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1~2부 본문
어떻게 하다 보니 공교롭게 2019년을 마무리하는 책으로 인류 대서사시인 총, 균, 쇠를 읽게 되었다. 2017년 마무리는 코스모스, 2018년 마무리는 사피엔스였고, 올해는 총, 균, 쇠로 마무리한다. 매년 말 인류 대서사시를 읽으며 마무리한다는 게 한편으론 뿌듯하다. 내년 말엔 어떤 책을 읽을지 벌써 궁금하다. 총, 균, 쇠의 주제는 간단하지만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디테일하다 보니 1~2부와 3~4부로 나누어 정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책과는 다르게 나의 생각을 최대한 배제하고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주장하는 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서평을 갈음하고자 한다. 사실 서평이 아닌 책 요약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렇게 요약하지 않고서는 책을 다 읽고 난 뒤 내용을 까먹을 것 같았다. 제1장을 읽고 요약하고, 제2장을 읽고 요약하는 식으로 매 장을 다 읽고 요약을 하며 읽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책 읽는 속도는 다소 느렸지만 저자의 논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얄리의 간단한 질문에 답변하기 위함이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여기서 화물은 쇠, 성냥, 의약품, 의복, 청량음료, 우산 등 뉴기니인들도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물건들을 말한다. 쉽게 말해 발전된 기술의 산물이라고 보면 된다. 뉴기니인들과 평균적인 유럽인들 간 생활 양식의 격차는 아직도 심하다. 뉴기니인들과 유럽인들 사이의 격차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25년 간 연구를 했고, 그 연구의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제1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
제1장: 문명이 싹트기 직전의 세계 상황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13,000년 ~ 40,000년 전 유럽과 서아시아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살고 있었다. 두개골은 우리보다 조금 크며, 죽은 자를 매장하고 환자를 돌보았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었다. 40,000년 ~ 50,000년 전은 대약진이라 불리는 시기로 크로마뇽인이 나타났다. 크로마뇽인은 낚싯바늘, 송곳, 조각 도구, 긁개, 작살, 활과 화살, 장신구 등을 활용할 정도로 영리했다. 안전한 거리에서 동물을 죽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생겼으므로 코뿔소나 코끼리와 같은 대형동물이나 조류도 사냥할 수 있게 되었고, 낚싯줄 덕분에 물고기도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적 골격을 가진 크로마뇽인의 진입으로 네안데르탈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약진 시기는 인류의 지리적 범위가 처음으로 크게 확대되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대표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로의 범위 확대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에 사람이 살게 되었다는 것은 배가 있었다는 뜻이며,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배가 사용되었다는 증거다. 인간이 살기 시작한 후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에 살던 대형동물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반면, 아프리카나 유라시아의 대형 포유류는 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선행 인류와 더불어 수십만~수백만 년 동안 함께 진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지역의 대형동물들은 아무런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잘 발달된 사냥 기술을 가진 인류를 맞닥뜨리는 불운을 당했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대형동물 멸종에 대해서는 논쟁이 끝이 없다. 혹자는 기후 변화로 인해 멸종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대형동물들이 수천만 년 동안 기후 변화를 겪었으면서도 왜 하필 인류가 도착한 시기에 한꺼번에 죽어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대형동물의 멸종으로 인해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는 토종 가축이 한 종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대형동물이라고 해봐야 캥거루 정도가 전부다.
클로비스 유적
남북 아메리카에는 B.C. 11,000년 경부터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 바로 클로비스 유적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다섯 대륙 중 남북 아메리카에서는 선사 시대의 인류 역사가 가장 짧았다.
이런 상황에서 B.C. 11,000년 전으로 돌아간 관찰자에게 어느 대륙의 인간 사회가 가장 빨리 발전할지 예측해보라고 한다면, 쉽게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느 대륙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유라시아가 가장 빨랐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라시아 사회가 가장 빨리 발전한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고찰해보는 것이 총, 균, 쇠를 쓴 목적이다.
제2장: 환경 차이가 다양화를 빚어낸 모델 폴리네시아
환경이 먹거리에 미친 영향
폴리네시아는 중앙 및 남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1,000개 이상의 섬들을 가리킨다. 폴리네시아 섬들은 기후, 지질 유형, 해양 자원, 면적, 지형적 분열, 고립성 등의 환경적 요인이 서로 다르다. 환경 요인에 다름에 따라 식량 작물화 방법도 판이했다. 남부 지역의 경우 한랭한 기후로 인해 농업이 불가능했다. 이들은 농업을 포기하고 수렵 채집민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반면 농업에 유리한 기후를 가진 지역에서는 먹거리가 풍부했다.
인구 규모 및 밀도가 사회에 미친 영향
이렇게 환경에 따른 먹거리 변동이 심했으므로 인구 밀도 역시 각지에서 크게 달랐다. 한랭한 기후를 가진 남부 지역의 인구 밀도가 가장 낮았고, 0.4 km²에 불과한 면적에 160명이 사는 아누타 섬의 인구 밀도가 가장 높았다. (현재도 원시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300명의 아누타 인들이 살고 있다.) 정치적 단위의 인구 규모는 인구 밀도와 더불어 폴리네이사의 기술 및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조직에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크고 밀도가 높을수록 기술과 조직은 복잡해진다. 인구 밀도가 높으면 일부 인구만 농업에 전념하여 잉여 식량을 남길 수 있다. 잉여 식량이 생기기 때문에 모두가 농업에 종사해야 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농업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기술자, 관료, 무사 계급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인구 규모가 크고, 밀도가 높을수록 정치적, 경제적으로 전문화가 되었다. 전문화 정도는 면적이 넓고 인구가 밀집될수록 더 커졌다.
폴리네시아는 전 세계 대륙의 축소판
폴리네시아의 여러 섬은 이렇게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각기 달랐다. 이는 인구 규모 및 밀도와 깊은 관련이 있었고, 이는 다시 섬의 기후, 지질 유형, 해양 자원, 지형적 분열, 고립성과 관련이 있었다. 폴리네시아의 이러한 차이의 범주들은 본질적으로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나타난 것들과 일치한다. 다만 다양성의 전체가 아닌 일부만 보여주고 있고,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 차이는 있다. 그래도 이는 환경이 인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앞장에서도 그렇듯 저자는 언제나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폴리네시아 사례를 통해 환경과 인간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했지만 일반화하기에는 성급하다는 입장이다. 학자로서 굉장히 좋은 자세가 아닐 수 없다. 논리가 명확하기 않는 이상 확신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 뒤이어 등장할 내용들이 더 기대된다.
제3장: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
제3장에서는 제목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총, 균, 쇠'다.
피사로와 아타우알파의 충돌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것은 B.C. 11,000년 경이다. 그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는 큰 교류가 없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이후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 크게 충돌한 사건이 있다. 바로 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와 잉카 제국의 아타우알파가 마주친 사건이다. 총, 말, 갑옷, 쇠칼로 무장한 168명의 스페인 군대는 겨우 돌, 나무 곤봉, 손도끼, 헝겊 갑옷으로 무장한 80,000명의 아메리카 원주민을 상대로 대 승리를 했다. 168명 중 한 명의 전사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기록에 따르면 오줌을 지리는 병사가 있을 정도로 스페인 병사 모두가 두려워했다고 한다. 반면, 아타우알파의 군대인 아메리카 원주민은 기세 등등했다. 하지만 결과는 아타우알파 군대의 대참패였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생전 처음 본 말과 총에 놀라 도망가기 바빴기 때문이다.
스페인인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참패시킬 수 있었던 원인
총, 말, 갑옷, 쇠칼은 적은 수의 스페인 군대가 8만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더불어 유럽인이 아메리카를 정복할 수 있게 한 또 다른 원인은 바로 병원균이다. 스페인 이주민들이 퍼뜨린 천연두는 남아메리카의 많은 인디언을 죽게 했다. 천연두로 인해 제국의 수장도 죽게 되었다. 그러자 제위 다툼이 시작되었고, 남아메리카는 분열되었다. 만약 그러한 유행병이 없었다면 스페인인들은 하나로 단합된 제국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천연두로 인해 분열된 제국과 싸웠으므로 보다 쉽게 유럽인이 아메리카를 정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해양 기술,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 문자도 유럽인의 팽창에 일조했다. 해양 기술 덕분에 바다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올 수 있었고,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 배를 건조하고 선원을 고용하고 장비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항해에 대한 정보가 문자로 기록되고 공유되어 스페인인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제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제4장: 식량 생산의 기원
식량 생산은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따라서 각 대륙의 사람들이 농경민, 목축민이 되었느냐 말았느냐, 되었다면 그 시기가 언제였는가 하는 것은 그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2장에서 환경이 인구 밀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동식물의 가축화, 작물화를 통해 더 많은 먹거리를 얻게 되어 인구가 조밀해지는 효과들이다. 이 외에도 간접적인 영향이 있다. 가축화, 작물화를 위해서는 한 장소에 정착을 해야 한다. 정착 생활을 하면 아이를 낳는 간격을 단축시킬 수 있다. 수렵 채집민의 어머니는 거처를 옮길 때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아이의 수가 제한되었다. 하지만 정착 생활민들의 어머니는 거처를 옮길 필요가 없으므로 아이를 마음껏 나을 수 있었다. 이렇듯 농경민들은 출산율이 높고, 잉여 식량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자연스레 인구 밀도가 높아진다.
제4장은 제2장의 내용과 유사하다. 차이점이라면 제2장은 폴리네시아를 예로 들어 설명했지만, 제4장을 보다 넓은 범위에서 일반화하여 설명했다는 점이다. 아래 발췌 글이 제4장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는 곧 훨씬 더 많은 식량과 조밀한 인구를 의미했다. 그 결과 잉여 식량이 생겼고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동물을 이용하여 그와 같은 잉여 식량을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났다. 그 두 가지는 정치적으로 중앙 집권화되고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경제적으로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정주형 사회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가축화, 작물화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유라시아에서 제국, 문자, 쇠 무기 등이 제일 먼저 발달했고 다른 대륙에서는 그보다 늦어지거나 끝까지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궁극적인 원인이 된다. 말과 낙타의 군사적 쓰임새와 동물에게서 얻은 병원균의 살상력을 마지막으로, 우리가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게 될 식량 생산과 정복 사이의 여러 연광성들이 모두 드러났다.
제5장: 인류 역사가 갈라놓은 유산자와 무산자
유산자와 무산자의 불평등한 관계
유산자란 농업의 힘을 가진 민족을 뜻하고 무산자는 그렇지 못한 민족을 뜻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농업은 모든 발전의 근원이었다. 인류 역사는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불평등한 갈등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어떤 민족이 유산자가 되고 무산자가 되는지, 농업이 시작된 시기와 지역이 달랐던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봐야 한다.
식량 생산 연대를 추정하는 방법 -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
가축화, 작물화된 동식물은 야생의 동식물과 형태가 많이 다르다고 한다. 그러므로 동식물의 형태를 통해 그 시기에 그 지역에서 식량을 생산했는지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식량 생산 연대를 추정하는 방법 중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이라는 것이 있다. 물질에 함유된 탄소의 방사성을 측정해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다.
식량 생산 여부와 그 시기를 알아냈다면 그 동식물이 실제 그 지역에서 가축화, 작물화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가축화, 작물화되어 그 지역으로 전파되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그 동식물의 조상이 어디서 가축화, 작물화되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그 지역에서 그 동식물이 발견된 연대보다 훨씬 더 이전에 다른 지역에서 조상이 발견되었다면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식량 생산의 발원지
확실한 식량 생산 발생의 중심지는 서남아시아, 중국, 미국 동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일대 이렇게 다섯 지역밖에 없다. 일부 이웃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은 식량 발생의 중심지로부터 식량 생산을 배워 농경 생활을 했다. 다른 이웃 지역의 수렵 채집민은 그 핵심 지역의 식량 생산자들로 교체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식량 생산하기 좋은 환경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수렵 채집민 생활을 고수하는 지역도 있었다. 각각의 시기는 크게 달랐다. 식량 생산을 하는 민족들은 총, 균, 쇠를 발전시킬 수 있었고 무산자를 지배할 수 있었다.
식량 생산이 시작된 시기와 양상이 이처럼 지리적으로 달랐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선사 시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인 이 질문이 바로 이제부터 살펴볼 다섯 장의 주제가 될 것이다.
제6장: 식량 생산민과 수렵 채집민의 경쟁력 차이
초기 모든 인류는 수렵 채집민이었다. 그런데 왜 식량 생산이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거기에 이유가 있다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왜 B.C. 18,500년 경이 아니라 B.C. 8,500년 경에 식량 생산이 시작되었을까? 이 물음은 사실 무의미한 질문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식량 생산민이 수렵 채집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결과론적인 것이고, 모두가 수렵 채집민이던 시절에는 식량 생산민이 경쟁력이 더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수렵 채집과 식량 생산은 상호 경쟁의 대안적 방식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엄밀히 말해서 지구 상의 각 지역에서 최초로 식량 생산을 시작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농경을 선택하거나 농경을 목표로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농경을 본 적이 없었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식량 생산은 결과를 짐작하지 못하고 내린 여러 결론들의 한 부산물로서 '진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식량 생산이 왜 진화되었는지, 왜 어떤 곳에서는 진화되고 다른 곳에서는 안 되었는지, 어째서 지역마다 시기가 달랐는지, 그리고 왜 그보다 일찍 또는 늦게 시작되지 않았는지 하는 점이다.
결국 식량 생산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어쩌다 시작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경쟁력이 있어 계속 채택되었던 것이다. (왜 식량 생산이 시작되었을까? 에 대한 답)
지난 10,000년 간의 변화를 지켜보면 대체로 수렵 채집에서 식량 생산으로 전환이 되었다. 수렵 채집과 식량 생산은 상호 경쟁의 대안적 방식이었는데 어째서 식량 생산이 더 많아졌을까? 수렵 채집보다 식량 생산의 경쟁력이 더 커지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이에는 여러 요인이 있고, 학자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다음의 네 가지 요인을 들어 설명한다. 야생 먹거리의 감소,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식물의 증가, 가공, 저장하는 등 식량 생산에 필요한 각종 기술의 발전, 인구 밀도의 증가와 식량 생산의 발원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적인 관계이다. 마지막 요인인 인구 밀도의 증가와 식량 생산의 발원 사이의 상호적 관계는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와 같다. 인구 밀도가 증가해서 식량 생산이 늘었다고 볼 수도 있고, 식량 생산이 늘어서 인구 밀도가 증가했다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식량 생산의 경쟁력을 키운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상의 네 가지 요인을 종합해 보면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식량 생산이 어째서 B.C. 18,500년 경이 아니라 B.C. 8,500년 경에 시작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B.C. 8,500년 이전에는 야생 먹거리가 풍족했고,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식물도 많지 않았으며, 가공/저장하는 기술도 부족하고, 인구 밀도도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왜 B.C. 18,500년 경이 아니라 B.C. 8,500년 경에 식량 생산이 시작되었을까? 에 대한 답)
결국 식량 생산자들은 인구 밀도가 높아졌고, 기술, 병원균, 쇠 무기, 군인들로 인해 수렵 채집민들을 몰아낼 수 있었다. 굳이 총, 균, 쇠가 아니더라도 인구만으로도 몰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식량 생산에 적합한 지역에 사는 수렵 채집민은 이웃 식량 생산자들에 의해 쫓겨나거나 스스로 식량 생산을 받아들여야 하는 두 가지 운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제7장: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이 장에서는 야생 식물들이 작물화된 이유와 식물마다 작물화된 시기가 달랐던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어떻게 초기 농경민은 야생 식물을 작물화할 수 있었을까?
식물의 작물화란 곧 어떤 식물을 재배함으로써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인간 소비자에게 더 유용하도록 야생 조상을 유전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식물들의 개체가 많아지기 위해서는 종자가 멀리, 그리고 많이 퍼져야 한다. 하지만 식물 스스로 종자를 퍼뜨리기는 쉽지 않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그 종자를 멀리 퍼뜨려 줘야 한다. 이는 동물이 해당 식물의 과육을 먹고 종자를 버리던지, 배설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인간은 본인이 먹기 좋은 식물들만을 골라 먹은 결과 그 식물들의 개체 수 증가에 이바지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인간이 먹기 좋은 식물들이 멀리 퍼지게 되었다. 인간도 초기에 의식적인 계획에 의해 작물화하지는 않았다. 무의식적인 자연선택에 의해 초기 작물화가 이루어졌다.
위에서는 무의식적인 자연선택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의식적인 자연 선택도 있었다. 초기 야생 식물들 중 인간이 먹을 수 없는 것도 많았다. 그중 몇 개의 개체에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돌연변이가 발생했을 것이다. 인간은 이 돌연변이를 의식적으로 선택해 키웠다. 자연스럽게 돌연변이가 원종보다 개체 수가 많아지는 결과가 발생했다.
농작물마다 작물화 시기가 달랐던 이유
농작물마다 작물화 시기가 서로 달랐던 이유는 각 농작물마다 작물화 난이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10,000년 전에 작물화되었던 밀, 보리, 완두콩 등은 그냥 뿌려두면 알아서 자랐고, 성장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큰 노력 없이도 작물화를 하기 쉬운 종이 었다. B.C. 4,000년 경에는 올리브, 무화과, 석류, 포도 등이 작물화되었다. 이런 농작물들은 최대 생산량을 거두려면 10년가량을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이런 농작물을 재배한다는 것은 정착하여 촌락 생활에 완전히 몸을 맡기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다음으로 늦게 작물화된 것들은 사과, 배, 체리 등이었다. 이 농작물들은 접목법이라는 까다로운 기술로 재배해야만 했다. 이렇듯 농작물마다 작물화 시기가 달랐던 것은 작물화 난이도 및 농작 기술과 관련이 있다.
야생 식물이 농작물로 진화하게 된 과정은 처음에는 무의식적이었다. 즉, 우리가 야생 식물의 여러 개체 중에서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밭에서 재배되는 식물 개체 사이의 경쟁은 야생 상태에서와는 또 다른 개체들에게 유리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진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 중략...
인위 선택에 의한 이 농작물 개발의 원리는 바로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제8장: 작물화하는 데 적합한 식물의 식별과 성패의 원인
어떤 지역은 유독 작물화가 잘 된 반면, 어떤 지역은 작물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지역마다 작물화의 성패가 달랐던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는 장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 식물군의 이점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불리는 서남아시아 일대는 식량 생산이 가장 풍성한 지역이었다. 지중해성 기후이며, 식물종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캘리포니아,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서남부,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도 지중해성 기후를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농업이 제대로 시작되지 못했다. 같은 지중해성 기후를 가졌음에도 초승달 지대가 유독 농업 생산이 활발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초승달 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지중해성 기후대가 있으면서 계절별 연도별 기후 변화가 가장 큰 지역이다. 또한 고도 및 지형의 변동이 심하다. 이 말은 환경이 다양해 농작물도 다양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초승달 지대는 다른 지역들과 달리 수렵 채집 생활의 경쟁력이 약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른 지역보다 초승달 지대의 작물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얄리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뉴기니인과 기술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전에 뉴기니인과 농업 간의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뉴기니의 토착적인 식량 생산에 한계가 있었던 것은 뉴기니인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모든 것은 뉴기니의 생물상과 환경 때문이었던 것이다.
결국 어떤 지역에서의 작물화 성패 여부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달린 게 아니라, 그 지역의 환경에 달린 것이다.
제9장: 선택된 가축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문장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이 말은 가축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가축화가 성공하려면 수많은 실패 요인이 없어야 한다. 7~8장이 작물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9장은 가축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작은 동물은 큰 동물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졌으므로 이 장에서는 대형 포유류만 다룬다.
참고로 대형 포유류라 하면 일반적으로 몸무게 45kg 이상의 포유류를 말한다. 주요 5종의 가축화된 대형 초식 포유류는 소, 양, 염소, 돼지, 말이다. 닭은 대형 포유류가 아니므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고대 대형 포유류 14종이 유라시아에 집중된 이유
고대 대형 포유류 14종 중 13종이 유라시아에서 가축화되었다. 다른 지역보다 유라시아에 유독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유라시아 지역에 절대적으로 포유류 수가 많았다. 땅도 넓거니와 생태학적으로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가축화된 비율 역시 다른 대륙에 비해 유라시아가 높았다. 이는 질병으로 인해 다른 대륙에서는 가축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리적, 생태학적 조건으로 인해 유라시아에서 유독 많은 가축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는 4,500년 전에 이미 끝났다. 그때까지 148종에 달하는 전 세계의 대형 포유류가 모두 가축화 시험을 거쳤을 텐데, 그중에서 몇 종만이 시험을 통과했고 나머지는 다 가축화에 부적합했을 것이다.
모든 야생 동물은 한 번쯤 가축이 될 기회가 있었다. 그중에서 일부는 이미 오래전에 가축이 되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과거에 어떤 사소한 문제 때문에 실패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야생 상태로 남아 있을 운명인 듯하다.
가축화 실패 요인
다시 말해 148종의 대형 포유류 중 14종만이 가축화 시험에 통과했다. 나머지 134종은 어떤 이유로 이 시험에서 떨어졌을까? 가축화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에 의해 많은 특성을 갖추어야 한다. 이 필수적인 특성들 중 단 한 가지만 결여되어도 가축화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가축화 실패 요인은 대표적으로 6가지가 있다.
- 식성: 생물자원의 효율은 대게 10% 수준이다. 즉, 450kg의 소를 키우려면 4,500kg의 옥수수가 필요하다. 더구나 450kg의 육식 동물을 키우려면 45,000kg의 옥수수를 먹고 자란 4,500kg의 초식 동물이 필요하다. 간단한 산수만으로도 450kg의 초식 동물을 키우는 것이 450kg이 육식 동물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근본적인 비효율성 때문에 육식 동물은 단 1종도 식용으로 가축화되지 못했다.
- 성장 속도: 가축은 빨리 성장해야 한다. 고릴라나 코끼리는 다 자랄 때까지 15년이나 기다려야 하므로 가축화에 부적합하다.
- 감금 상태에서 번식시키는 문제: 남이 보는 앞에서 짝짓기를 하지 않는 동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치타가 그렇다. 많은 개체를 감금해놓아도 번식을 하지 않는다면 가축화를 할 수가 없다.
- 성격: 회색곰, 아프리카 들소, 하마, 얼룩말처럼 사나운 동물은 사육사가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 때문에 당연히 가축화에 적합하지 않다.
- 겁먹는 버릇: 지나치게 예민한 동물들은 감금 상태로 관리하기가 어렵다. 가젤이 그러한 경우이다. 걸핏하면 정신없이 내닫고 벽이건 뭐건 닥치는 대로 들이받는 습성이 있다.
- 사회적 구조: 무리를 이루어 살고 무리 사이에 위계질서가 있는 동물이어야 가축화가 쉽다. 이러한 사회적 동물은 서로 잘 싸우지 않으므로 한꺼번에 많이 모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유라시아인들에게는 기타 대륙 사람들에 비해 가축화할 만한 대형 야생 초식성 포유류가 훨씬 더 많았다. 그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유럽 사회가 대단히 유리해진 것은 바로 포유류의 지리, 역사, 생태 등 세 가지 기본적인 현실 때문이었다. 첫째, 유라시아는 그 넓은 면적과 생태학적 다양성에 걸맞게 처음부터 후보종 수가 가장 많았다. 둘째, 오스트레일리아와 남북 아메리카는 홍적세 말기에 닥친 엄청난 멸종의 파도 속에서 대부분의 후보종을 잃고 말았지만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앞의 두 대륙에서는 그 포유류들이 인류의 진화사에서 상당히 늦은 시기, 즉 우리의 사냥 기술이 이미 고도로 발달했을 때에 갑작스럽게 인간들 앞에 노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기서 살아남은 후보종 중에서도 유라시아의 경우에는 기타 대륙에 비해 가축화에 적합한 동물들의 비율이 높았다.
제10장: 대륙의 축으로 돈 역사의 수레바퀴
10장에선 유라시아가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에 비해 농업 경쟁력이 우수했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설명한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대륙의 축이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 방향으로 긴 반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대륙은 남북 방향으로 길다. 같은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들은 낮의 길이나 계절의 변화가 똑같다. 그리고 질병, 기온, 강수량, 생물 형태 등도 비슷하다. 이런 이유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농작물들은 동서 방향의 다른 지역으로 쉽게 전파가 되었다. 같은 위도상의 다른 지역들 역시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 동일한 농작물을 키우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북 방향으로는 농작물의 전파가 쉽지 않았다. 낮의 길이, 계절의 변화, 기온, 강수량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북쪽 지역에서는 잘 자라는 농작물이 남쪽 지역에서는 잘 자라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차이점들을 지적한다고 해서 반드시 분포 지역이 넓은 농작물일수록 더 우수하고, 또는 그 차이점들을 보면 유라시아의 초기 농경민들이 훨씬 현명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차이점들은 다만 남북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축의 방향과 대조되는 유라시아 축의 방향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 축들을 중심으로 회전했던 것이다.
이상으로 1부와 2부를 요약해봤다. 사실 1~2부보다 3~4부에 더 핵심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있을 것 같다. 논리적인 전개가 뛰어난 책이라 그런지 요약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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