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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 지능에 관하여

Baek Kyun Shin 2020. 4. 1. 19:56

이 책은 앨런 튜링의 논문 2편과 강연 2개, 에세이 1개를 엮은 책이다. 앨런 튜링은 영국 출신의 수학자였다. 그는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컴퓨터 과학, 인공지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했을 때는 1940~1950년 즈음이다. 지금으로부터 70~80년 전이다. 그때부터 그는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했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쓰지는 않았고, 지능을 가진 기계(Intelligent Machinery)라고 표현했다. 이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인공지능과 거의 흡사하다. 

이 책을 읽으며 튜링에 대한 생애가 궁금해 그와 관련된 팟캐스트를 찾아들었다.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어려서부터 수학에 타고난 그는 이른 나이에 펠로우 교수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정부의 요청에 따라 독일군의 애니그마라는 암호 해독을 맡았다. 튜링 기계를 통해 암호 해독을 했고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튜링이 애니그마 암호를 해독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을 몇 년이나 빨리 종식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동성애로 구속되어 화학적 거세라는 처벌을 받았다. 당시 영국에선 동성애가 불법이었다. 호르몬 치료를 받던 중 튜링은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 물어 안타깝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다른 얘기긴 하지만, 애플의 로고가 튜링이 베어 문 사과를 염두한 게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뉴턴의 사과를 연상해 로고를 만들었다고 했다. 

1. 지능을 가진 기계

우리는 인간이 (만일 기계라면) 막대한 개입을 겪는 기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개입은 예외라기보다는 규칙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자주 소통하며 시각 자극을 비롯한 여러 자극을 끊임없이 받는데, 이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개입이다. 그가 개입 없는 기계와 비슷해지는 경우는 이런 자극이나 '주의 산만'을 없애려고 '몰두'할 때뿐일 것이다.

이렇게 말한 튜링의 주장에 일부 공감한다. 인간도 결국엔 input을 받아 output을 출력하는 기계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졸리면(input) 잔다(output). 배고프면(input) 밥을 먹고(output), 화가 나면(input) 소리를 지르고(output), 혼이 나거나 매를 맞으면(input) 행실을 똑바로 바꾼다(output). 우리는 스스로의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전혀 자유 의지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도 일종의 착각이다. 뇌 속의 뉴런에 의해 기계적으로 통제되는 것이다. 생각을 하고, 감동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는 것도 모두 뉴런의 통제를 받는다. 생각하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는 것 모두 뉴런이 외부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행동이나 생각은 철저히 기계적이다. 바꾸어 말하면 기계가 인간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나 생각이 기계적인 프로세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반대로 기계가 인간을 흉내 내는 것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계를 어떻게 인간처럼 만들 수 있을까? 갓난아이도 태어나자마자 어른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로부터 배우며 자란다. 나쁜 행동을 하면 부모님께 혼나고 매를 맞는다. 그럼 다음번부터는 나쁜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좋은 행동을 하면 칭찬을 받는다. 그럼 다음부터는 그 행동을 더 하게 된다. 지나치게 단순화했지만 이런 패턴으로 아이들은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한다. 기계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기계에게 처벌과 포상을 하면서 어른 기계로 만드는 것이다. 어른 기계란 결국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지능 기계다.

지능 기계를 만들고자 한다면, 또한 인간 모형을 최대한 흉내 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정교한 작업을 해내거나 (개입의 형태를 띤) 명령에 똑바로 반응하는 능력이 거의 없는 기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다음 알맞은 개입을 구사하고 교육을 모방함으로써 일정한 명령에 대해 일정한 반응을 어김없이 나타낼 수 있을 때까지 기계를 변경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교육 과정의 시작일 것이다.
우리의 의도는 기계의 행동이 틀렸을 때 고통 자극이 일어나고 옳았을 때 쾌락 자극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교사'가 적절한 자극을 신중하게 가하면 '성격'은 바람직한-즉, 잘못된 행동이 감소하는-쪽으로 수렴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기계가 지능적 행동을 나타내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으며 인간 뇌와의 유추를 지침으로 삼았다. 인간 지능의 잠재력이 실현되려면 적절한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지적되었으며 탐구는 이와 비슷한 교육 과정을 기계에 적용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인간을 학습시키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기계를 학습시킨다는 뜻이다. 고통 자극과 쾌락 자극을 통해 기계가 올바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즉, 지능을 지닐 수 있도록) 학습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머신러닝(기계 학습)의 방법론과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이다. PC가 널리 보급되기도 전에 튜링은 머신러닝, 인공지능의 시초가 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2. 계산 기계와 지능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은 1950년에 철학 저널 Mind에 발표한 논문이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흉내 게임을 잘할 수 있는 상상 가능한 디지털 컴퓨터가 있을까?"로 바꿔야 한다.

흉내 게임이란 컴퓨터가 인간을 흉내 낼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는 게임을 뜻한다. 이는 '튜링 테스트'라고도 불린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컴퓨터라면 생각을 할 수 있다고 간주해도 된다는 게 앨런 튜링의 주장이다. 튜링 테스트는 간단하다. A라는 디지털 컴퓨터와 B라는 사람이 각각 독방에 있다고 하자. C라는 사람 역시 A, B와 분리된 독방에 있다. 이때 C는 A와 B에게 질의응답을 할 수 있다. 다만 질의응답은 컴퓨터 문자를 통해 하게 된다. 이때 C라는 사람이 봤을 때 A가 사람인지 B가 사람인지 구분을 못한다면 디지털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튜링이 이 주장을 하자 당연히 여러 반론들이 있었다. 인공지능이 상당히 발전한 현시대에도 기계가 생각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적은데 그때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반박을 필요로 할 만큼 탄탄하지 못한 반론들도 많았지만 제퍼슨 교수는 가장 훌륭한 반론을 제기했다.

기계가 우연한 기호의 조합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각과 (자신이 느낀) 감정을 바탕으로 소네트나 협주곡을 쓰지 못하는 한, 기계가 뇌와 동등하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 말은 단순히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작품을 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튜링의 논변은 이렇다.

이 견해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에 따르면 기계가 생각한다고 확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계가 되어 자신이 생각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다.... 중략... 마찬가지로 이 견해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유아론적 관점이다. 가장 논리적인 견해일 수야 있겠지만 이래서는 소통하기가 힘들다. A는 'A는 생각하지만 B는 생각하지 못한다'라고 믿는 반면에 B는 'B는 생각하지만 A는 생각하지 못한다'라고 믿을 수 있다. 우리는 대개 이 문제를 놓고 끝없이 논쟁하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생각한다는 예의 바른 통념을 받아들인다.

사실 100% 받아들일 수 있는 논변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로봇이 아니고 진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가 로봇인데 사람처럼 흉내 내는 것인지 어떻게 알 것인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증명할 방법은 없다.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단지 그가 글을 쓰고, 말을 하고, 감동하고 나와 비슷하게 행동하니 그 역시 '생각'하는구나 믿는 것이다. 기계가 생각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튜링의 답은 이렇다. 기계가 사람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사람도 그것을 구분할 수 없다면 기계가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3. 지능을 가진 기계라는 이단적 이론 & 4. 디지털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을까?

제 주장은 인간 정신의 행동을 매우 비슷하게 흉내 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말은 곧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기계가 정한 기준에 맞게 지능을 유지하려면-이를테면 기계가 하는 말을 알아들으려면-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기계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우리의 하찮은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죽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기계는 서로 대화하면서 지혜를 닦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단계가 되면 우리는 새뮤얼 버틀러의 [에레혼]에서 묘사하듯 기계가 주도권을 쥐는 상황을 예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하는 기계'가 머지않아 나타날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기계라는 이 새로운 위험은 훨씬 가까이 와 있습니다. 만일 이 가능성이 실현된다면 그 시점은 다음 천 년 이내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아직 멀었지만 천문학적으로 멀지는 않습니다. 근심거리인 것은 분명합니다.

나는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도 많이 하고 있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생각하는 기계'가 나타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 당장은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기에 한계가 많다. 하지만 기술 발전 속도는 기하급수적이기 때문에 당장 5년 뒤, 10년 뒤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인 건 확실하다. 다시 생각해봐도 70~8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참 대단하다.

생각의 전체 과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신비롭지만,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우리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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