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법륜] 지금 여기 깨어있기 본문
철학으로써 불교 사상을 좋아한다. 종교로써는 믿지 않는다. 실증되지 않는 건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종교로써는 믿지 않는 것 같다. 기독교든 불교든 힌두교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와 관련해서는 창세기 밖에 읽어보지 못했고, 힌두교와 관련해선 우파니샤드만 조금 읽었을 뿐이다. 그래서 두 교리의 내용을 전혀 모른다고 봐야겠지만.. ^^ 어쨌든 불교 사상이 조금 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다.
이번에 <금강경>을 두 번 읽어보고, 법륜 스님의 <지금 여기 깨어있기>라는 책을 한 번 읽어봤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그대로 기록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인도 가서 인도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면 파키스탄을 나쁘다고 하고, 파키스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도가 나쁘다고 합니다. 팔레스타인 이야기 들어보면 이스라엘이 나쁜 놈이고, 이스라엘 이야기를 들으면 팔레스타인이 나쁜 놈이에요. 이 세상에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어요. 그런 사람들이 한 하늘 밑에 다 같이 사는 거예요.
어떤 문제든지 하나하나 풀어나가려면 결국 상대의 입장을 인정하고 상대편에 서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옳다, '네가 옳다' 이렇게 시비하는 것이 색(色)입니다. 옳다 그르다 하지만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아요. 이쪽저쪽 이야기를 다 들어보면 그냥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른 것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空)이에요.
어떤 산을 이 동네에서는 동산이라 하고 저 동네에서는 서산이라고 합니다. 이 동네와 저 동네를 떠나서 바라보면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에요. 이게 공입니다. 그러니 색은 색이 아니라 곧 공이에요. 공이지만 이 동네 가면 동산이라고 하고 저 동네 가면 서산이라 하듯이 또 색이라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입니다. 이것을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고 합니다. 『금강경』의 표현을 따르면 ‘상이 상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공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이를 잘못해석해서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라는 상을 가진다면 동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서산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과 싸우게 된다. 이 사람은 동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서산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질 높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에는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이다. 상에 집착해서 괴롭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상이 없는 사람은 누가 동산이라 하든 서산이라 하든 다툼이 없다. 동산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서쪽에 사는구나 알아차리고, 서산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동쪽에 사는구나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부부가 같이 살면서 남편이 나쁜 인간이다, 아내가 나쁜 인간이다 하지만 사실은 누구도 나쁜 인간이 아닙니다.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인간 자체는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공입니다. 그런데 내가 나쁜 인간이라고 볼 수도 있고 좋은 인간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거예요. 나쁜 인간이라고 보면 내가 괴롭고 좋은 인간이라고 보면 내가 행복하지요. 다시 말해 색이라 하지만 사실은 색이라 할 게 없고, 색이라 할 것이 없지만 또 한 생각 일으키면 색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좋은 마음을 일으키는 게 나한테 이롭지요.
일체유심조
옳다 그르다 하지만 사실은 옳다 그르다 할 것이 없고, 모두가 마음 따라 일어납니다. 이것이 곧 일체유심조입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어떤 것은 행운, 좋은 사건이라 하고 어떤 것은 불행, 나쁜 사건이라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좋은 사건 나쁜 사건이라 할 것이 없습니다. 사건은 다만 사건일 뿐입니다.
사실은 복과 재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같은 사건이 복이 되기도 하고 재앙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좋은 일도 없고 나쁜 일도 없습니다. 좋은 일이라고 했던 게 내일 가면 나쁜 일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일이라 했던 게 내일 가면 좋은 일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의 일일 뿐이에요. 그것을 어떻게 자기의 삶에 유용하도록 만들어내느냐는 오직 본인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의 일일 뿐이다. 일어날 사건이 일어난 것일 뿐이다. 일어나선 안 될 일도,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없다.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 억울한 마음을 갖습니다. 자기 딴에는 다 잘한다고 했는데 왜 자기더러 잘못했다고 하느냐고 억울해하고 분해하고 피해의식을 갖습니다. 자기 딴에는 잘한다고 했는데 원치 않는 결과가 발생하고 다른 사람의 비난을 듣게 되니 세상이 야속하고 남편이 야속하고 부모가 야속하고 자식이 야속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름대로 잘한다고 한 행동의 결과가 대개는 원치 않는 쪽으로 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괴롭지요. 그러나 지금 이렇게 살게 된 것은 모두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나름대로 수년간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어요. 누울 때는 눕는 게 더 나아보여서 누웠고, 않을 때는 앉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앉았고, 먹을 때는 먹는 게 더 나아서 먹었고, 말 안 들을 때는 안 듣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안 들었고, 이렇게 다 그 순간순간은 자기 나름대로 잘한다고 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그래서 다른 누가 만든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만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말할 때 거짓말하고 싶어서 거짓말하진 않습니다. 그 순간은 거짓말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상을 버리면...
아상은 자기에게 사로잡히는 겁니다. 이 아상을 버리려면 최소한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요?
'지금 내가 일으킨 생각은 대부분 나의 주관적 생각이다. 그러니 적어도 고집은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상에 사로잡히지 않겠다고 하면 '나는 아상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라는 상에 사로잡혀서 공연히 세상을 더 시끄럽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내가 언제나 아상에 사로잡히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항상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거기서 깨어나지는 못해도 최소한 고집하지는 말아야 해요. 그러면 눈은 못 뜨더라도 세상이 어둡다고 불 밝히라며 고함치지는 않게 됩니다.
아상을 버리는 일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일인데, 그 간단한 일을 실천하기가 참 어렵지 않은가.
우리 삶 속에는 늘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수도 없이 있습니다.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없음을 알아차리기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할 때, 이걸 때리면 저게 튀어나오고 저걸 때리면 이게 튀어나오고 빨리 때리면 더 빨리 튀어나옵니다. ‘이것만 해결이 되면 이제 소원이 없겠다.’ 이렇게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취직만 되면, 장가만 가면, 애만 낳으면, 애 대학만 가면 인생이 좋아질 것 같지만 갈수록 고민과 불평은 더 많아집니다. 인생이 정리되는 맛이 있기는커녕 갈수록 걱정이 많아집니다. 정년퇴직하면 삶이 한가해질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처럼 인생은 살면 살수록 바빠지고 살면 살수록 복잡해집니다. 자유로워지기는커녕 걸리는 것이 점점 더 많아져요.
그래서 이 세상을 고쳐서 내가 편안해지겠다고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그리 될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이생뿐 아니라 내생(來生)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늘 그런 것이니까요.
세상을 복잡하다고 말할 것이 없습니다. 있을 만한 것들이 있을 자리에 있고, 생길 만하니까 생겼습니다. 그러니 일이 없어서 한가한 게 아니라 일이 많은 가운데 한가하고, 인연을 다 끊어버려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인연이 있는 가운데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또한 세상을 살다보면 내 기대나 의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이렇게 내가 원하는 삶과 실제 일어나는 그 사이에서 많은 갈등이 불거진다. 내 기대를 향한 고정관념과 고집을 놓아버릴 때 온전히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머리가 희어지면 희어지는 대로, 주름살이 생기면 주름살이 생기는 대로, 병이 나면 병이 나는 대로, 부도가 나면 부도가 나는 대로, 사람이 죽으면 죽는 대로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일이 일어나며 그것은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아님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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