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시 읽으며.. 본문
문제작 호밀밭의 파수꾼
1980년 12월 8일 밤 11시,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이 자신의 팬이었던 마크 채프먼의 총에 살해당했다. 살해 직후 마크 채프먼은 도망갔을까? 아니다. 그는 존 레논을 살해한 뒤 살해 현장에서 책을 읽었다.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을 말이다. 경찰에 체포되는 순간까지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당시 이미 유명한 작품이었지만 이 사건 이후도 더 유명세를 떨쳤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청소년에게 읽히지 말아야 할 책', '살인자를 키우는 책'과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니기도 했다.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당시 논란이 많았다. 한편, 현대 미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노벨상 수상작가인 윌리엄 포크너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20세기 최고의 소설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이렇듯 이 소설은 1951년에 출판되어 오늘날까지 문제작으로 남아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내 인생책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이를 보여주듯 내 서재에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세 권 있다.
총 다섯 번 읽었는데, 원서로 2번, 공경희 번역본으로 2번, 정영목 번역본으로 1번 읽었다.
이런 대작은 여러 역자가 쓴 번역본을 읽어 보곤 한다. 역자에 따라 글의 느낌이 꽤 다르니까 말이다. 둘 다 읽어본 바로는 내겐 공경희 번역본보단 정영목 번역본이 더 낫다. 정영목 번역본이 샐린저의 글을 더 날 것(?)으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비속어도 종종 쓰고, 쓸데없는 미사여구도 자주 사용한다. 정영목 번역본에서는 그러한 비속어와 미사여구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고 원서에 충실하게 살렸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말을 정리해서 하지 않는다.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다. 이 느낌을 잘 살려 표현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정영목 역자가 이 느낌을 잘 살려 번역한 것이다. 더불어 원서도 읽기 어렵지 않다. 문장이 짧고 단어도 대개 쉬우니 말이다.
내친김에 이번에 샐린저의 다른 작품 『프래니와 주이』와 김성곤 작가의 『J.D. 샐린저와 호밀밭의 파수꾼』도 읽었다.
작품 요약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은 16살인 홀든 콜필드다. 그는 가식을 무척 싫어한다. 홀든이 다니던 학교는 가식과 속물로 넘쳐나던 곳이다. 당시 하스라는 교장이 있었는데, 홀든은 그 교장이야 말로 가식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학생들의 부모 중 촌티가 나는 사람과는 짧은 인사만 하고, 그렇지 않은 부모와는 오랫동안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홀든은 이런 가식이나 속물을 참지 못한다.
내가 엘크턴 힐스를 떠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가식에 둘러싸여 있었다는 거였다. 그게 다다. 예를 들어 그 교장, 미스터 하스라고 있는데, 그는 내 평생 만나본 가장 가식적인 놈이었다. 우리의 서머보다 열 배는 심했다. 예를 들어 일요일이면 우리의 하스는 학교로 차를 몰고 오는 모든 아이의 부모와 악수를 하고 돌아다녔다. 다만 어떤 애의 부모가 별거 아니고 웃기게 생긴 그딴 부모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그가 내 룸메의 부모를 어떻게 했는지 봤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어떤 애의 어머니가 좀 뚱뚱하거나 촌티가 나거나 그러면, 또 어떤 애 아버지가 어깨가 아주 큰 그런 양복을 입고 촌스러운 흑백 구두를 신는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의 한스는 그냥 악수를 하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준 다음 얼른 다른 애 부모한테 가서 뭐 한 삼십 분쯤 얘기를 했다. 나는 그런 건 참지 못한다. 돌아 버린다. 너무 우울해져서 돌아버리고 만다. 나는 그 빌어먹을 엘크턴 힐스가 싫었다.
위선자들에게 환멸을 느껴 홀든은 결국 학교를 떠난다. 학교를 떠난 뒤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한다.
"보세요, 여기요. 센트럴 파크 사우스 바로 옆에 있는 그 호수의 오리들 아시죠? 혹시 그게 어디로 가는지 아세요, 그 오리들이요, 거기가 다 얼어 버리면? 아시나요, 혹시?" 나는 그것이 백만분의 일의 혹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몸을 돌려 미치광이를 보듯 나를 보았다. "지금 뭐 하는 거요, 친구? 나한테 장난쳐?"
"아니요, 그냥 흥미가 있어서요, 그뿐입니다."
그는 더 말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도 하지 않았다.
나는 샐린저가 무슨 뜻으로 이 장면을 썼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홀든은 연못이 얼면 연못에 있던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그걸 갑자기 택시기사에게 물어본 것이다.
홀든은 퇴학 당하고, 집엔 갈 수 없는 신세가 됐다. 뉴욕에서 서성이며 술집, 길거리, 호텔, 클럽 등을 전전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지만 수녀 두 명 빼고는 모두 속물이었다. 위선자가 판을 치는 학교를 떠났지만 어딜 가나 속물과 위선자로 가득했다. 환멸을 느낀 홀든은 여동생인 피비가 너무 보고 싶었다. 집으로 가 부모님 몰래 여동생 피비와 만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피비는 홀든에게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어본다. 여동생 피비의 물음에 홀든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자 피비는 과학자는 어떻냐고 물어본다. 과학을 못해서 과학자는 되지 못한다고 홀든이 대답한다. 이어서 피비는 아빠와 같은 변호사는 어떻냐고 물어본다. 홀든은 이렇게 답한다.
"변호사는 괜찮아, 내 생각으로는. 하지만 나한테는 그게 매력이 없어. 그러니까 늘 죄 없는 사람의 목숨이나 그런 걸 구해주고 돌아다니거나 그러면 괜찮겠지만 변호사가 되면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니야. 하는 일이라고는 돈을 많이 벌고 골프를 치고 브리지 게임을 하고 차를 사고 마티니를 마시고 거물처럼 보이는 거뿐이야. 또 게다가. 설사 실제로 사람들 목숨이나 그런 걸 구하며 돌아다닌다고 해도 자기가 정말로 사람들 목숨을 구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하고 싶은 건 끝내주는 변호사가 되어 빌어먹을 재판이 끝나면 법정에서 모두가, 기자와 모든 사람이 등을 두드리며 축하해 주는 게, 더러운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해주는 게 좋아서 그렇게 한 건지 어떻게 알겠어? 자기가 그러는 게 가식이 아니란 걸 어떻게 알겠어? 여기서 문제는 그걸 모른다는 거야."
변호사의 일이 죄 없는 사람을 돕는 것이라면 좋다고 한다. 그런데 홀든은 변호사가 하는 일이 죄 없는 사람을 돕는 게 아니라 돈을 많이 벌어 골프를 치고, 게임을 하고, 좋은 차를 타고, 마티니를 마시며 사람들의 부러움과 칭찬을 받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변호사가 싫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되면 속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되고 싶냐는 피비의 물음에 홀든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든 어린 꼬마들이 호밀밭이나 그런 커다란 밭에서 어떤 놀이를 하는 모습을 계속 그려 봐. 어린 꼬마 수천 명, 주위에 아무도 없고(그러니까 어른은 없고) 나를 빼면. 그런데 나는 어떤 미친 절벽 가장자리에 서있어. 만일 꼬마들이 절벽을 넘어가려 하면 내가 모두 붙잡아야 해. 그러니까 꼬마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지도 않고 마구 달리면 내가 어딘가에서 나가 꼬마를 붙잡는 거야. 그게 내가 온종일 하는 일이야. 나는 그냥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그런 노릇을 하는 거지. 나도 그게 미쳤다는 거 알아. 하지만 그게 내가 진짜로 되고 싶은 유일한 거야."
홀든은 가식과 허영, 속물이 넘쳐나는 세상에 염증을 느낀다. 그런 것들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한다. 아이들이 절벽을 넘어가려 하면 붙잡는 일만 하고 싶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속물에 물들지 않게,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게 지키는 일을 말이다. 세상의 모든 어른은 속물이기 때문에 어른은 한 명도 없고, 순수한 어린 꼬마만 수천 명 있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 그게 홀든이 되고 싶은 유일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점을 알지만 그래도 그게 유일한 홀든의 바람이다.
그러더니 아이가 한 일, 그거에 젠장 나는 숨이 넘어갈 뻔했다. 아이는 내 코트 호주머니에서 빨간 사냥 모자를 꺼내 내 머리에 씌웠다.
여동생 피비는 홀든에게 빨간 사냥 모자를 씌운다. 오빠를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인정한 행동인 것 같다. 여동생이 빨간 사냥 모자를 씌워주자 홀든은 숨이 넘어갈 뻔했다. 홀든이 애착하는 빨간 사냥 모자를, 홀든이 가장 좋아하는 여동생이 씌워주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 문단이다.
우아, 비가 개처럼 오기 시작했다. 양동이로 쏟아부었다, 하느님한테 맹세한다. 모든 부모나 어머니나 모두가 살까지 흠뻑 젖거나 그러고 싶지 않아 회전목마 지붕 바로 밑으로 가서 서있었지만 나는 한참을 벤치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완전히 푹 젖었다, 특히 목과 바지가. 사냥 모자는 정말이지 꽤나 나를 보호해 줬다, 어떤 면에서는. 그래도 어차피 흠뻑 젖기는 했지만. 하지만 상관없었다. 갑자기 젠장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 우리의 피비가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 나는 빌어먹을 고함을 지를 뻔했다, 나는 그럴 만큼 젠장 행복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아이가 아주 젠장 멋져 보였다, 아이가 파란 코트나 그런 걸 입고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이. 맙소사, 거기서 그걸 봤어야 하는데.
너무 아름다운 장면이다. 홀든은 속물들로 넘쳐나는 뉴욕을 떠나 아무도 없는 서부 시골로 가려고 했지만, 여동생 피비의 부탁에 못이겨 피비 곁에 남기로 했다. 그리곤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는 모습을 바라본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말이다. 그 순간이 엄청나게 행복해 홀든은 소리를 지를 뻔했다. 누구보다 순수한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는 순간을 영원히 눈에 간직하고 싶었으리라.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반응
학교라는 제도로 표상되는 기성세대의 위선과 허위를 고발하며, 학교를 떠나 뉴욕의 거리를 방황하는 홀든 콜필드의 체제 저항적 태도는 당시 억눌려있던 젊은이들의 가슴에 반항의 불을 지피는 기폭제가 되었다. 홀든 콜필드의 거칠 것 없는 언사, 당시로서는 사회적 타부였던 적나라한 욕설, 그리고 시원하게만 느껴지는 저항적 태도는 점잖음을 추구하던 미국 문단에도 충격이었지만, 허위와 기만 속에 안정을 추구하며 살던 기성세대에도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한편 홀든 콜필드의 언사가 너무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언어가 외설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홀든이 피비의 학교 벽에 쓰인 외설스러운 욕을 지우는 장면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곧, 홀든의 언어가 외설스러운 게 아니라, 홀든이 싫어서 도망치는 현실이 외설스럽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홀든은 외설적인 것을 증오하는 사람이지, 결코 외설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홀든이 외설적인 것으로부터 어린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샐린저
샐린저가 맨 처음 『호밀밭의 파수꾼』 원고를 뉴욕의 한 출판사에 보냈을 때, 당시로서는 너무나 자유분방한 언사와 저항적인 내용 때문에 말썽이 날 것을 두려워한 출판사는 주저했다. 결국 샐린저에게 원고를 수정해주길 부탁했다. 화가 난 샐린저는 원고를 빼내어 보스턴의 '리틀, 브라운'사로 보냈다. 거기서 이 기념비적 소설을 출간하게 된다. 천문학적인 수입과 출판사의 명성이 순간의 판단착오로 인해 한 출판사에서 다른 출판사로, 그리고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문학계 대작 대부분은 영화화된다. 그렇지만 『호밀밭의 파수꾼』 영화는 없다. 샐린저가 죽은 뒤 제작된 '호밀밭의 반항아'라는 전기 영화 정도만 있을 뿐이다. 유독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영화화되지 못한 까닭은 샐린저가 영화사에 판권을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홀든이 그걸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대답과 함께 냉정하게 거절했다. 심지어 본인의 평전 출판도 거부했다. 평전은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사람을 대상으로 쓴다. 더 유명해질 기회가 생겼음에도 그러한 평전도 거부한 것이다.
성공한 대부분의 작가와 다르게, 샐린저는 1965년 이래 모든 공적활동을 멈추고 시골집에 조용히 은거했다. 1970년에는 출판사로부터 받았던 선급금 7만 5천 달러를 반납한 후, 더 이상 작품출간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다음부터 더 완벽하게 은둔했다. 본인의 문학적 신념을 삶에서 실천한 작가다. 현실에서는 순수한 아이들만 모여있는 곳이 없으니 호밀밭의 파수꾼이 될 수 없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지 못할 바에 위선자와 속물들에게서 벗어나 은둔하는 삶을 택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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