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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유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3~4부

Baek Kyun Shin 2019. 12. 29. 21:42

제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제11장: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총과 쇠만으로 유럽인이 비유럽인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병원균이라는 사악한 선물이 없었더라면 정복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11장에선 유럽인이 다양한 병원균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유럽인이 다양한 병원균을 가질 수 있었던 원인

병원균은 궁극적으로 조밀한 인구와 가축화 때문에 많아졌다. 

우선, 조밀한 인구와 병원균의 관계를 살펴보자. 앞서 살펴봤듯이 농경민은 수렵 채집민에 비해 인구 밀도가 높다. 인구 밀도가 높으면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전염병이 쉽게 퍼질 수 있다. 그리고 수렵 채집민은 자신의 분뇨를 방치한 채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반면, 농경민은 정착 생활을 하기 때문에 수많은 오물 속에서 살아간다. 자신들의 분뇨를 통해 키운 농작물을 먹기 때문에 세균이나 기생충에 쉽게 감염될 수 있다. 이런 환경 때문에 농경민은 수렵 채집민에 비해 전염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또한, 가축화도 병원균과 관계가 있다. 가축들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사람에게 옮겨갈 수 있다. 가축의 질병을 직접 옮길 수도 있고, 세균이 진화하여 사람들에게 특화된 질병으로 바뀔 수도 있다.

이 사실을 통해 왜 유럽인은 다양한 병원균을 가질 수 있었고, 비유럽인은 그럴 수 없었는지 알 수 있다. 7~9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유럽인은 일찍이 농업을 시작해 인구 밀도가 높았고, 가축화한 동물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반면 남북 아메리카에서는 조밀한 인구 집단이 발생한 시기가 다소 늦었고, 단 5종의 동물밖에 가축화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과연 병원균은 얄리의 질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보자. 무기류, 기술, 정치 조직 등에서 유럽인들은 그들이 정복한 비유럽인들에 비해 크나큰 이점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같은 이점만으로는 애당초 유럽의 소수 이주민들이 어떻게 남북 아메리카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토록 많은 원주민들을 교체할 수 있었는지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만약 유럽이 다른 여러 대륙에 이 사악한 선물(유라시아인들이 오랫동안 가축과 밀접하게 살았기 때문에 진화된 각종 병원균)을 주지 않았다면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제12장: 식량 생산 창시와 문자 고안과의 밀접한 연관

기술, 병원균과 마찬가지로 문자 역시 식량 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식량 생산이 시작된 곳에서는 잉여 식량이 있어 필경사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그런 필경사에 의해 문자는 널리 퍼질 수 있었다. 또한 식량 생산이 되는 곳은 인구가 많아져 정치/사회적 조직이 구성된다고 했다. 정치/사회적 제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문자가 필요했다. 한편 수렵 채지민 사회는 문자를 만들어내지도 도입하지도 못했다. 제도적 쓰임새도 없었거나와 필경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잉여 식량도 없었기 때문이다.

문자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중국, 멕시코에서만 독립적으로 만들어졌다. 그곳은 최초의 식량 생산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몇몇 사회에서 문자가 발명된 후 교역을 통해 비슷한 사회/경제/정치적 조직을 가지고 있던 다른 사회로 퍼져나갔다.

제13장: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일반적으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한다.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것을 발명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라고 한다. 즉, 발명된 이후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되고, 상당 시간이 흐른 후에 대중들이 그 발명품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발명품이 호기심에 의해 발명되거나, 이런저런 시도 끝에 만들어졌고, 발명가들은 대중의 필요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가령,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의 용도는 유언을 남기거나, 시각 장애인을 위해 책을 녹음하는 일 등이었다. 음악을 재생하는 것은 큰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축음기의 주된 용도는 음악을 재생하는 것이 되었다. 

발명의 영웅 이론과 그 문제점

그러므로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던 발명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는 실제로 발명과 필요의 일반적인 역할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것이며, 그것은 와트나 에디슨 같은 희귀한 천재들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우리는 천재 발명가가 어떤 발명품을 처음 고안해낸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에디슨의 백열전구,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제임스 와트는 토머스 뉴커먼이 이미 발명한 증기 기관을 고치면서 더 좋은 증기 기관을 발명한 것뿐이다. 에디슨의 백열전구도 그 이전에 다른 발명가들이 특허를 얻은 수많은 백열전구를 개량한 것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라이트 형제의 동력 비행기 이전에도 오토 릴리엔탈의 무동력 글라이더와 새뮤얼 랭글리의 동력 비행기가 있었다. 이렇듯 천재 발명가 혼자서 그 이전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특별한 것을 발명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설계를 해놓은 것을 또 다른 누군가가 발전시켰고, 다시 누군가가 더 발전을 시키는 과정이 있었다. 우리는 최후의 인물만을 기억하는 것이다. 

두루 인정받는 유명한 발명가들에게는 항상 유능한 선후배가 있었고 사회가 그들의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시기에 발명품을 개량했던 것이다.

사회에서 발명품이 수용되는 데 미치는 요인들

이제 발명품이 만들어지고 난 뒤 대중이 그 발명품을 수용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해 알아보자.

가장 명백한 요인은 기존의 기술과 비교되는 경제적 이점이다. 이는 너무 자명한 사실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가치관 및 위신의 문제이다. 동일한 청바지라도 브랜드가 있다면 더 높은 가격을 주고서라도 구입한다. 이는 그 상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가격 차이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기득권과의 양립 가능성이다. 현재에도 모두가 사용하는 '쿼티 자판기'는 불행하게도 가장 비생산적인 자판기다. 이는 역공학의 산물로 타이핑 속도를 최대한 늦추도록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쿼티 자판기는 탄탄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 자판기로 대체되지 못했다. 신기술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마지막 요인은 그 기술의 이점을 얼마나 쉽게 파악할 수 있냐의 문제다. 1340년 영국의 백작은 스페인 전투에서 우연히 대포를 목격했다. 그 광경에 깊은 인상을 받고 영국군은 열광적으로 대포를 수용했다.

발명 기술의 확산 경위

고립되어 있던 몇몇 사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사회에서, 대부분의 신기술은 그 지역에서 발명된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복잡한 발명품들은 대부분 빌려오기를 통해 습득된다. 각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발명하는 것보다 전파되는 것의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유용한 발명품이 한 사회에 처음 생기면 다음 두 가지 중 한 가지 방식으로 다른 사회로 전파된다. 첫째는 다른 사회에서 그 발명품에 대해 보거나 배워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그 발명품을 갖지 못한 사회는 그것을 발명한 사회에게 압도당하거나 교체되고 마는 것이다.

확산에 의해 발명품을 가장 잘 습득할 수 있었던 사회는 주요 대륙에 속해 있는 사회였다. 기술은 이들 사회에서 신속하게 발전했다. 또한, 기술은 자가 촉매 작용을 일으켜 더 확산되고 발전한다. 자가 촉매 작용이란 스스로 촉매 작용을 일으켜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식량 생산 -> 정주형 생활 -> 기술의 역사

기술 탄생의 원인은 정주형 생활이다. 수렵 채집민은 항시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휴대할 수 있는 물건만 만들었다. 반면 정주형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들고 다닐 수 없는 소유물을 축적할 수 있었다. 지난 장에서 거듭 설명했듯이 정주형 생활의 원인은 식량 생산이다. 결국 기술의 역사는 식량 생산과 직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식량 생산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비롯한 유라시아 전반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므로 기술의 발전 역시 유라시아가 우수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기술의 확산은 농업의 확산과 마찬가지로 대륙의 축과 관련이 있다. 유라시아 대륙은 주요 축이 동서 방향이므로 한 지역에서 받아들인 발명품은 비슷한 위도와 기후를 가진 다른 지역으로 쉽게 전파되었다. 그리고 남북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남북 축을 단절시키는 심각한 생태적 장애물이 있는데 비해 유라시아는 동서 축을 단절시키는 장애물이 비교적 적어 전파가 더 용이했다. 

그러므로 다른 요소들이 모두 동등하다고 가정했을 때 기술이 가장 빠르게 발달할 수 있는 곳은 생산성이 높고 면적이 넓으며 인구가 많은 지역, 즉 잠재적인 발명가도 많고 서로 경쟁하는 사회도 많은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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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는 처음부터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1492년에 와서는 엄청나게 앞서게 되었다. 그것은 유라시아인들의 지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건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제14장: 평등주의부터 도둑 정치까지

제14장에서는 정치 체계에 대해 설명한다. 정치 체계의 형성은 병원균, 문자, 기술과 함께 한 사회의 역사를 좌우한 요인 중 하나다. 이 책에서는 인간 사회의 범주를 크게 무리 사회, 부족 사회, 추장 사회, 국가로 나눠 설명한다. 

인간 사회의 범주 (무리, 부족, 추장 사회, 국가)

무리는 가장 작은 사회로, 수십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대부분 유목 생활을 했다. 정치 체계나 관료도 따로 없어 '평등주의'라고 볼 수 있었다. 종교, 경제, 사회 체계 또한 존재하지 않았고 대부분 혈연에 의해 구성되었다.

무리 사회의 바로 다음 단계는 부족이다. 이것은 규모가 수백 명 정도로 더 컸고, 대개 정착 생활을 했다. 무리와 마찬가지로 관료, 경찰력, 조세 따위가 없어 평등주의라 말할 수 있었다.

그다음 단계는 추장 사회다. 인구 규모로 보면 수천에서 수만 명 정도로 부족보다 훨씬 컸다. 추장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서로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모두를 알고 지내기에 인구 규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장 사회 구성원들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죽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이를 위해 추장을 무력을 사용하여 구성원을 다스려야 했다. 정부는 따로 없지만 추장의 독점적 중앙 집권 체계라 말할 수 있었다. 또한 부족 사회와 다르게 종교, 경제, 사회 체계가 미비하게나마 마련이 되었다.

마지막 단계는 국가다. 현재 남극 대륙을 제외한 육지 전체는 국가의 형태이다. 인구는 5만 이상이며, 모두가 알듯이 정부, 종교, 경제, 사회가 체계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인구 증가가 사회적 복잡성과 국가 형성에 미친 영향

그렇다면 무리 -> 부족 -> 추장 사회 -> 국가로 발전한 원인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탄생은 자연현상이라 말했고, 장 자크 루소는 사회 계약에 의한 것이라 했다. 일부 다른 학자는 관개 시설과 연관을 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궁극적으로 국가는 인구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자면 추장 사회 중에서도 인구가 많을수록 더 중앙 집권적이고 계층화가 심하고 더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언급한 것처럼 식량 생산은 정주형 생활 및 인구 규모와 밀도 증가를 야기했고, 이는 사회 복잡성 증가와 국가 형성의 원인이 되었다.

대규모 사회가 복잡해지고 중앙 집권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

인구 증가가 사회적 복잡성 증가와 국가 형성을 야기한다는 건 알았다. 그러면 추장 사회나 국가와 같은 대규모 사회는 왜 중앙 집권화가 될 수밖에 없는지 알아보자. 현존하는 대규모 사회는 모두 복잡한 중앙 집권적 조직을 갖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세 가지 명백한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서로 무관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 문제 때문이다. 무리, 부족 사회에서는 대부분이 서로를 알기 때문에 서로를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알고 지낼 수 있는 '몇백 명'이라는 문턱을 넘어서면, 서로 모르는 사람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인구 규모가 더 커져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게 된다면 갈등을 해결해줄 사람도 적어진다. 그런 사회는 자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규모 사회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해결하고 중재해주는 중앙 집권적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인구 규모가 커질수록 공동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어떤 대규모 사회가 효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중앙 집권화가 되어야 한다.

세 번째 이유는 경제적 측면과 관련이 있다. 당사자끼리의 물물교환보다 중앙 제어 시스템을 통한 교환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모두 고려했을 때 인구 규모가 큰 사회는 필연적으로 중앙 집권화가 되어야 한다.

이상으로 제3부가 마무리된다. 제3부에서는 역사의 가장 광범위한 경향을 좌우하는 중요한 네 가지 직접적인 요인(병원균, 문자, 기술, 정치 체계)에 대해 알아봤다.

제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

제15장: 대륙 간 불균형 이론과 원주민들이 낙후된 원인

제15장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왜 발전하지 못하고 계속 수렵 채집민으로 남았는지 고찰해본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건조하고 척박한 대륙이다. 기후도 불안정하고, 생태학적으로도 매우 빈약하다. 그리고 유럽인이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대륙이기도 하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비교적 식량 생산이 유리한 지역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지역들이 독립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었으며, 그마저도 가운데 큰 사막이 가로막고 있었다. 일부 지역에서 생산된 식량이 다른 곳으로 퍼지기 어려운 기후적, 대륙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즉, 오스트레일리아는 모든 대륙 중 가장 인구가 적었고, 가장 고립된 구조였다. 결론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가 낙후되었던 원인은 오스트레일리아인이 유전적으로 뒤쳐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세계에서 가장 큰 대륙인 유라시아와 그 보다 작은 남북 아메리카, 아프리카 사이의 기술적 차이도 이와 비슷한 영향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환경 탓에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럽의 식민지가 되었다. 유럽의 총기, 병원균, 쇠가 원주민을 제거하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 이 모든 건 환경에 의한 결과였다.

제16장: 동아시아의 운명과 중국 문화의 확산

제15장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살펴봤다면 제16장에서는 눈을 동아시아로 돌려 중국에 대해 살펴본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6개국 중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러시아, 미국,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는 모두 최근에 와서 정치적 통일을 이룩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중국은 B.C. 221년에 이미 정치적으로 통일이 되었고,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나라다. 이렇게 중국이 중국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의 다양한 문화를 통일시켜 준 지리적 요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식량이 생산된 연대로부터 1,000년 이내에 중국에서도 식량 생산이 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식량 생산이 세계 최초로 시작된 중심지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식량 생산뿐만 아니라 가축화가 되었다는 증거도 함께 발견되었다. 이후 중국에서는 문명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청동기, 철, 종이, 나침반, 화약 등이 만들어졌고, 구성원의 계급화도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인구는 점점 많아졌고, 문화 및 기술도 풍부해졌으며 전쟁도 일삼았고, 결국 중앙 집권화된 국가도 형성되었다. 또, 중국은 남북 방향의 거리도 짧고 큰 장애물도 없어 중국 전역으로 농작물 및 기술 확산이 이루어졌다. 이 같은 지리적 요인들로 인해 중국은 일찌감치 문화적, 정치적으로 통일될 수 있었다. 한국, 일본, 열대 동남아시아는 일찌감치 문명의 발전을 이룩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여전히 한자가 쓰이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제18장: 남북 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낙후됐던 원인

제17장은 큰 내용이 없어서 요약을 스킵했다. 제18장은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를 되짚어보는 장이다. 남북 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낙후됐던 원인을 다시 언급한다.

정복의 궁극적 요인: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 식량의 작물화

남북 아메리카와 유라시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였다. 이전 장에서 살펴봤듯이 유라시아에서는 13종의 대형 포유류가 가축화되었다.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고기, 젖, 털, 가죽을 제공해줌은 물론, 사람과 물자의 이동 수단도 되어주었고, 쟁기를 끌어 농사에 도움을 주고, 분뇨를 통해 농작물 생산량도 크게 증대시켰다. 반면, 남북 아메리카에선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가 라마/알파카 1종뿐이었다. 그 주된 원인은 홍적세 말기 남북 아메리카에 존재했던 대형 포유류들이 대부분 몰살되었기 때문이다. 이 가축은 고기, 털, 가죽, 물자 운송만 제공했을 뿐, 젖을 주지도, 사람을 태우지도, 수레나 쟁기를 끌지도 않았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유라시아와 남북 아메리카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유라시아와 남북아메리카 사이에는 작물화된 식량에도 차이가 있었다. 놀라운 점은, 남북 아메리카에는 생산성이 높은 지역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농업을 도와줄 대형 포유류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지리적으로 단절되어 있어 작물화된 식량이 널리 퍼질 수 없었다. 남북 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식량 생산에 있어 뒤쳐진 이유는 가축화, 작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복의 직접적 요인: 병원균, 기술, 정치 조직, 문자

유라시아가 남북 아메리카를 정복한 궁극적 요인은 가축화 및 작물화의 성공이었다. 가축화, 작물화로 인해 유라시아의 병원균, 기술, 정치 조직, 문자도 남북 아메리카보다 빠르게 발전했다. 이 네 가지 요인은 유라시아가 남북 아메리카를 정복하게 해 준 직접적인 요인이다. 콜럼버스 시대에 이미 유라시아 사회는 아메리카 사회에 비하여 식량 생산, 병원균, 기술, 정치 조직, 문자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크게 유리했다. 이 같은 요인들은 콜럼버스 이후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사이에 발생한 여러 충돌의 결과를 좌우했다.

왜 아메리카는 유라시아에 뒤쳐졌을까?

아메리카가 유라시아에 뒤쳐진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로, 남북 아메리카는 유라시아에 비해 출발부터 늦었다. 남북 아메리카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촌락이 발생한 건 유라시아에 비해 5,000년이나 뒤쳐졌다. 두 번째 이유는 가축화, 작물화에 적합한 야생 동식물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세 번째 이유는 식량, 병원균, 기술, 정치 조직, 문자 등이 확산되는데 장애물이 많았다는 점이다. 사막과 해엽 등은 확산이 되는데 큰 장애물이었다. 지중해 동부에서 탄생한 알파벳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를 제외하고는 유라시아 전반으로 전파가 되었다. 하지만, 중앙아메리카의 문자 체계는 안데스 지역이나 미국 동부로 전파되지 못했다. 사막이나 파나마 지협이 서로를 단절시켰기 때문이다. 마지막 이유는 인구가 조밀한 지역들이 비교적 적거나 고립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남북 아메리카 사회는 잘 연결되지 않아서 각각이 하나의 '섬'과 같았다.

제19장: 아프리카는 왜 흑인의 천지가 됐는가

아프리카의 주요 다섯 인종과 아프리카가 흑인 천지가 된 이유

A.D 1,000년 경 아프리카에는 흑인, 백인, 피그미족, 코이산족, 인도네시아인이 살고 있었다. 흑인 중 특히 반투족은 지리적, 환경적 이점을 통해 식량 생산에 유리했다. 앞서 계속해서 언급했던 것처럼 식량 생산은 높은 인구 밀도, 병원균, 기술, 정치 조직을 야기했다. 결국 반투족은 피그미족, 코이산족을 침탈했고, 아프리카 전체는 흑인 천지가 되었다. 피그미족과 코이산족이 농업을 시작하지 못한 것은 그들에게 농경민 자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남아프리카의 야생 식물은 작물화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발전이 유라시아에 비해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아프리카 대륙은 최초의 인류가 탄생한 곳이고, 기후 및 인종도 다양해 여러 이점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식량 생산이 늦었다.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식물도 적었고, 남북 축으로 인해 북아프리카의 식량 및 기술이 전파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동산적 이유 때문에 유라시아는 남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

유라시아라 하면 크게 유럽과 아시아로 나뉜다. 식민지를 만들고 다른 나라를 침탈한 대부분의 국가는 유럽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식량 생산이 국가 발전의 궁극적인 이유라 했다. 그렇다면 식량 생산이 가장 처음 발생했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중국이 아니라 유럽이 강대국이 되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은 나 역시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것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유럽에 추월당한 불운의 과정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경우에는 분명한 해답이 나온다. 그곳은 원래 가축화, 작물화에 적합한 동식물이 집중되어 있어서 다른 곳보다 몇천 년 일찍 출발할 수 있었지만, 일단 그 선발 간격을 추월당한 뒤에는 더 이상의 지리적 이점이 없었다. 이 같은 간격이 사라져 간 과정은 강성한 제국들이 점차 서쪽으로 옮겨진 경로를 통해 상세히 더듬어볼 수 있다. B.C. 4,000년~3,000년경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국가들이 탄생한 후 처음에는 힘의 중심이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의 제국들 사이를 번갈아 이동하면서 줄곧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B.C. 4세기 말 알렉산더 대왕 치하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부터 동쪽으로 인도까지 정복하면서 드디어 힘의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돌이킬 수 없는 첫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B.C. 2세기에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면서 힘의 중심은 서쪽으로 더 이동했고,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다시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지중해 동부 일대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많은 지역이 숲으로 덮여 버렸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있던 사회들이 점차 자멸하면서 힘의 중심은 유럽 쪽으로 옮겨 갔다. 이것이 바로 유럽보다 훨씬 앞서가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추월당하게 된 과정이다.

중국은 어쩌다 기술의 선도자 위치를 유럽에 추월당했을까?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도 식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쩌다 유럽에 추월당했을까? 그것은 바로 중국의 만성적 통일 때문이다. 유럽은 여러 나라가 만성적으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중국은 정치적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한번 결정이 내려지면 중국 전역에서 선단 파견이 중단되어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 서해안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된다. 반면 유럽은 모든 국가가 각자 독립되어 있다. 단적인 예로,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왕, 메디나 세도니아 공, 메디나 첼리 공에게 탐험을 위해 배를 내달라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마지막으로 스페인 국왕에게 호소를 하자 허락해주었다. 유럽이 중국과 같이 만성적 통일 국가였고, 군주 가운데 한 명이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도 없었을 것이다. 

만성적 분열과 만성적 통일에는 유럽과 중국의 지리적인 영향도 한 몫했다. 세계 지도를 보면 한 번에 알 수 있다. 유럽은 지리적으로 들쭉날쭉하고 큰 반도가 많으며 두 개의 큰 섬도 있다. 중국은 비교적 평탄하며 해안선도 유럽에 비해 단조롭다. 중국이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처음에는 이점으로 작용했다. 이 책에서도 지리적 장애물이 없다면 식량 및 기술의 전파에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의 연결성은 처음에는 이점이었으나 그 이후 불이익으로 작용했다. 어느 한 폭군이 당장 혁신을 중단할 것을 명령하면 온 중국에 그 명령이 쉽게 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은 세계 최초로 식량 생산을 한 지역이지만 힘의 중심 이동과 만성적 통일로 인해 유럽에게 선도자의 위치를 빼앗겼다.

 

이상으로 총, 균, 쇠의 요약을 마친다. 내용이 방대한 책이지만 총, 균, 쇠가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유라시아인이 원주민을 정복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요인은 병원균, 기술, 무기, 정치 조직, 문자 등이었다. 이런 직접적인 요인의 궁극적 요인은 바로 식량 생산이었다. 식량 생산에 유리한 사회가 병원균, 기술, 무기, 정치 조직, 문자를 보다 빨리 발전시킬 수 있었다. 어떤 사회가 식량 생산에 유리하고, 어떤 사회가 불리한지는 순전히 지리적, 생태적, 기후적 차이에 기인한다. 운 좋게도 유라시아는 식량 생산에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원주민은 식량 생산에 불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유라시아인이 원주민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인종적으로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즉,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 사회의 문명 발달은 그 사회에 속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속해 있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700쪽짜리의 방대한 총, 균, 쇠의 결론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이 책은 퓰리처상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도 받았다. 하지만 그만큼 비판적인 반대 의견도 많다. 책을 보면 논리적으로 잘 짜여 있으나 13,000년의 역사를 단 700 페이지로 요약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인 것도 사실이다. 어느 정도의 비약이 있을 수 있고, 디테일한 부분은 놓쳤을 수도 있다. 그리고 환경의 영향을 지나치게 강조한 탓에 인간의 노력은 큰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환경결정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체계적인 논리와 사고의 흐름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매번 느끼지만 그의 25년 간의 연구 결과를 단 한 달 만에 터득할 수 있다는 것도 책이 가진 장점이 아닐까 싶다. 

총, 균, 쇠는 내가 올해 읽은 비문학 중 최고의 책이다. (비문학이라 한정한 이유는 나의 최애 책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호밀밭의 파수꾼을 올해 한번 더 읽었기 때문이다.) 총, 균, 쇠 1~2부 도입부에서도 말했듯 매년 말 인류 대서사시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코스모스나 사피엔스보다 총, 균, 쇠가 개인적으로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첫 번째 이유는 코스모스, 사피엔스보다 총, 균, 쇠를 더 꼼꼼히 읽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20대가 단 이틀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읽었기 때문이다. 총, 균, 쇠에서는 13,000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를 훑어본다. 그에 비해 난 고작 30년을 살았으니 이 30년에 의미 부여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어쨌든 올해는 생산적으로 보람 있게 잘 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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