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퉁이 서재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본문

책과 사유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Baek Kyun Shin 2019. 4. 4. 23:40

첫 몇 페이지를 읽고 나면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 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그런 책이었고, [상실의 시대]도 그 중 하나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항상 언급되는 세계적인 작가다. 한국에서도 워낙 인기 있는 작가여서 1Q84,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의 책 이름은 많이 들어봤다. 현대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여서 그런지 사실 그의 작품은 별로 읽고 싶지가 않았다. 하루키라는 이름에서부터 왠지 모를 대중성과 서정성이 풍겼다. 집에서 우연히 [상실의 시대]를 꺼내보았을 때, 젊은 청년이 주인공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23살 이등병 시절에 읽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스무살 도쿄]가 떠올라 첫 몇 페이지를 읽어 봤다. 그 뒤로 읽고 있던 책을 내팽개치고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장편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책을 영화화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상실의 시대]를 영화화하면 어떨까라고 생각을 해봤는데, 참 재미없을 것 같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정적이고, 주인공의 독백식 나레이션이 영화의 주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은 개인적으로 [상실의 시대]와 같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좋아한다. [이방인], [호밀밭의 파수꾼]과 마찬가지로. 스토리의 전개보다 내면의 변화와 흐름을 감상하는 게 주인공의 심리를 잘 파악할 수 있어서다.

[이방인], [호밀밭의 파수꾼]과 [상실의 시대]의 다른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태도이다. [이방인]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은 세상을 비관적이라고 할 만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는 너무나 담담하다. 기쁜 일이 있어도, 급한 일이 있어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나오코가 죽어도 그저 담담하다. 소설의 전체를 지배하는 이 담담함이 [상실의 시대]만의 매력인 것 같다. 젊은이의 방황, 사랑, 삶과 죽음의 관계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의미보다도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스토리가 역동적이거나 갈등 상황이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불시에 몇 사람이 죽는 것을 제외하고는 스토리가 전혀 역동적이지 않다. 하지만 책에서 풍기는 평온함, 담담함, 고요함, 평화로움, 희미함.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사랑에 대한 고민과 방황이 이 책의 매력이다. 주변인이 죽은 상황을 갑자기 등장시킨 것도 어쩌면 담담함의 일환일 것이다.

이 책의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즈의 노래다. 덕분에 비틀즈의 노래를 들어봤다. 아마 하루키는 이 노래를 모티브 삼아 집필을 했을 것이다. 노래의 분위기는 소설의 분위기와 사뭇다르지만 젊은이의 사랑과 방황이라는 주제는 일치한다.

20대 초반일 때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소설이다. 20대 초반인 지인이 있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소설이기도 하다.

2018. 8. 10.

Comments