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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유

[사이먼 싱]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Baek Kyun Shin 2019. 4. 4. 23:28

이 책은 피타고라스부터 와일즈까지 정수론의 역사를 훑는 책이다. 특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와일즈에 초점을 두고 있다. 수학과 수학자의 냉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흥미 있는 책이다. 평소에 문학과 철학을 접하다가 가끔 이런 류의 과학서적을 접하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내 뿌리가 공학도임을 반증하는 것 같다.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 대부분은 불길 속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중략... 피타고라스는 '수학이란 모든 학문 분야 중에서 가장 철저하게 개인적 주관을 배척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중략.. 수학이론의 타당성 여부는 개인적인 사견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논리의 구성에 달려 있다. 이것이야말로 피타고라스가 인류의 문화에 기여한 가장 값진 교훈이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학회 밖으로 학회 내 연구내용이 유출되지 못하게 했다. 이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수학적 연구 결과를 철저히 자신의 학회 내에서만 공유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당시에는 지식 보유정도가 부와 명예의 척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외부와 지식을 공유한다면 자신만의 희소적 부와 명예를 뺏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외부와 지식을 공유했다면 비참한 최후는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수학은 지금보다 더 발전했을까. 단순히 더 오래 살아서 더 많은 연구를 했을 수 있겠다는 측면만 고려하면 안 될 것같다.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한 자극제가 외부와 단절된 수학 연구였다면 얘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페르마

페르마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정확히 몰랐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워낙 유명한 것이라 많이 들어봤지만 '페르마'라는 수학자 자체는 생소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이 되었다는 사실 조차 몰랐다.

페르마는 아마추어 수학자이다. 명목만 아마추어 수학자이지 실력은 여느 프로 수학자보다 뛰어났다. 혹자는 페르마가 허영이 많은 인물이라고 한다. 증명을 자신만 알아볼 수 있도록 대충 기록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증명한 정리를 다른 사람에게 증명해보라고 골탕먹이는 일도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과 교류 없이 숨어서 혼자서만 수학을 했다. 하지만 정말 허영이 있었다면 오히려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 증명을 더 깔끔히 기록했을 것이며, 세상에 자신을 알리려 노력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프로냐 아마추어냐가 아니라 관심 분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인 것 같다. 아마추어 수학자로서 수학을 즐기며 살아간 모습을 보니 내 상황과도 비슷하다. 아마추어 개발자로서 개발 자체를 즐기며 살아가는 미래의 모습 말이다.

 

앤드루 와일즈

350년 간 수많은 수학자를 괴롭혀온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최종적으로 증명한 수학자이다. 그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증명을 처음 공개한 뒤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이렇게 표현했다.

처음 7년 동안 저는 고독한 전쟁을 즐겼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난공불락이라 해도 그것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수학 문제였으니까요.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꿈이었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문제에서 잠시도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세상에 공개하고 보니 어떤 상실감 같은 것이 느껴지더군요. 정말 묘한 감정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의 증명에 탄성을 지르고, 저의 연구에 의해 전체 수학계의 앞길에 결정된다는 것은 정말 보람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저는 탐구욕을 잃어버렸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온 세상에 공개하고 나니 꿈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게다가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니까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저를 괴롭히더군요. 공개된 상태에서 연구를 하는 것은 확실히 제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즐겁지가 않았어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대신해 줄 만한 문제는 없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저의 꿈이었고, 이제 저는 그 문제를 풀었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문제를 풀어야겠지요. 개중에는 너무나 어려워서 풀고 난 뒤에 커다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문제도 있겠지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비교할 수 는 없을 겁니다. 저는 어린 시절의 꿈을 어른이 되어서도 추구할 수 있는 아주 귀한 특권을 누린 행운아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뒤에 어떤 문제에 도전을 시작한다면 그 의미는 더욱 클 것이고 성취감도 그만큼 깊을 것입니다. 무언가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에는 일종의 상실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는 8년 동안 한 가지 문제만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단 한시도 그 문제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생각만으로 보낸 시간치고는 꽤 긴 시간이었지요. 저의 여행은 이제 끝났습니다. 마음이 아주 편안하군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금메달을 딴 뒤 허무함을 느끼는 것과 같은 심정일 것이다. 삶의 목표는 성취했지만 동력은 잃은 것이다. 여행을 하고 있는 순간보다 여행을 가기 전이 더 설레는 것과 같다고 볼 수 도 있겠다. 이렇게 본다면 결과보다는 과정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아닐까.

2018.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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