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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유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1~2부

Baek Kyun Shin 2023. 7. 6. 00:54

철학은 도대체 왜 하는 거고, 어디에 도움 되는 걸까? 가만 보면 하등 쓸모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지적 허영심만 가득한 학문 같기도 하다. 배부르고 등 따신 사람들이 할 일 없어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게 실제로 철학자 상당수가 배부르고 등 따신 사람들이었다(몇몇 고대 철학자나 스피노자 정도는 예외지만).

하여간 철학자들은 무슨 까닭으로 철학을 했을까? 너무 다양한 철학자가 있는 현대는 논외로 하고, 근대까지만 생각해 보자. 내가 존재하는 이유도 궁금했을 테고(존재론), 내가 인식하는 게 사실인지 여부도 진심으로 궁금했을 것이다(인식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고 싶었을 게다(도덕론). 가령, 내가 사과를 보고 '빨갛다'고 생각한다고 하자. 사과가 '실제로' 빨간 걸까? 아니면 사과는 노란색인데 '내'가 그저 빨갛다고 인식하는 걸까? 내 뇌나 눈이 단지 사과를 빨갛다고 인식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사과는 실제로 노란색인데 말이다. 그러면 내가 인식한 게 진리 내지는 사실이라고 확답할 수 있을까? 확답하지 못한다.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이 서로 다른 한, '주체가 인식한 대상'과 '실제 대상'이 일치하는지 여부를 알 순 없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존재'나 '인식' 따위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당장 먹고사는 일보다 철학이 더 중요한 사람이 있던 것이다. 진리가 없다면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도 없어지니까. 그런 궁금증은 더 커지거나 새로운 궁금증을 낳았다. 궁금증이 발전해 사회학, 수학, 천문학, 생물학, 물리학,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으로 뻗어나갔다. 결국 철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가 됐다.

근대까지만 해도 철학에는 여러 학문이 포함됐다. 그런데 이젠 모든 학문이 고유한 학문으로 발전해서, 더는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학문만 철학으로 남았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에겐 철학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인다. 오늘날 철학을 한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특이한 사람, 곤조 있는 사람 취급받는 까닭도 그러할 테다. 

철학의 의미나 중요성, 역사를 차치하고 나에겐 철학이 그냥 재밌다. 철학책을 즐겨 읽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됐다. 서점을 가도 자연스럽게 철학 코너를 서성인다. 문학, 과학 서적을 읽다가도 다시 철학책을 집어 들곤 한다. 왜 그럴까. 우선, 나는 존재나 인식과 관련한 진리 따위가 궁금하지 않다. 진리가 무언지 알게 뭔가. 내가 먹고사는 데 전혀 상관없는데 말이다. 철학의 중요성이나 의미도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다. 철학이 중요하든 말든 관심 없으니까. 그런데도 철학 서적들은 나를 매료시킨다. 우선 지적 향연이 주는 즐거움이 가장 큰 것 같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주장한 독창적인 생각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역사적 천재들의 생각을 이해해 가는 맛이 있다. 더불어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는 즐거움도 크다.

대학에서 철학과가 없어지는 추세다. 돈을 벌어다 주는 학문도 아닐뿐더러 실생활에 도움도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안타깝기보다 오히려 잘된 것 같기도 하다. 제대로 철학하려는 사람, 속칭 찐덕후만으로 정예화가 될 수도 있으니까.

주저리 쓸 얘기가 더 있지만 여기서 끊고, 이젠 책 얘기로..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한국 학자가 쓴 가장 유명한 근대철학 개론서다. 1994년에 초판이 나와 30년가량, 철학깨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책이다. (마지막 부분인 구조주의 파트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이 책을 세 번 봤다. 오디오북으로 2번, 종이책으로 1번. 오디오북을 녹음한 김효영 성우 덕분에 오디오북을 듣는 동안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왔다. 성우가 그냥 글만 읽는 게 아니라 내용을 이해하고 읽는다는 느낌이라서 그렇다. 저자가 강의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여간 김효영 성우 최고! 내용이 좋아서 글로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종이책도 샀다. 

저자 이진경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우선 이진경은 필명이란다. 본명은 박태호. 연예인처럼 본명 같은 필명을 쓴다. 게다가 철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자다. 전공도 사회학이다. 사회학자가 스테디셀러 철학책을 썼다는 점이 놀랍다. 본업이 아닌 분야에서 큰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철학 개론서를 여럿 읽어봤지만,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일반적인 철학 개론서와는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철학 개론서는 시대별 철학자들의 철학사상을 소개하고 설명한다. 그런데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시대마다 철학자별 사상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 논리적이고 매끄럽게 설명한다. 이전 철학자가 마주한 문제를 다음 철학자는 어떻게 해결하려 했는지를 연결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식' 관점에서 흥미롭게 설명한다. '인식의 관점'은 이 책을 아우르는 관점이다. 다음 일화를 보자. 잘 알려진 일화다. 책 제목에 굴뚝청소부가 들어간 까닭이기도 하다.

굴뚝청소부 두 사람이 청소를 마치고 내려왔다. 한 사람의 얼굴은 더러웠고, 다른 사람의 얼굴은 깨끗했다. 이 가운데 누가 세수를 할까?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다. 상대방 얼굴을 보고서, 자기도 더러우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이 서로 다르면 인식된 게 사실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진리란 불가능한 것일까? 진리에 도달하려던 근대철학자는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이 난국을 빠져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탈출구를 찾아낸다. 근대철학의 다양한 사상은 이런 식으로 나타났다.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참고해서, 근대철학의 경계들을 자세히 정리해 본다.

 서론

1. 철학의 경계

철학은 의심에서 출발한다. 칸트는 '철학사는 전장'이라고 말했다. 즉, 다른 사람이 주장한 철학에 반하는 철학을 하면서 철학사가 진행된다는 뜻이다. 치고받는 투쟁으로 철학자들이 얻는 점은 무엇일까? 그때까지 지배적이던 철학 안에서 사고하지 못했던 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간 지배적인 사상 때문에 보지 못한 걸 새로 찾아내는 작업이 철학인 셈이다. 철학사에서 독자적인 사상가로 남으려면 남들이 주장한 철학과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곧, 철학자는 기존 사상과 다른 생각을 해야만 철학사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서 보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기존과는 다른 사상이면서 보편성을 인정받야만 철학사에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결국 철학은 앞서 있던 사상을 넘어서는 일이다. 세 가지 넘어섬이 있다.

첫째, 당시의 지배적인 사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여기서 '넘어섬'이 발전이나 진화를 뜻하는 건 아니다. 기존 사상에 가져려 안 보이던 걸 밝혀내는 게 반드시 발전일 필요는 없으니까. 가령 헤겔이 칸트 철학을 넘어섰다고 해서, 헤겔 사상이 칸트 사상보다 반드시 발전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철학에서는 과학에서와 달리 아직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가 살아있을 수 있다. 

둘째, 하나의 흐름(패러다임)을 넘어서는 것이다. 가령, 대륙의 이성주의, 영국의 경험주의 같은 하나의 철학적 흐름이 있다. 새로운 철학사상이 이와 같은 하나의 흐름을 넘어선다. 토마스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의 말을 빌리면 일종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말한다. 

셋째, 하나의 시대를 지배하는 특정한 사고 방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성주의와 경험주의는 근대 사상이라고 부른다. 철학에서 넘어선다고 할 때, 가장 큰 범위에서는 이러한 시대 사상을 넘어서는 걸 뜻한다. 데카르트가 중세 철학을 넘어선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차원의 넘어서기가 세 가지 넘어섬 가운데 가장 어렵다(그 어려운 걸 해낸 철학자가 데카르트다).

'철학사 연구'란 철학의 역사안에 그어진 경계선을 찾아내고, 경계선마다 새겨진 다양한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여러 영역을 살펴보고, 나아가 인간의 사고를 극한으로 밀어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철학'과 '철학사'는 다르다. 철학을 전공하고 철학 교수가 됐더라고 철학자라고 할 순 없다고 생각한다. (보편적 의미에서의) 철학자는 경계선을 긋는사람이다(여기서 보편적 의미라고 말한 까닭은 개인 차원에서도 충분히 철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편성을 인정받지 못한 철학은 일반 철학이 아니라고 우선 해두자). 철학 교수는 철학사 연구를 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철학자가 그은 경계선의 의미를 해석하는 사람이다. 물론 철학 교수이면서 철학자일 수도 있다. 철학자 상당수는 철학 교수였지만, 철학 교수 대부분은 철학자가 아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철학 교수 대부분이 보편성을 인정받는 경계선을 긋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반드시 철학사에 경계선을 그어야만 철학인 건 아니라는 점은 안다. 그래서 내 생각은 보편성 관점에서의 일반 철학에 국한되는 생각이다.

2. 경계 읽기

그렇다면 경계선을 찾아내고, 경계선의 의미를 읽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문제는 아주 어렵다. 철학자가 스스로 경계선을 긋지 않으며, 철학책 어디에서도 그 경계선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경계선 같은 건 애시당초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원뿔을 아래에서 보면 원이지만, 옆에서 보면 삼각형이다. 마찬가지로 데카르트를 로크와 비교할 때, 아우구스티누스와 비교할 때, 또는 칸트와 비교할 때 그어지는 경계선이 모두 다르다.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1. 데카르트, 근대 철학의 출발점

중세 너머의 철학

근대란 무엇인가? 역사적 근대 전체를 말하기엔 범위가 넓으니까, 철학의 근대로 정의의 범위를 좁혀보자. 철학에서 근대란 무엇인가? 근대란 중세와 경계선이 지어진 지점이다. 그러므로 중세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중세는 신과 성직자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에서 철학은 신학의 시녀였다. 중세의 시대적 흐름에 반하는 인물이 있었는데, 지오다노 브루노다. 그는 일찍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였고, 범신론을 받아들였다. 달리 말해 브루노는 신학의 시녀이길 거부했다. 결국 브루노는 화형을 당했다. 중세 때는 신학 안에서만 철학이 허용되던 시기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를 근본에서부터 억압하고 제한하는 게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죽음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르고 지식이 쌓이면서 성서를 이탈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간의 삶에서 문제가 되는 모든 주제들은 불로 막든 협박으로 막든 어쩔 수 없이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중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중세가 단순히 정체된 암흑의 시대라는 것은 단면적인 의견이다. 

이런 상황에서 데카르트는 행운아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결정적인 중세의 틈새가 벌어진 시기에, 자신이 차지한 위치에서, 자신이 지닌 탁월한 사고의 힘을 보여줬기 때문에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가 데카르트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으므로, 근대 철학의 출발점은 데카르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데카르트에 관해 말하려면 근대 철학의 제1원리인 '코기토(Cogito)'에 대해 말해야 한다. 코기토 에르고숨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데카르트가 볼 때 이 명제는 확실한 사실이다. 이 명제는 '나'라고 하는 주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를 신의 피조물로 본 중세의 관점과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명제다. 그래서 코기토 명제가 근대 철학을 알리는 출발점이 됐다. 

중세 철학에서 중요한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는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 사상을 합쳐서 철학을 개진했다. 플라톤 철학의 이데아 자리에 신을 두고 철학을 얘기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지식이 쌓이면서 더 이상 플라톤 철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점이 많아졌다. 결국 후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받아들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철학을 전개했다. 이를 스콜라 철학이라고 부른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중요한 건 신과 영혼이었다. '이해하려면 믿어라'라고 말한다. 스콜라 철학에서는 '믿기 위해서는 이해하라'로 바뀐다. 

데카르트는 철학의 출발점을 더 없이 자명하고 확실한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명한 기초는 어떠한 의심 속에서도 견뎌내야 한다. 그런 까닭으로 데카르트는 스스로 회의론자가 된다. 확실함에 이르기 위해 의심과 회의를 한다. 이것을 방법적 회의라고 부른다. 데카르트는 모든 걸 의심한다. 그런데 모든 걸 의심해도, 의심하는 내가 없다면 의심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확실한 지식에 이르는 능력이 있다. 본유 관념이라고 한다. 본유 관념은 이성 안에 내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본유 관념이 자연을 이해하는 확실한 지식의 원천이다. 과학의 기초를 제공해준다. '나'라는 존재는 신이 없어도 본유 관념 때문에 확실하게 생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데카르트에게 '나'는 신에게서 독립된 존재이자 주체다. 신으로부터 독립됐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의 철학은 중세를 벗어나는 사상이다. 주체란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사고의 기초이자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의 기초다. 주체 없는 근대란 있을 수 없다. 중세에서 벗어난 근대를 말할 때는 이 '주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근대 철학을 주체 철학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주체가 등장하니 자연스럽게 객체도 등장했다. 밥을 먹는 내가 있으려면 먹히는 밥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나온 문제가 있다. 주체가 바라보는 객체가 실제 객체냐는 말이다. 즉, 내가 강아지를 볼 때, 내가 인식하는 강아지와 실제 강아지가 서로 일치하는가의 문제다. 이는 인식론으로 발전한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올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면 진리에 이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체가 진리에 이를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주체는 신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지식을 얻을 능력을 얻었다. 그런데 신에게서 벗어나자마자 인식론 때문에 진리에 다다를 능력이 없어질 상황에 내던져졌다. 기어코 독립할 능력도 없으면서 신에게서 도망친 꼴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나 이후 근대 철학에게는 주체가 진리에 이를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주체를 독립시키자마자 진리라는 문제가 따라다니게 됐다. 요약하면 주체는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고, 진리는 그 목푯점이다. 이 두 개의 범주는 근대 철학 전체의 기초와 방향을 특징짓는 가장 근본적인 범주다. 근대 철학의 경계는 이런식으로 그어지기 시작했다. 

진리에 이르는 길

데카르트는 이성과 육체(실체) 가운데 이성을 더 중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철학을 관념론이라고 부른다. 

데카르트에게 이성의 본유 관념은 완벽하다. 이성은 당연히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컴퍼스로 원을 그린다고 해보자. 아무리 완벽해보이는 원을 그려도 실제 원이 아니다. 원은 선으로 둘러쌓인 도형인데, 선은 두께가 없기 때문이다. 두께가 없는 선을 그리면 원이 없어진다. 따라서 현실에서 그리는 원은 모두 불완전한 원이다. 실제 원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완전한 개념은 불완전한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완전한 것에 도달하는 본유 관념은 신이 주었다고 말한다. 완벽한 신이 준 본유 관념은 완전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데카르트는 인간이 완전한 것을 인식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성의 완전성을 주장하려고 신을 끌어들였다. 데카르트가 갖고 있던 신학 요소는 시대적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세 세계관과 근대 세계관의 공존 속에서 우위를 점하는 게 근대 세계관이라는 점이다. 

자연을 지배하려면 자연을 알아야 하듯, 우리 자신의 육체를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육체를 알아야 한다. 더불어 감정과 정념을 규제하고 조절하려면 감정과 정념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정념론>이라는 책을 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신에게서 독립할 자격을 얻으려면 신이 없어도 인간(주체)이 올바로 살아가야 하는데 답답하게도 인간의 육체나 감성은 제멋대로고 이성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성이 아무리 옳다하더라도 육체가 제멋대로라면 인간은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그래서 그에게는 어떻게 육체를 이성적으로 통제할까하는 도덕론이 중요했다. 다시 말해, 완결한 이성이 완결하지 않은 육체를 통제하는 게 데카르트의 도덕론이다.

그런데 이성과 육체는 별개의 독립된 존재다. 그렇다면 이성이 육체를 어떻게 지배할까? 이성과 육체가 만나는 지점을 데카르트는 송과선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정신과 육체가 만나거나 교감하며, 이로써 양자가 일치하리라고 주장한다. 데카르트는 송과선이 뇌 한복판에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하나 더 남았다. 그렇다면 송과선은 어떤 실체에 속하는가 하는 점이다. 송과선은 정신인가 아니면 육체인가. 아무튼 데카르트는 송과선을 발명하면서 이 정념론에 기초에 잠정적인 도덕론을 제시한다. 

근대 철학의 딜레마

앞서 얘기한 문제로 돌아가보자. '주체가 인식한 대상'과 '인식된 대상'이 서로 같은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진리는 주체가 해결해주지도, 객체가 해결해주지도 못한다. 인식 주체와 대상만 있다면 인식하는 대상이 서로 일치하는지 알지 못한다. 얼굴이 까매진 굴뚝청소부와 깨끗한 굴뚝청소부가 있을 때, 씻으러 가는 사람은 깨끗한 굴뚝청소부다. 상대방의 얼굴이 까맣기 때문에 자신도 그럴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 즉 주체와 대상만으로는 내 얼굴이 어떨 거라는 판단과 실제 내 얼굴의 상태가 일치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얼굴이 더러울 거라는 판단이 실제와는 정반대일 수도 있다. 

주체가 인식하는 대상과 실제 대상이 일치한다는 점을 제3자 혹은 신이 증명해주지 않는다면 진리에 도달할 수가 없다. 주체가 신에게서 벗어남에 따라 생겨난 근대 철학의 딜레마이다. 이 딜레마는 근대에서 생긴 딜레마다. 중세에는 없었다. 중세에서는 모든 진리를 신이 설명해줬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신에게서 독립하면서 세 가지 문제가 생겼다. 독립된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새로 대답해야 했다. 존재론이라는 새로운 철학 분과가 생겨난 까닭이다. 또한 주체와 객체의 일치 여부가 불확실해졌다. 주체가 실체를 인식할 수 있는지, 인간의 인식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대답해야만 했다. 그래서 인식론이 생겼다.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했다. 도덕론이 생긴 것이다. 존재, 인식, 도덕 모두 중세에는 신이 증명해주었다. 하지만 신에게서 벗어난 후에는 새롭게 생각해야 했다. 

이로써 데카르트 이후로 존재론, 인식론, 도덕론이라는 철학의 세 가지 분과가 생겼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론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신으로부터 독립해도 좋은지 그런 능력이 인간에게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체가 신에게서 독립하려면, 그럴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 곧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했다. 만약 그런 능력이 없다면 신에게서 독립하는 게 무모한 짓이 된다. 따라서 근대 철학에서는 인식론이 가장 발전했다. 

주체와 대상의 일치를 판단하는 존재는 주체나 대상이 아니라 제3자인 절대적 재판관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데카르트는 결국 다시 신을 끌어들였다. 나중에 보게 될 버클리나 헤겔도 다시 신을 끌어들였다. 

근대 철학의 딜레마가 한 가지 더 있다. 유아론이라는 딜레마다. 예를 들어 100명의 사람이 모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생각한다고 해보자. 게다가 100명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고 하자. 그럴 때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알지 못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누구 주장이 맞는지 누가 보증하냐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딜레마 때문에 이후 근대 철학에서는 다양한 주장이 제기됐다. 근대 철학은 이 딜레마 주위를 운행하는 기차였던 셈이다. 

2. 스피노자, 근대 너머의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근대 철학을 통틀어서 가장 독특한 철학을 펼쳤다. 그는 데카르트 철학에서 시작해 데카르트 철학을 비판하며 철학을 전개했다. 근대 철학자 대부분이 데카르트를 비판했지만, 데카르트와 동시대를 산 스피노자가 그 정도가 가장 심했다. 

데카르트를 향한 스피노자의 비판 세 가지를 먼저 살펴보자. 첫 번째 비판은 존재론과 관련있다. 데카르트에게 주체는 능동적인 존재다. 반면 객체나 자연은 수동적인 존재다. 객체는 주체의 처분을 기다리는 존재였다. 이런 점에서 데카르트 철학을 반자연주의라고 할 수도 있다.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와 경계를 지은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스피노자에게 자연은 단지 수동적이고 지배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스피노자에게 자연은 수동적이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이고 활기있는 존재였다. 두 번째 비판은 주체와 분리된 대상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있다. 여기서 두 개의 실체(주체와 객체)가 있다고 주장하는 데카르트를 비판하고, 스피노자는 오직 하나의 실체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개념이나 지식은 실제와는 완전히 다르므로 양자가 일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한 마디로 개라는 개념은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자가 일치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양자는 단일한 실체의 속성이어서 애초부터 일치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한 어떤 판단이 진리인지 아닌지 알려면 진리를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는 역설까지 지적한다. 진리가 진리와 허위의 기준이라는 말이다. 세 번째는 윤리학과 관련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을 통해 육체를 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데카르트의 윤리학이다. 이런 점에서는 데카르트의 윤리학은 계몽주의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스피노자는 이에 반대했다. 감정이나 욕망, 정념을 이성으로 억제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옳지도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스피노자는 인간이 자연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임을 분명히 했다. 스피노자의 자연주의는 존재론에서부터 일관된다. 

스피노자의 자연주의

존재론 측면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은 실체와 양태라는 두 개념으로 요약된다. 실체는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존재를 말하고, 양태는 때에 따라 변하는 존재를 말한다. 스피노자는 자연 혹은 우주를 변화하는 존재로 생각했다. 우주 전체를 포괄하며 그것의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가 실체다. 이 실체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아서 다른 것을 원인으로 갖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의 원인이다. 이걸 스피노자는 신이라고 부른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실체, 즉 신은 자연 밖에서 자연을 만들지 않는다. 자연 안에 있는 모든 변화의 원인이 된다. 다시 말해, 자연은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연 안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을 뜻한다. 이걸 범신론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 자연은 변화하는 각각의 개체들로 이루어진다. 변화하는 개체 각각을 양태라고 한다. 이런 뜻에서 자연은 양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체는 양태로 표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실체는 양태로써 존재한다는 말이다. 양태는 실체의 변용이라는 말이다. 나무든, 물이든, 사람이든, 꽃이든 어떠한 모습(양태)을 띄지 않고는 실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는 양태로써 존재한다. 실체의 변용된 모습으로 말이다. 양태 모두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바로 실체인 것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에게 실체는 오직 하나다. 나무도 양태, 꽃도 양태, 나도 양태, 저 사람도 양태다. 그런데 양태는 실체, 즉 신이 취한 특정한 모습이다. 다시 말해 모든 양태가 바로 신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양태는 신이라는 존귀한 존재로써 평등하다. 

스피노자는 '자신을 스스로 산출하는 자연'이라는 뜻에서 능산적 자연이라는 표현을 쓴다.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자연이라는 뜻이다. 동시에 자연은 하나하나의 양태의 집합이다. 양태는 실체가 만든 수동적인 존재다. 이런 뜻에서 그는 자연을 산출되는 자연, 혹은 소산적 자연이라고 말한다. 결국 산출하는 자연과 산출되는 자연이란 자연이 갖는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측면과, 수동적인 측면을 모두 뜻한다. 자연은 능동적인 힘과 수동적인 힘의 결합체라는 말이다. 두 가지 상반된 힘을 통해 스피노자는 자연을 생성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즉, 자연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힘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자연은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존재라는 데카르트의 반자연주의에 맞서는 주장이다. 

진리와 공리

스피노자에게는 데카르트가 부딪혔던 정신과 육체가 일치하는가의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아론의 딜레마는 어떤가? 스피노자는 <에티카> 2부에서 '진리가 진리의 기준이다'라고 말한다. 즉, 빛이 빛과 어둠의 기준이 되듯이 말이다. 진리 자체가 진리의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이로써 어떤 진리가 진리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존 레논은 위대한 예술가다'라는 주장을 하려면 위대한 예술가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진리가 대상을 인식해서 얻는 거라면, 곧 진리가 이미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진리를 보증하는 문제가 당장 발생한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보석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게 진짜 보석인지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석을 검증할 감정사를 불러오면 된다. 그런데 그 감정사가 진짜 감정사인지는 어떻게 보증하나? 감정사를 검증한 보증인을 데려오면 된다. 그럼 그 보증인은 또 어떻게 보증하는가? 그 보증인의 보증인을 데려오면 된다. 그런데 그 보증인의 보증인 또한 어떻게 보증할 건가? 이렇게 무한 굴레에 빠지게 된다. 데카르트는 이 때문에 부득이하게 신을 끌어들인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를 비판한 것이다. 아무리 확실한 보증인이 있더라고 무엇이 보석인지는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진리를 누가 보증해주더라고 무엇이 진리인지는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진리란 처음부터 있어야 한다. 판단의 기준이 처음부터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그게 정말 진리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자신이 옳고 그름의 기준이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선 진리가 공리와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실제로 유용한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적합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스피노자의 진리 개념은 실제 유용한 결과를 이끌어 내면서도, 공리처럼 형식적인 출발점을 도입한다. 다시 말해 적합성이 있으면서도 수학적 추론을 근거로 삼는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의 진리는 데카르트의 형식적인 개념과도 다르고 영국의 경험주의자들의 진리와도 다른 고유한 개념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근대가 시작되자마자 근대를 벗어났다고도 볼 수 있다. 

무의식의 윤리학

스피노자에게 윤리학은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영역이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어떻게 작동해서 어떻게 대상을 파악하고, 어떻게 오류를 범하고, 어떻게 감정을 갖고, 어떻게 욕망에 사로잡히는지, 나아가 그 욕망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연구하려고 한다. 

스피노자는 모든 감정을 기쁨과 슬픔으로 나눈다. 기쁨은 하나의 양태(나)가 다른 양태(타자, 다른 사물)와 만나 하나의 양태에서 능력이 늘어나는 걸 말한다. 슬픔은 반대의 경우다. 어떠한 양태도 자신의 능력을 늘리고 싶어한다. 윤리란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이다. 좋은 삶이란 나쁜 만남을 최소화하고 좋은 만남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좋음, 나쁨이 스피노자 윤리학의 기본 범주이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간단하다. 기쁨을 가져오는 양태간의 만남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를 기쁨의 윤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양태는 존재를 지속하는 한 능력이 커지길 원한다. 그게 기쁨의 감흥을 산출해주는 것이니 기쁨의 윤리학은 양태의 본성에 부합한다. 

스피노자의 탈근대적 이탈

스피노자는 데카르트 철학에서 사상을 출발했지만, 데카르트에서 크게 벗어났다. 데카르트의 반자연주의에 스피노자는 명확하게 반대 깃발을 내세웠다. 아울러, 주체를 사고와 판단의 중심으로 여겼던 주체 철학에서도 벗어났다. 이로써 주체와 객체의 일치의 문제가 스피노자에게는 없었다. 나아가 인식이 진리를 제공하리라는 근대 철학적 신념과 달리 차라리 진리가 인식에 앞서 존재해야 한다는 역설을 지적함으로써 근대적 인식론에서 완전히 이탈했다. 근대적 사고와는 전혀 다른 길이다. 이런 면에서 스피노자는 근대 철학이 나은 근대 철학 최초의 근대 철학 이탈자요 반항자인 셈이다. 스피노자는 근대 최초의 탈근대인이었다. 


제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 근대 철학의 동요와 위기

1. 유명론과 경험주의

실재론과 유명론

경험주의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인식 주체의 경험이 지식과 진리의 근거라는 체계다. 경험주의 철학자로는 베이컨, 로크, 버클리, 흄이 있다. 저자 이진경은 경험주의를 유명론과 근대 철학의 긴장 관계 속에서 다뤄보았다. 

유명론은 명목론이라고도 한다. 유명론을 한 마디로 말하면 '오직 이름일 뿐'이라는 뜻이다. 무엇이 이름 뿐인가? 바로 보편적인 건 오직 이름 뿐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강의장 안에 사람 10명이 있다고 하자. 그 가운데 철수도 사람이고 영희도 사람이다. 이럴 때 '인간'이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강의장 안에 인간이 있는가? 강의장 안에는 철수라는 개인과 영희라는 개인만 있을 뿐, 인간이라는 존재는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철수라는 개인, 영희라는 개인, 길동이라는 개인을 모두 싸잡아 명명한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보편적인 건 오직 이름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을 유명론자라고 한다. 반대로 영희라는 개인, 길동이라는 개인이 모두 하나하나의 인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 즉 보편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실재론자라고 한다. 

보편 논쟁

보편적인 건 단지 이름일 뿐인가 아니면 실재하는가 하는 문제를 보편 논쟁이라고 한다. 이름일 뿐이라는 주장이 유명론, 실재한다는 주장이 실재론이다. 대표적인 실재론자로는 플라톤이 있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보편 개념이 실재한다고 주장했다. 중세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아래 있었다. 특히 중반기까지는 절대적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데아 자리에 신의 개념을 대신 갖다놓았다. 그러니 중세철학의 전반기를 지배한 것은 플라톤 철학이었다. 다시 말해 실재론이 지배적이었다. 대부분의 신학자는 실재론자였는데, 그들에 따르면 개별자는 신이 만든다. 죽으면 다시 신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보편이 앞선다(보편이 먼저다)'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유명론자는 매우 소수였다. 교회 입장에서 유명론을 받아들이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유명론에 따르면 자칫 신은 단지 이름일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유명론자의 주장은 '보편이 뒤따른다(보편이 나중이다)'이다. 

아퀴나스와 오컴

보편 논쟁은 유명론자들을 억압하면서 끝났다. 실재론자가 이긴 건데, 당시로썬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논쟁에서 제기된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다만 억압되고 은폐됐을 뿐이다. 중요한 건 논쟁이나 문제가 억압한다고 없어지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논쟁은 이후에 다시 나타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용적 실재론자'이라고 불린다. 반면 오컴은 명확한 유명론자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현실과 자연 속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아퀴나스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주장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부동의 동자'다. 모든 피조물, 예컨대 우리의 부모가 있고, 부모의 부모가 있고, 또 그 위에 부모가 있고...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누가 남겠냐느 것이다. 아퀴나스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누군가에 의해 태어나고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그것을 만들어 낸 존재 역시 또 다른 존재가 만든다.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다른 것을 만들어낸 원인이지만 스스로는 다른 것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 최초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이라는 뜻이다. 

신이 인간의 이성을 만들었으므로, 이성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는 신으로 귀착되기 때문에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성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신의 진리'가 중요해진다. '신의 진리'를 이성이 인식하게 돕는 게 당시 철학자의 과업이 된다. 그리하여 "믿기 위해서는 이해하라!"라는 슬로건이 나왔다. 스콜라 철학에서 중요한 슬로건이다. 이로써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임무를 공식적으로 부여받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아퀴나스는 이성적 진리와 신적인 진리를 통일하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스콜라철학의 기초를 이뤘다. 

반대로 윌리엄 오컴은 당시 유명론자로 가장 유명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보편 개념은 기호다. 기호에 상응하는 실재는 없다. 사물에 앞서가는 보편자는 신의 정신 속에도 없다." 가령, 추상적인 '언제', '어디'와 같은 개념은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구체적인 장소나 시간만이 실재한다고 한다. 1, 2, 3이라는 숫자는 실재하지만 '수'라는 것은 없다고 한다. 결국 보편 개념은 이름일 뿐이지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오컴은 이런 논리가 기독교 교리에 까지 적용되면 신학 자체가 붕괴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신학이 붕괴되는 걸 피하려고 했는지, 자신에게 가해질 교회의 탄압을 피하려고 했는지, 오컴은 이런 주장을 오직 이성이 작용하는 영역에만 한정했다. 신학에서는 오컴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써 오컴은 신학을 이성에서 떼어내고, 철학과 신학을 분리했다. 철학을 통해 신의 섭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스콜라 철학도 해체시킨 것이다. 오컴은 더 나아가 신학과 이성이 별개라면 교회는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당시 교황은 정치에 깊이 관여했으니, 당연히 오컴은 투옥되었다. 탈출에 성공해서 당시 교황과 다투던 루드비히 왕 밑에서 은신한다. 오컴은 이때 루드비히 왕에게 "당신이 나를 칼로써 지켜주면 나는 당신을 펜으로써 지켜주겠다."고 하여, 또 하나의 유명한 말을 남겼다. 

유명론과 경험주의

지금까지 중세철학을 알아봤다. 근대철학, 특히 경험주의를 다루는데 이토록 장황하게 중세철학을 이야기하는 게 뜬금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유명론과 경험주의의 관계를 본다면 이런 장황함은 용납될 것이다. 

유명론은 중세 전체를 지배한 실재론에 반하는 주장이다. 이데아와 유사한 보편자가 세계를 만든다는 사고에 대한 반대다. 한 마디로 관념론을 향한 비판이다. 이러한 반대는 주로 개별 사물이나 현실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제시됐다. 예를 들어, 이데아나 관념, 보편자에다가 사물을 꿰어 맞추는 게 아니라, 실제 사물들을 올바로 관찰하고 인식해서 정확한 지식이 만들어지리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명론이 어떤 관념이나 보편원리로써 전체를 다 설명하려는 경향에 대해 해체적이고 비판적인 효과를 갖는다는 건 분명하다. 유명론이 점점 목소리를 키워간다는 사실은 경험을 향한 지적인 개방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생각이 '경험주의'로 이어진 것이다. 

2. 로크 : 유명론과 근대 철학

로크의 입지점

로크는 경험주의의 흐름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로크의 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지반이 있다. 하나는 데카르트가 새롭게 연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이다. 신에게서 독립한 주체, 그래서 존재, 인식, 가치의 새로운 중심이 된 근대적 주체가 로크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지반이 됐다. 다른 하나는 갈릴레이, 뉴턴 등이 이룩한 과학혁명이다. 이제 과학은 진리에 이르는 가장 커다란 길, 어쩌면 유일한 길로 간주된다. 따라서 로크는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 허구적인 원리나 개념을 없애는 '청소부' 역할을 자임한다. 이런 관점에 선 로크에게는 경험과 관찰만이 과학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런 사고 방식이 '경험주의'다. 영국 철학에서 주류를 이루는 입장이다. 

데카르트는 본유관념에 따라 연역적으로 생긴 지식이 진리에 이르게 하리라 생각했다. 반면 로크는 경험이나 관찰을 하지 않은 지식, 개념은 과학적 지식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로크는 (보편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유명론적 전통을 따르면서도 (신학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인식 주체를 바탕으로 철학을 전개한) 데카르트의 주체 개념도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신학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중세 유명론과는 전혀 다른 주장이고, 경험이나 관찰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의 주장과도 다른 사상이다. 한마디로 유명론과 데카르트의 근대적 문제설정을 결합해 로크는 중세적 유명론과도, 데카르트적 근대철학과도 다른 독자적인 철학을 만들었다. 

'본유관념' 없는 진리를 위하여

로크는 본유관념 없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단순관념과 복합관념을 나누는데, 단순관념은 누런 금속을 보고 '금'이라고 판단하거나 '노랗다'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복합관념은 단순관념을 결합해 만드는 관념이다. '금'이라는 단순관념과 '산'이라는 단순관념을 결합해 '황금산'이라는 관념을 만드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단순관념은 사물로부터 만들어지데, 복합관념은 지성이 단순관념을 결합해 만든다. 이런 식으로 로크는 본유관념이 없어도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 말이다. 

로크의 딜레마

그런데 로크는 곧 딜레마에 빠진다. 첫째는 실체와 관련있고, 둘째는 진리와 관련있다.

먼저 실체에 관한 것. 로크는 우리가 경험으로 대상에 관한 지식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경험을 통해 '나'를 자극하는 요인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물을 보고 '빨갛다'라고 지각했다면, 나로 하여금 빨갛다고 생각케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게 없다면 나는 착각하거나 꿈을 꾼 것이다. 

로크는 '빨갛다', '노랗다' 같은 단순관념을 야기하는 것을 '물질적 실체'라고 한다. 이 물질적 실체(예를 들면 태양)가 우리(주체)의 감각을 자극해서 단순관념('빨갛다', '노랗다')이 생기도록 한다. 물론 물질적 실체는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든 불변인 채 있다. 다른 한편 태양을 보면 언제나 태양으로 인식해야 한다. 같은 걸 보고서 언제는 태양이라고 했다가, 언제는 찐빵이라고 하면 올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 이처럼 인식의 불변적인 주체를 로크는 '정신적 실체'라고 부른다. 

결국 로크는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개의 실체를 받아들인다. 물질과 정신이 없이는 어떠한 올바른 지식도, 진리도, 과학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 비판에서 시작한 로크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데카르트의 주장으로 돌아왔다. '실체' 같은 보편 개념은 오직 이름일 뿐이라는 유명론에서 시작해, '실체'가 없어서는 안 된다며 두 개의 실체(물체와 정신)가 있어야 한다는 '반유명론적인' 주장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둘째로 진리에 관한 것. 이는 제1성질에 관한 것이다. 태양의 개수를 세어보자. 1개다. 태양의 개수를 1개가 아니라고 경험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똑같은 강의장 안의 온도가 누구에겐 따뜻한데, 누구에겐 썰렁하다. 태양의 숫자를 경험하는 것이나 강의장의 온도를 경험하는 것이나 '경험'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왜 달라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로크는 말한다. 체감 온도는 그걸 느끼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지만, 태양의 숫자는 주체와 상관없는 성질이기 때문이라고. 이처럼 주체에 따라 다르게 경험하는 성질을 '제2성질',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느끼는 성질을 '제1성질'이라고 한다. 제2성질은 경험 안에 있지만, 제1성질은 물체 자체에 속하는 성질이다. 진리가 가능한 이유는 제1성질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식과 대상은 일치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지식인 진리가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제1성질은 어떻게 해서 진리를 가져다 줄까? 로크에 따르면, 그건 사물에 속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곧, 사물이 제1성질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1성질은 사물이 갖는 타고난 성질이다. 로크는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을 유명론의 입장에서 비판하며 주체에서 본유관념을 떼어낸다. 그러나 진리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그는 그 성질을 사물에게 돌려준다. 제1성질이라는 본유성질로 말이다. 이렇게 로크는 데카르트를 비판하다가 결국 다시 데카르트의 주장으로 되돌아왔다.

다시 말해, 로크는 유명론을 따르면서도 반유명론으로 돌아왔고,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을 비판하면서도 본유성질로 돌아왔다.

유명론의 근대화

로크에 이르러 유명론이 근대화되었다. 인식주체가 신에게서 독립해 있고, '주체가 진리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개별 사실들에 대한 관찰과 경험이 중요해졌다. 이런 점에서 유명론은 '인식론'적 성격을 보인다. 따라서 로크의 철학은 '유명론의 근대화'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경험주의란 바로 근대화된 유명론이라고 할 수 있다.

로크는 과학을 기초로 유명론을 통해 경험주의 철학을 마련하려 했다. 그런데 로크 역시 (인식)주체에서 출발해 진리에 도달하려고 하는 근대적 문제설정 안에 있었고, 그러한 근대적 문제설정 안에서 과학이란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임을 보증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로크는 물질과 정신이란 실체를 다시 끌어들여야 했다. 진리가 가능함을 보증하기 위해 '제1성질'도 만들어야 했다. 이런 실체(물질과 정신)와 제1성질(본유성질)이 유명론의 사고방식과 정면에서 충돌한다. 

이는 결국 근대적 문제설정(특히 과학주의)와 유명론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로크로선 어느 것 하나를 취할 수 없게 만드는 딜레마였다. 유명론이 근대적 문제설정 속에 포섭되면서 생기는, '근대화된 유명론'의 내적 긴장이요, 모순이다. 

버클리 : 유명론에서 관념론으로

버클리는 로크를 비판하며 자신의 사상을 전개했다. 

두 가지를 비판했는데, 첫째는 실체의 개념을 향한 비판이다. 로크는 모든 복합관념은 오성(정신)이 결합한 것이고 명목적인 것일 뿐이라고 하면서, '실체'는 예외라고 했다. 곧, 물질과 정신이라는 실체는 '예외적으로' 실재한다고 여겼다. 버클리는 이런 예외 조항을 인정할 수 없었다. 둘째는 '제1성질'에 대한 비판이다. 로크는 대상의 성질이란 모두 인식주체가 경험한 것이요 주관적이라고 하면서, 오직 제1성질만은 예외로 둔다. 그러나 버클리는 제1성질만 유독 물질 그 자체에 속하는 객관적 성질이라고 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 경험되지 않는 성질이란 알 수 없는 성질이요, 알 수 없는 성질이 있다는 건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는 말처럼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이다.

이런 비판으로 버클리가 도달한 곳은 근대철학의 밑바닥이다. 물질적 실체를 가정하면 이것이 지식과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방지하려면 '물질적 실체', 즉, '물질'이라는 개념을 없애 버려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버클리는 이렇게 말한다.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각된 것 뿐이다." 이런 과감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버클리가 주교였기 때문이다. 물질을 부정하면 과학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로크는 예외를 만들었는데, 버클리는 과학을 향한 미련이 없기 때문에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다른 문제가 생긴다. '아마존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풀'은 아무도 지각하지 않는데 그럼 존재하지 않는 걸까? 버클리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이 지각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다오." 주교다운 대답이다. 그렇다면 유니콘도, 용도, 이데아라는 보편자도 하느님이 있는데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아주 기묘한 방식으로 유명론은 실재론으로 바뀌고 마는 것이다. 

다른 한편 버클리는 물질이라는 실체를 없앴지만, 정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정신이 없다면 어떻게 경험하겠는가? 따라서 버클리에게는 정신이라는 실체만 존재하며, 이 실체가 지각하는 것만이 존재하게 된다. 결국 '정신'이라는 실체 앞에서 버클리는 유명론에 유보조항을 달아둔 셈이다. 자기가 비판한 로크처럼 말이다. 

요약하면 버클리의 주장은 유명론에서 관념론으로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버클리에 와서 유명론은 정반대의 성격을 띠게 됐다. 버클리는 로크가 남겨둔 '물질'이라는 실체를 제거했다. 사실상 개체의 실재성을 없앤 것이다. 유명론이 보편 개념의 실재성을 부정하지만 개체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것임을 떠올리면 버클리의 작업은 양면성을 갖는다. 보편 개념의 실재성을 부정한다는 측면에선 유명론의 연속선상에 있지만, 개체의 실재성을 제거한다는 측면에서는 유명론의 부정이기도 하다. 

어쨌든 버클리는 '물질'이란 개념을 없애 '정신'과 '정신이 지각한 것'만을 세상에 남겨두었다. 유명론은 관념론으로 바뀌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근대적 문제설정 안에서 유명론의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만 하는 불가피한 행로였는지도 모른다.

3. 흄 : 근대 철학의 극한

과학주의에서 회의주의로

흄은 근대철학을 극한까지 몰고 간 사람이다. 흄의 철학은 흔히 '회의주의'라고 불린다. 흄의 출발점은 로크와 비슷하다. 그도 엄격한 과학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흄에 따르면, 자연과학의 성과를 빌려 인간학을 구성해야 한다. 여기서 경험과 관찰이 가장 중요함은 물론이다. 

흄은 여러 가지 관계를 구분한 다음 그 가운데 과학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확실한 무언가를 찾아나선다. 마치 데카르트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에는 입곱 가지 관계가 있다. 이 가운데 '유사관계', '양적 관계', '질적 관계', '반대 관계'는 확실하지만, '동일관계', '시간/공간상의 관계', '인과관계'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가령 쌍둥이가 닮았다는 사실(유사관계)는 알 수 있지만 그들이 동일하다는 사실(동일관계)는 확인할 수 없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인관관계다. 인과관계는 두 현상이 연속해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 앞의 것을 원인, 뒤의 것을 결과라고 한다. 흄은 인관관계가 '시간이나 공간상 붙어 있는 두 현상의 관계를 향한 습관적인 판단'이라고 한다. 가령 나무를 비비면 불이 붙는다는 건 자주 보니까 생긴 습관이라는 말이다. 언제나 반드시 불이 붙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서, 불이 붙으리라 판단하는 습관이 생겼을 뿐이라는 것이다. 

확실한 네 가지 관계는 과학에 합당하지만, 인과관계를 비롯한 나머지 세 가지 관계는 과학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법칙은 인관관계에 의해 표시된다. 인과성 없이는 어떠한 법칙도 없으며, 법칙 없이는 어떠한 과학도 생각할 수 없다. 결국 흄은 과학의 불가능성, 진리의 불가능성을 입증하고 만다. 이로써 근대철학의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회의주의란 이러한 도달 불가능성을 표현하는 말인 셈이다. 

주체의 해체, 주체철학의 해체

버클리는 지각된 것을 관념, 지각하는 것을 정신이라고 한다. 어떤 물건을 '사과'로 인식한다면, '사과'가 관념이고 그걸 지각한 것이 정신이다.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며 지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각하는 정신만은 지각되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한다. 정신만은 실재한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흄은 이런 예외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흄은 사물을 보고 생긴 건 인상이고, 그 인상의 기억이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게 관념이라고 한다. 인상과 관념의 차이는 사고로 눈을 잃은 장님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선천적 장님은 사과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한다. 사과에 대한 인상도, 관념도 없으니까. 반면 사고로 눈을 잃은 장님은 사과에 대한 인상을 갖진 못해도 관념은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인상은 직접적인 것이고 관념은 한 번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흄에 따르면 정신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만 관념과 인상의 다발만이 있을 뿐이다. '정신'이나 '주체'라는 개념도 해체한 것이다. 데카르트는 물론, 로크나 버클리도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던 근대철학의 출발점인 '주체'를 말이다. 흄은 근대적 문제설정 속에서 유명론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라는 범주까지 해체하게 됐다.

근대철학의 전복

흄은 근대철학의 목표인 '진리' 혹은 '과학'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나아가 '주체' 자체가 결코 자명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근대철학에 위기가 찾아왔다. 

흄의 주장은 모든 걸 의심하는, 급기야 '생각하는 나'(정신, 주체)까지도 의심하는 극단적인 회의주의였다. 이런 점에서 흄의 회의주의는 '한계선에 선 근대철학'의 다른 이름이다. 흄은 "인간의 동일성, 나라는 주체의 동일성에 대한 견해를 엄밀히 검토한 결과, 나는 완전히 미궁에 빠져서 어떻게 그 견해들을 수정해야 할지도 어떻게 그것들을 일관되게 만들 수 있을지 솔직히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책 '오성론'을 끝낸다. 

탈출도, 귀환도 아닌...

흄에게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참(진리)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참으로 믿는 관념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흄은 결국 "믿음이고 추론이고 다 거부하고 싶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진리를 찾아야 하는데 결국 '진리는 없다'로 판단된 셈이고, 진리를 찾고 싶은데 진리가 아닌 것만 있다는 이야기밖에 못했으니 말이다. 결국 그는 근대의 외부로 나가자마자 다시 내부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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