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3~4부 본문
철학과 굴뚝청소부 1~2부에 이어 3~4부를 정리해본다. 1~2부에서는 대륙의 이성주의와 영국의 경험주의를 다루었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버클리, 흄이 여기에 속한다(이 책에선 라이프니츠가 빠져서 아쉽긴 하다).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이 서로 다르면 양자가 동일한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을 바탕으로 1~2부를 설명했다. 3~4부에서도 계속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3~4부에서는 독일 고전철학자 칸트, 피히테, 헤겔과 근대철학의 해체자 맑스, 프로이트, 니체를 다룬다. 이 포스팅에선 니체 정리는 뺐다. 니체는 하도 많이 다뤄서 여기서까지 중복해서 다루진 않았다.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근대철학과 현대철학 일부(언어학, 구조주의, 포스트 구조주의)를 다룬다. 푸코나 들뢰즈와 가타리를 설명하는 현대철학 파트도 재밌지만, 내겐 근대철학만큼 흥미있진 않다. 구조주의나 포스트 구조주의도 각잡고 재미를 붙이면 흥미있을 내용이긴 하다. 그런데 '각'잡기가 좀 귀찮다. ^.ㅠ 그래서 포스팅으로 정리할 땐 근대철학까지만 썼다.
근대철학의 해체자들도 근대철학자로 포함한다면, 근대철학자는 데카르트부터 니체까지다. 데카르트는 1600년대에 활동한 사람이고, 니체는 1900년에 죽었다. 따라서 근대철학은 1600년부터 1900년까지라고 볼 수 있다. 근대철학 300년간의 천재들의 사유를 따라가는 게 꽤나 재밌다. 더군다나 다른 책과 다르게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을 중심으로 각 철학을 설명한다. 바로 이 점이 『철학과 굴뚝청소부』의 특징이자 흥미를 끄는 점이다.
제3부 독일의 고전철학 : 근대 철학의 재건과 '발전'
1. 칸트 : 근대 철학의 재건
근대철학의 위기와 칸트철학
앞서 흄은 근대철학을 붕괴했다고 말했다. 칸트가 철학 작업을 시작하는 곳이 바로 이 붕괴와 해체의 지점이다. 애당초 칸트가 발 딛은 곳은 이성주의 철학이다. 곧, 칸트는 이성이 진리를 인식하는 타고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체가 이성의 자명한 출발점이 아니며, 진리에 이르기에는 지극히 취약한 기초라는 흄의 비판을 받아들인다. 그는 "흄의 비판을 통해 독단주의의 잠에서 깨어났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주체 자체나 진리를 인식하는 주체의 능력이 사실은 근거 없는 독단이라는 이야기다. 칸트는 처음부터 질문을 다시 했다.
칸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이전에는 주체라고 표현했는데, 칸트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인간에 대해,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질문을 다룬 책이 <순수이성비판>, 두 번째 질문을 다룬 책이 도덕에 관한 <실천이성비판>, 세 번째 질문을 다룬 책이 인간의 목적개념을 다룬 <판단력비판>이다.
결국 이 세 가지 질문은 인식-행동-목적이라는 활동이 인간이라는 주체에 의해 근거지어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칸트는 이렇게 함으로써 '주체'라는 지반에 새로이 기초공사를 하려고 한다. 주체, 즉 신에게서 독립한 '인간'이 진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철학이나 과학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붕괴된 주체를 어떻게 위기에서 구해낼 것인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참된 지식이나 진리를 어떻게 기초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근대철학자 칸트가 보기엔 가장 시급하고 절박했다. 근대적 주체로서의 인간과 진리를 확고하게 재건해 근대적 사고의 기반을 다시 다지고, 근대철학을 위기에서 구하리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칸트는 주체(인간)는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칸트철학이 영광을 누릴 수 있던 까닭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그는 위기에 처한 근대철학을 구해내 튼튼한 기초 위에 재건함으로써 근대적인 사고의 기반을 확고하게 해줬다.
근대적 문제설정의 재건
그렇다면 칸트는 어떻게 근대철학의 기초를 재건했을까?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진리' 개념의 전환과 재건이다. 흄은 귀납론과 인과법칙을 부정했다. 이렇게 되면 경험으로 참된 지식을 얻지 못한다. 곧, 진리는 경험을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 이게 칸트가 받아들인 흄의 비관적인 결론이다.
또한 칸트는 사물자체와 현상을 구별했다. 사물자체란 사물의 참모습이다. 현상이란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사물의 겉모습이다. 사물자체는 감각기관으로 인식할 수 없는 실체다. 진리를 사물자체와 일치하는 지식이라고 한다면 진리는 불가능하다. 사물자체는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제까지 진리를 대상에서 구하려는 노력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사람의 눈으로 사물자체를 볼 수 없는데 진리가 사물자체에 있다면 어떻게 지식, 진리에 도달하겠는가? 우리의 지식은 모두 '현상'에 대한 것이다. 요컨대 인식대상은 현상이다. 현상은 인식하는 주체가 만든 것이다.
칸트는 사물자체를 연구하지 말고 현상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진리는 대상에서 찾을 게 아니라 대상을 만드는 우리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대상이 인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식이 대상을 만든다는 생각, 진리는 대상에서가 아니라 주관(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전의 생각을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이를 두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두고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이 그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다가, 코페르니쿠스에 이르러 우주의 중심은 다른 데(태양)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칸트는 이러한 발상의 전환을 여기에 비유했다.
칸트철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선험적 종합판단'이다. 선험적이라는 건 '경험적'이란 말과 반대다. '경험적인 것'이란 경험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반면 '선험적인 것'은 경험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 가령 '모든 미인은 예쁘다'가 그렇다. '분석판단'은 주어에 이미 술어가 포함되어 있는 판단을 뜻한다. '모든 미인은 예쁘다'는 분석판단이다. 왜냐하면 '미인'이라는 주어에 이미 '예쁘다'라는 술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합판단'은 주어에 술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가령 '모든 미인은 키가 크다'라는 명제가 종합판단이다. 미인이라는 주어에는 '키가 크다'라는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듯이 분석판단은 선험적이다. 주어에 이미 술어가 포함되어 있으니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분석판단은 언제나 타당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무런 지식도 더해주지 않는다. 동어반복일 뿐이다.
반면 종합판단은 대부분 경험적이고 후천적이다. '미인'을 많이 본 뒤에야, '모든 미인은 키가 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합판단은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더해준다. 대신 종합판단은 언제나 타장하지도, 확실하지도 않다. 내가 본 모든 미인이 다 키가 커도 어딘가에 키가 작은 미인이 있다면 틀린 명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더해주면서도 언제나 확실하고 타당한 판단은 없을까? 이게 바로 칸트의 고민이다. 선험적 명제처럼 언제나 확실하되, 종합판단처럼 새로운 지식을 추가로 주는 판단이 있는지 말이다. 이걸 칸트는 '선험적 종합판단은 가능한가?'라고 묻는다. 칸트는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모든 삼각형의 내각 합은 180도다'라는 판단이 그렇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따르면 이 명제는 언제나 타당하다. 게다가 삼각형이라는 단어를 분석해봐도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결론이 나오진 않는다. 이 같은 선험적 종합판단이야말로 인간을 진리에 도달케 해주는 판단형식이다. 이로써 칸트는 흄이 철저히 해체한 진리의 개념을 새로이 재건한다.
둘째, 근대적 '주체'의 재건이다. 근대철학의 확실한 출발점이던 '주체'는 흄의 비판으로 '지각의 다발', '관념의 다발'로 해체되어 버렸다. 진리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더해 이젠 아예 인식하는 주체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칸트는 시작해야 했다. 칸트는 죽음 직전의 위기에서 근대적 '주체'를 살려냈다.
칸트가 보기에 인간의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 시작된다. 물론 흄이 지적한 바와 같이 경험적 인식은 불확실해서 진리가 되기 어렵다. 그런데 경험으로 인식한다고 하면 인간에게 같은 방식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칸트는 이를 '선험적 조건'이라고 말한다. 선험적 조건은 경험에 좌우되지 않는 확실성을 가져야 한다.
같은 사물을 보고 돈키호테는 '팔이 네 개 달린 괴물'이라고 하고, 그의 종은 '풍차'라고 말한다. 이처럼 같은 물체를 서로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칸트 용어로 말하자면 '현상'은 다르게 경험된다. 그런데 돈키호테나 그의 종이나 인식을 하려면, 일단 감각기관을 통해 물체를 받아들여야 한다. 대상(물체)을 받아들이는 기관을 칸트는 '감성'이라고 한다.
우리가 대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게 있다. 바로 시간과 공간이다. 시간이나 공간이 없다면 어떤 사물이 '어느 시점'에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은 경험 이전에 존재해야 한다. 이를 '선험적 감성형식'이라고 한다. 이렇듯 감성으로 받아들인 물체가 하나인지 둘인지, 큰지 작은지, 모양이 어떠한지 등을 판단할 수 있다. 이처럼 받아들인 물체를 분별하는 기관을 칸트는 '지성'이라고 한다.
지성이란 분별하는 능력(분별력)이다. 크다, 작다, 하나다, 다수다, 필연이다, 우연이다 등의 '범주'를 통해 대상의 성질을 구별하고 그것들을 결합해 어떤 판단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그래서 경험에서 어떤 판단을 이끌어내려면 최소한 '범주'가 있어야 한다는 게 칸트의 생각이다. 따라서 '범주'는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 한다. 경험에 좌우되는 게 아니다. 칸트는 인간이 판단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주를 12개로 나누었다.
[칸트의 범주 : 단일성, 다수성, 전체성, 실재성, 부정성, 제한성, 실체/속성, 원인/결과, 상호작용, 가능/불가능, 현존/부재, 필연성/우연성]
바로 이 범주에 따라 인간이 법칙을 인식하고 사물에 관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칸트는 범주를 '선험적 지성형식'이라고 한다. 감성만으론 느낄 순 있어도 판단할 수 없다. 지성만으론 인식할 자료가 없기 때문에 느끼지도 판단할 수도 없다. 이래서 칸트는 "지성 없는 감성은 맹목적이고, 감성 없는 지성은 공허하다"라고 말한다. 곧, 지성과 이성이 모두 있어야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감성을 통한 인식은 지성 때문에 '이성'에 다다른다. 이때 이성은 인간의 이성이나 이성주의라는 말과는 달리, '하나의 원리로 통일하는 능력'을 말한다. 칸트만의 고유한 개념이다. 이성은 경험을 넘어, 하나의 원리로 다양한 경험을 통일하려는 성질이 있다.
칸트는 어떤 경험이나 인식도 피해갈 수 없으며, 또한 확실하고 선험적이라는 미덕을 갖고 있는 걸 찾아낸 셈이다. 선험적 감성과 선험적 지성이 그것인데, 이런 능력을 합해서 '선험적 주체'라고 부른다. 이로써 칸트는 흄이 해체한 근대적 주체를 '선험적 주체'라는 확고하고 튼튼한 것으로 되살려냈다.
셋째, 근대적 윤리학(도덕철학)의 확립이다. 칸트가 윤리학 혹은 도덕철학의 문제를 다룬 책이 '실천이성비판'이다. <실천이성비판>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이렇다. '인간의 의지와 행동은 이성의 힘만으로 규제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원리가 인간의 이성 안에 있는가,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보편 원리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앞서 봤듯 이는 근대 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인간의 이성이 신에게서 독립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고 칸트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보편타당한 윤리원칙'을 찾으려고 했다. 칸트는 유명한 말을 한다. "너는 언제나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인 입법원리로써 타당하게 행동하라"라고 말이다. 곧,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의지가 법으로 만들어져도 좋을 만큼 보편타당한 거라면 그것대로 행동하라는 말이다.
칸트는 '자유'를 새롭게 정의한다. 자유란 다음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야 하기 때문에." 즉, 도덕이란, 본질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거기에 따라 사는 삶이 선이다. 이런 점에서 칸트의 윤리학은 극도로 계몽주의적인 성격을 갖는다. 개개인의 욕망이나 의지를 '보편적인 입법원리'가 될 수 있는 한에서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원리에 따르도록 훈련받지 못한 대중은 일깨워 계몽해야 한다는 말이다. 혈연, 무력,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와 달리 법으로 지배하려는 부르주아지의 관점을 보여주는 관점이라고도 하겠다.
그렇다면 '신'은 이제 어떻게 되는가?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이성에서도, 도덕을 추구하는 실천이성에서도 신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칸트는 사람들을 보편적 가치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데 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도덕철학적인 필요 때문에 실천이성이 신의 존재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이성의 필요에 따라 신의 존재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이성은 신의 피조물'이라고 여긴 중세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신이 이제는 이성의 필요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이고, 신이 이제는 이성에 의해 포섭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근대적 윤리학의 확립자다. 칸트 철학은 '근대철학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난점들 : 영광의 그늘
칸트는 흄이 만들어 놓은 '근대철학의 위기' 속에서 작업했다. 위기 속에서 붕괴된 근대철학의 지반을 새로이 복구하려 했다. '진리'와 '주체'를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했다.
이를 위한 칸트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진리의 주관화다. 진리를 외부 사물이나 대상에서 찾지 않고 주체 내부에서 찾자는 것이다. 둘째는 주체(주관)의 객관화다. 모든 주체가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경험이나 인식의 기초가 되는 필수적인 형식을 주체 내부에서 찾아, 그것이 모든 주체에게 공통된 것임을, 따라서 객관적인 것임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로써 칸트는 주체와 진리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근대 철학의 위기를 극복했다. 바로 이 점이 칸트가 향유한 '영광'의 이유다.
칸트에 이르러 근대의 딜레마는 모두 해소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뿌리깊었다. 새로운 해결은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만들었다. 세 가지 차원에서 문제를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진리에 관한 문제다. 진리를 주관화하는 전략과 관련된 것이다. 칸트는 현상이란 우리가 지각한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현상은 우리의 주관 안에 있다. 대신 주관 밖에는 '사물 자체'를 남겨두었다. 사물 자체는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고 진리를 단지 현상에 관련된 것으로 제한했다. 그럼 우리가 인식한 '현상'과 '사물 자체'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물론 칸트는 그건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이게 바로 근대철학의 딜레마다). 진리란 오직 주관의 형식으로만 정의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는 지식(예컨대 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게 선험적 허위일 가능성은 없는가? 선험적 허위라면 진리로 간주될 수 없지 않을까?
둘째, 선험적 주체에 관한 문제다. 근본적인 난점은 '선험적 형식' 자체에 있다. 지성의 선험적 형식인 '범주'를 보자. 칸트는 범주를 12개로 나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10개로 나누었다. 범주는 철학자마다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범주가 모든 판단의 전제가 되는 '선험적 형식'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범주 이전에 범주를 나누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사람마다 다르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셋째,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 문제다. 칸트에게 실천이성(도덕, 실천적 판단을 하는 이성)은 순수이성(진리를 판단하는 이성)과 별개였다. 심지어 순수이성에서는 신이 필요없지만, 실천이성에서는 신을 다시 불러들이기도 할 만큼 따로 논다. 여기서 순수이성은 '선험적 형식'이라는 이유로 진리를 기초 짓는 확실한 근거로서 정당화된다. 그렇다면 실천이성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다시 말해' 보편입법원리'라는 도덕철학은 무엇에 의해 정당화되는가? 실천이성 자신이 스스로를 근거지운다. 여기서 칸트 비판철학은 '독단론'에 빠진다. 개인의 의지와 욕망을 오직 보편적 입법원리에 끼워 맞추려는 독단론이 나타난 것이다.
2. 피히테 : 근대 철학과 자아
'자아'의 복권
피히테는 칸트를 비판한다. 12개 범주만 갖는 칸트의 선험적 주체가 확실한 만큼이나 공허하다고 생각하며, 주체(피히테 용어로는 '자아')의 활동과 무관하게 정의되어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판단의 범주나 원리는 자아(주체)의 활동과정의 산물이라고 본다.
피히테는 '사물 자체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봤다. 칸트에 따르면 사물 자체는 '있기는 하지만 인식되지 않는 무엇'이다. 인식하지 못하는데 있다는 점을 어떻게 아냐고 피히테는 반문한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의 철학에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 칸트의 '선험적 주체'도 모순이라고 말한다. 선험적 주체에 대해 말하려면, 이 선험적 주체를 인식하는 다른 주체가 먼저 있어야 한다. 칸트에 따르면 선험적 주체는 인식하기 전에 존재하는 주체인데, 피히테는 이 역시 말이 안 된다고 말한다.
이로써 피히테는 두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사물 자체와 현상, 대상과 주체를 어떻게 통일되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피히테의 용어를 빌리자면, 자아와 비아를 어떻게 통일되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선험적 주체보다 더 근본적인 것, 다시 말해 경험에 전혀 제약되지 않아서 설명될 수 없는 '자아'를 어떻게 얘기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피히테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바로 자아와 비아(즉, 주체와 대상)을 통일하는 원리를 '자아'로서 정립하는 것이다. 경험되지도, 인식되지 않으나 주체와 대상을 연관지워 주는 활동, 그리그 그 활동의 결과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드러낼 뿐인 이 원리를 피히테는 '자아'라고 했다(여기서 말하는 '자아'는 비아와 짝을 이루는 자아와 다른 개념이다. 일종의 절대자다. 이 '자아'를 절대적 자아라고 부르자). 이 자아의 활동을 연구하는 게 지식 연구의 핵심이다. 피히테에게 철학이란 지식 연구를 뜻한다.
피히테의 철학적 태제
피히테의 철학에는 세 가지 테제가 있다. 테제, 안티테제, 진테제이다. 변증법을 말할 때 나오는 단어들이다. 피히테는 이 세 가지 테제를 활용해 지식학을 만들려고 했다.
첫째 테제 - "경험 등 모든 사실의 설명에 근거가 되는 자아는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자아 자신 안에 정립되어야 한다."
'자아의 정립'이라고 한다. 피히테에게 '자아'는 모든 정신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절대적인 근거다. 절대 자아가 정립되지 않으면 어떠한 인식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테제 - "자아는 비아를 반정립한다. 나아가 자아는 비아를 자기 안에서 반정립한다."
자아는 비아를 자기에 대립되는 존재로 세운다는 말이다. 흔히 '자아의 부정, 비아의 정립'으로 요약한다. 자아는 정신적 활동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활동도 대상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먹는 활동'은 먹을 음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대상을 정립하려면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어떤 대상이 음식이 될지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피히테는 '대상이 자아 안에 이미 놓여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아의 부정이라는 성격을 가지므로 '비아'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자아가 비아를 정립하는 것이다.
셋째 테제 - "자아는 자아 안에서 가분적 자아에 대해 가분적 비아를 반정립한다."
좀 어려운 말이다. 찬찬히 보자. 당초에 자아는 스스로를 정립했다. 그리고 자아는 활동이기 때문에 비아를 자기 안에서 정립해야 했다. 그럼 이제 절대적 자아는 자아와 비아로 나뉘게 된다. 애초에 자아는 자아만 있었는데, 이제는 자아와 비아로 나뉘어 존재한다. 셋째 테제는 이처럼 나뉠 수 있는 자아(가분적 자아)와 나뉠 수 있는 비아(가분적 비아)가 서로 대립한다는 말이다. 셋째 테제는 마주 서 있는(반정립된) 자아와 비아를 의미한다.
결국 피히테가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절대적 자아란 활동을 통해 자아와 비아를 동시에 정립하는 '자아'다. 피히테는 칸트처럼 선험 철학을 발전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선험적 주체가 아닌 '자아'에서 출발했다. 자아는 자기 안에서 자아를 정립하고 비아를 정립한다. 피히테에게 인식 대상이란 비아일 뿐이다. 자아 외부에 있는 어떤 것도 그는 인정하지 않는다.
피히테는 자아의 무한한 자유를 강조한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는 바로 자유주의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무한한 자아들이 서로 부딪치고 상충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피히테는 자아 전체가 조화로울 수 있도록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심지어 '개체의 소멸'까지 주장한다.
자아철학의 봉쇄장치
피히테는 선험적 주체를 발견하려는 칸트의 기획을 좀 더 근원으로 밀고 갔다. 칸트의 선험적 자아보다 더 근원적인 것으로서 무규정적 자아에서 출발한다. 칸트의 선험적 주체조차 '자아'의 존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로써 피히테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명한, 존재로서의 자아로 말이다. 자아가 활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아는 존재하고 있음이 자명하다고 한다. 비록 이 자아를, 데카르트처럼 사유한다는 사실에서 도출하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결국 피히테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던 '나'(자아)를 절대화한다. '나'(자아)에게 절대자의 자리를 부여한다. 신이 차지하던 자리를 자아가 차지하게 된다. 이로써 근대적 주체철학은 새로이 '자아의 신학'으로 바뀌었다. '자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래서 피히테의 철학을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편 모든 대상은 자아 안에 있다. 자아를 벗어나는 사물은 아예 없다. 나아가 주체와 대상 모두가 자아 안에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의 일치를 어떻게 보증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예 생기지 않는다.
이로써 사물 자체가 일으키는 난점과 더불어 근대철학이 부딪혀야 했던 주체와 대상의 일치를 어떻게 확인하는가라는 난문은 해소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아' 안에 자아에 의해 비아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그 비아(대상)를 자아가 올바로 인식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먹는 활동으로서 '자아'가 먹는 자아와 먹히는 비아(음식)를 자기 내부에서 반정립하더라도, 자신이 무얼 먹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지 않겠는가?
어떤 자아가 인식한 대상(비아)과 다른 자아가 인식한 대상(비아)이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피히테의 철학에 따르면 비아를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자아 모두를 인정해야 한다. 이는 진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근대철학의 딜레마가 다른 형태로 변형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피히테의 철학으로는 다수 지식의 대립과 충돌, 그것을 통해 새로운 사실의 발견, 그 결과로서 새로운 지식의 출현이라는 중요한 사태를 이해하기 곤란해진다. 즉 진리를 아예 처음부터 절대적으로 보장하려다 보니 실제로 역사 속에서 진행되는 지식의 변화와 발전을 이해할 여지를 스스로 봉쇄해 버렸다. 딜레마가 해결된 대신 사상적인 봉쇄가 나타난다.
3. 헤겔 : 정점에 선 근대 철학
비판철학과 헤겔
헤겔은 변증법을 체계화한 철학자로 유명하다. 20세기 중반까지 헤겔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였다. 헤겔 철학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여기서는 가능한 한 간략하게만 알아본다. 헤겔은 칸트의 비판철학을 비판하고, 피히테와 셀링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철학을 내세웠다. 칸트의 비판철학을 향한 비판을 두 가지로 나누어보면 이렇다.
첫째, 칸트는 사물 자체라는 현실과 인식 주체를 분리한다. 이때 현실(사물 자체)은 주체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것이다. 인식이란 서로 나뉜 양자를 사후적으로 이어주는 과정이다. 이렇게 되면 사물 자체는 인식으로 표상되어야 할 어떤 것이지만, 그 표상이 올바른지는 주체의 의식 외부에선 확인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피히테처럼 '자아'안에 대상(현실)과 주체를 끌어넣어 해결하는 주관주의 역시 대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현실(객관)과 주체를 통일할 수 있을까?
둘째, 칸트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인식 이전의 인식능력', 곧 선험적 능력을 연구하려고 했다. 헤겔에게 '인식 이전의 인식능력'이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인식능력을 연구하는 게 인식이기 때문에, 인식에서 벗어나 인식능력을 연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인식, 참된 인식의 기초나 기준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헤겔은 고유한 길을 찾아낸다.
'절대정신'의 변증법
헤겔 역시 사물 자체(현실)와 주관(주체)을 나누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둘을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히테는 이 근원적인 통일을 '자아'를 절대화해서 만들었다. 하지만 헤겔이 주목한 건 친구였던 셸링의 방법이었다. 셸링은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셸링이 보기에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확인하려면 자연을 주체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했다. 곧, 자연이 주체요 정신이라는 말이다. 셸링에 따르면 자연은 정신이자 동시에 자연 안에 있는 정신 자체의 산물인 물질이다. 따라서 자연은 자신을 객체로 정립하는 주체이다.
헤겔은 셸링의 방법을 따라 주체와 객체가 같다는 점을 확인했다. 다른 말로, 그 자체가 객체이기도 한 주체를 설정했다. 헤겔은 이를 절대자, 절대정신이라고 한다. 셸링은 '정신'이 '자연'과 같다고 여겼다. 자연의 법칙 속에서 정신의 운동을 발견하는 '자연철학'이 중요했다. 반면 헤겔에게 절대는 무엇보다도 우선 '정신'이다. 이 정신은 스스로가 외적인 사물이 되어 자연, 사회, 역사 등의 객체(대상)가 된다. 자연, 사회, 역사는 절대정신의 '표현'인 셈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연이 아니라 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회나 역사다. 그래서 헤겔에게는 자연철학보다는 법철학이나 역사철학이 중요하다.
사회나 역사로 바뀐 절대정신은 역사 발전과정을 통해, 그리고 자기 발전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향한 인식에 다다른다. 자기에게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절대정신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향해 발전해 가는 '목적론적 과정'이라고 한다. 정신에서 대상으로, 그리고 다시 정신으로 돌아가는 순환 운동이다. 그러나 끝날 때는 좀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순환 운동을 흔히 '부정의 부정'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이것은 정신과 대상의 변증법, 절대자의 변증법을 집약하고 있으며, 헤겔 체계를 특징짓는 법칙이다.
헤겔에게 진리란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진리의 기준을 계속 정정해 가는 과정이다. 진리를 확인하고 보증해 주는 것은 발전해 가는 절대정신 자신이다.
'철학의 종말', 근대철학의 종말
헤겔은 스피노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스피노자는 자연을 실체의 양태라고 했다. 헤겔에게 절대자(절대정신)은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실체'다. 그리고 절대정신이 표현되어 만들어내는 게 자연, 사회, 역사다. 스피노자 사상에서 양태에 해당한다. 종합하면 스피노자의 실체/양태 개념을 주체와 객체의 통일성을 이루어 가는 목적론적 과정에 적용한 것이다. 근대화된 스피노자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근대적 문제설정 안에 있던 헤겔로선 또 다른 딜레마를 마주하게 된다. 진리란 스스로 돌아보며 자기가 가진 기준을 계속 정정하는 과정이라는 헤겔의 주장이 맞다면, 헤겔이 생각한 진리의 기준 역시 이후에 바뀌어 폐기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헤겔이 말한 진리의 기준은 초역사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진리의 기준이 바뀌어간다는 헤겔의 진리 개념은 말이 안 된다.
헤겔은 어떻게 했을까? 자신의 주장이 목적에 도달한 절대적 진리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논리적 난점에서 피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헤겔의 지식이 형성된 당시야말로 절대정신이 실현된 역사의 종착지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만 절대정신의 실현을 목격한 지식이란 주장이 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헤겔은 자기가 살던 시대를 절대정신이 완성된 시대라고 정의한다. 이로써 철학은 '종말'을 고한다. 헤겔 사상 안에서만 말이다.
역사 속에서 진리의 기준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지식이 검증되는 게 아니라, 헤겔의 진리 기준을 위해 역사가 완성되었고, 지식의 정정도 멈춘 사태가 발생한 셈이다. 이러한 결론은 결국 근대철학이 갖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다른 형태로 보여준다.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이란 결코 확인할 수 없기에 그런 진리란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거나(첫 번째 선택지), 아니면 "내가 곧 진리니라"는 확인할 수 없는 선언을 반복하는 것(두 번째 선택지) 둘 중 하나 밖에 없다.
이로써 근대철학은 종말의 길로 접어든다.
제4부 근대철학의 해체 : 맑스, 프로이트
지금까지 대륙 이성주의와 영국의 경험주의, 독일 고전철학을 살펴봤다. 각 철학별로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도 알아봤다. 지금까지 말했듯이 근대철학 안에 있는 딜레마는 근대적 문제설정 안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좀 더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근대적 문제설정 자체를 의심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심의 대가라고 불리는 맑스, 프로이트, 니체가 바로 그들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점도 의심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데 주저함이 없던 사상가라는 점에서 '의심의 대가'라고 불린다.
1. 맑스 : 역사유물론과 근대 철학
맑스의 '유물론 비판'
맑스는 실천이라는 개념을 철학에 끌어들였다. 또한 근대철학을 해체하는 데 맑스가 사용한 개념이 실천이다. 다시 말해 실천이란 개념을 활용해 맑스는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을 넘어선다. 그런데 칸트도 <실천이성비판>을 쓰며 실천을 다뤘다. 그럼 실천을 철학에 끌어들인 최초의 인물이 맑스가 아니지 않나? 그러나 근대철학자가 사용한 '실천'이란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 윤리학의 영역에 제한된 것이다. 맑스가 사용한 실천은 사전적인 정의가 아니라 '기능'과 '의미'를 갖는 개념이다.
맑스는 포이어바흐를 비판하며 크게 네 가지로 나눠 실천을 설명한다.
첫째는 '대상'으로서의 실천이다. 맑스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모든 유물론의 문제점은 대상/현실을 객체의 형식으로만 파악했다는 점이다. 대상이나 현실을 실천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이제는 대상이나 현실을 실천이라는 형태로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포이어바흐는 "인간이란 자기가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해 인간은 단지 물질 덩어리란 말이다. 이를 기계론적 유물론이라고 한다. 맑스는 다르게 생각했다. 맑스는 대상을 활동적인 생활 과정, 실천 과정에서 파악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어느 도시에 성(castle)이 있다고 하자. 이 성은 중세 시대 때는 권력의 중심지이지만, 현재는 관광지일 뿐이다. 시대에 따라 성의 의미가 바뀐 것이다. 이로써 대상은 사회적인 맥락이나 역사 속에서 정의될 수 있게 된다. 맑스의 표현을 빌리면, "성은 성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는 관광지다."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맑스는 포이어바흐를 비롯한 유물론자들이 '대상을 단순히 지각, 직관, 감각으로만 파악했다.'고 비판한다. 포이어바흐의 이런 유물론 관점은 헤겔의 관념론을 비판하면서 제시된 것이다. 관념론자는 대상을 주체의 관념 속에서 정의한다. 이에 관해 포이어바흐는 "관념론자들은 사물을 더 잘 보기 위해 인간에게서 눈을 빼버렸다"고 비판한다. 뒤짚어 말하면, '더 잘 보기 위해서 차라리 눈을 갖고 관념을 없애는 편이 낫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포이어바흐는 대상을 눈에 비치는 대로 파악하려 했다. 맑스에게 지각은 대상을 수동적으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목적을 갖는 활동이자 실천이다.
셋째는 진리의 문제다. 인간이 대상에 대한 진리를 가질 수 있는가하는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는 뜻이다. 따라서 대상에 대해 '영원한' 진리를 얻는 건 불가능하다. 부시맨들에게 콜라병이 주어진다고 해보자. 부시맨 A에겐 콜라병이 호두를 까는 물건이고, 부시맨 B에겐 피리가 될 수 있다. 호두까는 물건으로써 현실성과 힘을 부여받는다면 콜라병은 호두까는 물건으로 입증될 것이다. 피리로써의 기능을 잃는다면 콜라병은 이제 호두까는 물건이 되는 것이다. 콜라병은 영원히 호두까는 물건이거나 영원히 피리가 되지 않는다. 실천, 현실성, 힘에 따라 달라진다.
넷째로 계몽주의 비판이다. 맑스는 '교육과 환경'에 따라 사람이 바뀐다는 생각(계몽주의)에 반대한다. 사회를 우월한 부분과 열등한 부분으로 나누는 이분법 자체를 비판한 것이다. 가르쳐야 할 사람과 배워야 할 사람으로 양분하는 것 말이다. 이는 계몽주의의 지반 자체를 해체하는 비판이다. 한편, 맑스는 "환경은 인간에 따라 바뀌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교육자는 누구에게 배워야 할까? 대중에게서?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계몽주의를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고에도 계몽주의적 이분법이 남아있다. 맑스는 '혁명적 실천'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혁명적 실천을 통해 교육자/피교육자 모두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계몽주의와는 다른 윤리학을, 아니 정치학을 열었다.
포이어바흐를 비판하며 실천을 설명했지만, 동시에 헤겔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맑스는 포이어바흐와 헤겔을 비판하면서 근대철학의 문제설정 전체를 비판한 셈이다. 어쩌면 근대적 문제설정과 개념에 사로집힌 유물론을 향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런 비판을 통해 맑스는 '역사유물론'이라는 새로운 유물론을 제시한다.
역사유물론과 주체철학
맑스는 실천을 도입해 '진리'라는 근대철학의 목표는 물론, 대상 자체도 파괴했다. 단지 파괴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물질 개념조차 역사적으로 파악하는 역사유물론을 만들었다. 역사유물론을 제시하면서 근대철학의 출발점이던 주체(인간) 개념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맑스는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한다. 데카르트처럼 이성과 정념을 가진 존재로 정의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수많은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면 사람마다 다 인간을 다르게 정의할 수 있다. 맑스가 보기에 중요한 점은 개인이 어떤 사회적 특징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말이다. 곧,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노예가 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갖는 생물학적 특성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회적 관계가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은 선천적인 어떤 존재가 아니다. 사회적 관계에 따라 만들어지는 존재며, 관계가 달라지면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근대철학의 출발점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집은 생각이다. 자명하고 확실한 출발점인 '주체'는 따로 없으니까 말이다. 개인이 갖는 의식이나 관념도 사회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철학적 전환에 힘입어 근대철학의 출발점이던 주체 개념은 해체됐다. 근대적 문제설정에서 파생한 '주체철학'도 전복되고 말았다. 근대적 문제설정을 넘어서는 결정적인 지점이 맑스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주체철학을 떠나자마자 역사 개념도 바뀐다. 더 이상 역사는 '절대정신'이 목적에 따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역사 역시 이젠 사회 관계에 따라 정의되고, 그것의 변화와 대체 과정에 불과한 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란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이다.
맑스철학의 근대성과 탈근대성
요약하면 맑스는 '실천'이라는 개념으로 철학의 틀을 바꿨다. 맑스에 따르면 주체도, 대상도, 인식도, 진리도 모두 실천이란 개념에 따라 새롭게 정의된다. 근대철학이 추구하던 '확고한 진리'라는 틀을 깨버렸다. 게다가 근대철학의 출발점이던 자명한 주체도 해체해 버린다. 이제 주체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주체는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물이 됐다. 인간을 특정한 주체로 만든 사회역사적 요인을 다루는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시한다. 맑스에 따르면 주체는 확고부동한 존재가 아니다. 사회적/역사적 조건에 따라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다. 이게 바로 '역사유물론'이다.
이 새로운 문제설정은 지식과 주체, 역사를 다루는 새로운 방법을 포함하고, '진리'의 문제를 벗어나 현실성과 힘이란 차원에서 지식을 다루는 방법을 담고 있다. 지식을 형성하는 사회적/역사적 조건 속에서, 지식의 형성과 기능을 다루는 방법이었다. 이 점에서 맑스는 진리를 극단의 회의에 몰아넣고 스스로 당황했던 흄과는 달랐다.
2. 프로이트:정신분석학과 근대 철학
철학자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자다. 철학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근대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무의식'이라는 간단하면서도 유명한 개념 때문이다. 무의식은 근대철학의 기초였던 '주체'를 해체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무의식이란 정신 안에 있지만 의식되지 않는 영역을 말한다. 전혀 의식되지 않은 채 판단하는 영역이 사람의 정신 안에 있다는 말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무의식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특징이다. 프로이트는 농담이나 실수, 일상생활에서까지도 무의식의 징후들을 발견했다. 우리가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행동과 생각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뉜다. 둘은 서로 나뉘어져 있다. 의식은 무의식이 어떠한 상태인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욕망(특히 성욕)이 무의식과 관련이 되어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다시 무의식을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눈다. 억압되는 욕망과 충동을 '이드'라고 하며, 억압하는 기제를 '초자아'라고 한다. 이드는 쾌락원칙에 따라 움직이며, 초자아는 그것을 통제하려는 사회적 질서가 내면화된 것이다. 이 둘은 언제나 충돌한다. 이드는 쾌락을 찾아 움직이려하고, 초자아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막는다. 이 충돌을 화해시키는 존재가 자아(ego)다. 자아는 금지된 것을 피하면서 쾌락을 추구하도록 조정한다. '현실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이드와 초자아는 무의식인 반면, 자아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걸쳐 있다.
무의식과 주체철학
근대철학에서 주체는 의식과 동일시됐다. 주체가 모든 대상을 판단하고,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대상을 지배하는 중심이었다. 데카르트나 칸트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말이다. 데카르트에게 세계가 확실한 이유는 '내'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에게 세계나 진리는 (선험적) 주체 안에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흄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흄이 자아를 지각의 다발로 해체할 때조차도 자아는 지각이나 인상, 관념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아무리 변덕을 부리더라도 판단의 중심이 '자아'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무의식이 생겨나자마자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첫째로 이제 주체는 의식과 같지 않게 됐다. 오히려 인간 정신의 커다란 부분이 무의식일 수 있다. '생각하는 나' 이외에 '생각하는 나'가 알지 못하는 '나'가 인간 내부에 있다는 말이다.
결국 주체란 통일적인 중심이 아니라 매우 이질적인 '복합체'이고, 자명한 출발점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결론이 이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트의 발견은 애시당초 철학의 영역 밖에서 행해진 것이고, 철학과 관련된 주제도 아니지만 '주체철학'이라는 근대철학의 지반을 철저하게 허물고 깨뜨린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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