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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스텀프] 서양 철학사 - 제1부 고대 그리스 철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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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스텀프] 서양 철학사 - 제1부 고대 그리스 철학

Baek Kyun Shin 2020. 6. 30. 19:53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무슨 효용이 있는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나 역시 그랬다. 특히 나는 철학사 공부의 의미가 궁금했다. 플라톤의 철학과 니체의 철학은 완전히 상반된다. 그런 상황에서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는 것과 니체 철학을 공부하는 게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서로 상반되는 철학 중 어떤 것이 진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는 것과 니체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니체 철학이 진리라면 플라톤 철학은 왜 공부하는 것일까? 지난 2,500년간 수많은 철학자가 있었고 각 철학자마다 고유의 철학이 있었다. 철학사를 공부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오랜 고민 끝에 답을 구하지 못해 모교의 철학 교수님께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모교는 공대지만 교양 수업을 위해 철학 교수님이 계셨다.) 하지만 교수님께선 조심스러운 답변을 주셨다. 철학을 철학하는 행위를 지양해야 한다는 본인의 옛 지도교수님 말씀이 떠오른다며, 본인 역시 메타 철학을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나는 그 뒤로도 개별 철학 간의 관계와 철학사 공부의 의미가 여전히 의문이었다.

교수님께 메일을 보낸 것은 5년 전 일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의문은 완전히 풀렸다. 철학을 탐구하는 행위는 천문학을 탐구하는 행위와 그 목적 및 동기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천문학은 지구 밖, 즉 우주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우주에 블랙홀이 어떻게 생겼는지, 블랙홀은 어떤 작용을 하는지, 블랙홀에선 시간이 존재할 수 없는지, 우주 공간 속에서는 빛도 휘는지, 명왕성은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 은하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안드로메다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방금 말한 것들이 지구에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어떤 효용을 주는가? 없다. 아무 도움도 주지 않고, 아무 효용도 없다. 물론 고대에는 별과 해와 달을 보며 계절을 유추했으므로 농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천문학을 연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농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천문학을 연구하지는 않는다. 우주는 얼마나 큰지, 우주엔 몇 개의 별이 존재하는지, 블랙홀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고 내 삶이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천문학자는 천문학에 매료된다. 이유는 바로 지적 호기심 때문이라 생각한다. 앎에 대한 욕구를 뜻한다.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모르는 것에 대한 탐구, 그 자체가 목적인 학문이 바로 천문학이라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든 인간은 본래 앎을 갈망한다>고 말했다. 철학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다만 천문학은 대상이 우주고, 철학은 대상이 인간의 사유와 본질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결국 철학을 하는 목적은 인간과 현상의 본질에 대한 탐구다. 그 과정에서 보다 차원 높은 사유가 이루어지고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를 새로 알아가는 게 재미있다. 지적 호기심도 충족시킨다. 앎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있다. 결국 철학적 탐구 및 철학사 공부는 실생활에 어떤 효용을 바라고 하는 행위가 아니다. 철학적 탐구는 나만의 철학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고, 철학사 공부는 지난 2,500년 간 거인들이 만들어 놓은 철학을 탐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적 향연을 느끼는 게 즐거운 것이다. 이것이 5년이 지난 지금 내가 느낀 철학과 철학사에 대한 바이다.

다른 얘기지만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던 5년 전, 즉 군 시절이 내가 철학에 가장 깊이 빠졌을 때였다. 그래서였는지 2년 간 나의 군 시절은 행복하고 편한 나날로 가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운이 좋아서 편한 부대로 배치를 받았고, 주변 선후임과 동기가 대부분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에서 아무 걱정 없이 철학에 매료되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등의 저서를 읽으며 머릿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는 것을 나름 정리하며 철학에 매진했다. 그때는 난삽하게 철학을 공부했다. 그저 좋아하는 철학자의 책들을 주로 읽었다. 최근 장 폴 사르트르 철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서양 철학사 전반에 대해 다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읽은 서양 철학사 서적은 철학이야기, Sophie's world (소피의 세계 원서), A Little History of Philosophy (철학의 역사 원서)이다. 2권은 원서로 읽었기 때문에 깊이 이해하기는 힘들었고, 그나마 윌 듀랜트의 철학이야기가 훌륭한 서양 철학사 서적이지만 이전에 서평에서도 썼듯이 문예 출판사 번역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다양한 서양 철학사 서적이 있지만 그중 내가 선택한 책은 새뮤얼 스텀프의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이다. 다만 이 글의 제목은 편의상 [서양 철학사]로 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객관적이고 평이하게 쓰였다고 정평이 나있기 때문이다. [총, 균, 쇠]를 정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주관은 최대한 배제하고 철학사 전반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최대한 자세히 정리해서 나중에 이 글만 읽더라도 철학사 전반을 상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제1장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

어쨌든 명심해야 할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그리스 철학은 하나의 지적 활동이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보거나 믿는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철학은 순수하고 자유로운 탐구의 태도에서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의문들에 대한 사유를 의미했던 것이다.

1. 무엇이 영원히 존재하는가?

1. 1. 탈레스

밀레토스(지금으로 치면 터키)는 철학이 최초로 시작된 곳이다. 세 명의 대표적인 밀레토스 철학자는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이다. 그중 탈레스를 인류 최초의 철학자라 부른다. 탈레스는 저술을 남기지 않아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단편적 일화들뿐이다. 그가 그림자를 통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했다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물이 모든 사물의 근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없다.

탈레스가 유명한 것은 그의 일상적인 지혜나 실천적인 명민함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사유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기 때문이며, 그러한 이유에서 그가 서양 문명의 최초의 철학자란 칭호를 받은 것은 당연하다.... 중략... 탈레스는 사유의 기초를 신화적 근거에서 과학적인 탐구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1. 2.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만드로스는 당시 탈레스의 젊은 제자였다. 그는 만물의 근원은 어떤 근본 재료라 생각함으로써 탈레스와 견해를 같이했다. 하지만 탈레스와 달리 그 근본 재료는 물이 아니라 다른 특정한 요소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적인 사물들이 특정한 것인데 반해 그것들의 근원은 비결정적이며, 사물들이 유한한 데 반해 근원적인 재료는 부정적이고 무한하다.... 중략... 비결정적인 무한한 것은 근원적이며 불멸하는 제1실체이지만, 그는 이 실체가 영원한 운동을 갖는다고 믿었다. 이 운동의 결과로 다양한 특정 요소들이 그 근원적 실체로부터 <분리 separated off> 방식에 따라 생겨나며, 이처럼 <하나의 영원한 운동에 있어서 이를 통해 삼라만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탈레스는 <물>이라는 근원적 재료가 만물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물은 결정적이며 유한한 재료이다. 물을 통해 만들어진 사람, 나무, 동물 모두 결정적이며 유한하다.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는 사람, 나무, 동물은 결정적이고 유한하지만 그 근원적 재료는 비결정적이며 무한하다고 했다. 이 비결정적이며 무한한 근원적 재료가 영원한 운동을 함으로써 사람, 나무, 동물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1. 3. 아낙시메네스

아낙시메네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젊은 친구였다. 아낙시메네스는 모든 사물의 근원이 비결정적이며 무한하다는 관념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 관념은 너무 모호하기 때문이었다. 두 선구자(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의 견해를 조정하여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은 <공기>라고 주장했다. 

밀레토스 학파의 실제적인 중요성은 그들이 최초로 사물의 궁극적 본성에 관해 의문을 제시했다는 점이며, 또한 처음으로 무엇이 실제적으로 자연을 구성하는가에 대해 불완전하지만 직접적인 탐구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2. 만물의 수학적 기초

2. 1. 피타고라스

밀레토스에서 바다로 조금 나가다 보면 에게 해안에 사모스라는 조그만 섬이 나타난다. 여기서 그 유명한 피타고라스가 출생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만물은 <수>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만물은 수다>라는 주장은 모양과 크기를 갖는 만물의 기초에는 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례로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화음은 정수비일 때 이상적이다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신체도 온과 냉, 습과 건 등이 조화로운 비율로 구성이 되어야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피타고라스 정리>라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지만, 다소 사이비적인 면도 있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정수, 유리수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무리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 변의 길이가 1인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길이는 √2로 무리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피타고라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 학파의 히파소스라는 학자는 이를 언급하며 피타고라스의 원리(정수비)는 틀리다는 비밀을 폭로했다. 이를 이유로 피타고라스는 히파소스를 바다에 빠져 죽게 했다. 우리는 피타고라스의 수학자, 철학자로서의 면모만 알고 있지 다소 사이비 교주 같은 면모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3. 변화를 설명하려는 시도들

3. 1. 헤라클레이토스

지금까지 언급한 초기 철학자는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데 집중했던 반면에,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의 문제로 관심을 옮겨 갔다. 

그의 핵심 명제는 <만물은 유전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신들은 같은 강물로 두 번 걸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영원한 변화의 개념을 표현했다. 강물은 변화한다. 왜냐하면 <항상 새 물결이 당신에게 밀려오기 때문이다.> <유전 flux>의 개념은 강물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포함하는 만물에 적용되는 것이었다.... 중략... 사물들은 변화하여 많은 다른 형상들을 취한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항상 동일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내포한다. 이 다양한 형상들과 단일한 지속적 요소 사이, 즉 다자와 일자 사이에는 어떤 근본적인 통일성이 존재함이 틀림없다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주장했다.

이런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은 이후의 플라톤과 스토아학파의 철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3. 2.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는 헤라클레이토스보다 젊은 동시대 철학자였다.

파르메니데스는 그 이전 철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전 우주란 하나의 사물로 이루어졌다는 아주 놀라운 이론을 내놓았다. 하나의 사물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나누어지지도 않고, 절대로 소멸될 수도 없다. 그는 이 유일한 사물을 <일자 The one>라고 불렀다.

사람이 성장하고, 어린 나무가 자라듯이 모든 만물은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파르메니데스에 의하면 그러한 변화와 다양성은 모두 일종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본 것보다 논리적 추론에 깊이 빠졌기 때문에 이처럼 현상과는 반대되는 이론을 내놓았다. 그의 이론은 복잡하기도 하고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말했을 때 그 어떤 것은 정말 존재한다. 왜냐면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있을 수 없는 주장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언급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어떤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비존재에서 존재로의 변화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할 수 없는 것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의 변화는 있을 수 없으며,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커다란 참나무는 조그마한 도토리에서 생겨나고, 그 나무가 죽어서 소멸됨으로써 사라지는 것이다. 비록 이와 같이 하여 사물들이 어떻게 출현하는지 보여 줄지라도,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따르면 변화 과정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다. 우리는 [생성 소멸의 순서상 생성 이전에] 먼저 어떤 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생성되면]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 뒤[소멸 뒤]에는 다시 한번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우리는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있을 수 없는 논점에서 시작하여 그것으로 끝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논리적으로 잘못된 이러한 변화 과정의 주장을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우리는 그것이 대단한 환상이라는 사실도 알려야 한다.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나 밀레토스 학파는 만물의 근원이 있으며, 그 근원의 변화 과정을 통해 만물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반면 파르메니데스는 그러한 변화의 개념에 반대하며, 만물의 배후에 단일의 실체가 있다면 변화의 개념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는 점과 변화하는 현상은 환상이라는 점을 논거로 내세웠다.

어떤 것은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도대체 어떻게 어떤 것이 존재화했다고, 다시 말해 비존재에서 존재로 변화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결코 어떤 것에 관해 그것이 한때 비존재였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하나의 <그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물이나 한 사물의 상태가 비존재로 변화할 수 없기 때문에 변화의 과정 역시 있을 수 없다. 파르메니데스는 <생각될 수 있는 것과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동일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문구에서 이것을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당신들은 생각이 지향하는 존재 없이는 결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하는 것은 무엇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변화하는 어떤 것에 관해 생각할 수 없다. 변화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즉 현존하지 않는 어떤 것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변화한다>는 명제는 어디에 모순이 있을까? 어떤 것이 존재나 비존재 둘 중의 하나로부터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모순이다. 어떤 것이 존재로부터 발생했다면 그것은 변화가 아니다. 어떤 것은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한편 만일 어떤 것이 비존재로부터 발생했다고 한다면 이는 비존재가 어떤 것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비존재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 정의할 수 조차 없다. 왜냐하면 모든 어떤 것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역시 명백한 모순이다. 

이런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은 말장난인 것 같지만 후에 플라톤의 철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의 무변화성과 변하지 않는 존재로부터 영원한 이데아를 생각해냈다. 파르메니데스가 65세 때 그의 제자인 제논과 함께 아테네를 방문했는데 젊은 소크라테스와 대화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3. 3. 제논

제논은 파르메니데스의 제자였다. 제논은 스승인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변화나 운동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면 그 화살이 날아가 과녁에 꽂힌다. 이런 현상 속에서도 운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 현상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화살을 쏜 사람으로부터 과녁까지의 거리는 분할이 가능하다. 반으로 분할하고, 1/4로 분할하고, 1/8로 분할하고를 반복하면 무수히 많은 지점으로 분할할 수 있다. 화살이 과녁에 맞기 위해서는 그 무수히 많은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지점들이 존재한다면, 유한한 시간에 무수히 많은 지점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제논은 운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변화와 운동이란 환상이며, 유일한 존재는 연속적이고 물질적이며 운동하지 않는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3. 4.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는 운동과 변화에 대한 찬성, 반대 논증들을 조리 있게 결합함으로써 최초로 그 이전 철학자들의 주요한 철학적 공헌을 결합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일자 <The one>의 개념을 거부했고, 대신에 비록 존재가 창조되지도 파괴되지도 않는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옳지만, 그 존재는 하나가 아니라 다수라고 했다.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바로 <다자>인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을 구성하는 물질적 원소가 흙, 공기, 불, 물이라고 했다.

3. 5.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해 주로 고민했었다. 하지만 아낙사고라스는 질료와 구별되는 <정신(누스 nous)>에 대해 주장을 했다. 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만물은 <정신>과 <질료>로 구성된다.

아낙사고라스의 이성에 대한 언급은 철학 사상에서 매우 위대한 업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정신적 원리를 사물들의 본성에 부과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정신과 질료를 분리했던 것이다. 그가 정신을 완전히 비물질적인 것이라고 묘사한 적은 없었지만, 그는 정신을 그 정신에 의해서 작동되는 질료와 구분했다. 그에 의하면 정신은 질료와 달리 <어떤 것과도 혼합되지 않으며 홀로 존재하고 그 자체로서만 존재한다>. 정신을 질료와 다르게 만드는 것은 정신이 <만물 중 가장 훌륭하며 가장 순수한 것이며, 정신은 만물에 관한 모든 지식과 지고한 권능을 소유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질료는 복합적이지만 정신은 단순하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는 정신의 세계와 질료의 세계라는 두 개의 세계를 구분하지 않았고, 이 양자를 항상 상호 관련된 것으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정신은 <만물이 존재하는 곳에 존재하기>때문이다.

아낙사고라스의 이 개념은 이후 그리스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4. 원자론자들

4. 1. 원자들과 빈 공간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창시하고 발전시켰다. 원자론은 엘레아학파의 공간 부정론을 반박하기 위해 태어났다. 파르메니데스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레우키포스는 이에 반박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공간의 실재를 인정함으로써 운동 및 변화를 설명할 수 있었다. 파르메니데스가 공간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은 모든 것이 <물질적>이어야 한다는, 따라서 공간 역시 존재한다면 물질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반면 레우키포스는 공간은 물질적이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공간은 빌 수도 있고 찰 수도 있다는 것이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사물의 본질은 수많은 입자들, 즉 원자라는 단위들로 구성된다. 이 두 사람이 모두 원자에 부여한 특성은 파르메니데스가 일자에게 부과했던 특성, 즉 불멸성과 이에 따른 영원성이었다. 파르메니데스가 실재는 일자라고 주장했던 반면, 원자론자들은 이제 무한히 많은 원자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각각의 원자들은 충만해 있고 빈 공간을 갖지 않아서 견실하고 분할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원자들은 공간상에 존재하며 모양과 크기도 서로 다르다. 또한 그것들은 매우 작기 때문에 볼 수도 없고, 영원하기 때문에 결코 창조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은 단지 두 가지로 구성된다. 즉 진공으로서의 <공간>과 <원자들>뿐이다.

원자론자들에게 사물이란 단지 원자들의 결합일 뿐이다. 그들에게 물, 불, 공기, 흙은 단지 원자들의 밀집 군에 불과했다. 원자론은 중세 시대 동안 잠시 쇠락했을지라도 그 이후 수세기 동안 물리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제2장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소피스트들과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의 주된 관심은 자연과 우주였다. 그들은 자연과 우주에 대해 일치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고 주장한 반면 파르메니데스는 운동이나 변화는 우리들의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자연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인간 이성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런 회의주의로 인해 철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철학의 중심이 자연과 우주였지만, 이제부터 철학의 중심은 인간에 대한 탐구가 되었다.

1. 소피스트들

대략 기원전 5세기 동안 아테네에 출현했던 소피스트들 중 가장 유명한 세 사람은 프로타고라스, 고리기아스, 트라시마코스였다. 소피스트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소피스트들은 실용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설득적인 화술을 가르치는 <수사학>에 전념했다. 설득의 기교가 진리의 추구와 연결되는 한 소피스트들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소피스트들은 어떻게 악한 것을 선하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는지, 부정의한 것을 정의롭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는지와 같은 기술들을 젊은이에 가르쳤다. 그들은 점차 비난을 받게 되었다. 더욱이 이전의 철학자들은 관심이 없었던 경제적 소득에 관심을 가지면서 가르침의 대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피스트들에 대한 비난이 점차 쇄도했다. 소크라테스도 소피스트 밑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돈이 없어 단기 과정밖에 이수할 수 없었다. 

1. 1. 프로타고라스

프로타고라스(B. C. 490?~B. C. 420?)는 최고령자였고 여러 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명제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것은 인간이 어떤 사물에 대해 획득할 수 있는 지식은 개인의 인간적 능력들에 의해 제한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프로타고라스에 따르면 지식은 다양한 개인의 지각들로 제한되며 이 지각들도 사람마다 다르다. 따라서 동일한 사물을 관찰하더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의 지각이 옳고 누구의 지각이 그른지 알 길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사물의 참된 본성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사물은 그것을 지각하고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상>과 <실재>를 구분할 방도도 없고, 이러한 인식론에 입각할 때 과학적 이론을 수립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프로타고라스는 지식이란 개인마다 상대적인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도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어떤 도덕적 관념이 옳은지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획일적인 도덕관념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극단적인 도덕적 상대주의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각각의 사회는 서로 다른 법률을 가질 수 있고, 한 국가 내에서의 개인도 서로 다른 법률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법률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평화롭고 질서 있는 사회의 구현을 위해 모든 사람은 그들의 전통이 신중하게 키워 온 관습, 법률, 도덕률을 준수해야 한다.

참된 지식은 발견할 수 없다는 프로타고라스의 회의주의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크게 비판했었다.

1. 2. 고르기아스

고르기아스는 진리에 대해 매우 급직적인 견해를 취했다. 만물은 사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참되다는 프로타고라스의 주장과는 달리 고르기아스는 어떠한 진리도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2) 만일 어떤 것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을 파악할 수 없다.
(3) 그것을 파악한다 해도 그것은 전달될 수 없다.
예를 들면, 세 번째 명제를 통해서 그가 주장하려 했던 것은 <우리는 단어를 전달하지만 단어란 단지 상징이나 기호이며, 상징과 그것이 상징하는 사물 자체와는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지식을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절대적인 진리란 절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철학을 포기하고 실용적인 수사학에 전념했다. 

2. 소크라테스

당시 많은 아테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로 오해했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여타 소피스트들을 날카롭게 비판한 사람이다. 소피스들은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 회의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지식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도덕적 기준들마저도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선을 아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며, 따라서 <지식은 덕>이라 주장했다. 

2. 1. 소크라테스의 생애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아테네는 에게 해의 대부분을 지배할 만큼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는 파르테논 신전도 직접 볼 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황금시대에 성장했지만 그가 노쇠했을 때는 아테네도 전쟁에서 패해 쇠락했다. 결국 기원전 399년 청년들을 기만한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사약을 마시고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크라테스는 아무 저작도 남기지 않았다. 대부분이 아리스토파네스, 크세노폰, 가장 중요하게는 플라톤에 의해 전해진 것들이다. 그 자료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굉장히 이성적이고 엄격할 뿐만 아니라 인간적이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었다. 실제로는 술도 굉장히 잘 마셨다고 한다.

2. 2. 소크라테스의 철학

소크라테스는 <영혼>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에게 있어서 영혼은 어떤 특수한 기능도 아니고 특수한 종류의 실체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지성과 인격을 위한 능력, 즉 인간의 의식적인 퍼스낼리티를 의미했다.

2. 3. 소크라테스의 인식론: 지적 산파술

소크라테스는 절대적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산파술, 즉 숙련된 대화를 통해서라고 믿었다. 산파란 산모가 아이를 낳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을 뜻한다. 산파가 산모를 돕듯이 일반 사람들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옆에서 도와준다는 의미다. 대화를 통해 절대적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대화방식을 산파술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세계 배후에는 절대적인 진리,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 진리나 질서는 정신에 의해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 4. 소크라테스의 도덕 사상

소크라테스에게 지와 덕은 일치하는 것이었다. 선을 아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에게 지는 곧 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악덕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한다면 그 도둑질이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준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비롯된 행동이다. 자신의 행동이 참된 인간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려면 참된 지식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3장 플라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소피스트들의 도덕적 상대주의를 거부했고, 자신의 인식론을 형이상학에서 윤리학에 이르도록 다리를 놓았다. 즉 우리가 사물의 참된 본성인 실재(인간의 참된 본성을 포함하여)에 대해 지식을 가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1. 플라톤의 생애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또는 기원전 427년)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당시 소크라테스는 42살이었고 아테네 문화는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소크라테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에게 철학이란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기술적 행동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 방식이었다.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지적 능력뿐만 아니라 도덕적 품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사형은 민주제에 대한 절망감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민주제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위대한 철학자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이후로 플라톤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정치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기원전 387년 그의 나이 약 40세였을 때, 아테네에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그의 철학적 활동이 정점에 달했을 때이다. 이 아카데미아를 서구 역사상 최초의 대학이라고 보기도 한다. 아카데미아의 주요 목적은 본원적인 탐구를 통해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수학, 천문학, 화성학 등을 교육했다. 플라톤은 만년까지 끊임없이 저술을 하며 아카데이아에서 후학을 양성하다가 기원전 348년(또는 기원전 347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으로 인해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사형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둘 다 참 오래 살았다. 플라톤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국가론], [변명], [크리톤], [향연], [파이돈] 등이 있다.

2. 인식론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변하지 않는 보편적 진리가 있다고 확신했고, 그 보편적 진리는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 1. 동굴의 비유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데아에 대해 설명했다. 커다란 동굴에 몇 명의 죄수들이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죄수들은 팔다리가 묶인 채로 동굴의 벽면을 보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볼 수도 없고, 뒤를 돌아볼 수도 없다. 그들의 뒤쪽에서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지나다닌다. 죄수들은 실제 사람들이나 동물들을 볼 수 없고 단지 그 그림자만 동굴의 벽을 통해 볼 수 있다. 죄수들은 그림자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태어나서 본 것은 그림자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명의 죄수가 풀려 동굴 밖으로 나갔다고 생각해보자. 그는 지금까지 실재라고 생각했던 그림자는 실재가 아닌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와 다른 죄수들에게 그림자는 허상이고 진리와 실재는 동굴 밖에 있다고 말했다고 하자. 다른 죄수들은 그를 비웃을 것이다. 그림자가 진리이며 실재지 무슨 헛소리를 하냐고 할 것이다. 이렇듯 플라톤은 동굴 안의 그림자를 현상, 동굴 밖의 실재를 이데아라 말했다. 또한 인간을 동굴 안에서 동굴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교육>의 기능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인간의 정신이 매우 다양한 그림자의 배후에 있는 실재적 대상을 발견할 수 있으며, 따라서 정신은 참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2. 3. 형상론

플라톤의 형상론(이데아론)은 그의 가장 중요한 철학이다. 형상(이데아)은 불변하고 영원하며 비물질적인 본질이며,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단지 형상(이데아)의 모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실재를 몇 가지 종류의 물질적 재료로 생각했던 반면에, 이제 플라톤은 비물질적인 형상이나 이데아를 참된 실재로서 내세웠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피스트들은 물질적인 질서가 항상 유동하고 변화한다는 이유에서 지식을 상대적이라고 생각했던 반면에, 플라톤은 지식을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유의 참된 대상은 물질적 질서가 아니라 변화하지 않고 영원한 이데아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형상(이데아)이 불변하고 영원한 본질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럼 그 형상(이데아)은 어디에 존재할까? 이는 세 가지 부가적 방식으로 플라톤에 의해 강조된다.

첫째, 그는 영혼의 선재론과 관련해서 인간의 영혼이 신체와 결합되기 이전에 이미 형상과 친숙했다고 말한다. 둘째, 창조의 과정에서 데미우르고스, 즉 조물주는 특정한 사물을 만들어 내는데 형상을 사용했으며 이는 형상들이 사물로의 체현 이전에 이미 존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셋째로, 이 형상들은 <신의 정신> 속이나 <합리성의 최고의 원리> 속에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즉 영혼은 인간과 결합하기 전에 형상과 함께 존재했기 때문에 형상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그 형상은 <신의 정신>이나 <합리성의 최고의 원리> 속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2. 3. 3. 형상과 사물의 관계는 무엇인가?

형상은 세 가지 방식으로 사물과 관련되며 이는 동일한 사항에 관해 언급하는 세 가지 방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첫째, 형상은 사물의 본질의 <원인>이다. 둘째, 사물은 하나의 형상을 <분유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 사물은 하나의 형상을 모방하거나 <모사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책상을 상상해보자. 우리는 책상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각자가 생각한 책상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누구는 원형의 책상을 생각하고, 누구는 사각형의 책상을 생각하고, 누구는 나무로 되어 있는 책상을 생각하고, 누구는 플라스틱으로 된 책상을 생각한다. 하지만 책상의 본질은 동일하다. 즉 사물은 하나의 형상을 분유 하고 모방한다는 것이다.

2. 3. 5. 우리는 어떻게 형상을 인식하는가?

플라톤은 정신이 형상을 발견하는 방식을 최소한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상기>의 방식이다. 영혼은 육체와 결합하기 전에 이미 형상과 친숙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들의 정신이 존재의 선험적 상태에서 인식했던 것을 상기한다. 가시적인 사물들은 인간에게 이미 알고 있던 본질들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교육은 상기의 과정인 것이다. 둘째, 인간은 변증법적 활동을 통해 형상의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데, <변증법>이란 사물의 본질을 추상화하는 힘이며 지식의 모든 부분들의 상호 관계를 발견하는 힘이다. 셋째, <갈망>의 힘, 즉 <사랑 eros>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플라톤이 [향연]에서 서술했던 대로 인간을 아름다운 대상으로부터 아름다운 사유로, 더 나아가 미의 본질 바로 그 자체로 단계적으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가 형상(이데아)을 어떻게 알 수 있는 훌륭하게 설명해 놓은 구절이다. 이데아는 현상과 동떨어져 있는데, 인간의 정신을 통해 어떻게 이데아에 도달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영혼은(플라톤은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인간의 육체와 결합하기 전에 형상과 친숙했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을 통해 형상을 상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상기의 과정이 교육인 것이다.

3. 도덕 철학

플라톤의 형상론은 윤리학으로 이어졌다. 

3. 1. 영혼의 개념

플라톤은 영혼이 세 부분으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그 부분들을 <이성 reason>, <기개 spirit>, <욕망 appetite>이라고 부른다. 이성이 기개와 욕망을 통제할 수 있을 때만 질서와 평화가 획득될 수 있다고 믿었다.

3. 2. 악의 원인: 무지 또는 망각

육신은 영혼에 대한 방해자로 서서히 작용하며 영혼 가운데 기개와 욕망의 부분이 특히 그 육신의 작용에 민감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육신은 영혼의 조화를 방해한다. 왜냐하면 육신은 영혼에 자극을 주어 이성이 참된 지식을 지향하지 못하게 하며, 이성이 한때 인식했던 진리를 상기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3. 3. 상실된 도덕의 회복

상실된 도덕은 이성이 욕망과 육신에 의해 전도되었던 과정을 다시 역전시킴으로써 회복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플라톤은 <지는 곧 덕>이라 믿었다. 다르게 말하면 악의 원인은 무지 또는 망각이다. 무지와 망각은 영혼이 육신의 지배를 받으며 발생한다. 영혼이 육신을 다시 전복한다면 형상(이데아)을 상기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덕을 회복할 수 있다.

4. 정치 철학

플라톤의 정치 철학은 도덕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국가의 여러 계층은 인간의 영혼의 여러 부분과도 같다고 말한다. 정치 철학은 [국가론]에 주로 설명되어 있다. 국가 내에는 세 계층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영혼의 세 부분의 연장이기도 하다. 기술자나 장인 계층은 영혼의 가장 낮은 부분, 즉 욕망을 나타내며 전사는 영혼의 기개 부분, 최상의 계층인 통치자는 이성 부분을 나타낸다. 플라톤에 의하면 국가의 통치자는 충실히 교육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플라톤에게 교육은 상기의 과정이므로 통치자는 현상과 이데아의 차이를 이해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국가는 다소 공산주의적인 면모가 있기도 하다. 모든 성관계는 엄격히 통제되어야 하며 특정한 결혼 축제일에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축제는 국가가 정한 날에만 거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성관계를 맺는 쌍은 국가가 정해줘 우월한 유전자를 보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키워야 한다. 자식을 소유하게 되면 자식을 국가보다 우선시할 수 있으므로 개인의 욕망을 없애기 위해 국가적으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정의를 개인의 정의와 동일시하겠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서양 철학에 거대한 획을 그었다. 그는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서 여러 세기 동안 철학계를 지배했다. 솔직히 나는 플라톤의 철학에도 어느 정도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면 관계상 여기에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플라톤보다는 다른 철학자들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개인 취향일 뿐이고, 플라톤이 쌓아놓은 탄탄한 철학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서양 철학이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말했다.

"유럽의 철학적 전통을 가장 안전하게 일반화해서 평가한다면, 그것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주석들이라고 할 것이다."

제4장 아리스토텔레스

1.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에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생물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17세가 되던 해에 그는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등록했고, 그곳에서 20년간 수학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결국 플라톤과 대립되는 자신만의 철학을 구축했지만 플라톤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가 플라톤의 사상과 언제 결별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플라톤의 핵심 이론인 형상론을 혹독히 비판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아카데미아에서 같이 있을 때조차 그들의 철학적 견해에는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 수학에 열의가 덜했고, 대신 경험적 자료들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게 개인적으로 공박하지 않았고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아카데미아에 남아 있었다. 플라톤의 죽고 아카데미아의 경영은 플라톤의 조카에게 넘어갔다. 플라톤의 조카는 수학을 지나치게 강조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에서 물러나 아테네를 떠났다. 기원전 343년(또는 기원전 342년)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초빙하여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삼았다. 당시 알렉산드로스의 나이는 13살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필립포스 대왕이 죽고 알렉산드로스가 왕위를 계승하자 스승으로서의 임무도 끝났다. 그는 다시 아테네로 돌아갔다. 기원전 335년(또는 기원전 334년) 아테네로 돌아온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학원인 리케이온을 세웠다. 이때가 그의 생애 중 가장 생산적인 시기였다. 12년(또는 13년) 동안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의 원장으로 남아 있으면서 교육과 강론뿐만 아니라 그의 주요 사상들을 발전시켰다. 논리학, 철학, 과학 등 모든 주요 분야에 대해 집필하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기원전 323년 아테네에서는 반(反)마케도니아적 정서가 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위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도 마케도니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러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도 불경죄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테네 시민들이 철학에 대해 또 한 번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라고 말하면서 리케이온을 떠나 칼키스로 피신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322년 칼키스에서 그는 위장병으로 사망했다.

2. 논리학

그에게 논리학과 과학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는 논리학을 어떤 과학이 내포하는 문제들을 분석할 때 그것을 적절히 언표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실재에 관한 인간의 사유를 분석하기 위한 도구다. 확실히 사유는 실재를 항상 정확하게 반영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언어와 실재 간의 좀 더 적절한 관계의 정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논리학의 기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려는 것은 <과학>으로 접근하는 일련의 순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순서는 첫째, 사물들의 <존재>와 그것들의 과정들이며, 둘째, 사물들과 그것들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사유>이며, 셋째로 사물들에 관한 사유의 <단어>로의 전환이다. 언어는 과학적 사유를 정식화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논리학은 언어의 분석인 동시에 추론 과정의 분석이며 언어와 추론이 실재에 관련되는 방식의 분석이다. 

2. 2. 삼단 논법

삼단 논법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봐 우리에게 익숙하다.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는 <본질적 속성>을 지닌다. 실제로 모든 사람은 죽기 때문이다. 반면, 그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는 명제는 <우연적 속성>을 지닌다. 그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졌을 수도 노란 머리카락을 가졌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명제는 본질적 속성이 아닌 우연적 속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삼단 논법은 <본질적 속성>에 관한 명제들을 연결시킴으로써 필연적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가 참인 이유는 그 명제가 "모든 인간은 동물이다"라는 소전제와 "모든 동물은 죽는다"는 대전제가 중명사(여기서는 동물)에 의해 연결된 결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명사(동물)는 "죽는다"는 술어와 "모든 인간"이라는 주어를 연결해 준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고전적인 삼단 논법은 아래와 같다.

대전제: 모든 인간은 죽는다.
소전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결론: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여기서 처음의 두 명제는 <본질적 속성>을 지닌 전제다. 대전제와 소전제가 모두 참이라는 것을 알아야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명제가 참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사실상 인간의 죽음을 암시해주는 동물들에서 그러한 원인들과 속성들을 거꾸로 추적하는 것이다. 동물이 죽는다는 것을 수없이 많이 관찰한다면 귀납적으로 모든 동물은 죽는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렇듯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확실한 전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원리들이라고 했다. 앞서 말했듯이 제1원리는 관찰과 귀납으로부터 도출된다. 

어떻게 우리는 제1원리들이 참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답은 간단하다. 즉 어떤 사실들에 작용하는 정신은 그것들의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이 참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제1원리[즉 근본 전제]들은 차례대로 논증되지 않는다. 만일 모든 전제를 논증해야 한다면 이는 무한한 소급을 의미한다. 즉 각각의 전제에 선행하는 전제들이 무한히 증명되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지식의 축적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근본 전제들을 재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지식이 다 논증될 수는 없다 직접적인 전제들에 대한 지식은 오히려 논증으로부터 독립해 있다.> 그에 의하면 과학적 지식은 과학적 결론과 동일한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지식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과학적 지식 이외에도 우리들이 정의를 명석하게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지식의 근원이 존재한다.>

논증으로부터 독립된 근본 전제로부터 논리학의 체계가 쌓인다는 뜻이다.

3. 형이상학

그는 <형이상학>을 통해 줄곧 <지혜>라는 형태의 지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는 이 저서를 <모든 인간은 본래적으로 앎을 갈망한다>는 명제에서 시작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본유적 갈망은 단순히 어떤 일을 행하기 위해서나 어떤 것을 만들기 위해서 알려고 하는 갈망이 아니다. 이러한 실용적 동기들 이외에도 인간에게는 단순히 앎 그 자체를 위하여 어떤 종류의 사물들을 알려고 하는 갈망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이것은 우리의 감관들 자체가 누리는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각이 우리에게 사물들 간의 많은 차이를 구별해 주는 한 유용성과는 별도로 그 사물들은 그 자체로 사랑받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한 것을 지혜라고 간주하지 않았다. 지혜란 과학자가 소유한 지식과 유사한 것으로 감각적인 경험들을 반복하며 결국 그 원인에 관해 생각함으로써 감각적인 경험을 뛰어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감각적인 지각은 누구나 있으며 이를 통해 얻은 것은 지혜라고 할 수 없다. 참된 지혜로서 제1철학인 형이상학은 가장 추상적이며 모든 과학들 가운데 가장 정확하다. 

3. 1. 정의된 형이상학의 과제

그렇다면 형이상학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학문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형이상학]에서 관심을 기울였던 질문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하는 문제다. 결국 그가 생각한 형이상학의 과제는 존재와 그것의 원리들 및 원인들에 관한 연구였다.

3. 2. 사물의 제1본질로서의 실체

형이상학의 주요 관심사는 실체의 연구, 즉 사물의 본성 및 본질에 대한 탐구다. 예를 들어보자. '탁자'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모두 탁자를 연상할 수 있다. 탁자가 둥글다든가, 작다든가, 갈색이라든가 하는 탁자의 특정한 성질은 서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특정한 성질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어떤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다면, 우리가 탁자를 떠올릴 때마다 발견할 수 있는 어떤 보편적 본질이 존재함에 틀림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탁자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 본질은 모두에게 동일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질들의 근저 <substance>에는 어떤 본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3. 3. 질료와 형상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는 질료와 형상의 조화라고 믿었다. 플라톤은 형상이란 사물과 동떨어져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과 차이를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형상론에 반대했다. 형상이 사물의 원형이며, 사물이 형상을 분유 한다는 주장은 말장난일 뿐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다르게 사물이 있어야 형상이 있고, 형상이 있어야 사물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어떻게 한 사물이 다른 사물로 변할 수 있는가? 즉 <변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3. 4. 변화의 과정: 네 가지 원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변화>라는 단어는 운동, 생성, 소멸, 발생, 변조 등 다양한 사실들을 의미한다. 그 변화들 중 일부는 자연적이며, 나머지는 인간 기술의 산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우리는 어떤 사물에 관해서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1) 그것은 무엇인가? (2) 그것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3) 그것은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4) 그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네 가지 대답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네 가지 <원인들>이라고 한다. 각각의 네 가지 <원인들>은 (1) 어떤 사물이 무엇인가를 결정해 주는 <형상인>, (2) 사물이 만들어지는 <질료인>, (3) 사물을 만들어 주는 <작용인>, (4) 사물이 만들어진 <목적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만물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것이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때 부모는 자손이 가지게 될 특정한 형상을 이미 가지고 있다. 자손은 부모와 동일한 형상을 지닌 새로운 개체가 된다. 즉, 부모는 이미 형상을 지닌 질료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과 질료는 결코 분리된 채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변화는 이미 형상과 질료의 결합인 어떤 것 안에서 발생하며 새로운 다른 어떤 것으로 되어 가는 과정이다.

3. 5. 가능태와 현실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만물은 변화의 과정 속에 놓여 있다. 만물 속에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려는 역동적인 힘이 존재한다. 만일 도토리의 <목적>이 나무가 되는 것이라면 아직 나무는 아니지만 도토리는 잠재적으로 한 그루의 나무다. 이때 나무가 될 가능성이 있는 도토리를 <가능태 potentiality>라 하고, <목적>인 나무를 <현실태 actuality>라 한다. 따라서 변화의 궁극적인 양식은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변화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현실태는 가능태에 선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태가 선재하지 않는다면 가능태가 현실태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우선 현실태가 존재해야 가능태는 현실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만물이 변화, 즉 생성 소멸의 과정 속에 있다면 만물은 가능태를 함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능태가 존재하기 전에 현실태가 존재해야 한다. 잠재적인 사물들의 세계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적이거나 소멸하는 사물들보다 더 상위 수준의 어떤 현실태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가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어떠한 가능태도 없는 순수한 현실태로서의 최고 존재라는 개념을 이끌어 내었던 것이다.

3. 6. 부동의 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부동의 동자>는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변화의 궁극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그는 <부동의 동자>를 신이나 창조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변화를 위해서는 현실태가 모든 가능태에 논리적으로 선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가능태가 섞이지 않는 순수한 현실태를 전제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부동의 동자는 <작용인>도 아니며 <의지>를 표현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위들은 가능태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이 만물의 창조를 의지했다와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의지>를 표현했다는 것은 가능태가 없는 순수한 현실태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동의 동자를 세계에 대해 <사유>하거나 세계에 <목적>을 부여하는 신적 존재하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부동의 동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운동을 설명해 주려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어떤 종류의 존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부동의 동자는 현실적인 운동의 원리이며, 어떤 가능태도 내포하지 않기 때문에 운동의 <영원한> 원리이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문장들 속에는 명백히 종교적이며 신학적인 맛도 존재하지만 부동의 동자에 관한 그의 사상은 종교적이라기보다 과학적이다.

운동과 변화는 가능태가 현실태가 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태가 가능태보다 선재해야 한다고 했다. 즉,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가능태에 선재하는 현실태가 있어야 한다. 궁극적인 변화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가능태를 선재하는 현실태를 찾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가나 가능태가 섞이지 않는 순수한 현실태를 찾아야 하고, 그것이 부동의 동자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책이나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4. 인간의 위치: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과 육체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육체가 없으면 영혼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육체와 영혼이 함께 하나의 실체를 형성한다고 믿었다. 앞서 말했듯 이는 플라톤의 형상론과 대립된다. 플라톤은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킴으로써 영혼의 선재성을 주장했다. 또한 지식의 학습이란 영혼이 이전에 알고 있던 것을 상기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은 육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함께 소멸한다고 주장했다.

5.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모두 성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예술과 학문 그리고 모든 행동과 추구는 선을 지향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선>이란 무엇일까? 플라톤에게 선이란 경험의 세계나 육체와는 분리된 것이었고, 정신이 가시계에서 가지계로 상승함으로써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였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에게 선은 경험의 세계로부터 도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상생활에서 현실적인 행동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5. 1. <목적>의 종류

만물은 모두 성취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했다. 하나는 <도구적> 목적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목적)이며, 다른 하나는 <본래적> 목적(그것들 자체를 위해 수행되는 목적)이다. 예를 들어 목수가 막사를 건축할 때 그는 <도구적> 목적을 위해 만드는 것이다. 막사를 건축하는 이유는 병사들이 안전하게 주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배의 건조자가 배를 만드는 이유도 군인들을 전장으로 수송하기 위함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써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전쟁도 평화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평화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렇게 궁극적인 목적의 끝까지 도달하면 인간으로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행동을 <선>이라고 말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선한 인간이란 인간으로서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5. 2. 인간의 기능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의 목적은 단순한 생활의 영위가 아니다. 그것은 식물들에게조차도 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감각적인 생활의 경우도 동물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만의 고유의 목적으로 남는 것은 <이성적인 원리를 지닌 요소의 능동적인 활동>이다. 즉 영혼의 활동을 뜻한다. 인간의 기능이 영혼의 활동이라는 이유에서 그는 영혼의 본성을 묘사하려 했다. 영혼은 이성적인 부분과 비이성적인 부분으로 나뉜다. 비이성적인 부분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식물적인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적인 부분이다. 전자는 생물학적 삶을 의미하고, 후자는 갈망과 욕망을 의미한다. 이 식물적인 부분(생물학적 삶)과 동물적인 부분(욕망과 갈망)은 이성적인 원리에 반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특수한 기능은 영혼의 비이성적인 부분에 대한 이성적인 통제를 의미한다.

5. 3. 목적으로서의 행복

인간의 행동은 그것에 적합한 목적을 지향해야 한다. 인간은 어디서나 쾌락과 부와 명예를 목적으로 삼는다. 이러한 목적들은 비록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선을 결코 달성할 수 없다. 궁극적인 목적이 되기 위해서 하나의 행위는 <자족적>이며 <최종적>이어야 한다. 그러한 행위는 <항상 그 밖의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바람직한 것이며> 그것은 또한 <인간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마도 <행복>이야말로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이라는 사실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영혼은 어떤 방식으로 행복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에 따르면 행복의 실현을 위해서는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이 비이성적인 부분을 통제해야 한다. 영혼의 비이성적인 부분은 외부의 다른 대상이나 인간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궁극적인 <선>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는 결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올바르게 사유하는 습관, 올바르게 선택하는 습관, 올바르게 행동하는 습관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까지 소크라테스 이전의 고대 철학자부터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해 알아봤다. 현시점에서 그 당시의 철학을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내용도 더러 있지만 당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철학적 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앞으로 중세, 근대, 현대 철학도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요약정리해보려고 한다.

2 Comments
  • 프로필사진 알 수 없는 사용자 2020.07.01 10:52 요즘 시대처럼 정보 과다, 의미 과다, 자아 매몰되기 딱 좋은 시대에 철학이 필요하죠... 왜 사는지, 본인은 세상에 무슨 변화를 주고, 자기 고객은 누구인지... 최근에 스포츠 내셔널리즘 관련 논문 하나 읽고 좀 많이 쇼크받긴 했습니다. 생활체육도 저조한 나라인데 왜이렇게 스포츠로 남의 나라 못이겨서 안달인지. 개인 무력의 시대는 잘쳐봐야 300년 전 나폴레옹 전쟁때 끝났는데 왜 4차산업에 몸담근 저는 주먹으로 아시아를 때려눕혔던 제 관장님을 동경하고 부러워하는지... (관장님은 저보고 그러지 말랍니다ㅋㅋㅋㅋ)

    코로나만 아니면 주변 스포츠덕들 다 모아서 한번 미니 맥주파티 겸 스포츠 철학회 열고 싶었죠....
  • 프로필사진 Baek Kyun Shin 2020.07.02 10:51 신고 오우 논문까지 읽으시고 ㅋㅋㅋ 역시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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