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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Baek Kyun Shin 2020. 3. 8. 22:28

군 시절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었고, 2016년에 두 번째로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 2번을 더 읽어 총 4번 읽었다. 솔직히 맨 처음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을 때는 그리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그런 가벼운 연애 소설만 같았다. 이번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순전히 [상실의 시대]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재작년에 처음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땐 주인공인 와타나베의 담담함과 소설 전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인상 깊다고 생각은 했다. 평온함과 담담함,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고뇌를 아름답게 그려낸 소설이며, 20대 초반인 누군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소설이라고 느꼈었다. 그러나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었을 때는 왜 사람들이 하루키를 극찬하는지, [상실의 시대]를 극찬하는지 몰랐다. 소설을 지배하는 분위기가 참 인상 깊고 좋다는 건 느꼈지만 '이렇게까지 하루키를 극찬할만한 정도인가?'에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 초에 침대에 누워 있다가 '문학이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책장을 바라봤는데 가장 처음 눈에 띈 책이 [상실의 시대]였다. 아무 이유 없이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읽으니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상실의 시대]를 극찬하는 이유를 말이다. [상실의 시대]가 한창 인기 있을 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와타나베의 말투와 행동을 따라 하는 현상이 많았다고 한다. 그 정도로 와타나베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큰 인상을 남긴 것이다. [상실의 시대]가 다른 고전들처럼 삶의 지혜를 준다거나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설다운 소설이고, 문학다운 문학임은 확실하다. 입을 다문 채 눈을 가늘게 뜨며 읽게 되는 소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확실히 글쟁이인 면모가 있다.

내가 침대에서 우연히 [상실의 시대]를 꺼내어 다시 읽지 않았더라면 아마 평생 [상실의 시대]가 이렇게까지 좋은 책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적은 책을 읽더라도 양서를 여러 번 읽는 방향으로 독서법을 바꿔볼까 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개츠비가 가난한 군인이었을 때 데이지를 처음 봤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데이지는 상류층이었다. 그녀와의 사랑을 유지하고 싶었던 개츠비는 자신의 신분을 숨겼고, 자신이 막대한 부를 가지고 있다고 거짓말한다. 개츠비가 해외 파병을 갔을 때 데이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부유하고 건장한 톰 뷰캐넌과 결혼하게 된다. 개츠비는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굉장한 돈을 벌어 들여 그녀의 집이 보이는 곳에 거대한 저택을 짓고 매 주말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 개츠비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것, 그녀의 집이 보이는 곳에 집을 지은 것, 매 주말마다 화려한 파티를 연 것은 모두 데이지와의 재회를 위해서였다. 개츠비는 드디어 데이지와 재회를 하지만 데이지에겐 톰 뷰캐넌의 속물성이 녹아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갑자기 그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전에는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끝없는 매력, 그 딸랑거리는 소리, 그 심벌즈 같은 노랫소리.... 하얀 궁전 속 저 높은 곳에 공주님이, 그 황금의 아가씨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했다. 데이지가 톰 뷰캐넌을 사랑했었다는 말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지만 데이지의 뺑소니를 자신이 뒤집어쓰기로 할 정도로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 개츠비를 배신하고 톰 뷰캐넌과 작당모의를 하는 데이지를 지키기 위해 밤을 세기도 한다. 그런 그를 향해 닉 캐러웨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 인간들은 썩어 빠진 무리예요. 당신 한 사람이 그 빌어먹을 인간들을 모두 합쳐 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

개츠비가 죽고 난 뒤, 닉 캐러웨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개츠비를 밀매업자, 사기꾼, 뺑소니범, 살인자, 남의 부인을 빼앗으려는 간통한 자라고 비판한다. 개츠비를 비판하는 모두는 개츠비가 그들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책의 맨 처음 닉 캐러웨이의 아버지가 한 말이 자연히 떠오르게 된다.

이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였다. 주인공은 개츠비이지만 화자는 닉 캐러웨이라는 개츠비의 친구다. 닉 캐러웨이는 감정에 쉽게 휘말리지 않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인물이다. 만약 이 소설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개츠비가 화자였다면 허풍과 자기 합리화가 가득한 서술이 되었을 것이다. 개츠비는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순고 지순한 인물이지만 스스로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면모가 있다. 한 여자와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과정을 합리화했다. 그런 개츠비가 화자가 아니고, 닉 캐러웨이가 화자로서 모든 사건을 서술해주는 것은 이 소설의 위대함을 더하는 요소다. 중간에 머틀 부인의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닉 캐러웨이에 의해 묘사된다. 닉 캐러웨이는 사건의 객관적 사실을 서술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계속 말해준다. 이 부분 역시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하지만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는 닉 캐러웨이의 생각을 내레이션 해주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빠져있었다. 개인적으로 영화도 재밌게 봤지만 닉 캐러웨이의 내레이션이 너무 빠져있는 부분은 많이 아쉬웠다. 

위대한 소설이라 내가 감히 아쉬운 점을 말하기는 그렇지만, 굳이 꼽자면 아쉬운 점이 딱 한 가지 있다. 개츠비의 죽음의 비극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영화처럼 닉 캐러웨이 이외에 아무도 장례식에 찾아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싶다.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개츠비의 아버지, 목사, 올빼미 안경을 낀 남자가 찾아왔다. 개츠비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해주기 위해 개츠비의 아버지를 등장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도 개츠비의 위대함이 전혀 손실되지 않는다. 아버지, 목사, 올빼미 안경을 등장시킴으로써 장례식의 비극을 감소시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부분이 좋은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차라리 아무도 오지 않았고 닉 캐러웨이만 개츠비의 옆을 지켰다면, 닉 캐러웨이가 여기저기 다 전화를 해봤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죽음의 비극을 더 커졌을 것 같다.

내 책장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호밀밭의 파수꾼] 옆에 나란히 꽂혀있다. 어쩌다 보니 두 책 모두 4번씩 읽게 되었다. 얇지만 유독 눈에 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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