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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유

[칼세이건] 코스모스

Baek Kyun Shin 2019. 4. 2. 18:44

7월 30일 글을 쓰고 5개월 만에 다시 깜박이는 커서를 마주하고 있다. 5개월간 시험 공부를 하느라 책을 거의 못 봤다. 오랜만에 여유가 있어 읽고 있던 코스모스를 다 읽었다. 지금은 12월 31일 00:27 이다. 17년 마지막 날이다. 어쩌다 17년도 다 지나갔다. 17년의 마지막 날이기에 의미를 부여할 법한데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오늘 마저 다 읽은 코스모스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칼세이건은 인류, 인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하기는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하루 종일 날갯짓을 하다 가는 나비가 하루를 영원으로 알듯이, 우리 인간도 그런 식으로 살다 가는 것이다.

지구는 광활한 우주에서 극히 미미한 점에 불과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싸우고 지지고 볶고 살고 있다. 그 하찮은 인류는 그 작은 공간에서 신기술을 개발하고, 수 많은 이론을 적립하고, 전쟁을 하고, 사랑을 하고, 시를 쓰고, 여행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스트레스를 받고, 병을 앓고, 기뻐하고, 웃고, 울고… 그렇게 살아간다. 수 많은 과학자, 철학자, 정치인이 태어나고 죽는다.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도 때가 되면 죽어 저 땅에 홀로 묻힌다. 인간이라는 생물로 태어난 이상 겪어야만 하는 인생의 흐름이다. 광활한 우주를 생각해볼 때 우리는 굳이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울 필요가 있나. 굳이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나.

여기까지 보면 '코스모스'가 니힐리즘에 관련된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니힐리즘이라기 보단 인간의 오만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행동들에 대한 인식이라고 보면 되겠다. 인간은 너무나 많은 불필요한 행동과 생각을 하고 있으며, 불행하게도 그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행태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나 역시 그러고 있는 걸 마주하곤 한다.

이 책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인류사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을 담고 있으며 더불어 위와 같은 철학적 생각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때로는 지루한 책도 있고, 읽고 난 후의 깨달음을 위해 읽는 과정을 인내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여타 다른 책과는 달랐다고 자부한다. 한 번은 케플러 부분을 읽으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새벽 1시 반까지 읽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지구과학시간에 표면적 지식으로만 습득했던 내용을 전체적인 맥락, 케플러 개인에 대한 사적인 내용과 접목을 하니 읽어가는 재미가 있었다. 고등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지구과학을 배우느니 일주일 동안 이 책 한 권만 읽는 게 훨씬 도움이 되겠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매력 있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천문학, 인류에 대한 칼세이건의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대중 교양서로써 돈을 벌기 위해 쓴 것은 아닌 것 같다. 칼세이건은 천문학의 발전을 간절히 갈망하고, 인류 전체를 (여기서 말하는 인류는 우주에 있는 타 인류, 소위 외계인도 포함한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케플러 처럼 천문학의 비약적 성장을 이룩치는 못 했을지라도 대중에게 천문학의 가치와 흥미를 알게 해준 사람이다. 나도 처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코스모스'를 단순히 천문학 교양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무의미'의 의미를 알게 해주고, 천문학적 호기심을 더 키워주고, 인류의 어제와 내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유시민 작가가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들고 가고 싶은 책으로 '코스모스'를 선정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주란 무엇인가.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에 대해 난 죽을 때까지 해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주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스스로 고민하다보면 정말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오늘은 17년의 마지막 날이고, 우주는 계속 팽창을 하고 있고, 우주 어딘가 외계생명체는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별들이 태어나거나 죽고 있을 것이다.

2017.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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