을 정리하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감각기관이 가져온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우리 방식으로 그 정보를 정리해서 해석한다. 우리 내부에는 그 정보를 정리해주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공간

우리가 장미를 본다고 하자. 색깔을 없애보자. 그리고 냄새도 없애보자. 모든 표상을 없애보자. 그래도 딱 하나가 남는다. 바로 공간이다. 공간은 없앨 수 없다. 그러므로 공간 표상은 선험적이다. 공간은 사물에 부착돼 있는 게 아니다. 공간 표상을 사물에 부여하는 존재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감각은 특별하게 구성돼 있어서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모든 사물을 공간 안에 둔다. 

우리는 감각기관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정보를 우리 방식으로 표상한다. 따라서 외부에 정말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장미가 정말 빨갛고 향기가 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정보를 우리 방식대로 표상한 결과일 뿐이다. 장미의 본모습, 즉 물자체는 알 수 없다. 물자체를 인지하는 건 우리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물자체가 공간 안에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다. 우리는 단지 모든 사물을 공간 안에서 생각한다. 

시간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도 선험적이다. 시간도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다. 

수학의 가능성

공간과 시간이 선험적 형식으로 우리 안에 주어졌다는 사실이 수학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수학은 공간, 시간 규정만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기하학은 공간 관계를 다룬다. 예를 들어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다. 이건 종합 판단이다. 왜냐하면 직선의 개념을 아무리 분석해도 직선의 성질을 알 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단 거리가 직선이라는 사실은 직관으로 알 수 있다. 경험으로 아는 게 아니다. 이런 이유로 기하학은 선험적 종합 판단이다. 때문에 기하학 명제들은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는다. 

산술도 비슷하다. 산술은 계산을 다룬다. 계산은 수를 세는 것이다. 수를 세는 건 시간에 기초한다. 우리는 시간 형식을 순수 형식으로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산술도 경험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오직 직관에 근거한다. 산술도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는 선험적 종합 판단이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물음, 즉 '순수 수학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답했다. 순수 수학은 가능하다. 기하학과 산술은 공간과 시간에 기초를 둔다. 공간과 시간은 선험적이다. 따라서 기하학과 산술은 선험적 종합 판단이다. 이로써 순수 수학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했다.

3. 초월적 분석학

문제

인식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인식의 두 가지 근간은 지성과 감성이다. 지성은 감성에 의존한다. 감성도 역시 지성에 의존한다. 따라서 인식 작용에서는 지성과 감성이 협력한다. 감성은 선험적 형식들로 감각을 정리한다. 지성은 감성이 제공한 정보를 더 가공한다. 즉, 지성은 감성이 제공한 정보를 개념으로 발전시키고, 이 개념들을 결합해 판단을 만든다. 여기서 결합하는 활동이 논리학의 영역이다. 칸트는 이런 의문을 갖는다. '지성은 어떻게 개념을 형성하는가?'

범주

지성이 어떻게 개념을 형성하는지 알려면 범주에 대해 알아야 한다. 칸트는 12가지 범주가 있다고 한다. 전칭판단, 특칭판단, 단칭판단, 긍정판단, 부정판단, 무한판단, 정언판단, 가언판단, 선언판단, 개연판단, 실연판단, 필연판단이다. 이 판단 형식들은 사유의 기본 형식이다. 이 형식들을 토대로 개념도 만들어진다. 이 12가지 범주에 포함되는 판단은 개념이 된다. 이렇게 우리는 개념을 형성한다. 개념 형성의 이러한 기본 형식을 칸트는 '범주'라고 한다. 범주는 경험 이전에 지성에 이미 존재한다.

순수 지성개념의 연역

모든 경험 이전에 지성에 주어진 범주들은 어떻게 경험의 대상과 결부되는가? 바꿔 말해, 이런 선험적 형식을 통해 어떻게 경험의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가? 순수 지성개념의 초월적 연역(도출)으로 가능하다. 인과관계를 예로 들어 보자. 흄은 인과 관계란 없다고 주장했다. 당구공이 또 다른 당구공을 쳤을 때, 당구공이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당구공의 상호작용을 관찰할 뿐이다. 현상에서 어떤 인과 관계를 도출할 수 없다. 하지만 칸트는 다르다. 칸트에게 인과성은 범주의 한 요소다. 우리는 경험과 범주를 결합해 개념을 만든다. 

초월적 판단력

우리는 지성이 경험의 표상을 정리할 때 범주라는 선험적 형식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지성은 경험을 열두 가지 범주 중 어떤 범주와 결합시킬지 어떻게 판단할까? 칸트에 따르면 지성에는 올바른 범주를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을 '판단력'이라고 한다. 

자연과학의 가능성

순수 자연과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순수 자연과학이 가능한 이유는 수학이 가능한 이유와 비슷하다. 자연의 합법칙적 질서는 우리 지성이 갖고 있는 규범에 따른다. 인간이 자연법칙을 만드는 셈이다. 자연 법칙을 만드는 존재는 우리 자신의 사유다. 인식이 대상에 따르는 게 아니라 대상이 인식에 따르는 것이다. 이게 바로 철학계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다.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모든 인식이 대상들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전제에서는 대상들에 대해 무엇인가를 선험적으로, 개념들에 의거해 이루려는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므로 한 번쯤 대상이 우리의 인식을 따른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하면 형이상학 과제를 잘 다룰 수 있을지 알아볼 수 있다."

지구를 중심으로 다른 천체가 돈다는 기존 생각을 코페르니쿠스는 뒤집어엎었다. 지구가 다른 천체 주변을 돈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칸트는 인식이 사물을 따르는 게 아니라 사물이 인식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IV. 윤리와 종교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으로 유명해졌다. 그래서 칸트는 인식론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칸트가 인식론만 다룬 건 아니다. 칸트는 윤리 영역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칸트가 윤리학에 관해 쓴 책이 <실천이성비판>이다.

1. 실천이성비판

인간은 인식하는 존재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인식에 관해 설명했다. 동시에 인간은 행동하는 존재다. <실천이상비판>에서는 인간의 행동과 도덕에 관해 설명했다. 

몇 가지 기본 개념

무엇이 우리의 의지를 규정하는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우리 내면의 법칙이고, 둘째는 외부의 법칙이다. 칸트에 따르면, 종래 철학자들은 인간의 의지를 외부 법칙에서 규정하려고 했다. 인간의 행동과 의지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건 타당하지 않다.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원리가 될 수 없다. 보편타당한 원리는 오직 이성에서만 얻을 수 있다.

이성은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으로 나뉜다. 다시 실천이성은 준칙과 실천법칙으로 나뉜다. 실천법칙은 가언 명령과 정언 명령으로 나뉜다.

  1. 순수이성: 직관, 개념, 원칙, 이념의 도움을 받아 인식을 추구함
  2. 실천이성: 실천 원칙의 도움을 받아 의지 규정을 추구함
    • 준칙: 개별 인간 행위에만 타당한 원칙 (주관적으로 타당함)
    • 실천법칙(=명령): 모든 인간의 의지를 규정하는 원칙 (보편타당함)
      • 가언 명령: 보편적으로 타당하지만 일정 조건에서만 타당한 명제 (조건적으로 보편타당함)
      • 정언 명령: 무조건적으로 보편타당한 명제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윤리학은 정언 명령을 기초로 정립된다.

기본 사상

정언 명령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하나의 사물이나 사람을 기준으로 보편타당한 실천 법칙을 만들 수 없다. 그런 법칙은 주관적이거나 일정한 조건에서만 타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언 명령은 질료가 아니라 형식에 근거해 찾아야 한다. '너는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법칙에서 질료를 제거하면 무엇이 남는가? 바로 보편 법칙의 단순한 형식이 남는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보편타당한 윤리학 원칙이다. 이 원칙은 '보편 법칙 수립의 형석에 네 의지를 맡겨라!'로 표현할 수 있다. 칸트는 이렇게 말한다.

"네 의지의 준칙이 동시에 보편 법칙 수립의 원리로써 타당하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쉽게 말해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이렇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 행동을 한다면 바람직할까?' 절도를 하고 싶은 욕망이 들 때, 모든 사람이 절도를 한다면 어떨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대답이 '아니오'이면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 칸트는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정언 명령을 요구한 게 아니다. 칸트는 단지 우리의 실천이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탐구한 것이다. 실천이성의 보편적 원리가 바로 정언적 명령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뿐이다. 

더 쉽게 말하면 양심에 따른 행동이 '선한 행위'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선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스스로 합리화를 해도 진짜 양심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그 행위는 선하지 않은 행위다. 칸트는 의무를 찬미하며 이렇게 말했다.

"의무, 너 위대하고 숭고한 이름이여!"

칸트가 고양된 감정을 숨기지 않은 몇 안 되는 문장이다. 또 이렇게 말한다.

"자주 그리고 오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늘 새롭고
더욱 큰 경탄과 외경의 마음을 갖게 하는 게 두 가지 있으니,
그것은 내 위의 별빛 찬란한 하늘과 내 안의 도덕률이다."

2. 순전한 이성 한계 안에서의 종교

칸트에 따르면 지식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지식은 공간과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사물들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은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다. 지식은 신을 증명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칸트가 신을 믿지 않은 건 아니다. 지식 관점에서는 신을 부정하지만 도덕과 행위 관점에서는 신을 믿는다. 실천이성이 신을 믿도록 우리를 유인한다. 선을 실천해서 행복을 누리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실천이성은 이론이성이 제시하지 못하는 신 존재의 확실성을 제시한다. 도덕 행위는 자유, 불멸성, 신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종교는 도덕과 일맥상통한다. 

V. 판단력 비판

1. 문제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사유와 인식에 대해 설명한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도덕과 행위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 비판서인 <판단력비판>에서는 감정과 상상력, 미학에 대해 설명한다.

'판단력'이란 무엇일까? 칸트가 정의한 판단력이란 특수한 명제를 보편적인 명제 아래 포함시키는 능력이다. 판단력은 다시 규정적 판단력과 반성적 판단력으로 나뉜다. 규정적 판단력은 특수한 명제를 (이미 존재하는) 보편적 명제 아래 포함시키는 능력이다. 이미 존재하는 보편적 명제란 규칙, 원리, 법칙 등이 있다. 특수한 명제를 이미 존재하는 보편 규칙 안으로 구분시키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어떤 특수한 명제가 있는데 그에 맞는 보편적 명제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보편적 명제를 찾아야 한다. 특수 명제가 주어지고 그에 적합한 보편 명제도 찾아야 하는 경우에는 반성적 판단력이 필요하다. 

이렇듯 우리는 어떤 대상을 우리 내면의 어떤 기준과 연결시킨다. 여기서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우리 감정과 관련해서 보편적이고 필연적인(선험적인) 기준이 존재하는가?' 우리 감정은 쾌와 불쾌로 나뉜다. 욕구가 충족되면 쾌를 느끼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쾌를 느낀다. 욕구는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합목적적이면 띄면 쾌를 느끼고, 합목적적이지 않으면 불쾌를 느낀다. 그런데 이런 쾌감이란 주관적이라서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감정판단에는 보편적 기준이 없다.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감정판단에 보편적 기준이 있지 않을까? 바로 미학의 영역에서는 가능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다른 사람도 좋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취향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어떤 사물이 아름답다고 할 때는 다른 사람도 그 사물을 똑같이 아름답다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덕판단을 내릴 때만큼 단호하진 않더라도 말이다. <판단력 비판> 제1부에서 이런 문제를 논한다. 

2. 세 가지 비판에 관한 맺음말

1) <순수이성비판>은 순수한 인식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책이다. 인식 발생에서 이성(선험적인 것)이 차지하는 지분을 살펴본다. 인식은 하위 능력인 감성(감성적 지각 능력)과 상위 능력인 지성(사유하는 능력)으로 나뉜다. 인식 발생에서 이성이 차지하는 지분은 다음과 같다.

  1. 직관의 선험적 형식인 공간과 시간: 이 형식은 감각을 시공간적으로 총괄하고 통일시킨다.
  2. 지성의 형식, 즉 범주와 각 범주에 상응하는 판단 형식: 이 형식은 직관을 개념적으로 정리하고, 다시 개념을 판단으로 결합시킨다.
  3. 이성의 규제 원리(이념): 이념은 인식 기능은 하지 않지만 좀 더 높은 차원으로 지성을 총괄한다.

2) <실천이성비판>은 윤리 행위를 탐구하는 책이다. 윤리 행위에서 이성(선험적인 것)이 차지하는 지분을 살펴본다. 우리의 의지(욕구 능력)에는 두 가지 단계가 있다. 하위 능력인 감성적 욕구와 상위 능력인 실천이성이 있다. 윤리 행위(의지)에서 이성이 차지하는 지분은 다음과 같다.

  1. 정언 명령: 보편 법칙의 순수한 형식으로서 윤리 행위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원리
  2. 의지의 자유와 영혼의 불멸성 그리고 신적, 윤리적 세계 질서가 존재한다는 확신: 신적, 윤리적 세계 질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이성에게 부여된 과제다.

3) <판단력 비판>은 목적(합목적성) 관점에서 자연현상에 대한 판단력을 탐구하는 책이다. 그런 판단력에서 이성(선험적인 것)이 차지하는 지분을 살펴본다. 판단력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위 능력인 감성적 감정과 상위 능력인 반성적 판단력이 있다. <판단력 비판>은 이러한 판정에서 이성이 차지하는 지분으로서 합목적성의 선험적 원리를 제시한다.

세 비판서에서 칸트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세계는 합법칙적이다. 이 법칙은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우리가 세계에 법칙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법칙을 발견하려면 세계가 아니라 인간 정신을 탐구해야 한다!

VI. 칸트에 대한 비판과 평가

칸트는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에서 신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한다. <순수이성비판>에서 그는 신을 부정한다. 이성은 결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면에 <실천이성비판>에서 그는 신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세계가 질서정연해지려면 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칸트를 '앞문으로 신을 내쫓고, 뒷문으로 신을 받아들인 철학자'라고 비판한다. 칸트에 대한 두 번째 비판은 정치 측면과 관련 있다. 칸트는 이론적으로 혁명을 거부했다. 하지만 프랑스혁명에는 열렬히 환영했다. 

또한, 칸트는 지나치게 합리론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경험을 등한시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칸트는 경험을 인정했다. 이 비판이 의미하는 바는, 칸트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구성하며 인간의 비합리적인(감성적인) 힘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특히 칸트는 윤리학에서 모든 감정을 몰아냈다. 의무감만 지나치게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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