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세네카] 인생론 본문
세네카(기원전 4년 ~ 65년)는 고대 로마 제국의 정치인이자 스토아 학파 철학자다. 네로 황제의 스승이기도 했다. 세네카의 잠언집인 <인생론>은 에픽테토스의 <엥케리디온>과 핵심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둘 다 스토아 학파 철학자여서 삶의 지향점이 같았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철학자를 꼽으라면 아우렐리우스, 세네카, 키케로, 에픽테토스 등이 있다. 아우렐리우스, 세네카, 에픽테토스의 에세이는 모두 읽었으니 키케로만 남았다. 사실 키케로의 책을 먼저 읽고 싶었는데, 책을 찾던 중 세네카의 <인생론>이 우연히 눈이 띄어서 골랐다. 좋은 책은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넘쳐나니 종종 이렇게 계획에 없던 책들을 읽곤 한다.
<인생론>의 큰 줄기는 '스토아 사상'이라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노자의 <도덕경>도 다시 읽었는데, 스토아 사상과 노자의 도가 사상이 제법 닮았다고 생각한다. 스토아 학파처럼 살아가려면 노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아는 걸 그대로 행하긴 적잖이 어렵다. 그래도 이런 책들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걸' 돌이켜 생각해낼 수 있다. 내일이면 다시 잊고 쳇바퀴를 돌리겠지만, 계속해서 '잊고 있던 걸' 상기하다보면 표상을 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표상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세네카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힘을 뽐내고 재능을 내세우려고 피 말리게 애쓰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끝없는 쾌락으로 핏기를 잃어가는가! 제일 낮은 곳에 있는 사람부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라. 어떤 사람은 변호인의 도움을 구하며, 다른 사람은 그 도움에 응한다. 어떤 사람은 피고의 자리에 서고, 다른 사람은 그를 변호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죄를 판결하는 자리에 있다. 스스로를 위해 사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들 다른 사람을 위해 에너지를 쓴다.
삶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을 붙잡고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이제 삶의 끝자락에 와 계시는군요. 나이가 당신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삶을 돌이켜보시면 어떨까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채권자에게 빼앗겼는지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애인에게, 그리고 부부싸움을 하느라 빼앗겼습니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도시를 거닐며 보냈나요? 게다가 본인 잘못으로 생긴 질병 때문에 헛되이 쓴 시간까지 더하면 생각보다 훨씬 적은 시간이 남을 겁니다. 스스로를 위해 할애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보십시오. 언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언제 걱정이 없었고, 또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살면서 어떤 걸 이뤘는지,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의 인생을 빼앗았고, 아무 근거 없는 고통과 어리석은 쾌락, 탐욕스러운 욕망과 사회 활동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이제 당신에게 남은 게 얼마나 적은지를 헤아려보세요. 그러면 아직 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삶을 끝내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우리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것을 하나둘 빼앗아가기 바쁘다. 자기 유산을 노리는 자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꾀병을 부리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빼앗겨야 했을까? 또 진실한 벗도 아니면서 남들에게 잘난 척하려고 당신을 찾아오느라 바빴던 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빼앗겼는가? 제발 우리에게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보라. 그러면 앞으로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토록 바라던 높은 지위에 오르고도 곧바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입버릇처럼 "언제쯤 올해가 다 가려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큰 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얻은 게 엄청난 행운임을 알면서도 "언제쯤 이 대회가 끝날까?"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누구나 바쁘게 삶을 살지만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를 향한 막연한 기대감을 품기 마련이다.
다른 일 때문에 분주한 사람은 가련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련한 자들은 남의 수면 시간에 맞추어 잠을 자고, 다른 사람의 걸음걸이에 맞춰 걷고, 가장 자유로워야 할 사랑과 증오에서도 남의 말에 따르는 자들이다. 만약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고 싶다면, 내 인생에서 오롯이 내 것인 부분이 얼마나 적은지 살펴보면 될 일이다.
법관의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고 해서, 토론장에서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고 해서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자기 인생을 바쳐 그 자리를 얻었으니 말이다. 잠깐 자기 이름을 널리 알리려면 앞으로 남은 평생을 희생해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는 오랜 노력 끝에 꿈꾸던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도 전에 나가떨어지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적잖은 수모를 겪으며 최고의 권력을 얻고 나면 그럴듯한 묘비명 하나 남기자고 지금껏 생고생한 건가 싶어 비참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질병이나 재앙은 예고 없이 닥치는 법이다. 나 또한 자연이 가져온 격동기 속에 살아왔다. 이웃에서 자주 들리던 죽은 자를 기리는 노랫소리,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넋을 기리던 장례 행렬들을 잊을 수 없다. 가끔은 지축이 흔들리는 소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토론장에서, 원로 회의장에서, 혹은 사적인 모임에서 나와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이 하룻밤 새 죽음의 밤을 건넜고, 우정을 나누며 악수했던 손들과 찰나의 작별을 해야 했다. 언제나 주변에서 맴돌던 위험들이 자신에게 벌어진다고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 혹은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다는 점이 믿기는가?"라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왜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부유함 뒤에는 언제나 궁핍과 빈곤, 구걸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관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고 값비싼 구두를 신은 자들의 뒤에는 불결함이라는 치욕스러운 낙인과 수천 가지의 얼룩, 그리고 극도의 경멸감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 어떤 왕국이 파멸과 전복, 그리고 독재와 사형집행인을 맞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이 모든 것들은 서로 멀리 있지 않다. 왕좌에 앉느냐, 아니면 왕좌 아래 엎드리느냐는 간발의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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