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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유

[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Baek Kyun Shin 2019. 4. 1. 23:26
우리는 무의미한 우주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무의미한 우주에서 신은 있다고 해봐야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며, 최악의 경우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불쾌한 사실을 나열해놓고 말하기는 좀 이상하지만, 실존주의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반허무주의적인 철학이다.
–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
인간은 의자나 바위처럼 고정된 존재가 아니고, 끊임없이 변하며 무언가가 되어가는 불확정하고 불명확한 존재다. 우리는 모두 자유로우며, 자유롭기를 그만둘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

4년 전 니체에 빠졌었던 적이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비극의 탄생] 등 니체의 저서를 탐닉하며 그의 생철학을 즐겼을 때였다. 그때는 실존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니체의 철학에 매료되었을 뿐이다. 1년 후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는데 사고의 큰 흐름이 미세하게는 차이가 있지만 니체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 후 실존철학이 무엇인지 이론이 아닌 실질적 의미로써 받아드릴 수 있었다. 이에 실존주의의 철학적 개념을 더 탐구하고자 아래의 두 권의 책을 읽었다. 게리 콕스의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 그리고 실존주의의 대가인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두 권의 책은 실존주의의 이론을 정립할 수 있는 얇지만 좋은 책이다.

각설하고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를 압축해 말한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은 인간이 먼저 세계 속에 실존하고, 만나지며, 떠오른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정의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고대 플라톤이 내세운 주장과는 정반대된다. 플라톤은 현상 위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는 완벽한 원을 볼 수 없으며, '원'이라는 개념은 이상 속에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즉, '실존 위에 본질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무엇이 진리인지는 아무도 모를테지만 난 실존주의를 더 좋아한다. 실존주의가 맞다는 말이 아니다. 실존주의가 틀릴 수도 있으나 더 의미 있는 철학이라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해석해 관념론을 의미의 철학, 실존주의를 무의미의 철학으로 오인하는 사람도 있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부조리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실존주의가 오히려 더 의미의 철학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은 우선 존재하는 것이고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기에 스스로 그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대통령이든 청소부이든 그것은 큰 의미가 없고 아무것도 아니며 그저 난 자유롭다. 결국 실존주의는 의미가 없기에 의미 있다. 다음과 같은 사르트르의 말이 이를 잘 대변한다.

여러분이 보시는 것처럼 실존주의는 결코 정적주의 철학으로 고려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존주의는 인간을 행동을 통해서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실존주의는 인간에 대한 비관적인 묘사로도 고려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의 운명이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점에서 이것보다 더 낙관적인 이론은 없기 때문입니다.
–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2017.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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