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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까뮈] 이방인

Baek Kyun Shin 2019. 3. 28. 21:44

 2년 전 군 시절 읽었던 이방인을 한 번 더 펼쳐봤다. 이렇게 짧은 분량으로 이렇게 크게 뇌리를 흔들 수 있는 작품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아래의 구절로 시작한다.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오늘인지 어제인지 정확히 모르는 의식의 단절이다. 그리고 사장에게 휴가를 청하며 사장이 싫어하는 눈치를 주자 이렇게 말한다.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그렇다. 어머니가 죽은 것이 뫼르소의 탓은 아니다. 혹자는 이를 보고 희대의 패륜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머니는 죽었고 그것은 뫼르소의 탓이 아니며, 두 사실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한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 중 잠깐 바깥바람을 쐬며 이렇게 생각한다.

 오랫동안 야외에 나가 본 일이 없던 나는, 어머니 일만 없었다면 산책하기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된 장례가 다 끝난 뒤에는 ' 그 밖에 생각나는 것은 ...중략... 버스가 마침내 빛나는 알제시가지에 다다라 이제는 드러누워 실컷 잠을 잘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의 기쁨, 그러한 것들이다.' 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날은 해수욕을 즐기며 마리와 정사를 나눈다. 도덕적 폐륜아인가 솔직하고 순수한 영혼인가..
 그렇게 무의미한 부조리 안에서 무의미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와중 뜨거운 태양 아래서 아랍인을 만난다. 아랍인은 뫼르소에게 신경이 쓰이게 한다. 땀과 태양은 뜨겁게 흘러내린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 뫼르소는 아랍인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살인죄로 법정공방을 하는데 뫼르소는 아무말을 못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일인데 정작 본인은 아무 말을 하지 못한채 듣고만 있는다. 간혹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판사나 배심원들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웃음을 터뜨린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뫼르소는 '그래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거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죽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러나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아래와 같이 생각한다.

 내가 죽은 뒤에는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릴 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죽고 나면 사람들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일은 생각하기 괴로운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사람이란 결국 무슨 생각에든지 나중에는 익숙해지고 마는 법이다.

 부조리하게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은 언젠간 다 사형선고를 받을테고 일찍 받느냐 늦게 받느냐는 중요치 않기 때문이다. 독방에 있는 뫼르소에게 신부가 찾아온다. 만나기를 여러번 거절했으나 계속 찾아오기에 한 번 만나준다. 뫼르소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부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믿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본인은 믿지 않을 뿐이다. 타인이 어떠한 행동이나 생각을 하든 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행동을 취하든 그것은 본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고,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뫼르소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다. 그리고 사형선고까지 내렸다. 뫼르소는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어머니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밀크커피를 받아마셨다. 어머니를 사랑했다는 것과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에 대해 뫼르소가 폐륜아라고 비난한다. 그래도 뫼르소는 행복하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언제나 또 옳으리라.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하고 저런 것을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지만 이러저러한 다른 일은 했다. 그래 어떻단 말인가?

뫼르소는 사회화하지 않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그리고 어쩌면 가장 행복한 자발적 이방인이다.

 

2017.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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