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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유

[송길영] 상상하지 말라

Baek Kyun Shin 2020. 5. 19. 20:19

[상상하지 말라]는 내가 좋아하는 데이터 분석가 중 한 명인 송길영 부사장의 개정판 책이다. 시중에는 빅데이터와 관련된 책이 수두룩하게 많다. 많은 책들이 빅데이터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례를 소개한다. 뜬구름 잡는 얘기가 많아 빅데이터 사례집들은 잘 안 읽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에 윌라 오디오북 무료 체험판을 등록했는데, 이 책을 무료로 들을 수 있어서 한번 들어봤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괜찮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송길영 부사장 본인이 직접 분석하고 경험한 사례를 들었기 때문에 내용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많은 회사에 컨설팅이나 고문을 해주었다. 비단 데이터 분석 자체에만 포커스를 둔 것이 아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으로 어떻게 하면 회사가 가치를 만들고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한 것이다. 회사의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감'이 아닌 '데이터'를 활용했다. 여전히 많은 기업은 직급 높은 사람들의 '감'에 의해 경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그것이 통했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어 더 이상 그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책에는 회사의 '감'과 실제 사용자의 생각이 불일치하는 사례가 많이 실려있다. 왜 회사는 사용자의 생각과 반대되는 제품 혹은 서비스를 생산할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리모컨에는 반드시 요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손의 감촉만으로 조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사용자의 이런 사정을 모르는 어느 제조업체에서 놀라운 리모컨을 개발했습니다. 스마트폰 같은 터치 스크린 방식의 최첨단 LCD 리모컨이었습니다. 터치 스크린이니 당연히 버튼의 요철은 없고 LCD이니 마음만 먹으면 버튼 위치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채널 한번 바꿀 때마다 눈으로 일일이 버튼 위치를 확인해야 하니 불편해서 팔릴 리 없었습니다. 그들도 사용자 모드로 돌아 가면 이런 리모컨을 불편해서 외면할 텐데, 이 회사는 왜 이런 최첨단 리모컨을 만들었을까요?
시나리오는 대게 이런 식입니다. 회장님이 누워서 TV를 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우리 TV가 안 팔리는 이유를 알았어! 리모컨 때문이야!" 그래서 "김실장~"하고 부르면 회사의 중추적 인재가 뛰어옵니다. "6개월 시간을 줄테니까 진짜 좋은 거 만들어봐!" 회장님 리모컨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회장님의 지시를 받은 김실장은 회사 전체에 통문을 보냅니다. "TF를 만들 테니 각 팀장은 가장 똑똑한 팀원을 보내시오!" 그러면 각 팀은 가장 존재감 없는 팀원을 보냅니다. 팀에 결원이 생기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모인 한 명의 천재와 나머지 범재들은 6개월 동안 리모컨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그 결과 최첨단 쓰레기가 나옵니다. 혹시 이 제품이 대박 났을 때 다른 경쟁사가 들어올 수 없도록 자기네들만의 기술력을 총동원하고, 수많은 자재를 넣어서 비싸고 쓸데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다소 과장이 섞였지만 제가 지금까지 만나본 대다수의 제조업체들이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용자의 수요를 파악하지 못한 채 기업 내부 임원의 '감'으로만 제공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직도 많이 있다. 저자는 그렇다고 무조건 데이터만 바라보라고 말하진 않는다. 데이터 분석을 하는 데 있어 인문학적 소양도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에서 욕망을 캐내려면, 그들의 말, 글, 행동에 대한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결국 인문학적 통찰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을 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가장 먼저 책을 많이 읽으라고 말합니다. 그 안에 사회의 흐름과 중요한 지식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분석이 인간의 욕망을 파악하는 일인 만큼 인간을 심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수적입니다. 저는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지만 인문학 전공자들과 함께 데이터를 분석합니다. 데이터를 분석해서 추이를 발견해 내는 일이 결국에는 인간의 생각을 파악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인문학적 통찰을 가지고 가설을 세웠다면 좋았겠지만 예전에는 그저 데이터만 모아놓고 인문학 분야의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며 물어보느라 바빴습니다. 지금은 심리학, 사회학, 철학, 인류학, 경제학 연구자들이나 학회의 도움을 받고 직원도 인문사회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주로 모셔와서 통찰의 깊이를 더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송길영 부사장을 참 좋게 본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재밌게 하고, 그것을 통해 외부에 가치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데이터 공부를 시작한 것도 어찌 보면 송길영 부사장의 영향이 컸다. 그가 앞으로도 사람들의 마인드를 캐는(Mind Mining) 일을 지속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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