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 공간 혁명 본문
지금 눈에 보이는 건물과 거리, 고원 가운데 80퍼센트가 지금보다 기능과 구조가 뛰어났다면 당신과 당신의 부모, 형제, 자녀의 삶은 어땠을까? 모든 동네가 활기 넘치고 주민들끼리 어울리기 쉬운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저렴하고 편리한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모든 주택과 아파트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디자인이 뛰어나고 잘 관리된 공원이 있거나 집에서 공원이 보인다면? 모든 집과 직장, 교실에 자연광이 들어오는 커다란 창문이 있다면? 이 모든 게 가능했다면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공간'이란 어떤 의미일까? '공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줄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공간'은 어떤 형태일까?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어떤 '공간'을 선택해 살아가야 할까?
위 질문의 답이 궁금하다면 '공간 혁명'이 좋은 해답이 될 것이다.
포괄적으로 '공간'이라 했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사는 집이 있다. 가장 중요한 공간 중 하나이다. 집 다음 시간을 많이 보내는 회사도 있고, 매일 보는 거리도 있으며, 학교, 도서관, 헬스장, 공원, 문화 시설 등도 있다.
저자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건축 환경은 먹고 자고 일하고 생활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건축 환경은 인간의 행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 날카롭고 불규칙적이며 모난 요소를 접하면 인간은 불편함을 느낀다.
2. 붉은색과 붉은 조명은 보통 불쾌감을 유발한다.
3. 자연은 인간에게 즉각적으로 유익한 영향을 준다.
4. 녹지와 빛, 개방 공간에 노출된 사람들은 문제 해결 능력이 좋아지고 대인관계도 좋으며 심리적 행복감도 높아진다.
5. 식생(나무와 풀, 꽃)으로 둘러싸인 주택단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건물은 유사하지만 식생이 부족한 장소에 사는 사람들보다 사회적 유대감, 공동체 의식이 더 강하다.
6. 넓게 느껴지는 공간과 경사 지붕, 완공된 외관은 자존감을 높인다.
아주 단순한 예시지만 이 책에는 더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건축물과 그렇지 않은 건축물을 실제 사진들과 함께 보여준다. 시간과 돈을 많이 투자한 디자인이라도 인간에게 불편을 주는 건축물도 허다하다.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거주자를 고려하지 않는 다면 삶의 질이 저하될 것이다. 반면, 시간과 돈을 많이 들이지 않더라도 조금만 신경 쓰면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건축물을 만들 수도 있다. 색상, 질감, 채광, 소음, 주변 환경에 따라 심리적 안정감이 달라질 수 있다.
이에 대한 학문이 바로 '신경건축학'이다. 신경건축학은 만들어진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점점 그 중요성이 널리 퍼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아는 학문이다. 모든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학문이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대중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향후 10~20년 후에는 대단히 주목받는 학문이 될 것 같다. 저자는 경제 위기가 오지 않는 한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은 전 세계적인 건축 쓰나미가 이어질 것이라 예상한다. 이미 개인의 삶의 질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향후 건축 붐도 일어난다면 자연히 신경건축학은 주목을 받을 것이다. 전문가들만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대중들도 관심을 갖는 학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알다시피 아직은 건축회사나 건축가가 신경건축학을 중시하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다. 첫 번째 이유는, 일반 대중들이 신경건축학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 디자인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대중들은 모른다. 디자인을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사치 정도로 여긴다. 우선은 살기 편한 공간을 먼저 고려하고, 돈이 있으면 디자인을 하고 돈이 없으면 디자인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렇듯 대중들이 신경건축학에 관심이 없으니 건축회사나 건축가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두 번째 이유는, 건축의 표준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건축물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직사각형의 정형화된 틀을 가지고 있다. 건축물이 표준화되어 있어야 저렴한 비용으로 빠른 시간에 건축을 할 수 있다. 인간 친화적 디자인을 하려면 시간도 돈도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건축회사에게 시간과 돈은 중요한 요소지만 그 건축물에서 사는 사람의 행복은 고려 요소가 아니다. 이런 이유로 건축회사, 건축가들에게 신경건축학은 아직 고려해야 할 학문이 아닐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먼저 신경건축학을 알아야 한다. 신경건축학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신경건축학에 부합하는 건축물을 찾아다닌다면 자연히 건축회사도 신경건축학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문득, 스페인 카탈루냐 건축가인 가우디가 생각났다. 그는 직선을 인위적이라 싫어했다. 그의 건축물에서 직선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심지어 방 조차도 굴곡졌다. 그가 제작한 주거 공간에는 일반 가구를 놓을 수 없다. 벽과 모서리 조차 굴곡지기 때문에 맞춤형 가구들을 들여놓아야만 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건물을 짓는데 나무가 있다면 그 나무를 잘라버린다. 하지만 가우디는 절대 자연을 훼손하지 않았다. 건물에 구멍을 뚫어서라도 나무를 살려두었다. 문에 달린 손잡이도 일반적인 손잡이가 아니다. 찰흙을 직접 손으로 주물러 손에 딱 맞는 손잡이를 디자인 했다. 그의 건축물에서는 곡선의 미, 안정감, 자연친화적 감정을 넘어 신성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가우디 건축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가우디는 후원자였던 구엘만을 위한 건축물을 지었기 때문에, 즉 대중을 위한 건축물을 짓지는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주요 메세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디자인이 훌륭하고 적절하게 구성된 환경은 건강과 인지, 사회적 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지금 당장 내가 사는 공간의 디자인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래도 작은 실천으로 삶의 질을 보다 풍족하게 할 수는 있다. 환한 조명으로 바꾸는 것, 방이 좀 더 넓어 보이도록 정리정돈을 하는 것, 방안으로 햇살이 잘 들도록 커튼/블라인드를 치는 것 등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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